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성부-봄, 외로움 얻어 돌아오는 길 빛나거니,벼,

opal* 2008. 3. 2. 13:38

 

 

 

 

                                이 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외로움 얻어 돌아오는 길 빛나거니

 

                                             이 성부

 

크낙한 슬픔 한 덩리를 들고 나와
햇빛에 비춰보는 사람은
비로소 큰 기쁨을 안다
잃어버린 말 잃어버린 웃음
잃어버린 날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끝내 더 큰 획득에 이르지 않았더냐!
무릎 꿇고 멍에를 짊어지고
긴긴 밤 하늘에 내 별 길을 잃어
나타나지 않았지만
다음에 온 더 맑은 밤들마다
승리에 반짝였으니

이제 또 봄이다
아픔을 나의 것으로 찾아가는 사람만이
가슴 뛰는 우리들의 봄이다
외로움을 얻어 돌아오는 길
더 빛나는 우리들의 봄이다

 

 

 

                                       이 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