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용아장성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큰 마음 보따리를 싸들고 저녁 9시 반 출발,
차에선 기사님과 얘기 나누는 소리와 휴게소 들리느라 조는 둥 마는 둥, 4시간 만에 한계령 도착(01:30).
아직 문을 열 시간이 아니라 잠겨 진 문 위로 한 사람씩 월담. 철망 구멍이 넓어진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넘어 다닌 모양이다.
몸도 안 풀린 상태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금방 헉헉. 재작년 이맘 때 오색에서(02시 반) 인파에 떠밀리며 오르던 생각이 난다.
빠른 사람은 빠른 대로, 느린 사람은 느린 대로 각자 자기 페이스에 맞춰 오르니 자꾸 뒤로 쳐진다.
돌계단과 나무 계단을 번갈아 오르고 좁은 길은 돌 아니면 흙탕물이다. 캄캄해서 제대로 구별이 안된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 골짜기엔 안개가 잔뜩 고여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랜턴 불빛은 고작해야 발 하나 떼어 놓을 자리만 비춰주고 영역을 넓히질 못 한다.
흙길인가 하고 밟고 보면 철퍼덕, 혹은 철썩, 길에 고인 진흙물을 계속 튀기며 행진한다.
구경도 못하는 이 밤길을 걷자고 잠도 못자고 생고생을 하다니. 도깨비가 아니고서야 한 밤중에 이렇게 다닐 수가 있을까.
1 시간 20분 걸려 서북능선(02:45)을 올라서고, 다시 2시간 지나 끝청(04:50)에 올라섰으나
여전히 짙은 안개가 이정표를 감춘다. 보이는 것이라곤 직선으로 뻗는 불빛에 안개의 미세한 물방울과
다른 사람들의 랜턴 빛만 아련하게 보일 뿐이다.
해발 1600m의 끝청 갈림길(05:25). 오리무중의 짙은 안개 속이라 방향이 바뀌어도 감이 안 잡힌다.
예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우측의 중청과 대청을 떠올리며 소청으로 향한다.
소청 갈림길(05:45). 전과 달리 판석이 넓게 깔리고 이정표 주위엔 줄을 매어 놓았다.
이정표의 거리를 확인하고 좌측 봉정암(1.1km)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이곳부터는 초행길인데...
아직도 어두워 잘 보이질 않는다. 대청봉을 향해 올라오는 이들을 간간히 만난다.
가파른 돌길을 더듬더듬 내려가니 불빛이 환하다. 소청 대피소다(06:00).
여섯 시까지 와야 용아를 탈 수 있다 했는데 딱 들어맞는 약속 시간이다. 오랜 만에 만난 대장님의 배려로 따뜻한 국물과 아침 식사.
다시 출발하여 봉정암 마당에 선다. 법계사가 높을까, 봉정암이 높을까? 처음 왔으니 한 바퀴 둘러보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어두운 밤길에 뿔뿔이 흩어져 왔으니 누가 어디에 있는지, 갔는지 왔는지도 모르겠고, 일행 꽁무니 놓칠 새라 쫓아 오르기 바쁘다.
5층 석탑 옆으로 오르니 곱게 치장한 단풍으로 아랫부분을 가린 용아능선이 날카롭게 솟은 바위 날을 세우고 위용을 떨치고 있다.
우측으로 공룡능선이 친구하고, 좌측 멀리 봉우리들 뒤로 서북 능선이 구름에 덮여있다.
남들 눈치를 살피다 용아장성 산행시작, 탑 옆으로 섰던 낯선이가 "산행이 안되는 곳'이라고 슬며시 언질을 준다.
'감시원에게 고자질이라도 하지않을까?' 은근히 걱정하며 숲으로 들어서니 바로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단다.
로프도 없는 직벽에 가까운 골짜기, 바위의 홈을 이용해 매달리며 한 사람 씩 내려가려니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오늘 하루 특별히 도우미로 초청된 전문 대장들 걱정이 크다. 겁 많고 서툰 사람들이 많아 하루 시간도 부족 하겠단다.
골짜기 사이로 앞에 보이는 바위만 봐도 아찔하다. 이왕 왔으니 이를 악물고 매달리며 내려서는데
발 놓을 자리가 안보여 공포를 준다. 아래에서 쳐다보며 지시하는 대로 딛으며 간신히 내려섰다. 진땀이 다 난다. 이제 시작인데.
몇 발작 더 가니 이번엔 또다시 바위 위로 올라가야 한단다. 우회도로도 없고 무조건이다.
올라가는 이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 매듭 묶여 늘어진 밧줄 세 가닥 중 하나 씩 각자 선택. 어쩐다?
과연 팔 힘이 버텨줄 수 있을까? 팔운동이라곤 숟가락 들고 밥 먹은 것뿐인데.
줄 하나를 골라잡고 오르다 쉬고, 다시 오르는데 발이 버티질 못하고 미끄러진다.
아래에 있는 대장 한 사람을 불러 올려 발 좀 받쳐 달라하여 팔 힘으로 간신히 오른다.
우회도로가 있다면 내려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여기선 어느 곳으로도 혼자 갈 수가 없는 곳이다.
능선에 오르니 멋진 바위들이 얼굴을 마주 하자 한다. 감탄 연발. 밤새워 온 보람이 있다.
삼십 분쯤 걸었을까? 또 내려딛어야 한다. 능선을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으로 올라섰다 내려섰다의 반복이다.
문제는 바위에 난 홈을 이용해 홀더에 손가락을 끼우고 손힘으로 버텨야 한다.
산엔 다녔어도 안 해본 바위 릿지다. 낯선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오르내린다.
금지 구역이라고는 하나 등산객이 생각보다 많다. 모두 친절하게 가르쳐 줘 고맙고 감사하다.
위험한 곳을 어쩌자고 왔느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이도 있다.
未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