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나서는 날은 늘 자는둥 마는둥이다. 덕유산 휴게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07:30)
다시 달려 성삼재(1090m) 오르막, 그늘진 곳은 얼은 눈이 그대로 있어 행여 차가 미끄러질까 마음을 졸이며 올라선다.(09:15)
성삼재에서 토끼봉 방향으로 산행 시작, '자연 속에서 시 한편을 만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매표소가 시인마을로 바뀐
타이틀 아래 한 구절이다. 시 한 줄 읊으며 여유로운 산행을 하고 싶지만, 그러나 몸은 오늘도 바쁘기만 하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걷는 넓은 도로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니다. 대간 능선은 도로 옆으로 이어져 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꼬드득 꼬드득 얼은 눈을 밟으며 전망 좋은 곳에 올라 화엄사, 구례, 섬진강, 멀리 무등산까지
안내판에 적힌대로 바라본다. 안개 속에 뿌옇게 보이는 멀리 있는 봉우리는 모두 비슷해 보인다.
밋밋하게 오르는 넓은 길에 화엄사로 하산 할 수 있는 무넹기 지점 이정표를 지나니 돌계단 옆으로 뾰족한 건물이 보인다.
1920년대에 변 요한(J.F.Preston)목사에 의해 지어진 기독교 수양관으로 1968년 무장공비 토벌작전 때 철거되고 잔해만 남았다.
노고단 대피소(10:00). 1988년 완공된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진 현대식 3층 붉은 벽돌 건물로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통나무를 깎아 만든 지리산을 지켜온 전설 속 인물의 노고할매 조각품과 기념사진 찍느라 뒤에 처져 부지런히 오르니
이게 웬일? 노고단(1507m)을 오를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다. 시간을 잘 맞춰 왔음인지는 몰라도 생각지 못했던 수확이다.
아래에 있는 돌탑 앞에 아이젠을 벗어 가방과 내려놓고 나무계단을 부지런히 올라 청학동 도인들이 3일간 쌓았다는
돌탑(케룬)을 돌며 사방을 둘러본다(10:25). 천왕봉까지는 안 보이지만 만복대와 반야봉이 바로 옆에 서 있는 듯하다.
신라시대 때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이란다.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이 있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이라 불린다.
일제시대엔 외국인 선교사들의 피서용 별장 52동이 있었다 한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 발발한 이후 한 달 이상 김지회의
반란군들이 별장촌을 근거지로 삼아, 국군 토벌대가 들어와 점령하면서 빨치산이 거점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불태웠다.
수목들이 피해를 입어 지금도 큰 나무 없이 관목류가 많아 바람도 세차지만 사방으로의 조망이 시원스럽다.
노고단에서 연결된 원래의 백두대간 마루금 종석대가 KBS 송신탑 뒤로 나즈막하게 바로 보인다. 다음에 가야할 서북쪽
만복대와 능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동쪽의 반야봉도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내려다보며 반갑다고 웃는다.
구례를 향해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정상부가 펑퍼짐하고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는 왕시루봉(1243m)은
막힘없이 잘 보이는데 지리산 十景 중의 하나인 총길이 212km의 섬진강은 운무로 구별이 잘 안 된다.
다시 고개로 내려와 가방을 챙겨메고 앞 사람들 쫓으려니 봄을 부르는 버들강아지가 어느새 기다렸다는 듯이 반긴다.
눈 덮인 이 높은 산 바람모지에서 어느새 보이는가 했더니 그제가 입춘이다. 반가운 마음에 보드라운 솜털을 쓰다듬어 주고
숲속 눈길로 들어선다. 앞사람들은 어디까지 갔는지 나무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소리조차 안 들린다.
지금 걷는 이 8부 능선도 대간 마루금이 아니다. 마루금은 노고단 정상에서 돼지령으로 이어진다.
수형이 뒤틀어진 고목 사이의 눈길을 딛고 돼지령에 올라서니 노고단에서 바라보던 남쪽으로 힘차게 뻗은 능선 줄기가
계속 시선을 빼앗는다. 백두대간 종주가 끝나면 저 왕시루봉에도 올라 섬진강을 바라보리라. 막연하지만 기대해보고 싶다.
다시 잡목과 송림사이의 눈길을 헤집고 가다보니 피아골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피아골도 밟아보고 싶다.
계곡아래 연곡사엔 아름다운 부도를 보기 위해 들려봤지만 계곡은 아직 미답지이다.
좌우 이념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비극의 현장이라 더 욕심이 생기나 보다. 내 나이 듦은 생각 못하고.
임걸령 도착하니(11:20) 후미 팀 일행 간식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후미대장이 묻는다. “반야봉 가실 꺼죠? 모두 올라 가신다는데.”
“지난번에 빨리 다니느라 혼나서 오늘은 안 갈 생각 했는데 어쩌나?” 후미 팀 모두 간다하니 갈등이 온다.
샘터에서 흐르는 차가운 물 한 컵을 마셔도 결정이 안 날 만큼 유혹이 크다. 반야봉에 오르고야 싶지만 지난번에 반야봉
오르느라 못 걸은 대간 길 1km가 마음에 걸린다. 반야봉은 종주 후에 와도 되지만 대간 길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헐떡이며 오른다. ‘반야봉까지 가려면 이보다 더 힘들 텐데.’ 마음 돌리느라 유혹을 물리치려 애쓰며 오른다.
