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0. 출발하여 가는 동안 초, 구면의 얼굴들이 보이며 마지막 경유지까지 지나니 몇 자리 남기고 다 찼다.
백두대간 종주산행 끝내며 산행을 잠시 접었던 이웃사촌 얼굴도 보이니 얼마나 반갑던지. 1년 반 만의 해후다.
다른 날 같으면 안대로 눈 가리고 졸기 바쁜 시간을 들머리 도착 하도록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맘때 쯤이면 팔랑치의 철쭉꽃은
거의 다 지고 빈 능선만 썰렁할 시기, 바래봉의 주인공은 철쭉 꽃이지만 만개 때의 인파는 피하고 싶고, 지리산 주 능선과
나란히 하는 고리봉에서 세걸산을 거쳐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걷고 싶어 기회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늘 선두에서 날아? 다니며 긴 산행을 하던 이웃사촌과 오랜만에 함께하고 싶어, 셔터 누르는 횟수를 줄이기로 하고
정령치에서 1진 따라 하차(11:10). 산행거리가 약간 짧은 2진에서도 늘 꼴지로 다니다 1진 따라 내리니 모두들 의아한 눈초리,
참석자 반 정도 인원 중 홍일점이다. 이틀 전 구병산에서 뒤로 구르며 다쳤던 몸으로 나섰는데 무리 하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 된다.
정령치91172m) 휴게소 마당(11:05), 차에서 내려 다른 때 같으면 천왕봉부터 둘러보며 셔터 눌렀을 텐데... 유혹을 참고
고리봉 향해 계단으로 올랐다. 앞 자리에 앉았다 내리자 마자 오르니 처음엔 선두로 가게 된다. 고기리로 넘어가는 구불 구불한
아름다운 길 아래로 나머지 2진 일행을 태운 차가 내려가고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계절, 좋은 날씨 택해 많이
걷겠다는 맘을 알아 차린 모양인지 앞만 보고 가라며 운무가 지리산 주 능선을 살짝 가려 놓고 선명하게 보여주질 않는다.
등산로 옆으로 화려한 철쭉 꽃이 간간히 보인다. 20분 만에 고리봉(1305m)에 올라섰다. 대간 종주 때에는
고기리를 향해 하산 하던 지점이다. 반야봉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이는 곳이나 운무의 방해로 기념 하나만 남긴다.
고리봉에서 2.4km 거리 떨어진 세걸산(1216m)까지가 오늘의 초행길, 고도를 떨어뜨리며 내려 딛는다.
키 작고 날씬한 사람은 괜찮으나 몸집 있는 사람들은 교행하기도 불편 할 정도에 바닥은 돌들이 울퉁 불퉁,
길옆에 산죽이 있어 더 좁아뵈는 오솔길을 요리조리 방향 바꾸며 오르내린다. 능선따라 걷는다지만 숲으로 이루어져 조망은 없다.
성삼재에서 만복대 거쳐 고리봉까지 지리산 주 능선이 보이는 멋진 조망이 연결되는 줄 알았던 기대가 무너졌다.
무성한 숲 속을 걷다 바위를 만나 올라서서 돌아보니 고리봉부터 걸어온 능선과 봉우리가 일렬로 나란히 하는 조망이 아주 좋다.
감춰진 만복대 뒤 좌측으로 반야봉이 우뚝 솟아 손짓한다. 조망이 가려진 숲 나무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봉우리가 세걸산 일까
하며 올라보면 아니길 몇 번, 정령치에서 3.8km, 1시간 반 걸려 세걸산(1216m)에 도착 했으니 나로선 초 고속으로 달려온 셈이다.
3년 전 바래봉 산행 때 세동치에서 역으로 와 점찍고 돌아섰던 곳, 반야봉 좌측의 주 능선이 조망되는 곳이지만 운무로 흐릿하다.
조망 좋은 곳에서 두루 두루 살펴보고 오래 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며 기념만 남기고 진행 한다.
속도 빠른 사람 기준의 하산 약속시간이 부담스럽기도 하거니와 오늘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뒤 따르던 두 분이 추월하는 바람에 동메달을 놓쳤다. 뒤엔 1진 일행들이 아직 많이 따라오고 있다.
세걸산에서 0.5km 떨어진 세동치(1120m)를 지나니 한 사람 보이며 "어디서 오느냐" 묻기에 "정령치에서 온다 "했더니
아래에서 "아직 멀었느냐" 묻는 소리 들린다. 하부운에서 올라오는 듯하다. 세동치에서 부운치로 가는 능선에선 부운 마을 뒤로
천왕봉과 주 능선이 잘 보이는 곳이나 마을과 바로 뒤 가까운 능선만 보일뿐 운무로 주능선은 보이질 않아 아쉽다.
아득하게 보이는 고리봉도 어느새 뿌옇게 보인다.
'난 언제 지리산 정상과 능선을 걸어보나' 중얼 거리며 이 능선을 걸었던 날이 만 3년 전, 그 동안 몇 번의 지리산 산행
경험 쌓는 이변의 세월이 지났다. 산행 시작 두 시간, 오후 1시가 지났다.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달려 세동치 지나
시원한 그늘에 앉아 간식과 물로 시장기 채운 뒤 일어섰다. 더운 계절에 땀 흘리며 목마름을 오래 참으며 자신의
인내력 테스트 해봄도 오랜만인 듯. 속도를 늦출 때는 참기 쉬우나 빠른 속도일 땐 힘들다.
능선의 숲을 이룬 나무들은 잎 넓은 산철쭉으로 수종이 바뀌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정령치에서 2시간 25분 만에
부운치(1115m) 도착. 차에서 나중에 내려 전북 학생 교육원에서 출발하는 2진이 능선으로 올라오는 지점이다.
