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39회(32-2구간.싸리재~금대봉~비단봉~고랭지밭~피재~건의령)

opal* 2006. 5. 30. 08:45

 

05:30. 출발. 08:15. 치악 휴게소에 휴식.


10:30. 제천 IC에서 나와 싸리재(두문동재, 1268m) 도착. 함백산 산행 때도 왔던 들머리(함백산 우측, 금대봉 좌측) 이다.

차에서 내리니 산불 감시초소 옆으로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눈길을 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쾌청한 오전 햇살, 싱그러운 오월의 신록과 갖가지 꽃들과 시원한 바람이 발걸음을 가볍도록 도와준다.

야생화가 많기로 유명한 곳, 꽃사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풀 밭, 그들 속에 섞여 함께 찍고 싶다. 

양쪽에서 키 큰 산철쭉이 화사한 얼굴로 맞이하는 임도 따라 오르다 숲속으로 올라가 가파른 오르막을 십 분쯤 걸으니

산불 감시초소가 보이며 표지석이 있다.


10:55. 금대봉(1418.1m) 정상. 兩江 發源奉이란 긴 막대 봉과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낙동강의 발원지인 黃池를 품은 산이다.  나무에 가려져 조망은 시원치 않고 한쪽으로 조금 보이는 곳은

산봉우리 하나가 얼레빗의 빗살처럼 맨살이 줄금으로 파 헤쳐진 곳이 보인다.


삼각점을 확인하고 숲 속으로 들어서니 바위가 젖어 미끄럽다. 우거진 신록 속에 채취한 산나물을 한 자루씩 멘 사람들이 지나간다.


11:10.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4.3km), 용연동굴(2.2km)로 가는 갈림길. 선두 그룹 중 두 명만 다녀온다며

검룡소로 갔다고 한다. 따라가고픈 마음은 굴뚝 같은데 걸음이 늦어 체념한다.


‘생태계 보전 지역’이라는 글이 씌어진 작은 사각기둥이 곳곳에 박혀있다. 유월의 햇살조차 빈틈을 주지않능 초록 숲에

초본의 키 작은 앵초와 관목의 산철쭉 분홍색이 조화를 이루며 화원을 이루고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만으로도

시원한데 불어오는 바람과 아름다운 새소리까지 합세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는 듯.


11:45. 쑤아밭령(1100m). 고개 이름이 좀 특이하다. 용연동굴 (해발 고도 920m의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93호)로 가는 갈림길.

옆에 서 있는 크고 아름다운 고목에 매미처럼 매달려 보기도 하고, 낙화한 꽃잎을 밟으며 녹음 터널 속으로 들어선다. 

산죽사이로 난 길을 걸으니 나무사이 멀리 봉우리가 보인다.


12:15. 가파른 비단봉(표지석 없음)을 오르다 말고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오던 길을 돌아본다. 

발아래의 연두색에서 시작하여 초록색의 금대봉, 싸리재 넘어 지난 구간에 걸었던 은대봉, 함백산과  하늘까지, 

푸른 모습이 차례 차례 재미있게 변해가는 중인데 질투를 느낀 뭉게구름이 방해를 놓는다.

시원스런 조망아래 싸리재를 넘어 내려오는 길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이다.


나물을 한 짐 가득 진 사람들이 나물을 사 달란다. 하산 지점이면 사겠는데 산행 중이라 곤란하여 미안하다는 인사로 대신한다.   

비단봉을 거의 다 내려서니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진다.

아름답고 질서 정연하게 갈아놓은 비탈면의 밭이랑을 뭉개며 가로질러 빤히 보이는 앞 사람들을 쫓는다.

산에는 리본이 있어 혼자 따라가도 괜찮지만 들판 같은 이런 곳에선 대간 길을 몰라 헤매게 생겼다.


밭 가장자리로 걷다 밭 사이의 길을 지나고, 콘크리트 길을 가다 다시 밭 사이로 들어선다. 심겨진 채소가 없으니

지금은 밭을 가로질러 가도 되지만 채소가 심겨져 있을 땐? 대간 길의 마루금은 도대체 어디로 그어진 것일까?


우리의 식탁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 김치이고 보면 채소밭을 가꾸는 삶의 터전인 농지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산들이 파헤쳐져도 백두대간 길 만큼은 오래 오래 보전되어 현재의 우리가 걷는 길이나

대를 물려받을 미래의 후손들이 걸을 때도 같은 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산초당에서 내려다보는 강진만의 아름다운 마을이나 청송 주산지의 아침 안개, 소쇄원의 인공이 가미된

아름다운 문화적 경관을 즐겨 찾듯이 대간 길을 걷는 종주도 삶의 질은 높이고자 하는 문화생활이기 때문이다.

 

계단식 다랑이 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듯, 역사성이나 학술상의 가치는 없더라도 대간 길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보전하고, 

 농지는 농지대로 가꿀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다른 산과 달리 ‘생태계 보전지역’이란 안내판을 세워 놓은 곳이라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백두대간 길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아쉬운 마음에 여러 생각들이 떠올라 지천으로 깔린 민들레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 할 여지도 없이 풍력 발전기 앞에 도착한다. 이토록 군락으로 핀 많은 양의 민들레꽃은 처음 본다. 


