詩와 글

정 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너에게,

opal* 2005. 3. 5. 10:25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 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너에게

 

                      정 호승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녁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나는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설굴암에 오르는 영희' 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위령제' 당선
1989년 제3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 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열림원,2002), '이 짧은 시간 동안' (창작과비평사,2004)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