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49회(41-1 구간, 쇠나드리- 옛 조침령~ 조침령~ 북북암령~단목령)

opal* 2006. 10. 17. 10:51

 

집을 나서니 해의 길이가 많이 짧아져 아직 어둡다. 가로등 불빛 아래 칠엽수의 파란 잎맥이 아직도 선명하다.

05:30. 출발. 동쪽을 향해 달리는 한강 변 올림픽대로에 안개가 자욱하다.

07:30. 홍천 며느리재 휴게소에서 아침식사. 새로 단장된 곳이라 깨끗한 시설을 이용 할 수 있어 좋다. 


09:20. 31번 국도의 해발 500m 되는 오미재 고개를 구불구불 넘으니 차가 흔들리는 대로 이리 저리 쏠린다.

418번 지방도로의 방동분교 앞을 지나고 방태약수 입구를 지나, 오지인 진동계곡 따라 달리니 여름 홍수 때 무너진

아스팔트길이 아직 복구가 덜 되었다. 진동계곡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넓은 밭의 억새도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니 그 모습 또한 장관이라 모두들 차 창밖을 내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09:55. 쇠나드리 도착. 나들이를 하려면 내를 세 번이나 건너야 하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지난번에 하산했을 땐 날이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이던 곳이다. 포장이 잘된 아스팔트 도로 옆으로 민가 몇 채와

팬션이 있고 길 건너엔 깨끗한 물이 흐르며 돌과 단풍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계곡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번 산행 때 조침령까지 가야할 것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날이 어두워 구 조침령에서 하산했던 관계로

민박집에서 매어놓은 빨간 포장 끈을 따라 다시 오른다. 키 작은 조릿대 줄기를 밟으니 자동으로 미끄러지고 

내려섰던 가파른 길을 오르려니 이번에는 뒤로 미끄러진다.


10:15. 민박 안내문이 걸려있던 능선, 구 조침령을 올라 좌측 방향의 북쪽을 향한 대간 길을 걷기 시작하니 삼각점이 보인다.

낙엽과 산죽사이의 내리막을 밧줄 잡고 내려서니 통나무로 튼튼하게 만든 바람불이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밧줄이 지그재그로 길게 매어진 낙엽 쌓인 오솔길을 올랐다 내려서니 단풍은 절정인데 빛이 부족해 유감이다.

눈으로만 감상하려니 두리번거리기 바쁘다. 능선 따라 올라서니 멀리 임도가 보이고 난간까지 튼튼하게 만들어진

기다란 나무다리가 기다리고 있다. 


11:00. 나무다리를 내려서서 오랜만에 흙길 임도를 걸어 조침령 도착. 구 조침령에서 2km 거리이며

3군단 공병 여단에서 만들어 세운 표지석이 있다.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판과 점봉산 구간의 출입통제 경고판을 지나

다시 나무로 만든 길을 지난다. 전망 좋은 곳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몇 겹 산줄기 뒤 높은 산이 안개 속에 흐리고,

아래엔 조침령으로 이어지는 구불대는 비포장도로를 차 한 대가 힘겹게 오르고 있다.


산림청 국유림 관리소에서 세운 안내판에 <이곳 마루금 길목에 고산지역에서 자생하는 분비나무를 심고 가꾸어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연 및 문화유산의 터전인 백두대간을 경관이 우수하고 생물종이 다양한 자연 숲으로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라고 쓰여 있다.

잎이 넓은 갈참나무의 새 낙엽을 밟으며 걸으니 갈잎의 구수한 냄새가 진한 coffee향 보다 좋고 향수마저 불러일으킨다.


11:15. 위치번호 31번의 작은 기둥막대에 조침령 0.6km, 단목령 9.3km로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 구 조침령 구간 2km를 보태면

대간길만 11.9km, 오르고 내리는 거리를 합산하여 오늘 걷는 거리가 15km 정도 되겠지만 다른 날에 비해 길지 않아 마음 편하다.

