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 세영
봄은
성숙해 가는 소녀의
눈빛 속으로 온다
흩날리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봄은
피곤에 지친 춘향이
낮잠을 든 사이에 온다
눈 뜬 저 우수의 이마와
그 아래 부서지는 푸른 해안선
봄은
봄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의
가장 낮은 목소리로 온다
그 황홀한 붕괴,
설레는 침몰
황혼의 깊은 뜨락에 지는 낙화
상춘(賞春)
오 새영
현관은 잠겨 있었다.
봄은 소리없이 창문을 넘어 들어와
낡은 코트 한 벌을 훔쳐 입고 달아났다
뒤진 장롱과 문갑에서 털린
옷가지 물품들로
온 방이 울긋불긋 수라장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여 드는 구경꾼들
별 밭
오 세영
소만(小滿)되어
견우(牽牛)의 무논에는 물이 가득
찰랑거린다일순 온 밤하늘을 명멸하는
개굴개굴
어디선가 한 놈이 울자
와글와글 더글저글
일순 온 밤하늘을 명멸하는
맹꽁이 떼
울음소리.
여울목
오 세영
으샤으샤 와와
입에 하얀 거품을 물며
바리케이트를 향해 돌진하는
시위 군중들의 둘부짖음이 격렬하다
언로(言路)를 터라
자유를 달라
봄되어 얼음 녹자 순식간에 불어난
계곡의 그 도도한 격류
물밀듯 밀려드는 저
일사불란한 대오
파도소리
오 세영
수평선 가득
한 행 두 행
겹겹이 이랑을 이룬 파도는
지면(紙面) 빼곡하게 문장들로 넘실대는
한 권의 소설
등댓불 아래서
밤새 응얼응얼
글 읽는 소리 낭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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