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정비석 - 산정무한(山情無限)

opal* 2005. 12. 30. 12:50

 

산정무한(山情無限)

 

                                                 정 비석

 

어느 외국인의 산장을 그대로 떠다 놓은 듯이 멋진 양관(洋館) 외금강 역과 아울러 이 한국식 내금강 역은

산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무한 정다운 호대조(好對照)의 두 건물이다. ()와 외()를 여실히 상징한 것이 더 좋았다.

 십삼야월(十三夜月)의 달빛 차갑게 넘실 거리는 역 광장에 나서니, 심산(深山)의 밤이라 과시(果是) 바람은 세찬데,

별안간 계간(溪澗)을 흐르는 물소리가 정신을 빼앗을 듯 소란하여 추위는 한층 뼈에 스민다.

장안사(長安寺)로 향하여 몇 걸음 걸어가며 고개를 드니, 산과 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에 우쭐우쭐 둘러선다.

기쓰고 찾아온 바로 저 산이 아니었던가고 금새 어루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힘껏 호흡을 들여마시니,

어느덧 간장(肝臟)도 청수(淸水)에 씻기운 듯 맑아 온다. 청계를 끼고 물소리를 즐기며 걸어가기 십 분쯤,

문득 발부리에 나타나는 단청(丹靑)된 다리는 이름부터 격에 어울려 함부로 건너기조차 외람된 문선교(問仙橋)!

 

문선교! 어느 때 어떤 은사(隱士)가 예까지 찾아와서 선경(仙境)이 어디냐고 목동에게 차문(借問)한 고사라도 있었던가?

있을 법한 일이면서 깜짝 소문에조차 듣지 못한 것은, 역시 선경과 속계(俗界)가 스스로 유별(有別)한 탓이었던가?

 

차문주가하처재(借問酒家何處在)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

[듣자하니 술집이 있다던데 예서 어디쯤인고, 목동이 멀리 가리키는곳 보아허니 은행나무 마을일러라]

 

은 속계의 노래로, 속계에서는 이만하면 풍류객이었다. 동양류의 선경이란 풍류객들이 사는 고장을 일컬음이니,

선경과 속계는 백지 한 겹밖에 아닐 듯이 믿어지니, 이미 세진(世塵)을 떨치고 나선 몸이라 서슴지 않고 문선교를 건너기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해선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몸에 지닌 기쁨이 하도 컸던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던 영봉(靈峰)들을 대면하려고 새댁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준봉(峻峰)은 상기 깊은 구름 속에서 용이하게 자태를 엿보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까운 데의 전나무, 잣나무 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모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밋밋하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한 야산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귀공자와 같이 기품이 있어 보이는 나무들이었다.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계류(溪流)를 끼고 돌며 몇 굽이의 협곡(峽谷)을 거슬러 올라가니,

산과 물이 어울리는 지점에 조그마한 찻집이 있다.

 

다리도 쉴 겸, 스탬프북을 한 권 사서, 옆에 구비된 기념 인장을 찍으니, 그림과 함께 지면에 나타나는 세 글자가

명경대(明鏡臺)! 부앙(俯仰)하여 천지에 참괴(慙愧)함이 없는 공명한 심경을 명경지수(明鏡止水)라고 이르나니,

명경대란 흐르는 물조차 머무르게 하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면, 지니고 온 악심(惡心)을 여기서만은 정()하게 하지

아니치 못하는 곳이 바로 명경대란 말인가! 아무러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찻집을 나와 수십 보를 바위로 올라가니,

깊고 푸른 황천담(黃泉潭)을 발 밑에 굽어보며 반공(半空)에 외연(巍然)히 솟은 층암절벽(層岩絶壁)이 우뚝 마주 선다.

명경대였다. 틀림없는 화장경(化粧鏡) 그대로였다. 옛날의 죄의 유무를 이 명경(明鏡)에 비추면,

그 밑에 흐르는 황천담에 죄의 영자(影子)가 반영되었다고 길잡이는 말한다.

 

명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려운 물건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비극은 거울이 발명되면서 비롯했고,

인류 문화의 근원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臆說) 일까? 백 번 놀라도 유부족(猶不足)

거울의 요술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경(可驚)할 일인가?

