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55회(6구간, 무령고개-선바위~백운산~중재~월경산~광대치~봉화산)

opal* 2007. 3. 6. 23:31

 

국립공원의 산불조심기간이 되었다. 올해는 3월1일부터 4월 30일까지, 설악산만 5월 15일까지 입산금지란다.

그래서 지리산 산행도 1, 2월에 서둘러 마쳤다. 작년 4, 5월 산불조심 기간 동안 국립공원 구간을 산행 할 수 없어

국립공원이 아닌 고남산, 봉화산의 구간을 걸었고, 오랜만에 이어서 미답지인 백운산 구간을 밟으려니 이번 구간은

어떤 모습으로 맞아줄까 궁금하고 마음도 설렌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驚蟄, 서울 아침기온이 영하 6도,

한낮에도 전국이 영하권이라는 예보에 만물의 영장도 움츠러든다.

 

05:30 출발하여 고속도로의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08:20), 장수 IC를 벗어난다.(09:10).

봉화산 구간 산행시 하산했던 아영면 송리로 가는 줄 알았더니 차로 마루금 가까이 접근 할 수 있는 무령고개를 들머리하여  

역으로 산행 한다. 오동제 저수지를 끼고 도는 도로는 빙판으로 변해있고 멀리 덕유산이 온통 하얗게 보이니 탄성들을 지른다. 


무령고개에 도착(09:55)하여 차에서 내리니 길이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어 포장과 비포장 도로 구별이 안 된다.

이 고개에서 우측 서쪽으로 올라서면 금남 호남정맥인 장안산(1236.9m)이 있고, 대간 길은 좌측, 동쪽 사면으로 오른다.

열흘 전만 해도 낙엽 아래서 파릇파릇 솟는 작은잎 사이로 피어난 꽃사진을 찍으며 봄이 온 줄 알았더니 여긴 아직 한겨울이다.

 봄은 가슴을 헤집는 바람과 함께 초록으로 오는데 여긴 하얀 설국이다. 20분을 오르니 선바위 삼거리. 백두대간 능선 이다.

 

좌측으로 가면 영취산(1075.6m)이 되므로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산죽 잎 위로 눈이 소복하다. 가지 마다 흰 옷 입은

동화 속 나라 얼음 터널을 오른다. 어느 꽃길이 이보다 더 아름답고 멋질 수가 있을까? 仙境에 빠져들며 1066봉까지 계속 오른다.

 

넓은 공터로 되어 있는 1066봉에 오르니(10:25) 가느다란 싸리가지며 뽀얀 버들강아지 조차 눈이 소복하다.

앞쪽 가까이 백운산이 하얗고 우측의 장안산도 덩달아 하얗다. 내려딛으니 키 작은 나뭇가지들이 하얀 녹용이 되어 발목

잡는 모습이 재미있다. 교목은 교목대로 가지 끝까지 하얀 옷을 걸치고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맘껏 기지개를 펴고 있다.

산죽은 산죽대로 푸른 잎에 쌓인 눈이 무거운 듯 침묵한다. 한 발 한 발 오를 때마다 먼 산의 설경이 멋져 한 컷,

가지 끝을 장식한 흰 모습이 귀여워 한 컷, 하늘색이 예뻐 또 한 컷, 암봉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에 숨은 헐떡여도

도시에선 맛볼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을 느끼며, 오르면 오를수록 멋진 설경에 취해 힘든 줄 모른다.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에 걸쳐 있는 백운산 정상(1278.6m) 도착하니(11:45) 빨간 글씨가 새겨진 아담하게 작은

정상석이 반긴다. 키보다 크고 우람한 입석보다 품에 안을 수 있는 크기라서 더 정감이 간다.

흰 구름을 걸친 산이 어디 여기뿐이랴, 우리나라엔 백운산이란 이름을 가진 곳이 참 많다.

 

2005년 8월, 날씨가 쾌청해 가시거리가 끝없던 處暑 날 와서 지리산의 고도표 같은 주능선을 한 눈에 바라보고

홀딱 반했던 적이 있다. 오늘도 지리산 주능선은 섬처럼 구름 위로 솟아 있다. 정상 북쪽을 가리고 있던 잡목들이 모두 제거되어

사방으로의 조망이 시원스럽다. 남으로는 지리산, 북으로는 깃대봉을 지나 남덕유산, 서쪽 가까이에 높이가 비슷한 장안산,

북동쪽으로 기백, 금원산이 설산으로 변하여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압권이다. 오늘은 상고대와 설원으로 멋지게 치장하고

맞아주니 더욱 더 고맙다. 이런 맛에 겨울 산행이 춥지만은 않은가 보다.

 

사진 찍느라 늘 꼴지를 면하지 못하면서도 서둘러 내려가려니 아쉽다. 몇 발작 내려딛어 이정표 앞에서 중봉, 하봉과 하직하고

90도 각도 우측으로 방향을 돌린다. 경사가 급한 눈길을 스키 타듯 미끄러지며 내려가는 것도 올라설 때만큼 힘들다.

반대로 오르려면 무척 힘들겠다. 좌측으로 난 우회로를 지나 장안산 아래의 마을까지 보이는 전망 좋은 바위도 만난다.

능선에 부는 바람소리가 무섭다. 장안산이 우측에서 함께 가자며 계속 따라온다. 지도에 표시된 중고개재는 이름 없는

이정표만 서있어 구별을 못하고, 이정표 팻말에 표시된 중재에 도착(12:35)한다.