단목령과 조침령 글자만 표시된 긴 막대기둥의 이정표가 보인다. 거리표시라도 해주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1:35. 이어지는 길이 좌측방향 직각으로 휘어지기에 943m봉 인줄 알고 올라서니 측량의 기준점이 되는

삼각점(속초 308)의 안내문에 900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여전히 속고 있으니 얼마나 더 다녀야 산 꾼이 될 수 있을까, 

나래회나무(노박덩굴과, 낙엽 활엽 관목)의 분홍 껍질 속의 빨간 열매가 상록수인양 아직도 새파란 잎과 어우러져 다닥다닥

열린 채 교목처럼 큰 키로 몇 구루가 서있다. 낙엽만 제치면 한 주먹씩 주울 수 있다며 도토리 줍기를 즐기는 이도 있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라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소리가?


앞에선 부스럭  부스럭 뒤에 따라가며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조용한 가을 숲의 정적을 깬다.

한동안 가물어 바싹 마른 낙엽이라 소리가 더 크다. 바람과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아, 높은 곳의 나이 많고 키 작은 신갈나무는

벌써 잎을 모두 털어내고, 잎이 붉은 진달래는 일찌감치 가지 끝에 화아분아 된 채 봄을 기다리고 있다.


11:50. photo point 안내판이 있는 943봉(위치번호 점봉 28). 우측 멀리 높은 산과 산중턱으로 이어진 길 아래로

낮은 산줄기 능선에 빨갛고 하얀 색의 철탑, 그 사이로 물이 담긴 양수발전소 하부 댐 이 보인다. 

양양의 남대천이 보인다 했는데 흐리고 안개가 많아 멀리는 보이질 않는다. 


늘 선두에 서서 다니던 짝꿍이 오늘은 천천히 가며 단풍사진 담느라 뒤에 쳐진 내게 가방을 달란다. 가방을 건네주고

가벼운 몸으로 1018봉을 오르니 양수 발전소에서 세운 경고문 안내판과 타 산악회에서 높이를 표시한 코팅지가 있다.

잠시 평지 같은 길을 달리며 힘들게 오버 페이스 해보나 노랗고 빨간, 갖은 색으로 물든 단풍과 열매에 홀려 여전히 처진다.


12:30. 출입금지 경고문 안내판이 곳곳에 보이더니 드디어 좌측 나무 사이로 양수 발전소 저수지와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이렇게 높은 산중에 저수지라니... 그러고 보니 지난번 구간 산행 때 갈전곡봉에서 멀리 산중턱에 보이던 풍력 발전기다.

10분 쯤 더 걸으니 양수 발전소를 알리는 안내 이정표가 경고문 안내판과 나란히 서 있다.


<이 발전소는 1996년 9월 5일에 첫 삽을 뜬 후 10년 만인 한 달 전, 올(2006년) 9월 12일에 준공 했다.

揚水 發電所란 수력발전의 일종으로 밤이나 주말의 여유 전력을 이용하여 하부 저수지의 물을 상부 저수지로 끌어올려

저장하였다가 전력사용이 많은 시간에 하부 저수지로 낙하시키며 전기를 발생시키는 방식이다. 

땅 표면으로부터 지하 700m 지점의 地下 洞空은 길이 120m, 폭 20m, 높이 42.3m로 15층 규모 아파트 두 동이

들어설 수 있는 크기이며 하부 댐에는 국내 처음으로 魚道가 설치되었다.

상부 댐과 발전소 사이 낙차가 클수록 발전용량이 커 국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 937m에 위치해 발전소까지의 낙차가

819m에 달해 국내 양수 발전소 중 최대 규모로 소양 댐의 다섯 배, 원자력 발전소 1기와 같은 규모 이다.>


내 페이스로도 발이 잘 안 떨어지는 오르막, 정상인가 하고 오르니 웬걸,  앞에 봉우리가 또 보이는 능선이다.

덩굴나무를 헤치며 가보니 큰 나무 잎은 벌써 다 떨어지고 없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 작은 글씨 위치번호를 확인한다.

점봉 22번, 조침령 5.1km, 단목령 4.8km 표시를 보니 오늘 구간의 반 정도 인 1133m봉 이다. 봉우리마다 표시가 없어 답답하다.


13:00. 일행들과 둘러앉은 오찬은 산행 중 유일하게 허가받은 오감이 즐거운 휴식 시간이다. 식사 후 가방 메고 일어서니

숲 속으로 안개가 몰려오며 五里霧中의 공간으로 변한다. 갈잎 밟는 소리는 밟지 말라는 항의라도 하듯 아우성으로 들린다.


13:45. 단목령 4.3km, 위치번호 점봉 21번. 높이를 표시한 코팅지와 리본이 많이 매달린 1136m 봉이다.

