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설날
김 종해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 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 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 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 오르고
밖에는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 속에서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 이고 오신 하늘 한 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섣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 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 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 올려 주셨다
꿈꾸는 사람에겐 어둠이 필요하다
김종해
춥고 어두운 날의 은혜가 있으므로
새날은 더욱 눈부시다
서설이 깔린 길은 더욱 눈부시다
그대 식탁 위의 은식기마다 반짝이는 것은
햇빛 같은 사랑
가득 담겨 있을수록
내일은 푸르고 더욱 아름답다
새날을 받기 위해 줄지어선 사람들
그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약간의 어둠이다
꿈꾸는 사람에겐 어둠이 필요하다
내일 아침 햇살을 낳기 위해
오늘밤을 진통하는 여인처럼
그대의 식탁 위엔
아무도 손대지 않은
한 세기가 차려진다
춥고 어두운 날의 은혜가 있으므로
오늘 아침
세상은 더욱 눈부시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눈
김종해
눈은 가볍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릴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1941 부산 출생
국학대 국문과 중퇴
1963 <<자유문학>>에 시 <저녁>으로 신인상을 받고 당선
1965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내란>이 당선
1983 제28회 현대문학상 수상
1985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현대시>>, <<신년대>> 동인
2004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인간의 악기> 서구출판사 1966
시집 <신(神)의 열쇠> 문원사 1971
시집 <왜 아니 오시나요> 문학예술사 1979
천노(賤奴) 일어서다 서문당 1982
시집 <항해일지> 문학세계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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