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50회(41-2구간, 한계령~망대암산~점봉산~오색~단목령)

opal* 2006. 10. 31. 13:46

 

05:30. 출발. 70:40. 화양강랜드 휴게소.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차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먹어야 할 생각을 하며 아침식사를 마친다.

09:15. 미시령 터널. 산행 들머리는 한계령인데 여름수해 후 임시로 개통해 다니던 도로가 열흘 전의 폭우로 또 유실되어

미시령으로 넘는다. 터널을 빠져 나오니 전에 이용하던 커다란 콘도가 좌측 위로 보이고, 비싼 터널통과 값을 지불하고

십 여분을 달리니 동해의 푸른 물이 펼쳐진다.


동해안 7번 도로 옆에 있는 낙산사 일주문을 지나고 44번 도로의 한계령 방향으로 들어서니 계곡의 커다란 돌멩이들은

물 흐름에 밀린 채 제멋대로 뒹근 흔적이 있고 나무들은 단풍이 한창이다. 단풍관광으로 북적대야 할 오색 주차장은

차 한 대 없이 썰렁하고 한계령을 오르니 여기도 마찬가지다. 검은 지붕의 건물 내부는 한적하고 길옆의 ‘옛 오색령’이란

표지석만 외롭다. 수해가 주는 2차적 손실이 크겠다. 2년 전에 산행하다 벌금을 물며 혼났던 일이 있어 조심조심

차를 돌려 현리(필레 약수) 방향의 갈림길에서 앞뒤를 살피며 주차 후 재빠른 행동과 행복을 추구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범법자가 되어 산으로 숨어든다. 출발한지 다섯 시간 후의 일이다.(10:30)


빗물에 흙이 씻긴 암반을 오르고, 나무사이를 헤치며 오르니 오솔길이 나타나고 한계령까지 구불대며 올라온 길이 발아래 보인다.

행여나 조심스런 마음에 떠들지도 못하며 십분 쯤 올라 ‘천연 보호 구역’이라 새겨진 키 작은 하얀 돌기둥과 멋쩍게 인사 한다.

마음으로 미안하다 인사하고 일렬로 늘어서서 바위 틈을 비집고 오르고 차례를 기다렸다 줄을 잡고 한 사람 씩 절벽을 오른다.

돌아보니 한계령 건물 위로 귀떼기청봉이 푸른 옷을 벗고 가을빛으로 바위를 들어낸 채 웃으며 굽어보고 있다.


11:20. 능선에 오르니 휴식년제에서 개방된 흘림골 산행 때 탄성을 지르며 바라보던 기암괴석의 만물상과 등선대가 발아래

보인다. 바위틈을 오르며 비경을 감상하고 대청봉과 얘기 나누느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바위를 얼싸안으며 오르고,

바위 틈을 비집고 내려서고, 밧줄 잡고 올랐다 내려서기를 몇 차례, 위험한 구간과 도둑산행이라 그럴까? 스릴이 더 느껴진다.

무박산행을 피하고 빙판을 이루는 엄동설한의 적설기를 피해 좋은 날은 택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12:00. 짧은 거리임에도 한 시간 반이 걸린 위험한 구간을 끝내고 처음 만나는 이정표. 도중에 주전골로 가는 갈림길이

있었으나 낙엽이 쌓이기도 했거니와  칠형제봉, 만물상 등 아름다운 기암괴석 감상과 촬영으로 인사 없이 지나쳤다.

암반 위를 흐르는 계곡물이 폭포와 소를 이루어 12담 구곡으로도 불러지는 아름다운 명소 주전골은 옛날 위폐범들이

계곡에서 불법으로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난여름 수해 때 그 장소가 발견되었다고 보도 된 적이 있다.


돌아서서 대청봉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니 멀리 점봉산과 망대암산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산죽 밭에 바람이 부니

파도가 쏴아 밀려오는 듯한 소리에 겨드랑까지 올라오는 산죽을 두 팔 벌려 쓰다듬으며 파도타기 하듯 걸으며

마음은 바다를 향한다.   산죽사이의 돌길에 서서 물과 과일로 목을 축이며 잠시 꿀맛 같은 순간을 보낸다.(12:30)


13:00. 시장기가 찾아오는 오르막은 뱃살이 빠지는 느낌. 좌측으론 대청, 중청이 손에 닿을 듯하고, 서북능선이 거침없고

낙엽 쌓인 돌길을 오르다말고 돌아서면 가리봉이 보인다. 설악의 유명세에 눌린 가리봉이 저리 높이 우뚝 솟은 줄을

이제야 알아 차린다. 흐린다던 예보와 달리 오전 내내 쾌청한데 동해의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아 경계가 모호하다.

옆에서 걷는 산우 “오늘은 왜 메모 안하느냐” 묻는다. "들머리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바위 타고 오르내리는

위험한 길이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 메모는 커녕 사진 찍기도 힘들다"고 대답해 주었다.

