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김 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民草)
<四·一九>詩
김 수영
나는 하필이면
왜 이 詩를
잠이 와
잠이 와
잠이 와 죽겠는데
왜
지금 쓰려나
이 순간에 쓰려나
罪囚들의 말이
배고픈 것보다도
잠 못 자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해서
그래 그러나
배고픈 사람이
하도 많아 그러나
詩같은 것
詩같은 것
안 쓰려고 그러나
더구나
<四·一九>詩같은 것
안 쓰려고 그러나
껌벅껌벅
두 눈을
감아가면서
아주
금방 곯아떨어질 것
같은데
밥보다도
더 소중한
잠이 안 오네
달콤한
달콤한
잠이 안 오네
보스토크가
돌아와 그러나
世界政府理想이
따분해 그러나
이 나라
백성들이
너무 지쳐 그러나
별안간
빚 갚을 것
생각나 그러나
여편네가
짜증낼까
무서운 그러나
동생들과
어머니가
걱정이 돼 그러나
참았던 오줌 마려
그래 그러나
詩같은 것
詩같은 것
써보려고 그러나
<四·一九>詩같은 것
써보려고 그러나
사랑의 變奏曲(변주곡)
김 수 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뱥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暴風의 간악한
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美大陸에서 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都市의 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冥想이 아닐 거다
<1967. 2. 15>
1921년 서울 종로 2가 출생
1945년 [예술부락]에서 시 '廟庭의 노래'를 실으면서 작품활동 전개
1946년 연희전문 영문과 4년 편입
1949년 김경린, 박인환 등과 사화집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 간행
1958년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 첫시집 [달나라의 장난] 간행
1968년 6월16일 교통사고로 사망(48세)
1974년 시선집 [巨大한 뿌리] 이후, 산문집 [詩여, 침을 뱉어라]등이 간행됨
1981년 김수영 문학상 제정,[金洙映全集] 간행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새로운 도시(都市)와 시민(市民)들의 합창(合唱)> [공저] 도시문화사 1949
시집 <달나라의 장난> 춘조사 1959
시집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시집 <주머니 속의 시(詩)> [공저] 열화당 1977
시집 <달의 행로(行路)를 밟을 지라도> 민음사 1979
시집 <김수영전집(金洙暎全集)> 민음사 1981
시집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열음사 1984
시집 <사랑의 변주곡> 창작과비평사 1988
'詩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 동엽 - 아니오, 그 사람에게, 창가에서. (0) | 2008.04.23 |
---|---|
김 영태 - 섬, 소, 호수근처. (0) | 2008.04.21 |
이 형기- 낙화, 봄비, 滿開 (0) | 2008.04.18 |
이 상국-아버지의 집으로 가고싶다, (0) | 2008.04.12 |
이 상국- 별, 민박,겨울에 동백을 보다,겨울 선운사에서,기러기 가족.울산 (0) | 2008.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