매봉산을 오르는 중턱에 태백시에서 세운 하얀 기둥의 풍력 발전기 5기가 나란히 서서 돌고 있다. 선자령 보다는 숫자가 적다.

불어오는 바람도 세고 크기도 웅장하지만 날개가 돌며 머리 위를 스칠 때는 비행기 소리 같이 크다.


13:15. 다시 숲 속 오르막. 연두색 숲 산죽 길에 연분홍 꽃이 돋보인다. 꽃 사진 찍느라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한 것을 

대간 길에서 약간 비켜 있는 매봉산 다녀오는 일행이 가르쳐줘 매봉산으로 향한다.  


13:25. 매봉산(1303.2m) 정상. 작은 돌의 표지 석과 삼각점이 있다. 특이한 점은 표지석 양면의 산 이름이 다르다.

똑같은 태백 산사랑회에서 세웠는데도 한쪽 면은 매봉산, 반대쪽엔 천의봉으로 쓰여 있다.


매봉산을 내려서니 우측 아래로 시가지가 보이며 밭 옆으로는 컨테이너박스들이 있다.

밭엔 농약인지 거름인지를 뿌려놓아 땅이 검고 냄새가 진동을 하니 파리가 수 없이 날아든다. 배가 고파도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유기농 거름이라면 몰라도 농약이라면 문제가 된다. 두 강의 발원지인 이곳부터 농약이 흘러 들어가면 안 되지 않을까?


13:40. 냄새를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 밥을 먹지만 어떻게 알고 쫓아 왔는지 금방 파리가 모여든다.


14:10. 낙동정맥(洛東正脈) 분기점 삼거리. 13개의 정맥 줄기 가운데 하나인 낙동정맥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이어지고

대간 줄기는 좌측으로 가야 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대간 줄기에서 갈라져 낙동강의 동쪽을 따라 내려가는 산줄기 인데 부산의 어느 산악회에서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


매봉초지의 철조망 울타리 옆길로 걷다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 포장도로를 만나고,

다시 복성초지 울타리 옆으로 가다 포장도로로 내려딛는다.


14:30. 35번 지방 국도에 있는 피재 또는 삼수령(920m). 

'삼척사람들이 황지지역을 이상향으로 생각하며 난을 피해 이곳으로 왔다'하여 '피재'라 하고,

빗물이 이곳에 떨어져 흐르는 방향에 따라 한강(서해), 낙동강(남해), 오십천(동해)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三水嶺'이라 한다. 

‘빗물의 운명’이라는 유래를 적어놓은 조형물과 정상에 三水亭 정자와 삼각뿔 모양의 조형물이 있는 뒤쪽으로

대간 길이 이어진다.  선두에서 걸으며 검룡소에 갔었던 일행이 어느새 따라왔다. 


14:55. 콘크리트 도로를 걷다 언덕 노루메기재에서 좌측 숲속으로 들어선다. 961m봉 과 다시 봉우리 하나를  가파르게

올랐다 내려서니 양쪽으로 가파른 능선에 바람이 시원하다. 대간 길을 다니는 날들이 오늘 같은 날씨였음 좋겠다.


15:10. 944봉. 나무사이로 지나온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삼각점을 지나 좁은 길 우측으로 사유지임을 나타내는 울타리,

철사 줄을 몇 년째 방치했는지 나무를 제법 많이 파고 들어가고 있다. 제거해 주고 싶지만 내 힘으론 안된다.


녹음 속 능선 오솔길에 바람이 시원하니 이런 길만 걸으면 좋겠다. 어느새 무릎에 신호가 온다. 5 시간째 걷고 있다.


3:35.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싱그러운 숲 냄새가 진동을 하고 까마귀, 뻐꾸기 온갖 새소리와 녹음이 좋다.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으로 들어섰던 중간 팀 일행을 만나 과일 간식. 다시 능선 오솔길을 걷는다. 


16:05. 고목들이 길을 막고 누웠어도 바람은 여전히 시원하다. 녹음 짙는 오솔길을 걸으니 낙엽이 푹신하여

발에 와 닿는 촉감이 부드럽다. 계절의 여왕다운 날씨와 기온이라 하산하기가 싫다. 다시 한 차례 낑낑대고 오른다.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 같은 마을과 구불대는 도로가 잘 보이는 조망 좋은 곳에서 눈요기를 하고 풀밭 길로 내려딛는다.


16:45. 건의령 도착. 옆에서는 건의령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계약재배 근황을 살피러 나온 승용차가 있어 얻어 타고 차기 기다리는 곳까지 이동한다. 태워주신분께 감사 드린다.

산행 소요시간 6시간 20분.


2006. 5. 30. 백두대간 32-2구간을 종주하다.

    (싸리재~ 금대봉~쑤아밭령~ 비단봉~ 고랭지 채소밭~ 피재(삼수령)~건의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