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 출발. 07:30. 홍천 휴게소에서 아침식사.
09:45. 구룡령(1013m)도착. 양양군 서면 갈천리와 홍천군 내면 명개리의 경계로 '용이 구불구불 휘저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아흔 아홉 구비를 넘어간다'고 하여 구룡령이라 하고, '고개를 넘던 아홉 마리 용이 갈천리 마을에서 쉬어 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양양 방향 서북쪽으로 방태산이 있고, 반대로 홍천 쪽 남동쪽으로 오대산이 있다.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에 다니던 구룡령 옛길이 남아 있고, 오대산과 설악산을 이어주는 백두대간 줄기에 있다.
양양과 홍천을 잇는 56번 도로, 구룡령 산림전시관 앞에서 하차하니 바람에 세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니 문은 굳게 잠겨있고
처마 밑에 이 은상님 시 한 수가 보인다. 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 한 구간 이지만, 무박산행을 원치 않아 신배령까지 나누어,
오늘은 구룡령에서 역 산행으로 전시관 건물 뒤로 오른다. 갈전곡봉의 반대방향, 지난번 눈보라로 고생하던 곳의 연장선이다.
나무의 마음 /이 은상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소, 숨 쉬고 뜻도 있고 정도 있지요.
만지고 쓸어주면 춤을 추지만 때리고 꺾으면 눈물 흘리죠.
꽃피고 잎 퍼져 향기 풍기고 가지 줄기 뻗어서 그늘 지우면
온갖 새 모여들어 노래 부르고 사람들도 찾아와 쉬며 놀지요.
찬 서리 눈보라 휘몰아 쳐도 무서운 고난을 모두 이기고
나이테 두르며 크고 자라나 집집이 기둥들보 되어 주지요.
나무는 사람마음 알아주는데 사람은 나무마음 왜 몰라주오
나무와 사람들 서로 도우면 금수강산 좋은 나라 빛날 것이오.
20분간을 치고 오르는 오르막은 급경사라서 앞사람의 뒤꿈치가 얼굴에 닿을 정도다. 북사면과 능선 군데 군데
먼저 내린 눈이 녹지 않고, 흙속엔 얼음이 솟아 있다. 돌계단을 다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니 까마귀가 반긴다.
까마귀가 예전과 달리 높은 산에 서식하니 소리가 상큼하고 찬 날씨를 연상시킨다.
10:30. 약수산 정상(1306.2m). 남쪽 계곡의 명계리 약수에서 이름이 유래되었고 한다. 정상엔 측량용 삼각점이 있어
나무를 많이 베어내고, 생태복원을 위해 조림을 한다는 안내판이 있다. 남쪽 방향은 나무에 가려 안보이고,
북으로 돌아보니 몇 주전에 걸었던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뻗은 능선과 갈전곡봉 조망이 좋다.
하늘 가까운 저 높고도 긴 곳을 오르 내리며 걸었다는 생각을 하니 초로 여인의 가느다란 두 다리가 대견스럽다.
능선엔 낙엽과 얼은 흙이 주의를 요한다. 바람이 뒤에서 불어줘 다행이다. 잎 떨어진 삭막한 늦가을 산을 군데군데
침엽수가 덧칠해 준다. 길손을 위해 굵은 나무는 토막 내고 긴 나무는 넓게 잘라 의자를 만들어 놓았으나
만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만 맘속으로 전하고 그냥 지난다.
이곳도 길에 도토리가 많이 보인다. 일부러 조림사업 하지 않도록 얼른 낙엽 속에 묻혀 내년 봄엔 싹을 내고
쑥쑥 자라주었음 좋겠다. 군데군데 서 있는 갈참나무 고목들이 이 산을 지키는 수문장 같다.
11:15. 1280봉. 앞에 높이 솟은 1261봉 뒤 멀리 훨씬 더 높은 응복산이 보인다. 아무리 높은 산이 기다려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걸 알기에 이제 작은 고통은 오히려 즐겁다. 생사를 넘나드는 큰 고통을 이겨내서 그럴까?
11:30. 얕게 깔린 눈길 능선을 잠시 내려 걷다 다시 바위봉을 오르니 1261봉. 약수산 뒤까지 조망이 좋고 수묵담채 같은
몇 겹으로 겹쳐진 산 그림 중간 높이에 구룡령과 연결된 도로가 그려져 있는걸 보니 역시 구룡령이 높다.
