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지리산 다시 걷기3 (거림-세석대피소~화개재-뱀사골-반선주차장)

opal* 2007. 1. 30. 23:30

 

산이 높아 대간 마루금 능선까지 오르내리는 거리가 길고, 무박산행아라 이번에도 혼자 미리 나섰다. 여유가 있어 

성철스님의 생가 터인 겁외사(劫外寺)를 둘러보고, 쾌청한 날씨에 지리산 봉우리의 흰 눈을 바라보며 거림에 도착한다.

 

내일도 이렇게 하늘이 파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예약한 숙소에 가방을 내려놓고 주변 계곡과 암자를 둘러본 후

이른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한다. 달 밝은 한 밤중, 알람 소리에 일어나 준비를 하니 일행 한테서 거의 다 왔다는 연락이 온다.

 

새벽 세시가 되어 일행을 만나 눈쌓인 돌길을 오른다. 주위는 어둡고, 발 딛을 곳을 랜턴 비춰가며 여유롭게

조심조심 오른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긴 산행이니 더 신경 쓰인다. 거림은 거대한 숲으로 뒤덮인 골이라는 뜻이란다.

 

힘이 들어 잠깐 쉬는 동안 머리 들어 하늘을 보니 별자리를 모두 헤아려 볼 수는 없지만 숫자도 많거니와 모두 크고 밝다.

계곡 따라 완만하게 오르다 눈 덮인 나무 다리 북해교를 지나 급경사로 오른다. 땀이 흘러내리기에 내피 벗어 가방에 넣었건만

발이 시리다. 주머니 속에 미니난로가 있어 손은 녹일 수 있는데 발은 제 스스로 녹기만을 기다리자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남해 삼천포와 삼신봉이 보인다는 경관 해설판 앞에 오르니 05:40. 일출이 늦어 어두운 길을 아무 생각없이 숨만 헐떡이며 오른다.

 

거림 출발하여 세석 대피소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06:20). 앞서 오르던 일행들은 모두 떠나고 조용하다. 아직 어둡고

바람이 차가워 내피를 다시 입고 랜턴 건전지를 새것으로 교환 후 백두대간 마루금을 밟기 시작한다. 

 

동과 서는 대간 길이며 북으로는 한신계곡을 통해 백무동으로 갈 수 있는 사거리, 세석평전을 굽어보는 영신봉(1652m)은

낙동강 하구에서 끝나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작되는 곳이다. 세석평전의 ‘세석 철쭉’은 지리 10경중의 하나이다. 

해마다 행하던 철쭉제를 산이 많이 훼손되어 중지 했단다. 영신봉을 지나니 어슴푸레 날이 밝아 랜턴 벗어 가방에 넣는다. 

돌아서서 바라보니 지나온 봉우리가 실루엣으로 검고 하늘이 푸르게 여명의 시간이 된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이 아름답다.

 

세석 대피소를 떠나 한 시간 만에 칠선봉(1558m)에 도착(07;35). 멀리 천왕봉 주위를 검은 조각구름 하나가 맴돌며 봉우리를 

보여주다 말다 한다. 천왕봉 좌측으로 중봉과 써리봉, 아래로 제석봉과 장터목, 우측으로 연하봉, 그 우측으로 조금 전

지나온 영신봉이 조망된다, 그 뒤 촛대봉 우측으로 붉은 기가 돌기에 잠시 기다리니 햇살이 퍼지며 태양이 솟는다.

시샘이라도 하듯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태양을 잠시 에워 쌓더니 물러선다. 짧은 순간에 일출을 보니 더 장엄하다. 

 앞에 가는 일행들은 봉우리 아래에서 걷고 있어 불과 몇 발자국 차이로 일출을 못 본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고 했는데... 

 

시장기가 돌아 덕평봉 아래 선비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08:15). 1456m의 고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추운 기온에도 쏟아져 내리니 신기하기만 하다. 많은 눈 쌓인 능선에 신발 바닥에 눈이 달라붙어 발 떼어놓기가 힘들다. 

한 번 와 본 고행의 길을 무박 한 번쯤 쉴 만도 한데 왜 또 나서서 힘들어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구벽소령(1375m)을 지나고 벽소령 대피소(1340m, 09:00)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나눈다.

적은 양의 식사지만 포만감을 느끼니 한결 든든하다. 가야할 봉우리들이 멀리 구름 속으로 모습을 희미하게 보여주나

분간을 못하겠다. 눈이 오락가락하며 변덕을 부린다. 검은색으로 나란히 서 있는 형제봉(1452m)에 다다르니(10:10)

아우님 바위에 석부작 같은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많은 눈을 이고 있어 그 모습에 매료되어 셔터를 누른다.

 자연 그대로의 예술이다. 앞으로 갈수록 눈의 양이 많아지니 발자국 떼어놓기가 점점 더 힘들다.

 

산죽나무에 눈이 잔뜩 쌓인 숲 속. 음정으로 하산 할 수 있는 갈림길을 지나 연하천 산장(1440m)에 도착한다.(11:10)

이곳은 이미 내린 눈도 많거니와 내리는 눈도 많다. 커다란 함지박에 쏟아지는 물을 한 바가지 퍼 마시니 속까지 후련하다.

소원을 적어 끼워 놓는 새끼줄을 매어 놓았다. 이렇게 눈이 많은 날 저녁 대피소에서 하루 묵어가며 산행하는 일은

멋지고 즐거울 것 같은데 무거운 배낭 생각을 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당일 산행으로라도 걸을 수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폭우나 폭설 등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미루거나 중지한 일 없이 계획대로 산행하고 있으니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눈이 잔뜩 쌓인 나무계단을 힘들게 한발 한발 명선봉을 향해 오른다. 쌓인 눈과 내리는 눈도 많으려니와

숲 속에 안개까지 끼어 분위기는 좋으나 조망이 없어 답답하니 그저 앞만 바라보며 전진, 또 전진 한다.

 

명선봉은 표시가 없고 능선 길은 하늘을 가린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하다. 그대로 지나 다음 봉우리를 향해 오르내리며

쉬지 않고 걸어 토끼봉(1534m) 도착(12:20).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던 넓은 빈 터엔 눈만 소복히 쌓여있다.

내려딛는 길 옆으론 화아분화된 철쭉이 상고대를 이루며 흰옷을 입어 아름답다. 토끼봉에서 20분 만에 화개재(1315m) 도착. 

 

전망대까지 갖춰진 쉼터지만 눈이 많아 쉴 수 없어 오늘의 백두대간 길은 여기서 작별하고 뱀사골로 내려딛는다.

뱀사골 산장에서 간식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기나긴 계곡의 눈 덮인 바위와 계곡미를 감상하며 뱀사골입구(480m)에 내려서니

언제 눈이 왔더냐 하며 쾌청한 하늘에 흰 구름이 지나간다. 반선 주차장 15:30 도착.

03:20 출발하여 15:30 도착했으니 산행 소요시간은 12시간 10분.

 

 2007년 1월 30일 (火).   지리산 1-3 구간을  다시 걷다.

(거림-세석 대피소~영신봉~칠선봉~선비샘,덕평봉~벽소령 대피소~형제봉~연하천산장~명선봉~토끼봉~화개재-뱀사골-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