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금요일)
우리네 학생 시절(1950~60년대)엔 '체코슬로바키아'로 배워 아직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한 나라인 줄 아는 친구가 있어 알려 주었다.
한 나라가 두나라로 분리된지 불과 10년도 안되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슬로바키아는 오랫동안 헝가리의 지배를 받다가, 19세기에 들어서 슬로바키아 민족운동이 일어나
인접국인 체코와 슬로바키아연방 결성을 촉진하였으며, 그 결과 1918년 10월 28일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하였다.
1939년 슬로바키아는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곧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에 슬로바키아 레지스탕스는 1944년 8월 국민봉기를 주도하였고, 1945년 독일의 패망과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가 재건될 수 있었다.
1946년에 실시된 선거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였고, 1948년 무혈쿠데타에 의하여 정권이 장악되었다.
1968년에 슬로바키아인 둡체크(Dubcek, A.)에 의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으나 바르샤바조약군의 개입으로 실패하였다.
1989년에 슬로바키아 민주세력의 주도하에 공산당 통치를 종식시켰으며, 슬로바키아는 그 뒤 좀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1992년 6월 실시된 선거에서 체코계 당과 슬로바키아계 당이 자기민족 지역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에 따라,
그해 9월 헌법을 제정하고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연방이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면서 독립하였다.
2004년 6월 15일 임기 5년의 대통령에 가슈파로비츠(Ivan Gasparovic)가 취임하였으며,
그 아래 실권자 피쵸(Robert Fico) 총리가 2006년 7월 4일 취임하여 내각을 이끌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좌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93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슬로바키아 지도 - 우리가 가는 반스카 비스트리차(Banská Bystrica)는 중앙에 보인다.
반스카 비스트리차는 슬로바키아 중부 스트레도슬로벤스키 주의 주도 이다.
슬로바키아에서 6번째로 큰 도시이며 도시 이름은 슬로바키아어로 "광산의 줄기"를 뜻한다.
9세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255년 시로 승격되었다.
흐론 강 유역에 있으며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13세기 이후부터 주요한 광업 중심지가 되었다.
15, 16세기에는 이 지역에 있는 은·구리 광산에서 유럽에서 거래되는 양의 대부분을 공급했으며
이때 지은 집과 중앙에 있는 성들은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을 띠고 있다.
1944년 8월 29일 반스카비스트리차에서 독일에 저항하는 슬로바키아 민족봉기가 일어났으며,
1479년에 지어진 '구(舊)시청사'에는 그 사건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직물·제지·금속제품·시멘트 등의 제조업이 발달한 산업요지가 되었으며, 여름 및 겨울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근대에 들어서는 지하자원의 고갈로 인해 쇠퇴를 맞았으며 1944년 나치 독일에 대항해서 일으킨 봉기인 슬로바키아 민족 봉기가 일어났다.
사적으로는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는 성채, 광부들을 위해 세워진 중세 후기의 독일 성당, 15세기의 슬로바키아 성당 등이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로 이동 할 때도 평원을 달려 갔는데 헝가리에서 슬로바키아로 가는 길도 평원을 지난다.
한적한 시골마을도 지나고.
하루도 안거르고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 길 주변으로는 집들이 보이는데 멀리 바라보면 들판이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이라는데, 영화(The Pianist, 피아니스트) 보는데 몰두하느라 내 눈으로는 확인하지 못했다.
'국경'이라 하면 웬지 거창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국경을 접해보지못해 그런가보다.
우리가 가는 반스카 비스트리차 이정표를 처음 보았다. 58Km 남았으니 거의 다 온 셈이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중에도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길 옆으로 반스카 비스트리차(Banská Bystrica)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우리가 묵을 Lux Hotel(럭스호텔) 도착.
반스카 비스트리차는 헝가리와 폴란드 사이의 작은 도시라고나 할까?
오늘 저녁 이곳에서 자고 내일 아침이면 또 이곳 슬로바키아를 떠나 폴란드로 가게 된다. 고로 저녁 식사 후 둘러보는 정도의 관광이다.
숙소 내부. 날자가 지날 수록 호텔도 좋아지는 것 같다.
