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

피렌체,산타마리아 델피오레(Basilica Santa Maria del Fiore) 두오모 성당

opal* 2010. 6. 22. 05:40

 

 

  2010-06-22(화)

 

낭만과 로멘스의 도시, 르네상스를 꽃피운 꽃의 도시 피렌체.

피렌체는 메디치家(이탈리아 부르주아 가문)로 인하여 르네쌍스가 시작된 곳이다.

메디치가는 1434~1737년에 걸쳐 피렌체와 토스카나 지방을 지배했다.

4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피우스 4세, 레오 11세)을 배출했으며, 유럽의 여러 왕가와 혼인관계를 맺었다.

프랑스의 왕비가 된 카트린 드 메디시스마리 드 메디시스가 바로 메디치 가문 출신이다.

 

메디치가의 세 가계(家系)는 계속해서 통치 권력에 접근하거나 혹은 통치자의 지위에 올랐다.

 키아리시모 2세 가계는 14세기 피렌체에서 권력을 얻는 데 실패했다.

 대(大)코시모 가계는 15세기에 피렌체에 세습 공국(公國)을 세웠으나 법적 권리와 칭호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급격히 붕괴되기 쉬운 성격의 공국이었다. 그러나 이 가계의 마지막 분가(分家)에서는 지배권력이 싹트고 있었다.

 

그 가운데 2명은 피렌체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공작의 지위에 올랐고 이 가계의 마지막 직계 상속자인 카테리나 데 메디치

 프랑스의 왕비(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되었으며 마지막 자손인 사생아 알레산드로는 피렌체 공작이 되었다.

세 번째 가계는 16세기에 공화주의 이념을 저버리고 전제정치를 폈고 스스로 토스카나 대공이라는 지배가문을 세웠다.

이들 세 가계의 차이점은 본질적으로 환경의 차이에 기인한다. 메디치 가문 모두에게는 대대로 내려오는 일관된 특징이 존재했다.

 우선 그들은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적대 세력과는 항상 무장한 군사력으로 맞서기보다는 황금을 뇌물로 쓰는 방법을 사용했다.

 게다가 초기에 메디치가는 피렌체 시의 중간계층과 극빈계층의 환심을 사려고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

포폴라니'(popolani:서민)와 친숙해지고자 하는 초기 메디치가의 결의는 이후에도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되었다.

메디치가의 구성원들은 자선이나 과시욕으로 예술을 후원한 것이 아니었고, 모두 학예와 건축에 대한 열정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메디치 은행은 유럽을 통털어 가장 부유하고 훌륭한 은행 이엇다. 이를 토대로 피렌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 하였으며,

나중에는 이탈리아 전역과 유럽에까지 확대 되었다.

회계 전문직에서 그들은 신용과 차변을 추적하기 위한 복식부기 체제의 개선이라는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이 체제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위해 일하는 회계사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 유럽에서는 퀼른 대성당 다음 네 번째로 큰 두오모 성당.

산타마리아 델피오레(Duomo o Basilica Santa Maria del Fiore, 꽃의 성모 마리아)

 

피렌체(Firenze) 중심에 웅장하게 서있는 두오모 성당은 1296년 아르놀포 디 깜비오(Arnolfo di Cambio)에 의해서 시작,

1369년 라포 기니(Lapo Ghini)에 의해 완성되었다.

유명한 돔은 명장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가 14년(1420∼1434)을 걸려 완성했다.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의 돔은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 성당의 미켈란젤(Michelangelo)의 돔과도 비교되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당시 피렌체의 부와 영광을 나타내는 듯한 화려한 성당의 정면은 1587년에 파손이 된 것을 1887년에 복원한 것이다.

갖가지 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외부와는 달리 내부(길 149m, 높이 106m)는 의외로 검소하게 꾸며져 있다.

돔의 안쪽의 천정화 최후의 심판은 죠르죠 바사리(Giorgio Vasari, 1511∼74)와 주카리(Zuccari)의 작품이고

도나텔로(Donatello, 1786∼1466)와 로렌쪼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등의 작품이다.

중앙제단 왼쪽에 위치한 삐에타(Pieta) 상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75세의 고령으로 시작하여 미완성으로 끝난 작품이다.

성당 왼쪽 벽 중간에는 단테(Dante)를 주제로 한 벽화가 있는데 1465년의 것이다.

