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유 인숙 -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회상, 갈무리.

opal* 2005. 11. 27. 11:34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유 인숙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저마다 허물이 있을지라도
변함없는 눈빛으로
묵묵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그 뒷모습 속에서 느껴오는
쓸쓸함조차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싹트는 찰나의 열정보다
천천히,아주 천천히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정을 쌓아간다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그저 원하기 보다
먼저 주고 싶다는 배려가
마음속에서 퐁,퐁,퐁
샘솟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향긋한 커피 한잔에 감미로운
음악으로도
세상을 몽땅 소유한 것 마냥
행복해하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항상 좋은 벗이되어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함께 늙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回想

 

                           유 인숙

 

이미,
지나버린 시간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뒤돌아보는 건
무슨 이유인가
지나온 삶의 무게만큼
아픔도
서러움도
가슴 아린 그리움도
소롯이 뒤돌아 서있구나
굳은 沈默으로
내 안에 가라앉아
모진 歲月을 견디었구나

 

 

갈무리

 

                     유 인숙

 

저물어 가는 저 가을의 들녘을 보라
질펀하게 너른 들에
모가지를 휘청이며
누런 머리칼을 날리는 갈대의 무리
퇴색되어 빛 바랜 가을이
소리 없이 흔드는 쓸쓸한 몸부림인가
금강의 잔잔한 물빛은
부서진 햇살들이 알알이 떨어져
보석을 박은 듯 은빛 현란하고
이른 없는 작은 마을 신성리 갈대 숲은
다부진 생명이 그대로 황홀하다
강변을 거슬러 올라
금강하구둑에 다다르면
평화로이 노니는 청둥오리 떼
서슬 퍼런 날을 세워 바람을 가르고
고고하게 날아드는 흰 빛 고니 떼
나는 그들 중 하나가 되어
물 위에 하염없이 떠있고 싶다
부시게 아름다운 가을 끝을 붙들고
갈증이 일면 물 한 모금 걱정도 없이 축이고
투명한 햇살처럼 물빛 눈망울 껌뻑이며
강물로 출렁이는 언어가 된다

저물어 가는 가을,
눈을 어지럽히는 갈대의 무리만
동공의 크기에 따라 바람에 휘청거리고
결국 이별을 고하는 갈무리여,
저물어 가는 저 가을의 들녘을 보라

 

 

 

내용보기전남 보성 출생  호는 해송
한국시사랑문인협회 동인/시사문단작가
도서출판 동길사주최<사랑이야기>시부문 우수상

무크지 매혹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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