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42, 43 두 구간은 설악산 한계령에서 희운각, 마등령, 황철봉을 거쳐 미시령까지의 구간으로 길이가 길고 험하다.
이번에 한계령에서 마등령까지 공룡능선 구간(42구간)만 연휴(현충일)를 이용하여 무박으로 떠난다.
전날 저녁 22:00. 출발. 지난 가을 오색에서 오를 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마냥 기다리다
한 발자국씩 오르던 생각이 난다.
01:30. 내설악 휴게소 도착. 차에서 내리니 휴게소 옆 논에선 개구리들은 이 시간까지도 짝을 못찾았는지 잠도 안자고
고래고래 목 터져라 소리 지르고 있다. 총무님이 준비한 누룽지탕을 전조등 불빛을 이용해 졸린 눈을 비비며 떠 넣는다.
02:20. 한계령(寒溪嶺, 1004m). 강원도 인제읍 북면과 양양군 서면을 잇는 고개. 대청봉과 남쪽의 점봉산을 잇는
설악산 주능선의 안부이며 영동과 영서 지방의 분수령을 이룬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산 도둑이 끓어 이 고개를 넘지 말라는
금표가 양양군 서면 오가리의 길 옆 바위에 있다. 1971년에 44번 국도가 닦이고 1981년에 확장 포장 되었다.
차에서 내려 휴게소 뒤쪽의 계단을 오른다. 시작부터 힘 빠지는 계단과 길고도 험한 길을 15시간 동안 걸을 각오하며
페이스 대로 한발 한발 옮긴다. 한 줄로 늘어섰던 일행들은 철계단을 지나 모두 흩어져 보이질 않으니
오랜만에 참석한 분이 "캄캄한 밤에 서로 도와가며 가야 되지 않느냐"며 일침을 가한다.
한 밤중인 이 시간에도 랜턴의 불빛 따라 나방이 날아든다. 흙 바닥에 노래기가 이동하는게 보인다. 발에 밟힐까 걱정된다.
낮에도 다니기 힘든 돌길을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오른다.
03:05. 빛을 비춰가며 이정표를 보니 한계령에서 1km 올라섰다. 바위에 박힌 난간을 잡고 돌길을 오른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설악산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어두운 시간이라 볼 수 없는 경치가 아깝고, 가뜩이나 돌을 밟으며 다녀야하니 위험한 생각이 든다.
거짓말 좀 보태 집채보다 더 큰 돌 틈을 비집고 오르는데 발이 짧아 힘들다. 주위가 어두우니 방향을 모르겠고
앞서가는 일행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발을 옮긴다. bus로 한 차 가득 온 사람들이 도대체 누가 앞에 갔는지
누가 뒤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다. 길도 험하고 어두워 사진도 찍을 수 없다.
03:45. 서북능선 도착. 칼날 같은 바위 날을 밟으며 오르내린다. 밝을 때도 된 것 같은데 안개만 보인다.
04:20. 발아래 불빛이 어슴푸레 보이는데 한계령 같다. 부지런한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바람이 세차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04:50.어둠은 덜 가셨지만 랜턴을 벗는다. 같이 온 사람들은 어디쯤 갔는지 보이지도 않으려니와 소리조차도 안 들린다.
05:00. 부지런한 새들이 새벽 숲의 정적을 깬다. 어느 악기가 이처럼 곱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숲속에도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니 꽃이 보인다. 앵초를 시작으로 보이는 대로 찍어 보지만 어둡고 바람에 흔들려 엉망이다.
05:20. 어둠이 물러나고 돌들도 적은 오르막. 이제 세 시간 올라섰는데 벌써 힘들다. 앞으로도 열 시간은 족히 더 걸어야 할 텐데.
05:45. 끝청(1640m). 바람이 세게 불어 점퍼를 입는다. 해는 어느새 대청봉 위에서 구름 속을 들락거리고 있다. 대청봉에서
꼬물 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철쭉과 이름 모를 꽃이 많은데 심한 바람으로 제대로 담을 수가 없다.
06:20. 끝청 갈림길(1600m). 아래에 중청 대피소가 보이고 위로는 대청봉으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있는 대청봉을 갈까 말까 망설이는 중에 대청봉 다녀오는 짝꿍을 만나 그대로 소청으로 향한다.
대청봉은 대간 주능선도 아닌데다 몇 번 갔었고, 당일 산행도 가능하여 시간을 절약한다.
06:40. 소청. 지난 가을엔 많은 인파로 08시가 되어 도착했었다.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딛는다.
긴 산행 후 금강굴 쪽의 하산 길은 유명한 급경사 내리막이라 미리부터 신경 쓰지 않으면 안된다.
07:20. 희운각 도착. 벌써 5시간을 걸었다. 먼저 온 사람들 속에 섞여 아침 식사와 잠시 휴식 후 08:00에 다시 출발.