 

신라조 최후의 왕자인 마의 태자(麻依太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바위 위에 꿇어 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念誦)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업죄(業罪)를 명경에 영조(映照)해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운상기품(雲上氣稟)에 무슨 죄가 있으랴만, 등극(登極)하실 몸에 마의(麻衣)를 감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

이미 불법(佛法)이 말하는 전생의 연()일는지 모른다.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며 계곡을 돌아 나가니, 앞으로 염마(閻魔)처럼 막아 서는 웅자(雄姿)

석가봉(釋迦峯), 뒤로 맹호(猛虎)같이 덮누르는 신용(神容)이 천진봉(天眞峰)! 전후 좌우를 살펴봐야 협착(狹窄)한 골짜기는

그저 그뿐인 듯.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절박감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니,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

 

몸이 감길 듯이 정겨운 황천강(黃泉江) 물줄기를 끼고 돌면, 길은 막히는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고,

이 산에 흩어진 전설과, 저 봉에 얽힌 유래담을 길잡이에게 들어 가며 쉬엄쉬엄 걸어 나가는 동안에,

몸은 어느덧 심해(深海)같이 유수(幽邃)한 수목 속을 거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산 전체가 요원(燎原) 같은 화원(花園)이요, 벽공에 외연히 솟은 봉봉(峯峯)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 오른 한떨기의 꽃송이다.

산은 때 아닌 때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백화 난만(百花爛漫)한 것일까? 아니면 불의의 신화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고 있는 것일까? 진주홍(眞朱紅)을 함빡 빨아들인 해면같이, 우러러 볼수록 찬란하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단풍이 이렇게까지 고운 줄은 몰랐다.

김 형은 몇 번이고 탄복하면서,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그림 같은 연화담(蓮花潭) 수렴폭(垂簾瀑)을 완상하며, 몇십 굽이의 석계(石階)와 목잔(木棧)과 철삭(鐵索)을 답파하고 나니,

문득 눈앞에 막아서는 무려 삼백 단의 가파른 사닥다리 ── 한 층계 한 층계 한사코 기어오르는 마지막 발걸음에서 시야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다. 여기가 해발 오천 척의 망군대(望軍臺) ── 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활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 !

 

이름도 정다운 백마봉(白馬峰)은 바로 지호지간(指呼之間)에 서 있고, 내일 오르기로 예정된 비로봉(毘盧峰)

단걸음에 건너뛸 정도로 가깝다. 그 밖에도, 유상무상(有象無象)의 허다한 봉들이 전시(戰時)에 할거(割據)하는

군웅(群雄)들처럼 여기에서도 불끈 저기에서도 불끈, 시선을 낮춰 아래로 굽어보니, 발 밑은 천인단애(千斷崖)),

무한제(無限際)로 뚝 떨어진 황천 계곡에 단풍이 선혈(鮮血)처럼 붉다. 우러러보는 단풍이 새색시 머리의

칠보단장(七寶丹粧)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치마폭 같다고나 할까.

수줍어 수줍어 생글 돌아서는 낯 붉은 아가씨가 어느 구석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도 같구나!

 

내금강 역사(驛舍)에 도착. 저물 무렵에 마하연(摩訶衍:내금강에 있는 절)의 여사(旅舍:여관)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서였던가. 어서 오십사는, 상냥한 안주인의 환대도 은근하거니와,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 주는 여관집 아가씨의 정성은 무르익은 머루알같이 고왔다.

 

* 마하연(摩訶衍 내금강에 있는 유점사(楡岾寺)의 말사(末寺). 신라(新羅) 때의 의상(義湘) 대사(大師)가 지었다는 절

 

여장(旅裝:여행의 행장)을 풀고 마하연암(摩訶衍庵)을 찾아갔다. 여기는 선원(禪院:선정(禪定)을 닦는 도량)이어서,

공부하는 승려뿐이라고 한다. 크지도 않은 절이건만, 승려 수는 실로 30명은 됨 직하다. 이런 심산에 웬 승려가 그렇게도 많을까 !

 

한없는 청산 끝나 가려 하는데, [無限靑山行欲盡](무한청산행욕진)

흰구름 깊은 곳에 노승도 많아라. [白雲深處老僧多](백운심처노승다

옛글 그대로다.