전망 좋은 방과 방사이 베란다에서.
호텔방에서 내다본 아름다운 조망. 성마리아 성당과 성 알주베티 교회가 예쁜 지붕들 위로 보인다.
저녁식사. 식탁에서 과일을 처음 접한다. 모짜르트 생가 둘러 보던날 개인적으로 한 번 사먹은 일 밖에 없다.
저녁식사 후 도시를 둘러보러 나선다. 해넘이 무렵 시간이라 좀 아쉽다.
공원 거목을 배경으로. 저녁이되니 바람이 서늘하다.
민족봉기 박물관을 배경으로.
가던길 뒤로 돌아 우리가 묵을 호텔을 배경으로.
독특한 모양의 민족봉기 기념 박물관.
박물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세워진 조형물.
SNP 박룰관.
슬로바키아 민족 봉기 박물관.
슬로바키아 민족 봉기 운동은 제 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나치 독일의 지배에 대항하여
슬로바키아를 해방시키고자 일어난 조국 해방의 투쟁이었다.
이 박물관은 15세기의 성벽과 요새가 남아 있는 공원에 세워져 있는데 하얀 독특한 모습의 구조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민족 봉기 운동 당시 실제로 사용되었던 무기와 통신기, 의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요한바오로 2세 기념관.
눈에 익은 자동차 emblem을 이 낯선 작은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니...
SNP(민중 봉기를 뜻하는 슬로바키아 약자) 광장의 성모마리아상.
날이 금방 어두워져 건물의 파스텔톤 예쁜 색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 많이 아쉽다.
16세기 이후 르네상스식 궁전과 교회, 우아한 광장 및 성들이 많이 건립되어 매력적인 도시로 변모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체코슬로바키아가 성립되자 다시 중부 슬로바키아의 산업과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말에는 나치 독일의 지배에 대항해 슬로바키아인들이 일으킨 슬로바키아 민족 봉기의 거점이었다고 한다.
도시 중심부에는 과거 번창했던 야금술 산업 및 광산과 관련된 중요한 유물들이 아직 남아있어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의 방문이 많은 지역이다.
반스카비스트리차의 관광 명소는 SNP광장 주변에 몰려 있으며 광장의 북동쪽에는 반스카비스트리차의 상징인 성과 시계탑이 있다.
시내 중심의 SNP광장에서 이어지는 돌나 거리에는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반스카비스트리차의 성 주변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종교와 사회 운동으로 변천된 유서 깊은 곳이다.
반스카비스트리차 북쪽에 있는 성 알주베티 교회, 1303년 처음 만들어졌고, 그 후 개축과정을 거치며 모습이 조금씩 변했다고 한다.
성 알주베티 교회는 2004년까지만해도 이런 모습이었다고 한다.
현재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구시청사는 1500년에 지어지기 시작한 건물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의 각종 건물 양식이
복합되어 지어진 건물이다. 그리고 성내부에는 전망탑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한 때에는 성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뒤에 이 문에 성벽을 쌓아 요새화가 되었다고 한다.
SNP 광장과 돌나 거리는 시내의 북동쪽에 위치한 시계탑에서 완만한 내리막을 이루며
구시가지를 관통하고 있는 반스카비스트리차의 중심지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커다란 분수와 나치 독일의 점령으로부터
슬로바키아를 해방시킨 구소련군을 기념하는 비가 세워져 있으며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투르조의 집, 비니츠키의 집등이 위치해 있다.
SNP 광장을 전망대에서 낮시간에 촬영한 타인作.
돌나 거리는 대체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거리에 늘어선 건물들의 대부분은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인데
완성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 거리에는 상점과 호텔, 여행사, 레스토랑 등이 늘어서 있는 번화가 이다.
해는 이미 넘어가고 가로등 아래로 음력 오월 열 이틀 초저녁 달이 보인다.
성당을 방문하기 위해 계단 위로 오른다.
반스카비스트리차의 성주변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여러 가지의 종교와 사회 운동으로 시가지가 변천되어온 유서 깊은 곳이다.
