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형기- 낙화, 봄비, 滿開

opal* 2008. 4. 18. 22:14

 

 

落花

 

                  이 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봄비

 

                            이 형기

 

밤,
봄비가 창에 스민다
기다림에 지친 마음이 젖는다.

봄,
밤에 내리는 비
반 옥타브 낮은 목소리.

물기가 배인 육신의 무게를
가눌 길 없고나.
봄밤에 비온다.

먼 사람아 당신의 손길은
봄비와 같이 성가시다.
잠재워 다오.

 

 

만개

 

               이 형기

 

한 시도 쉬지 않던 너의 발걸음이
마침내 절정에 이르렀구나
벚꽃의 만개여

더 이상은 갈 데가 없는 절대절명
그 팽팽한 긴장감의 한계에서
더러는 한두 잎
너의 종말을 예고하는 낙화

아아 벼랑 끝에 선 자의 절망이
그 깊은 나락을 굽어보며
사치를 다한
마지막 잔치를 벌이고 있다

지화자 어디선가 풍악도 울리는
휘황하게 너무나도 휘황하게 불 밝힌
가슴 저리는 슬픔
벚꽃의 滿開여

 

 

 

1933 경남 진주 출생.
동국대 불교과 졸업.
1949 <<문예>>지에 시 <비오는 날> 외 2편으로 등단.
1957 제2회 한국 문학가 협회상 수상.
1974년 ‘월간 문학’ 주간
1994년부터 2년간 한국시인협회장
2005년 2월 2일 숙환으로 별세

주요 저서 시집 목록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祈禱) <시집> 현대문학사 1955
적막강산(寂寞江山) <시집> 모음출판사 1963
돌베개의 시(詩) <시집> 문예사 1971
꿈구는 한발(旱魃) <시집> 창원사 1976
풍선심장 <시집> 문학예술사 1981
보물섬의 지도(地圖) <시집> 서문당 1985
그 해 겨울의 눈 <시집> 고려원 1985
바람으로 만든 조약돌 <수필집> 어문각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