 

노독(路毒:먼 길에 지치고 시달려서 생긴 피로나 병)을 풀 겸 식후에 바둑이나 두려고 남포등 아래에 앉으니,

온고지정(溫故之情:옛일을 돌이켜 생각하고 그리는 마음이나 정 )이 불현듯 새로워졌다.

 

“남포등은 참말 오래간만인데.하며 불을 바라보는 김 형의 말씨가 하도 따뜻해서, 나도 장난삼아 심지를 돋우었다 줄였다 하며,

까맣게 잊었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운 얼굴들이, 흐르는 물의 낙화(落花))송이같이 떠돌았다.

 

밤 깊어 뜰에 나가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陰風:흐린 날씨에 음산하고 싸늘하게 부는 바람)이 몸에 선선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 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요, 물 소린가 했더니

물 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만은 더구나 아니다. 아마, 바람 소리와 물 소리와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달빛에 젖으며 뜰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가 등잔 아래에 외로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깊는 줄조차 모르고 골똘히 읽는 품이, 춘향(春香)이 태형(笞刑) 맞으며 백()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도 같고,

명 쓴 장화(薔花)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告祝:천지신명에게 고하여 빎)하는 대목일 것도 같고,

시베리아로 정배(定配:유배장소(配所)를 정()하여 죄인(罪人)을 유배(流配)시킴 ) 가는 카투사의 뒤를 네플류도프 백작이

쫓아가는 대목일 것도 같고……,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동안에 산 속의 밤은 처량히 깊어 갔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산을 찾아 나섰다. 자꾸 깊은 산 속으로만 들어가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골을 다시 헤어나 볼까 두렵다.

이대로 친지와 처자를 버리고 스님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이키니, 몸은 어느 새 구름을 타고 두리둥실 솟았는지, 군소봉(群小峰: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는 여러 개의 봉우리 )이 발 밑에 절하여 아뢰는 비로봉 중허리에 나는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날씨는 급격히 변화되어, 이 골짝 저 골짝에 안개가 자옥하고 음산한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기더니,

은제(銀梯:구룡연(九龍淵)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매우 가파른 고갯길), 금제(金梯:구룡연(九龍淵)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높은 사닥다리 )에 다다랐을 때, 기어이 비가 내렸다.

젖빛 같은 연무(煙霧:연기같은 안개 )가 짙어서 지척을 분별할 수 없다.

 

우장(雨裝) 없이 떠난 몸이기에 그냥 비를 맞으며 올라가노라니까, 돌연 일진 광풍(一陣狂風:한바탕 몰아치는 사나운 바람)

 어디서 불어 왔는지, 휙 소리를 내며 운무(雲霧:구름과 안개)를 몰아가자, 은하수같이 정다운 은제와,

주홍 주단 폭같이 늘어놓은 붉은 진달래 단풍이, 몰려가는 연무 사이로 나타나 보인다.

 

은제와 단풍은 마치 이랑이랑으로 섞바꾸어 가며 짜 놓은 비단결같이 봉에서 골짜기로 퍼덕이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진달래는 꽃보다 단풍이 배승(倍勝:갑절이나 나음 )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오를수록 우세(雨勢:빗줄기 )는 맹렬했으나, 광풍이 안개를 헤칠 때마다 농무(濃霧) 속에서 홀현홀몰(忽顯忽沒:문득 나타났다가

문득 없어짐 )하는 영봉(靈峯:신령한 봉우리)을 영송(迎送:맞이하고 보냄)하는 것도 가히 장관이었다.

 

산마루가 가까울수록 비는 폭주(暴注:비가 갑작스럽게 많이 쏟아짐 )로 내리붓는다. 만이천 봉을 단박에 창해(滄海:넓고 큰 바다)로 변해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갈데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 가지고 비로봉 절정에 있는 찻집으로 찾아드니,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고 섰던 동자(童子)가 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였고, 벌겋게 타오른, 장독 같은 난로를 에워싸고

둘러앉았던 선착객(先着客:먼저 도착한 손님)들이 자리를 사양해 준다.