 

시장기가 느껴져 낙엽쌓인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떡 한 조각으로 초벌 요기 후 낙엽쌓인 능선을 지나 내려딛다 진흙에

미끄러지며 휘청한다. 노송이 간간이 섞여 우거진 솔밭 길, 간이 의자가 있는 쉼터를 지나 중치(650m) 도착(13:30).

좌측으로 함양의 중기 마을로 갈 수 있는 임도가 있다.

쭉쭉 뻗은 침엽수가 밀식된 오르막엔 서릿발이 밟히니 흙이 내려앉는다. 잡목 우거진 길을 지나 한적한 능선에 바람이 세다.

돌아보니 백운산과 장안산이 흰 모자를 쓴 형제처럼 다정하게 보인다. 사이좋은 형제 모델을 한 컷 담고 속도를 낸다.

등산로가 훼손되어 복원 중이란 팻말을 보고 우회하며 혼줄나게 올라서서 묘지를 지나 눈과 낙엽 길을 다시 올라선다.

힘들게 올라서며 다 올라 왔나 했더니 다시 또 봉우리가 보인다. 급경사라 모두 한 번에 보여주질 않아 자꾸 속는다.


중치 1.9km, 광대치 1.3km가 표시된 이정표 날개는 오래되어 떨어져 뒹굴고, 백두대간이란 글만 써있는 기둥 앞에 섰다.(14:30)

‘힘내세요, 월경산(981.9m)’ 이라고 써서 걸어 놓은 흰 코팅지를 보고 월경산 옆을 지나감을 알게 되니 '둘 산악회'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십 여분을 걸으니 울타리가 나타난다. 울타리 안은 함양군 백전면 약초 시험 재배지 이다.

견고하고 튼튼한 울타리 위로 철조망까지 얹혀져 있다. 울타리 옆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내려딛는 비탈길은 경사가 급하고

곤죽처럼 길이 질고 흙이 달라붙어 미끄러지며 내려서서 광대치에 도착(14:55)한다.  

 

광대치를 지나 바위에 묶인 밧줄을 잡고 올라서니 가로질러 지나온 능선 뒤로 백운산 하얀 머리가 살짝 보인다.

오후가 되어 그런지 기운이 점점 소진된다. 복원 중인 가파른 오르막을 우회 않고 곧장 올라서니 높은 봉우리가

앞에 또 버티고 있다. 광대치 0.9km, 봉화산 3.8km. 우회로를 지그재그로 올라서서 돌아보니 흰 모자를 쓴 백운산이

못내 아쉬워하며 잘 가라 한다. 옆에서 덩달아 쳐다보는 장안산을 바라보며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낙엽, 돌, 눈길을 번갈아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린다. 내리막 길은 무척 질어 자꾸 미끄러진다.

 

몇 개의 봉우리 맨 뒤로 보이던 봉우리가 봉화산 일까하고 앞 봉우리를 올라 보니 웬걸? 험상궂은 봉우리 세 개가

또 버티고 있다(15:50). 오르막 우회로 따라 안간힘을 쓰며 오르고 올라 암릉 따라 봉우리 몇 개를 더 오르내린다.

암릉을 올라서서 장안산 백운산을 돌아보니 걸어온 길이 인생길 만큼이나 멀고도 아득해 뵌다.

 

암릉 능선을 오르내리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지친다(16:05). 길고 넓은 암반 능선을 밟으니 이제야 멀리 봉화산이 보인다.

이제야 보이는걸 저 봉우리일까, 아님 다른 봉우리일까 하며 걸어왔다. 지도를 자주 보고 자신이 있는 위치를 알아야 하는데

남들 뒤만 쫓으며 맑은 날씨에도 오리무중을 느끼고 있으니, 어림짐작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무명봉은 모르더라도 양쪽 산 아래 마을 이름 정도는 알아야 더 즐겁고 재미있을 텐데 예습을 안하니 재미가 반감된다.   

 

바람이 날아갈 정도로 무섭게 불어오는 능선, 몇 개 더 이어지며 행렬을 이룬 고만 고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이곳에도 산불이 지나간 걸까? 억새와 싸리나무 식생지인 봉에 오르니(16:20) 봉화산부터 이어진 억새가 많이 보인다. 

앞으로 멀리 봉화산이, 돌아보면 무령고개가 있는 오목하게 들어간 곳부터 백운산을 지나 지나온 능선이 한 눈에 조망된다.

 

억새 사이로 드물게 한 그루 씩 있는 높은 나목 가지에 매달린 빙화가 기우는 햇살에 반짝인다. 대간 길에 널찍하게

자리 잡아 모신 묘지 두기를 지나니 좌측으로 우리가 내려서야 할 송리 마을과 그 뒤로 능선에 눈을 덮고 있는

지리산 자락 낮은 봉들의 전망이 시원스럽다. 봉화산 뒤로 고남산이 아스라이 손짓하니 언제 적에 저길 걸었나 싶다.

작년 5월 초에 봉화산을 올랐다 마을로 내려가기위해 대간 길과 하직했던 임도에 도착하니 16:50.

선바위에서 대간 길만 6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마을로 가는 길은 봉화산 구간 때 걸었던 곳이라 빤히 내려다 보여

 쉽게 내려 갈 수 있지만 시간은 만만치 않다. 송리 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17:50. 산행 소요시간 8시간이 걸렸다.

 

2007년 3월 6일(火) 백두대간 종주 6구간을 종주 하다.

(무령고개-선바위~ 백운산~ 중재~ 중치~ 월경산~ 광대치~ 봉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