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상국- 별, 민박,겨울에 동백을 보다,겨울 선운사에서,기러기 가족.울산

opal* 2008. 4. 12. 15:15

 

 



                            이 상국

큰 산이 작은 산을 업고
놀빛 속을 걸어 미시령을 넘어간 뒤
별은 얼마나 먼 곳에서 오는지

처음엔 옛사랑처럼 희미하게 보이다가
울산바위가 푸른 어둠에 잠기고 나면
너는 수줍은 듯 반짝이기 시작한다

별에서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별을 닦으면 캄캄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별을 쳐다보면 눈물이 떨어진다

세상의 모든 어두움은
너에게로 가는 길이다

 

 

 

민박

 

                    이 상국

 

울산바위 꼭대기에는
별들의 집이 있다

어느 날 집 떠나
해 지고 어두우면

그곳에 가 자고 싶다 

 

 

겨울에 동백을 보다

 

                                      이 상국

붉어라
국토의 월경

댓이파리 떠는 추운 망해사
물오른 동백이 백댄서처럼 몸을 비틀어대는 바람에
늙은 부처가 오빠같이 보이는구나

내 기러기처럼 이 하늘 지나가며
절집만 봐도 생이 헌옷 같고
나라가 다 측은하다만

내 다시 못 오더라도
피처럼 붉은 꽃들아
해마다 국토의 아랫도리를 적시고
또 적시거라 

 

 

울산바위

                        이상국

그전에
아주 그전에
울산바위가 뱃길로 금강산 가다가
느닷없이 바다가 산이 되는 바람에
설악산 중턱에 걸터앉게 되었는데요

지금도 바람이 몸을 두드릴 때마다
파도소리가 나는 건 다 그 때문이지요

사람들아 모여라

꽃단풍 물단풍 곱게 들고
동해 미치도록 푸른 날
울산바위 내려 타고
가다 만 금강산 가자

 

겨울 선운사에서

 

                                         이 상국

누가 같이 자자 그랬는지
뾰로통하게 토라진 동백은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절 아래 레지도 없는 찻집
담벼락에서 오줌을 누는데
분홍색 브래지어 하나 울타리에 걸려 있다

저 젖가슴은 어디서 겨울을 나고 있는지

중 하나가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고해(苦海)만한 절마당을 건너가는 저녁

나도 굵은 체크무늬 목도리를 하고
남이 다 살고 간 세상을 건너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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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강원도 양양 출생  
       속초고등학교 졸업  
1976 <<심상>>에 시 <겨울추상화>가 당선되어 등단  
       <<갈뫼>>, <<신감각>> <<속초시>> 동인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동해별곡(東海別曲)>    민족문화사  1985
시집 <내일로 가는 소>    동광출판사  1989
시집 <우리는 읍으로 간다> 창작과 비평사 1992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창작과 비평사 1998

수상: 민족예술인상, 제1회 백석문학상, 유심작품상 수상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및 강원지회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