 

13:15.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망대암산. 바위 아래 아늑한 자리에 둘러 앉아 같은 메뉴의 도시락을 펼치니

선두는 점봉산 도착했다며 연락이 오고 후미는 관계없다는 듯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깔깔댄다.


13:40. 앉았던 흔적조차 없이 깨끗이 치우고 일어서서 다시 출발하며 바위사이로 내려서니 이게 웬 일?

분홍 진달래가 한아름 피어 처음 찾아 온 객을 반기며 웃고 있다. 때가 어느 땐데? 반가운 마음에 바위에 털썩 주저 앉아

이리 저리 눈 맞추고, 내년 봄에 힘들게 오는 이들을 위해 봉오리 몇 개 남겨두라 하고 일어섰다.


점봉산을 향하는 능선에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이고 양쪽 아래는 융단이 깔린 듯 부드러운데 높은 곳에서 잎을 모두 떨군

고목 신갈나무들은 시커먼 수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사목줄기에서 뻗은 가지에 싱싱한 잎을 매단 멋진 수형의

주목 몇 그루 옆으로 불법 굴취를 하지 말라는 대민 계도문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14:15. 점봉산을 향하는 오르막. 후미 일행은 모두 저만치 앞서 오르는데 혼자 뒤에서 두 팔 들어 외친다. Oh, happy day~!

한 눈에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을 때 ‘一望無際’라 했던가? 네 글자가 실감나는 순간이다.

좌측 팔의 이름 모를 산줄기에서 정면의 가리봉, 거침없는 서북능선의 안산, 귀때기청봉을 거쳐 우측 팔의 중청, 대청까지

 이어져 뻗은 장쾌한 모습을 두고 발이 안 떨어져 오르다 말고 돌아서서 바라보기를 수 없이 반복.

좀처럼 오기 힘든 산이라 그럴까? 무박으로 와 어두운 시간에 올랐다면 아까워서 어쩔 뻔 했나...


먼 산에 보이는 바위들은 만물의 형상을 이루고 나목으로 변한 나무들은 회색 카펫을 깔아 놓은 듯, 군데군데 박힌 상록수가

무늬를 이루고 있다. 한 컷에 모두 담을 수 없어 네 번에 나누어 찍으니 이럴 땐 광각렌즈 린호프 생각이 간절하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과 날씨, 그리고 행운의 신께도 감사드린다.


14:20. 점봉산(1424m) 정상.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의 경계로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대청봉과 마주보고 서 있다.

북동쪽에 대청봉(1708m)이 있고 북서쪽에 가리봉(1519m), 남서쪽에 가칠봉(1165m)등이 솟아있다.

산의 동쪽 비탈면을 흘러내리는 물은 주전골을 이루어 오색을 지나 백암천에 합류한 뒤 양양의 남대천으로 흘러든다.

푸른 바다 동해를 비롯하여 사방으로의 조망이 뛰어나다. 커다란 표지석 옆으로 삼각점과, 여러 봉우리 높이와

한계령 9km, 단목령 6.2km 를 표시한 안내판이 있다.


지나온 한계령 방향은 출입금지 표지가 달려있고 반대 방향으론 지난 구간 산행 때 나무사이로 잠깐 보았던

양수 발전소의 풍력 발전기 두 대와 여섯 날개가 뚜렷하게 보인다. 북 설악 황철봉 산행 때 서북능선 뒤로

하늘만큼 높게 보이던 봉우리인 점봉산, 천연보호구역으로 무기한 통제되어 오르기 힘든 산이라 쉽게 내려가질 못한다.


기념 촬영하느라 우물쭈물 하는데 오늘 처음 나와 앞서가던 일행이 혼자  곰배령 쪽으로 내려가다 산림청 직원에게

잘 못 간 사실을 듣고 힘들게 되돌아 올라와 단목령 방향으로 함께 내려선다. 촬영 않고 빨리 떠났으면 못 만날 뻔 했으니

아날로그 같은 거북이 행동도 때론 요긴 할 때가 있다. “만약 못 만나면 서울이 가까운 방향으로 혼자 내려설 생각” 이었단다.

작은 점봉산(1294m)을 거쳐 곰배령으로 내려가면 차가 기다려 주는 설피골로 갈 수는 있는데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14:35. 정상 0.5km, 119구조대 ‘점봉 1번’의 작은 표지목. 번호 표시가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난번에 조침령에서 No,31부터  No,13 단목령까지 반대로 세며 오던 생각이 난다. 500m를 더 내려서서 이정표와 겸하고 있는 No,2번은 너른이골로

갈 수 있는 갈림길. 돌과 낙엽이 많은 가파른 내리막은 지그재그로 통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나 낙엽이 덮고 있어 미끄럽다.


15:00. 점봉산 정상에서 2km 거리의 No,4번 표지목. 좌측은 오색(3.0km), 우측은 너른이골(4.5km)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길 이다.