급경사 내리막 돌계단에 쌓인 낙엽을 밟고 내려딛다 미끄러졌으나 다행히 엉덩방아는 모면한다. 나무계단을
내려딛으며 돌아보니 봉우리가 완전히 뾰족한 걸 보면 엉덩방아는 당연지사다. 이쪽에서 올라가려면 무척 힘들겠다.
이정표 지나 산죽 잎 사이를 잠시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 앞에 낮게 보이던 마늘봉이 갑자기 위로 솟는다.
북사면 오르막엔 눈과 얼음, 젖은 낙엽이 밟힌다. 바람이 차가우니 힘든 오르막인데도 땀이 나오질 못한다.
11:50. 마늘봉(1126.6m). 정상에서 베어낸 나무로 긴 의자와 통나무 의자로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1000m가 넘는 봉우리인데도 앞뒤로 높은 봉우리가 있어 바람이 없고 따뜻하다. 후미 팀 몇 명이 의자에 둘러앉아
여유 있는 간식 시간을 즐긴다. 늦으면 지난번처럼 고생 할까봐 열심히 걸었더니 여유롭다.
이정표가 잘되어 있으나 산이 깊어 그런가 노목들의 수피가 시커멓고 바닥은 갈색으로 변해버린 숲이 을씨년스럽다.
어쩌다 만나는 산죽군락지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상큼하다. 푸른색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처럼 크다.
12:00. 남으로는 진고개와 응복산, 북으로는 약수산과 구룡령의 거리가 잘 표시된 이정표를 지난다.
통나무를 받쳐 만든 눈덮인 계단을 오르니 1280봉과 1261봉이 형제처럼 어깨를 나란히하고 내려다 보며 잘 가라 배웅한다.
헤어 진지 두 시간이나 된 약수산이 아직도 나무사이로 쳐다보며 같이 웃는다.
좌측으로 골짜기가 내려다뵈는 오르막 능선에 고목나무 옆으로 진달래가 많다. 지금은 이렇게 썰렁해도 봄이면 멋지겠다.
12:30. 1281봉. 긴 세월을 지내는 동안 두께의 반을 잃어버린 고목사이에 있는 바위를 올랐다 내려서니
명개리 탈출로 이정표(12:40)가 있다. 빠른 시간에 많이도 왔다.
12:50. 응복산(1359.6m) 정상. 진고개 15.29km,구룡령6.71km, 이정표 아래에 작은 정사각의 금속판에 양각으로 새긴
정상표시와 삼각점이 있다. 마늘봉 뒤로 구룡령 너머까지 보이는 북쪽 방향으로의 조망이 뛰어나다.
남으로는 만월봉과 1210봉이 북사면에 눈을 하얗게 간직한 채 빨리 오라 재촉한다.
낙엽 쌓인 내리막과 평지 같은 능선을 지나 바람이 가려진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오찬을 즐긴다.(13:05-20)
먼저 도착하여 식사를 끝낸 일행은 춥다며 일어서고, 같이 걷던 일행도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 후딱 해 치우고
모두들 도망치듯 내 뺀다. 지난번의 고생이 큰 교훈으로 남아 있어 해 떨어지기 전에 하산하려는 마음들이다.
밥으로 보충한 칼로리와 뒤에서 밀어주는 북서풍 덕으로 만월봉(1279m)을 쉽게 오르니 삼각점만 있고 정상 표시는 없다.
돌아보니 응복산이 장엄하고 육중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잰 걸음으로 올랐다 내려서니 만월봉도 금방 뒤로 밀려난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남쪽 봉우리 조망이 펼쳐진다. 산죽사이를 지나는 능선엔 심한 바람에 날린 눈이 바람결 따라 만들어진
무늬가 아름답다. 강풍에 먹구름이 몰려오며 어두워져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탈면으로 걸으니 응복산이 우측으로 따라 온다
14:10. 신배령.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2주 전에 왔던 곳이라 강풍과 눈보라를 생각하며 고생 할 각오로 왔는데
쉽게 도착하니 싱겁게 느껴진다. 역시 산행은 고생한 만큼 재미를 느낀다. 지난번과 똑같은 홍천군 내면으로 하산 중인데
앞서 가는 일행이 길이 없다며 찾는다. 지난번엔 어둠 속에서 걸어 착각을 한 모양이다.
계곡을 따라 내려딛는 길은 길지만 아직 해도 밝고, 눈(雪)이 없으니 한결 걸음이 빠르다.
16:20. 홍천군 내면 매표소 도착.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6시간 30분.
2006. 11. 21.(火). 백두대간 39-2구간을 종주하다.
(구룡령~약수산~마늘봉~응복산~신배령-홍천군 내면 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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