 

인정(人情)이 다사롭기 온실 같은데,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어느덧 우박으로 변해서 창을 때리고 문을 뒤흔들고

금시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하다. 용호(龍虎)가 싸우는 것일까? 산신령이 대로(大怒)하신 것일까?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는 뜻으로, 세상을 몹시 놀라게 함)도 유만부동(類萬不同:비슷한 것이

많으나 서로 같지는 아니함. 정도에 넘침)이지, 이렇게 만상을 뒤집을 법이 어디 있으랴고,

간담(肝膽:간과 쓸개. 속마음 )을 죄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간에 잠든 양같이 온순해진다.

변환(變幻:갑자기 나타났다 없어졌다 함. 그렇게 종잡을 수 없이 빠른 변화)도 이만하면 극치에 달한 듯싶다.

 

비로봉 최고점이라는 암상(岩上)에 올라 사방을 조망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운해(雲海:구름바다라고도 함. 구름 위에 솟은 산꼭대기가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일 때의 구름 상태), ── 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으리라 싶었다.

내·외·해(內外海) 삼 금강(三金剛)을 일망지하(一望之下:한눈에 다 바라볼 수 있는 아래)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한 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수 없는 것이 가석(可惜:애틋하게 아까움 )하나, 돌이켜 생각건대 해발(海拔) 육천 척에

 다시 신장(身長) 오 척을 가하고 오연(傲然:거만하게)히 저립(佇立:우두커니 섬 )해서, 만학천봉(萬壑千峯:첩첩이 겹쳐진 깊고 큰 골짜기와 수많은 산봉우리)을 발 밑에 꿇어 엎드리게 하였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마음은 천군만마(千軍萬馬:천 명의 군사와 만 마리의 군마라는 뜻으로, 아주 많은 수의 군사와 군마를 이르는 말)에 군림하는

개선 장군보다도 교만해진다.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나무 바다)였다. 설 자리를 삼가,

구중심처(九重深處:궁궐을 이르는 말, 깊숙한 곳 )가 아니면 살지 않는자작나무는 무슨 수중(樹中:나무 중에서) 공주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哀話:슬픈 사연이) 맺혀 있는 용마석(龍馬石:강원도 금강산 비로봉 위에 있는 바위 이름. 마의 태자의 말이 변한 것이라고 전하여짐. ) ── 마의 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 ── 철책(鐵柵:쇠살로 만든 우리나 울타리 )도 상석(床石: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직사각형의 돌상)도 없고, 풍우에 시달려 비문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무덤가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석양이 저무는 서녘 하늘에 화석(化石)된 태자의 애기(愛騎:사랑하는 말 ) 용마(龍馬:모양이 용같다는 말)의 고영(孤影: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모습)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르는 듯, 소복(素服)한 백화(白樺:자작나무)는 한결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초저녁 달이 중천(中天:하늘 가운데)에 서럽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險山)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社稷:백성의 복을 위해 제사하는

국토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을 아울러 이르는 말. , 나라의 터전.)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몸에 짊어지려는

고행(苦行)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 공주의 섬섬옥수(纖纖玉手:가냘프고 고운 손)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入山)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裏:가슴 속)가 어떠했을까?

 

흥망(興亡:흥하고 망하는 것)이 재천(在天:하늘에 있음)이라, 천운(天運)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자애롭게 베푸는 은혜)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 덧없는 꿈이나 한때의 헛된 부귀 영화)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悠久: 길고 오램 )한 영겁(永劫:영원한 세월 )으로 보면 천 년도 수유(須臾: 잠시 )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依支)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暗然)히 수수(愁愁:서글프고 산란함)롭다.

 

정비석 (鄭飛石:1911~1991)

 시인, 소설가, 수필가. 시로 먼저 등단 후, 단편소설'졸곡제(卒哭祭)'와 '성황당(城隍堂)'으로 다시 등단.

8.15광복후의 연재소설 <파계승>.<호색가의 고백>등 일련의 애욕세계를 거쳐 1954년 <자유부인>에 이르러

 재중 소설 작가의 위치를 굳혔다.

1984년에는 <소설 손자병법>을 발간하여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작품으로 '애증도(愛憎道)'와 '저기압(低氣壓)'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