점봉산, 가리산, 설악산 서북능선, 대청봉이 한눈에 바라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고 했는데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가파른 내리막은 돌과 낙엽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숫자 싸움이라도 하듯 많다. 보인다던 양양 시내와 공항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14:00. 해발 940m의 북암령. 동쪽으로 북암리가 2.5km, 서쪽으론 단목령에서 하산해야 할 설피골로 가는 지름길이

2.3km로 표시되어 있으나 길은 안 보이고 낙엽만 쌓여 있다.  잠시 안개가 걷히니 단풍이 선명하다.

그대로 직진하여 쓰러진 나무 아래를 엎드려 통과하며 오르기도 하고, 낙엽아래 숨겨진 삭정이를 밟으며 위태로운

내리막의 순간도 넘긴다. 능선 좌측에선 헷님이 반기려 하나 우측 동해에서 밀려오는 안개가 훼방을 놓는다.


14:20. 가지를 꺾어 물속에 넣으면 물을 푸르게 만든다는 물푸레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군락지 1020m봉.

안개가 몰려오며 멋진 분위기를 연출한다. 꽃보다 더 화려한 단풍과 안개와 낙엽이 묘한 황홀경을 만든다.

매년 이맘때면 산엔 왜 불이 붙어 이토록 남의 심사를 흔들어 놓는 걸까. 산도 깊거니와 나무도 거목들로 꽉 차 있다. 


멋진 풍광으로 떼어놓기 싫어하는 발걸음을 간신히 달래 능선을 오르내리며 절정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중에

외국 여행 가자는 전화가 와 통화 중에 끊긴다. 백두대간 산행을 이어 다니느라 해외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15:00. 북쪽을 향하던 방향은 능선을 걷는 동안 서쪽으로 바뀌고 좌측 아래로 계류가 시작되며 물이 보인다. 단풍이 비쳐

물 색깔도 붉다. 이렇게 시작된 물은 아래로 흐르며 다른 지류들과 합쳐져 진동계곡이 되고, 방태천을 이룬 후 내린천이 된다. 


15:05. 단목령(檀木嶺, 855m). 고개 이름을 통나무 판에 한자 진서로 음각하여 높은 기둥에 걸어 놓았다.

직진하면 점봉산, 우측으로 오색, 좌측으로 설피골로 내려서는 사거리이다. 백두 대장군과 백두 여장군 장승 사이에

네 방향의 표시를 한 이정표가 있다. 오색으로 하산하던 넓은 길은 출입금지로 줄이 매어 있고 옆으로 다른 길이 나 있다.


15:20. 단풍에 홀려 다닌 오늘의 대간 종주는 여기서 접고 뒤에 오는 이를 기다릴 겸 기념사진을 찍고 좌측의 산죽사이로

내려딛어 설피골로 향한다. 계류를 이리 저리 건너고 평지 같은 넓은 숲 완만한 길을 한 동안 내려서니 숲 속이 점점 어두워진다.

산자락 끝에 밭을 일구어 놓은 환한 곳으로 나오니 새로 지은 깔끔한 집들이 있다. 갤러리와 팬션을 겸한 넓은 터의

기와집도 있는 걸 보면 진동계곡도 오지 중의 오지라는 말이 이젠 안 어울린다. 설피골은 겨울에 눈이 오면

설피를 신어야만 다닐 수 있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도로포장이 잘 되어 차가 다니니 지명이 바뀌지나 않을까?


조침령 터널(1145m) 공사와 도로의 확 포장공사도 내년 유월이면 마무리되고, 상 하부 댐을 20여 분만에 오를 수 있어

새로운 관광 상품을 준비 중이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곳을 또 오염 시킬까? 

10분쯤 더 내려오니 곰배령 4km, 단목령 1.5km의 삼거리 표지목이 있다.


15:50. 콘크리트 포장 길을 따라 내려와 설피교를 건너니 애마가 기다리고 있다. 전엔 이곳까지 차가 올 수 없어 많이 걸었다고 한다. 계류에 떠있는 낙엽과 물에 비친 단풍, 쇠나드리 산기슭의 갈대 군락을 담으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6시간.

 

2006.10. 17.(火) 백두대간 41-1구간을 종주하다.

  (쇠나드리- 옛 조침령~ 조침령~ 943봉~ 1136봉~북암령~단목령-설피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