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
신 동엽
아니오
미워한 적 없어요,
산마루 투명한 햇빛 쏟아지는데
차마 어둔 생각 했을리야.
아니오
괴뤄한 적 없어요,
능선 위 바람 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뉘라, 색동눈물 밖으로 쏟았을 리야.
아니오
사랑한 적 없어요,
세계의 지붕 혼자 바람 마시며
차마, 옷 입은 도시 계집 사랑했을 리야
<시집 阿斯女, 1963년>
그 사람에게
신 동엽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창(窓)가에서
신 동엽
창가에 서면 앞집 담 너머로 버들잎 푸르다.
뉘집 굴뚝에선가 저녁 짓는 연기 퍼져 오고,
이슬비는 도시 위 절름거리고 있다.
석간(夕刊)을 돌르는 소년은 지금쯤 어느 골목장이를 서둘고 있을까.
바람에 잘못 쫓긴 이슬방울 하나가 내 코 잔등에 와 앉는다.
부연 안개 너머로 남산 전등 불빛이 빛무리져 보인다.
무얼 보내신 이가 있을까.
그리고 무언 정말 땅으로만 가는 거일까.
정말 땅은 우리 모두의 열반일까.
창가에 서면 두부 한 모 사가지고 종종걸음 치는 아낙의 치맛자락이
나의 먼 시간 속으로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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