2진 일행은 다 지나 갔겠지? 어디쯤 갔을까? 오늘은 조금 속도를 냈으니 부지런히 가면 만날 수 있겠지...
넓은 쉼터에 오르니 뒷쪽 세걸산도 이젠 흐릿하다. 대신 앞으로의 바래봉이 조망되기 시작한다. 3년 전 바래봉 배경으로
기념 사진 부탁하다 '까다롭다'는 소리 들었던 생각난다. 땅에 떨어진 철쭉 꽃잎들이 화려했던 지난 시간을 말하듯 소복히 쌓였다.
여지껏 걸었던 오솔길과 다르게 바래봉까지는 큰 나무가 없어 그늘이 없는 벌판을 걸어야 한다. 꽃들도 많이 진 상태라
볼품없이 지저분하게 달려있는 것이 많다. 철쭉 꽃을 보고자 기대를 갖고 온 사람은 아마 실망이 클 수도 있겠다.
2진 선두로 온 몇 명을 팔랑치 도착 전에 만났다. 아직 뒤에 올 사람이 많단다. 휴~ 이젠 안심.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갖고
천천히 가렸더니 옆에 있던 이웃사촌, 아침에 한 약속 지켜야 한단다.ㅎㅎㅎ 다시 바래봉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군데군데 늦게 핀 철쭉들이 팔랑치(1010m)의 명맥을 잇고 있다. 다른 산객들은 부지런히 교행 중인데 한 그룹은 관광온 듯
팔랑치를 맴돌며 시끄럽다.
이곳 바래봉은 1970년대 초 면양을 방목하기 위해 벌목 후 초지를 조성, 철쭉은 독성이 있어 면양이 섭취하지 않아
철쭉 군락지로 형성 되었다 한다. 바래봉이 우리 나라 3대 철쭉 군락지 중 하나, 또 한 곳인 황매산도 목장 지역이었단
소릴 들은 적 있다. 경사면에 조림한 가문비가 3년 전에 왔을 때 보다 많이 자라 제법 푸른 산으로 변하고 있다.
바래봉 아래 운봉으로 오가는 넓은 임도 나들목, 이정표 팻말 옆에서 Ice cake 하나씩 사들고 목을 축이며 오른다.
녹색으로 뒤 덮인 낙엽송 잎 색과 교목 아래 그늘이 무척 시원해 뵌다. 능선 길을 택할까 하다 아랫길로 가니 샘물이 있다.
아직 얼음 과자가 손에 들린 채 먹던 중이니 무슨 물 맛이 있으랴 생각하며 한 바가지 받아 마셨더니 웬걸? 아주 차고 달다.
내친 김에 한 바가지 더 떠 마시고 바래봉 언덕을 오른다.
바래봉(1165m) 도착, 정령치에서 9.4km, 세 시간 반 걸렸다. 하산 지점은 전에 내려 섰던 운봉이 아니라 덕두봉 하나를 더 넘어
인월 마을까지의 종주 이므로 갈 길이 아직 멀었다. 잠시 휴식 취하며 둘러본다. 지리산 주능선이 보여야 할텐데 아쉽게도
가까운 곳만 보이니 지나온 길만 확실하게 알겠다. 천왕봉이 보이던 곳 배경으로 서서 찍어 보지만 가까운 능선만 흐릿하다.
바래봉에서 직진으로 덕두봉 가는 길 아래 외국인이 신발까지 벗고 앉아 왼손으로 젓가락을 쥐고 뭔가 먹고 있는 모습이 재미 있다.
다시 숲으로 들어서니 조망이라곤 찾을 수 없다. 넓은 신갈 잎 아래 좁은 길 따라 걷기만 할 뿐,
가파르게 내려서고 다시 오르며 푸르름을 만끽한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휴식 취하니 팔랑치에서 만났던 2진 선두 바로 뒤 따라와 함께 간식 나눈다. 볼거리라고는
푸르름 밖에 없는 숲 속, 휴식 포함한 50분 정도 걸어 덕두봉(1150m) 도착. 나무가 커 역시 조망이 없다.
정상석도 없이 안내판에 적힌 글도 거리 표시는 없고 바래봉 1시간, 인월 1시간 30분이라 적혀 있다.
숲 속에 잠시 밖이 보이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숲 속 길로만 40분 정도 내려오니 팻말 하나 서 있다, 덕두봉 2.5km, 인월 0..7km.
팻말에 표시된 덕두봉에서의 3.2km를 다 내려오니 콘크리트 포장도로 임도, 길 옆으로 엄마 소 아래 작은 새끼 송아지 두마리
엄마 젖 빨아 먹느라 바쁘다. 한꺼번에 두 마리에게 젖을 빨려야 하는 엄마 소의 마른 모습이 안스럽다.
동네 어귀 돌담을 돌아 내려서니 '구 인월 회관' 옆으로 우리 기다리는 차 보인다. 도착시간 16:30.
거리는 약 13.5km, 산행 소요시간 5시간 20분, 한 시간 이상을 더 기다려 뿔뿔히 흩어져 오는 마지막 회원을 맞는다.
다리 아파 쩔쩔매고 힘들어 하며 뒤에 온 사람들은 젊은 남자들, 1진보다 2진으로 산행한 사람들이 더 많다,
부운치 오르는 중 길을 잘못 들었었단다. 옆의 어느 분은 "산행은 나이와 관계 없다" 한마디 한다.
이틀 전의 산행 길이와 같으나 시간은 많은 차이 났다. 오랜만에 바쁘고 신나게 걸은 산행 날.
걷고 싶던 곳 걸은 행복한 하루 해가 저문다. 오늘도 무사한 하루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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