이 성당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피렌체(Firenze)의 중심 성당으로 옆과 앞에 있는 조오또(Giotto)의 종탑과

단테(Dante)가 세례를 받았다는 세례당의 청동 천국 문이 볼만하다.

 

돔 옆에는 104m의 돔을 만든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상이 있는데 그의 시선은 본인이 만든 돔의 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오른손은 콤파스를 쥐고 있다.

브루넬레 스키는 원근법이라 불리는 수학적 투시도법을 발명한 건축가로서 이후

대 성당 돔을 완성하는 공모전에 선정되어 지름 40m가 넘는 거대한 대성당 돔을 완성한 천재 건축가 이다.

 

지오토가 설계한 높이 82m의 거대한 고딕 양식의 종탑.(Gampanile di Giotto)
이 탑은 1334년 지오토가 설계, 지오토 사만 25년 1359년 안드레아 피자노와 프란체스코 랄렌리에 의해 완성되었다.

당시는 페인트와 같은 안료가 없었기 때문에 흰색과 녹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외관을 조화롭게 구성하였으며,

근처의 두오모 성당과 성 요한 세례당과 조화를 이루는 큰규모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지오토의 예술성은 단테가 '신곡'에서 언급했을 정도로 당시의 지오토는 '과거 누구의 예술보다 완전한 것' 이라는 말을 들었다.

탑의 디자인과 색채의 오묘함, 그리고 섬세함을 보면 누구나 이 말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다.

 

캄파날레(종탑)는 1334년 지오토가 설계한 것으로 높이 85m로 돔보다 6m가 낮다. 계단을 이용하여 종탑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흰색, 연두색, 분홍색등의 토스카나 대리석을 사용하여 만들어 웅장하면서도 화려하다.

 

거리의 예술인.

 

오랜 세월 동안 지나오며 퇴색되었음에도 흰색과 붉은색, 녹색이 어우러진 대리석 색체가 아름답다. 처음에는 얼마나 산뜻했을까?

 

대성당 부속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비롯하여 한 때 이 성당을 가득하게 장식했던 르네상스 거장들의 조각, 회화,

금은 세공품들은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옮겼다. 외벽에 보이는 조각들은 모두 모조품이다.

 

두오모의 가장 높은 돔은 1463년 브루넬레스키가  로마의 판테온을 보고 모방하여 설계한 것이다. 

건축 사다리 없이 지어진 가장 큰 건축물이자 최초의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1463년 완공되었다.

 

지오토(Giootto)는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다. 이탈리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 '치마부에)Cimabue)'에게 그림을 배웠다.

지오토(Giootto)의 재능은 생존시에도 높이 평가 받았다. '신곡'의 작가 단테가 '지오토의 시대'라고 극찬했으며,

'데카메론' 작가 '보카치오(Boccaccio)는 자신의 저서에서 지오토를 최고의 화가로  칭했다 한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3代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nardo da Vinci),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등 위대한 미술가들도 지오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새에 설교하는 성프란체스코, 파도바 산타마리아 아레나 성당 벽화인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이야기'

'최후의 심판', 피렌체 온니산티 성당의 '장엄한 성모'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예수의 십자가' 등이 있다.

 

 

 

 

  

  청동으로 된 정문.

 

천국의 문 위에 있는 조각상.

 

델피오레 성당 앞에 있는 산죠바니 세례당. 팔각형의 독특한 양식으로 델피오레 성당이 건축되기 전까지 주교좌 성당 이었다.

단테도 어릴 때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정면의 황금색 동쪽 문은 미켈란젤로가 극찬했다는 '천국의 문' 이다.

 

세례당의 동쪽문인 청동문은 로렌츠 기베르티가 20년에 걸쳐 만든 작품이다.

1401년 피렌체가 페스트의 재앙에 피해를 입지않은 것을 기념하기위하여 계획 되었다.

1401년 피렌체시는 세례당의 청동문을 제작할 조각가를 뽑기위해 공모전을 공포했다.

최종적으로 기베르티와 부루넬레스키가 선정 되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 두 사람이 공동작업을 시켰으나

브루넬리스키가 사양하는 바람에 기베르티 혼자 선정되어 청동문을 제작 했다.

피렌체의 고딕양식에서 크게 벗어나 독특한 양식을 선보인 기베르티가 북쪽문의 제작에 이어 동쪽문인 이 문도 완성 하였다.

현재 세례당의 동쪽문인 천국의 문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두오모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문 전체가 10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구약 성경의 내용을 각각 묘사해 놓았다.

