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드셨어요? 오늘 얼굴좀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 점심은 아직이고, 그제 오대산 노인봉 가서 6시간 걷고와 종아리가 아파 쉬고 있는 중이라 나가기 싫은데?"
"그렇게라도 재보고 싶으신건가요? 집 밖에 나오면 오히려 풀어질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기는 하지, 그러나 외출 준비가 안되어 오후 세 시 전에는 못 보겠는데?"
"아무 때고 기다리고 있을께요." 늘 그렇듯 예약이란 걸 모르는 사람들 같다.
준비하고 만나러 가는 시간까지 포함해 두 시간 걸려 오후 세 시 반이 지났다.
두 사람 집이 모두 북쪽과 서쪽 서울 끝에서 끝이다. 점심 때가 지났으니 허기진 두 사람.
근사한 것 주문하여 우아하게 먹으면 좋으련만 모양새가 허겁지겁 이다.
여유 갖고 먹으려고 일부러 작은 병에 담긴 연태 고량주로 반주까지 시켰다.
포만감이 느껴지도록 앉아있다 밖으로 나와 걷자니 도심이라 좀 그렇고,
한적한 곳을 찾자니 해거름이라 시간이 너무 늦다.
"우리 오늘 평소에 안하던 짓 한 번 해볼까?." 제안하니 좋단다.
"앞으로 살 날이 적어지니 이젠 만날때 마다 색다른 짓을 골라가며 해보는게 어떨까?"
"그거 좋지요." 죽세가 척척 맞는다. 나이 차는 많아도 오히려 또래 보다 마음이 더 잘 통한다.
같이 걷자던 사람들이 걷기는 커녕 버스에 올라 맨 앞자리에 앉았다. 시내 버스나 시외버스나 똑같은 버스,
2층 버스를 타보고 싶었자만 2층 좌석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이고, 출발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시간이 너무 길다.
할 수 없이 도심을 도는 1층 버스를 택해 광화문을 출발하여 곳곳에 정차하며 돌으니 웃음이 나온다.
도로의 정체 현상이 싫어 지하철 이용하면서도, 시내 버스보다 훨씬 비산가격 인데도 기분은 분명 달랐다.
남대문을 지나 서울역, 용산, 박물관 앞을 지나 이태원에 이르니 뒷자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입을 연다.
예전에 살던 곳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부모 형제가 외국에 오래살다 오랫만에 고국을 들린 모양이다.
승객은 많지 않지만 외국인보다 내국인이 많아 보인다. 차가 동국대 앞을 통과 할 땐 더 많은 얘기를 주고 받는다.
동대앞 언덕배기에 살 때의 겨울은 장충단 공원까지 비탈길에 썰매를 타고 신나게 내달리곤 했단다.
어릴때 친구가 동네 부잣집 아들이라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동시대를 살던 옛날 이야기라 듣는것 만으로도 재미있다.
국립극장을 거쳐 남산에 올랐을땐 이미 캄캄해져 도심의 불빛이 휘황찬란 하다.
차에서 내리지말고 그냥 두 시간 돌자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남산에 도착하니 마음이 달라진다.
다음 뒤에 오는(마지막) 차를 타기로 하고 일단 내렸다.
남산 올라와본지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서울사람들 보다 지방 사람들이 더 찾는 곳,
서울 시티 투어 버스를 탄 일도 오늘이 처음이다.
남산이 도심에 있지만 공기는 확실히 달라 밤공기가 시원하고 상큼하다.
아픈 종아리로 낑낑대며 올라 녹색 불빛 타워 배경 넣고 휴대폰으로 인증 남기고,
팔각정에 자리잡고 쉬기에는 시간이 부족, 아스팔트 비탈길 내려딛는 종아리는 더 아프다.
우리 탄 차가 정체현상으로 시간이 많이 걸려 뒷차는 예상보다 더 빨리 올까 싶어 부지런히 내려 딛었다.
바로 뒤쫓아 온 마지막 버스를 타고 DDP(동대문 Design Plaza), 동대문, 창경궁, 창덕궁, 광화문 앞을 지나 출발지점에 섰다.
차에서 내려 세종로 넓은길을 건너 청계천 입구부터 걸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부르는 버스킹들의 노래 소리가 겹쳐 들린다.
거리로 나온 뮤지션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아주 길지않은 거리인데도 세 명이나 만났다.
장통교를 지나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역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위로 올라 걸으니 도심의 골목은 불야성을 이룬다.
군밤 한 봉지 사서 주거니 받거니 먹고, 귤로 입가심, 지하철 승강장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자투리 시간 이용한 짧은 시간도 길게 느껴진 하루에 오늘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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