임걸령에서 30분을 올라 노루목 도착하니 전에 있던 까만 이정표는 없어지고 갈색의 새 이정표가 서 있는데 노루목이란
글자는 안 보인다. 후미 팀 일행에게 반야봉에 잘 다녀오라 했더니 함께 가자며 조른다.
대간 종주 두 구간을 남겨놓은 이 시점에 한 곳도 빠진곳 없이 이어 걷는데, 반야봉을 못 가는 심정을 저들은 알 리 없다.
비탈면 잡목사이로 오르내리는 오솔길인 종주 길은 산죽사이로 눈이 쌓여 있기도 하고 반야봉 오르는 길보다 좁다.
10분 정도 걸으니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금방 만나진다. 이 10분 거리의 대간 길과 반야봉과 바꾼 것이 되었지만
체력 소모면에선 많은 보탬이 되었다.
다시 10분쯤 걸어 삼도봉 도착(12:15). 예전엔 정상 바위가 낫의 날처럼 생겨 ‘낫날봉’ 또는 ‘날라리봉’이라 불렸단다.
화살촉처럼 생긴 키 작은 삼각뿔 세 면에 세 道의 명칭을 음각해 놓았다. 반야봉에 오른 사람들 기다릴 겸 가방 벗어놓고
사방으로 보이는 산줄기 봉우리마다 느긋하게 감상하고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처음 왔을 때 반야봉에 오르느라
달리다 시피 다녀 이번에는 여유롭게 즐긴다. 춥지 않은 날씨가 크게 도와주니 참으로 감사하다. 백두대간 길 다니며
이렇게 여유롭기는 처음이 아닐까? 삼도봉에서 남으로 길게 뻗은 불무장등 능선 초입엔 ‘등산로 아님’ 표지가 지키고 서 있다.
경남의 함양, 하동,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3개도 5개 군에 걸쳐있는 이 산은 동서간의 다양한 문화권을 만들기도 했다.
지리산이라 부르면서 한자로 지이산(智異山)이라 쓰는 것은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47호)에 신라 때 최치원이 쓴
비문에 나오는 智異山에서 굳어졌단다. 백두산의 맥이 흘러 왔다 해서 ‘두류산’(頭流山),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
이성계가 기도드릴 때 지리산에서만 소지가 타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불복산(不服山)’, 이름도 참 다양하다.
세 道가 만난 꼭짓점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봐도 다 지리산 봉우리들이요, 줄기들이다.
얼마나 더 다녀야 이 넓은 산의 참 맛을 알 수 있을까?
일행들이 오도록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긴 나무계단을 이어가며 내려딛는다. 하얀 눈 벌판으로 변한 화개재
전망대 의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일주일 전 뱀사골로 내려딛으며 대간 길과 인사하며 헤어진 곳이다.
화개재에서 토끼봉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해 힘들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철쭉이 단체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철쭉보호용 목책사이 나무계단으로 토끼봉(1533m)에 오른다(13:55). 철쭉이 만발할 땐 무척 아름답겠다.
반야봉 오른 일행들 기다리느라 작은 바위에 오르니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과 봉우리들, 가지 친 능선들이
뿌연 안개 속으로 다 보인다. 북쪽을 제외한 세 면만 바라봐도 끝이 없으니 지리산의 위용이 새삼스럽다.
일행들을 만나 만복대 전후인 서북능선 한 구간을 남겨놓고 오늘은 이곳에서 대간 길과 헤어져 남쪽으로 내려딛는다.
자연 휴식년제 구간 이지만, 당일 산행이라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능선 내려서니 좌측의 낙남정맥의 줄기와 우측의 경남, 전남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이 나란히 따라온다. 삼신봉이 어딜까, 불무장등은 어딜까 혼자 상상하며 산죽 우거진 가파른 길을 내려딛는다.
참샘이라 불리는 샘물을 한 컵 마시고(14:50), 칠불사를 둘러보기 위해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막아놓은 능선을 통과 한다.
울타리 왼쪽으로 내려가면 계곡을 만나고 시간도 1시간 이상 더 걸린다. 칠불사는 경남 하동군 범왕리, 토끼봉 아래
쌍계사 북쪽 20리 되는 800m고지에 있는 절이다. 연담유일(1720-1799)이 쓴 칠불암 상량문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때
지리산 옥부선인이 부는 옥피리 소리를 들은 일곱 왕자가 입산하여 6년 만에 도를 깨닫고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설에 따르면 그들의 외삼촌인 범승(梵僧) 장유보옥(長有寶玉) 선사(禪師)를 따라 출가한 가락국 수로왕의
7 왕자가 지리산에 운상원을 짓고 수행하여 6년만인 103년 8월 보름에 성불했기 때문에 칠불암으로 고쳐졌다고 한다.
1948년 여순 반란군 토벌 때 불에 타버려 다시 지었다. 신라 때 김해에서 온 담공선사가 지었다는 아자방(亞字房)의
2중 온돌이 복원되어 있으며 경남 유형문화재 144호이다. 주차장으로 되어있는 일주문 밖에는
초의선사 다신 탑비(艸衣禪師 茶神塔碑)가 있고 비신에 초의 선사와 차에 대한 내용을 적어 놓았다.
쌍계사에서 화개로 이어지는 십 리길 벚나무는 아직 나목(裸木)으로 침묵하고 있다.
산행소요시간 7시간.
2007년 2월 6일 (火), 지라산 2구간을 다시 걷다.
(성삼재~노고단~돼지령~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칠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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