 

 산조반니 세례당에 있는 '천국의 문'

 

문의 주제는 위에서부터 왼쪽, 오른쪽 순으로

①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함, ②가인이 아벨을 죽임-인류의 최초 살인, ③술취한 노아-노아의 방주,

 ④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아브라함과 이삭, ⑤에르사우와 야곱,  

⑥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요셉과 그 형제들, ⑦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모세-십계명,  ⑧여리고성의 함락-요슈아 이야기, 

⑨블레셋과의 전쟁-사울과 다윗, ⑩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이 그려져 있다.

 

기베르티가 청동문을 완성한 것은 작품제작에 착수한 지 23년이 지난 1424년이었다. 문 한 쌍을 만들기 위해 2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①아담과 에와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함, ②가인이 아벨을 죽임-인류의 최초 살인,

 ③술취한 노아-노아의 방주, ④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아브라함과 이삭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 가까이 찍어 보았다. 관광객이 많아 앞에서 찍지도 못하고 옆에서 어렵게 찍었다.

문 조각 하나 하나에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나 자세히 알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려 가이들도 대충대충 설명한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의 만남.

 

 

여러 고성의 함락.

로마 병정이 지나다니던 길의 우산나무가 이곳에도 표현되어 있다. 하나 하나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여러 인종 속에 섞여 한 컷~

 

 

 

 

건물에 수직선을 맞추면 종탑이 기울고, 종탑에 맞추면 건물이 기울고, 카메라 화각이 너무 좁은건지, 아니면 건물이 너무 큰건지....ㅎㅎ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건물 안은 생각보다 검소하다. 

두오모의 자체만으로 의미를 주고 있으며 '사람들로 꽉 찰 때 아름답게 보이도록' 건축되었다고 한다. 

 

제단 주위의 계단모양 대리석은 1555년 바치오 반디넬라의 작품 이다.

큰 돔은 3개의 축소판 돔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작은 돔들 내부에는 각각 5개씩의 작은 예배당이 있다.

이 예배당의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 그라스는 세례당 '천국의 문'을 제작한 기베르티의 작품이다.

 

 

 

다양한 색갈의 대리석을 사용해 화려하고 정교하게 제작된 건물 안 바닥은 바치오다뇰로와 프란체스코 다산갈로가 설계 했다.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팔각형으로 마무리된 돔 주변 둥근 원형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파울로 우첼로에 의해 제작 되었다.

 

대 성당 천장 돔 내부의 천정화.

피렌체의 상징이자 두오모의 상징인 적갈색 돔의 내부는 '최후의 심판' 이라는 거대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조르조 바사리와 페데리코 주카리에 의해 제작, 최근에 다시 복구된 것이다.

돔 내부의 "최후의 심판"은 바사리의 작품이지만 추카피에 의해 완성되었다.

 

조르조 바사리(1511년 7월 30일 알레초 출생)

 피렌체에서 안드레아 델 사르토 밑에서 회화를 공부하였고,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피렌체와 로마에서 열심히 제작활동을 하였으나 그림보다 건축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피렌체의 팔라초 베키오가 대표작이다.

많은 벽화 외에 ‘메디치가()의 사람들’을 그린 초상화가 있다.

그러나 그의 불후의 작품은 《미술가 열전()》(1550)으로서, 후세의 미술사가들에게 귀중한 규칙이나 법칙이 되었다.

 

 내부의 "최후의 심판"은 바사리의 작품이지만 추카피에 의해 완성되었다.

 

 

 

 

 

1465넌 단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도메오니케오 디미첼리노가 그린 '신곡을 설명하고 있는 단테'

한때 교황에 의해 추방되었던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려는 차원에서 제작 되었다.

 

팔각형으로 된,  단테가 세례를 받았다는산죠바니 세례당. '천국의 문' 앞에는 여전히 인파로 가득하다.

대성당과 마주한 곳에 성요한 세례당이 있다. 흰색과 초록색의 대리석이 어우러진 팔각형 건물이다. 

과거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세례의식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세례당을 독립 건물로 짓는 경우가 있었다.

천장은 온통 '최후의 심판을 그린 모자이크로 덮여 있는데 그것은 현존하는 중세 모자이크 중 으뜸이다.

두오모 성당이나 지오토 종탑보다 100여년 앞서 지은 건물이다.

 

 

 

 

다 둘러본 후 산타크로체 성당(Santa Croce, Chiesa di)이 있는 시료리아 광장으로 이동.

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