반스카비스트리차의 성은 성이라고는 하지만 망루라든지 커다란 성채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성은 몇 개의 교회와 성터 그리고 구시청사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성모 마리아 교회로
이 건물은 반스카비스트리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도 한다.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이 교회는 몇 개의 예배당이 부설되어 잇는 건물로 이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광업의 수호 성인인 성 바르보라를 기념하여 지은 바르보라 예배당이다
성마리아 성당 정면에 위치한 기도소,
성당 건물 뒤 언덕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잘 가꾸어진 공동묘지가 무척 넓게 자리잡고 있다.
투르조의 집 (Thurzov Dom)은 SNP 광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하는데
원래 원형은 2개의 고딕식 건축물이었으나 결국은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다시지어 졌다고 한다.
고딕 양식의 문, 목재로 지지된 천장이 있고,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 , '목욕하는 수잔' 등의 그림들도 매우 유명한 작품들로
지금 이 그림들은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성모마리아상과 시계탑.
SNP 광장의 북동쪽에 위치한 시계탑은 40cm가 기울어져 1552년에 재건한 것으로 광장에서는 가장 최근에 보수를 한 것이라고 한다.
18~19세기에는탑 위에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했어다고 한다.
광장에 있는 분수대.
1939년 슬로바키아는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곧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에 슬로바키아 레지스탕스는 1944년 8월 국민봉기를 주도하였고, 1945년 독일의 패망과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가 재건될 수 있었다.
소련군의 지원으로 독일이 패망되어 세운 기념비이다. 별은 소련을 의미한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나치 독일의 지배에 대항하여 슬로바키아를 해방시키고자 일어난 반파시스트 조국 해방의 투쟁이었다.
SNP 광장의 검은색 오벨리스크.
SNP 광장의 중간 쯤에 위치해 있다.
소련의 도움으로 독일군을 몰아내고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자유를 억압 받던 헝가리나 마찬가지였나보다.
2차대전후 독일 패망과 소련의 해방에 따른 공산당 지배하에서 체코와 함께 사회주의공화국이 되었다.
1990년 3월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변경 후 1993년 1월 1일 체코와의 분리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슬로바키아 공화국'이라는 독립국가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른다.
해가 넘어가고 어두운 시각이라 좀 아쉽긴 하지만 그런대로 잘 가꾸어진거리를 활보 할 수 있었다.
길 양 옆으로 늘어선 건물들은 모두 색체와 모양이 아름답고 산뜻하다.
친구들은 걷기 싫다고 성마리아 성당만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가고, 일행 몇 명만 제각각 다니다 만나곤 한다.
거리에서 만난 슬로바키아 여학생들과도 한 컷,
거리가 한적하고 깨끗하며 건물 하나 하나가 모두 특색있고 예쁘다.
여기 저기 둘러보느라 바쁜 일행들.
SNP 광장의 내리막이 끝나는 곳은 길이 좁아진다.
넓은 도로 광장 끝까지 내려갔다가 되돌아 섰다.
광장 윗쪽에 큰 교회가 있건만 거리가 멀지않은 광장 아래쪽에도 작은 교회가 있다.
가로수를 보호하는 지지대도 이렇게 예쁘게, 광고도 멋지게.
건물 치장이 완전 예술이다.
건물 색갈과 모양이 가지각색. 양쪽 둘러보느라 목운동을 열심히...
맥주 한 잔 마실까하여 여기 저기 둘러보다 넓은 포장마차가 있어 들어섰다.
저네들의 눈에는 우리가 색다르게 보이는지 힐끗 힐끗 쳐다보며 웃어준다.
이국적인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 앉아 맥주와 피자를 시켜 분위기를 업시키며 하루의 피로를 풀어본다.
또하나의 추억을 반스카 비스트리차에서 만들어 간다. 이국땅에서의 멋진 밤을...
조명이 밝혀진 후에야 호텔로... 짧은 시간 내에 둘러 볼 수 있는, 작은 도시지만 아름다움은 어느 관광도시 못지않다.
호텔로 먼저 들어간 친구들에게 갖다 주기위해 Pizza 한 판 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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