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 거망산은 2년 전(2008.03.13) 첫 산행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산행이 된다.
첫산행 때의 사진은 더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고, 쓰다만 미완의 산행기가 있다.
오늘 산행 날머리에서 신행이 시작되는 기백, 금원산 산행(2005.05.31)도 있었다.
문화재로는 임진왜란 때인 1597년 왜군에게 항거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인 황석산성이 있고,
인근 안의면 화림동에는 뛰어난 절경의 8개 못과 8개 정자, 즉 팔담팔정(八潭八亭)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만 있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이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천길절벽에서 몸을 날려
지금껏 황석산 북쪽바위 벼랑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임진왜란 때인 1597년 왜군에게 항거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인 황석산성,
정상석은 어디론가 없어지고, 받침대만 남아 있다.
황석산(黃石山,1,190m)
경남 함양군의 서하면 안의면과 경계에 있는 산이다. 황석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남강의 상류부를 이룬다.
소백산맥에 속하며 덕유산(德裕山, 1,614m)의 남쪽 산각(山脚)에 솟은 산으로, 월봉산(月峰山, 1,288m)· 기백산(箕白山, 1,331m)과 비슷하다.
동쪽사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게 지우천(智雨川) 하곡으로 기울어지며, 산록의 넓은 완사면은 논으로 이용된다.
남쪽사면은 남계천(灆溪川) 하곡에 임하고 있다.
북서쪽에는 월봉산· 거망산(擧網山, 1,184m) 등이 있으며 남계천의 상류 분지와 접한다.
바위산으로서, 기백산을 북쪽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덕유산에서도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정상 일대는 2개의 커다란 암봉(巖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봉(南峰)은 북봉(北峰)보다 더 뾰족하여 피라미드 형태를 이룬다.
금원산과 기백산 사이의 심진동에는 유명한 용추계곡이 있는데, 안의면에 있는 화림동계곡(남계천 일부),
거창군 위천면 원학동계곡을 합쳐 화림 삼동(三洞)이라고 부른다.
인근 안의면 화림동에는 뛰어난 절경의 8개 못과 8개 정자, 즉 팔담팔정(八潭八亭)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만 있다
거망산 (擧網山)
남쪽 기슭에 용추사(龍湫寺)가 있는 기백산(箕白山:1,331m)을 북으로 마주하고 있다.
지우천(智雨川)은 기백산에서 발원하여 거망산 사이를 관류하여 남강으로 흘러간다.
덕유산과 지리산의 연봉들이 거대한 연꽃잎처럼 뚜렷이 보이는 주봉우리에 서면 황석산(黃石山:1,235m) 정상 밑까지 이어진 능선은
온통 참억새로 뒤덮인 억새 대평원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산줄기 소백산맥이 덕유산과 남덕유산을 치솟게 하고 다시 남덕유산에서 뻗어내린 산세가
월봉산(月峰山)을 거쳐 기백산·금원산(金猿山:1,353m)·거망산·황석산을 옹골차게 빚어놓았다.
이들 네 산에서 흘러내린 골짜기 물이 용추계곡을 지나 지우천을 이룬다.
깊은 계곡은 수량도 풍부하며 심원정에서 용추폭포까지 주변에 기암괴석이 널려 있고,
용소와 크고 작은 폭포들이 시원스레 물줄기를 쏟아낸다.
6·25 때 빨치산 여장군 정순덕의 활동무대가 바로 거망산이다.
정순덕에게 잡힌 국군 1개 소대가 무기를 빼앗기고 목숨만 건져 하산한 사건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용추사는 484년(신라 소지왕 6년)에 창건한 장수사(長水寺)의 암자로 일주문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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