무너미(1020m) 고개. 이 갈림길에만 오면 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갈등 하던 곳이지만 이번엔 백두대간 종주 길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곳에서 마등령까지가 백두대간의 등줄기인 공룡능선, 외설악(동쪽)과 내설악(서쪽)의 경계가 된다.
08:30. 신선봉(1218m). 급경사 바위 길을 줄을 잡고 오르니 공룡의 등뼈를 연상시키는 험준한 봉우리들이 한 눈에 펼쳐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다. 멀리 지나온 대청과 중청 소청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용아장성의 기암 연봉, 왼쪽으로는 천화대와 화채능선의 짙푸른 사면이 펼쳐진다.
간간히 만나는 여러 가지 꽃들을 담으며 기암괴석을 바라보느라 일행도 잃어버린 채 지루한 줄 모르고 행진한다.
09:20. 커다란 바위봉우리 벽면에 친구를 잃은 이들이 만들어 바위에 붙인 작은 표지를 줌으로 당겨 보니
세월이 오래 되어 글씨가 희미하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
아무리 찾으려 해도 없는 얼굴이여
눈물지며 사라지는 너의 긴 그림자
슬픈 그림자를 우리 어찌 잊으리’
1983년 친구 일동
09:37. 샘터. 바위틈 아래로 졸졸 흐르는 물을 나뭇잎을 대어 컵으로 받아 마신다. 설악산은 물이 없는 산이라
준비는 많이 했지만 희운각 대피소 샘과 이 물을 아쉬운 대로 이용한다.
1275봉의 뾰족한 봉우리가 작은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위용을 자랑한다.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비좁은 바위틈을 기어오른다.
계속해서 바위 길을 오르며 처음으로 솜다리 꽃을 발견하여 카메라에 담는다.
10:15. 1275봉. 힘들고 힘들도다. 마등령 2.1km, 희운각 3.0km. 이정표가 있다. 3km 걷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봉우리 하나를 힘들게 넘고 나면 봉우리가 또 보인다. 산넘어 산이라 했던가?
11:00. 바위틈을 간신히 올라 밧줄을 잡고 내려서니 희운각 3.7km, 마등령1.4km 이정표.
다시 300m를 걷고 나무와 바위 틈을 비집고 오른다.
11:30. 공룡능선 중 가장 힘든 곳. 지칠 만큼 지친 상태에서 만나는 지점. 밧줄을 잡고 올라도 혼자서는 도저히
오를 수가 없는 수직으로 된 바위 틈. 아래에서 누군가가 받쳐줘야만 오를 수 있어 낯선 남자에게라도 부탁하여 올라섰다.
11:50. 희운각에서 밥 먹은 후 일행 만나기가 힘들어 계속 혼자 다녔는데 앞에 일행이 보여 떡 간식 함께 먹고 가다 또 헤어진다.
12:05. 나한봉(1276m). 희운각 4.6km, 마등령 0.5km. 내려서는 길에 큰 앵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사진 찍느라 지체된다.
12:30. 마등령(1240m) 도착. 희운각에서 4시간 반이 걸렸다. 가을에 왔을 땐 이곳에서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갔으나
오늘은 비선대를 거쳐 신흥사 방향으로 하산하게 되니 이곳부터는 초행길이 된다.
12:35. 마등령 정상(1320m). 밧줄을 잡고 급경사 돌길을 내려딛고 철 난간을 잡고 돌 비탈길을 오르내린다.
대청과 중청이 만드는 Sky Line이 보이며 지나온 능선의 아름다운 바위군이 보인다.
여러 모양의 멋진 바위들을 바라보며 내려딛는 길은 오세암 골짜기로 가던 맛과는 또 다른 맛이 난다.
14:15. 마등령에서 2.8km를 내려오는 동안은 멋진 비경을 보며 오느라 지루한 줄 모르고 내려섰는데
가파른 돌계단이 시작되니 고통스럽다. 시간은 오후로 바뀌고, 하품도 나오고 무릎에 신호가 온다.
무박산행과 국립공원, 배설에 신경을 써야 하는 점 또한 고통이다. 나무가 없는 돌로만 이루어진 급경사면을
불편해진 몸과 마음으로 혼자 하산하자니 더 지루하다.
14:45. 금강굴 입구. 빨간 철 계단이 있어 가까운 줄 알고 오르다 쳐다보니 그 높이가 만만치가 않아 포기하고 내려선다.
아파오는 다리를 이끌고 가려니 까마득하다.
15:15. 비선대. 기암절벽 사이에 한 장의 넓은 바위가 못을 이루고 있는 곳. '와선대에 누워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던 마고선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에는 몇 번을 와봐도 감탄하며 구경했는데 오늘은 그럴 시간적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한시 바삐 내려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16:20. 신흥사를 거쳐 설악동 공원 매표소 앞 도착. 산행 소요시간 14시간.
2006. 6. 6.(火) 백두대간 42구간, 공룡능선을 오르다.
(한계령~끝청~소청~희운각~신선봉~나한봉~마등령~비선대~설악동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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