오색방향엔 출입금지 팻말이 줄에 매달려 있다. 낙엽을 밟으며 내려딛는 오솔길에 긴 그림자가 앞에서 안내를 한다.

날씨가 좋고 온 산이 발 아래로 잘 보여 시간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그림자가 길다. 우측 단목령 방향으로 돌아

산죽사이의 낙엽을 휩쓸며 부지런히 내려 걸으니 일행 중 한 분이 “산악 마라톤이라도 하는 것 같다” 고 한다.

좌측으로 오색 마을을 내려다 본 후 No,5번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니 계속 따라 오던 대청, 중청이 종일 고마웠다며

헤어지자 인사를 한다. 종일을 조잘대며 행군하던 아낙들이 지쳤는지 잡목 숲 오솔길에 조용하다.


15:15. 오색리와 너른이골 이정표를 겸한 No,6번은 점봉산(3.0km)과 단목령(박달령3.2km) 중간 지점이다.

요샛말로 한동안 빡세게 걸어와 다시 오르려니 종아리가 당긴다. 오르다 말고 잠시 휴식, 남아 있는 과일 등 먹거리를 모두 꺼내어 ‘영원한 후미’ 팀은 얼굴을 마주보며 오감을 즐긴다.

쓰러진 통나무를 깡총 뛰어넘다 정강이를 부딪치니 피가 난다. 오전에도 바위틈을 오르내리며 부딪쳤는데... 또,

상처 아물도록 한동안 스커트 못 입게 생겼으니 어쩌나. 싱싱하고 푸른 잎을 자랑하는 키 낮은 산죽 길에 그림자가 더 길어졌다.  


15:40. 올라서서 평지 같은 산죽사이 낙엽을 밟으니 빽빽한 신갈 나목 사이로 넘어가는 햇살에 하나 남은 단풍잎이 유난히 빨갛다.

멀리 뒤로 점봉산이 흐릿하다. 내려서니 단목령이 1.7km, No,9번 표지목. 쓰러진 고목에게 엎드려 인사하며 통과하고

누운 고목은 넘고 지난다. 평퍼짐한 산을 오르니 건너편으로 높은 산들이 보인다. 지난번에 걸은 sky line이라 반갑다.

빨간 열매마저 떨어져 뒹구는 오솔길은 어느새 가을이 깊다.


16:10. 마지막 봉우리 843봉. 높은 곳을 다니다 내려서니 봉우리 같지가 않다. 작년(2005년)에 복구한 설악 458 삼각점이 있고

양쪽이 절벽 같은 능선이다. 앞산 위 파란하늘의 구름은 넘어가는 햇살에 유난히 밝고 우측 멀리 보이는 설피골 산골마을은

그늘져 어둡다.  가파른 통나무 계단을 내려서니 종일 못 보던 나뭇잎이 아직 푸른 기를 남기고 기다린다.

지난번 산행 땐 온 산이 붉어 심기를 어지럽히더니 2주 만에 왔다고 어쩜 이리 다른 모습일까?


16:15. 단목령(일명 박달령 855m) 도착. 백두 남녀장군 장승이 반긴다.

단목령은 오색과 설피골을 넘나들던 옛 고개다. 많은 짐을 이고지고 다녔을 이 고개는 문명의 발달로

길로써의 사명은 없어지고 대간 산행꾼들이나 쉬어가는 쉼터로 익살스런 얼굴의 두 장승만이 객들을 지켜보고 있다.


다른 날 같으면 다 왔다는 기쁜 마음으로 빨리 내려딛는데 오늘은 웬 지 더 머무르고 싶다. 지난번 조침령에서 와

대간 길을 접고 내려설 땐 몰랐는데 오늘로써 설악 구간을 다 마친다 생각하니 아쉽고 서운하다.

얼마를 기다려야 이곳을 또 올 수 있을지, 잎을 다 털어내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와 숲은  이 마음을 알까 모를까? 


지난번에 오색방향으로 매달렸던 ‘출입금지’ 표시가 오늘은 안 보인다. 마음 같아선 오색으로 하산 하고픈데

다 내려서도록 마음 졸이기 불편해 설피골로 내려 딛는다.

한계령 계곡을 망가트린 열흘 전의 폭우는 계곡이 시작되는 이곳을 늪지대로 만들고 아래 계곡을 넘쳐흐른 자국이 있다.


16:45. 애마가 기다려 주는 설피교 도착.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6시간.


“죄를 짓는다는 것이 이처럼 두렵고 무서운 것인지... 모두들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나니 안심되고 행복감에 젖는다.”

아래서 무사히 내려오기만 기다리던 총무의 마지막 멘트다.

진동계곡을 물들인 단풍을 차창을 통해 만끽하며 감사했던 하루를 접는다.


2006. 10. 31(火).  백두대간 41-2구간을 종주하다.

(한계령~12담 계곡 갈림길~망대암산~점봉산~오색 사거리~단목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