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신선봉과 마패봉은 5년전(2012.3.27) 같은 코스로 산행 후 조령관에서 고사리 주차장으로 하산한 적이 있다. 오늘 산행은
1진은 고사리 주차장 출발하여 신선봉과 마패봉 산행 후 세재길로, 2진은 고사리 주차장에서 조령관거쳐 주흘관까지 트레킹하는 코스다.
오늘은 2진으로 새재길 트레킹 코스의 사진만 있으므로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전에 찍은 신선봉, 마패봉 사진을 볼 수 있다.
괴산 신선봉(967m), 마역(마패)봉(927m) ←클릭
충주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 마친 후 다시 고속도로 들어서니 정체 현상, 조금 가다보니 승용차 한 대가 앞 뒤 모두 찌그런진 채
다른 차 위에 실려 가고 있다. 운전자는 어찌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고속도로 달리는 동안은 못보던 눈이 연풍 IC에서 지방도로 진입하니 제법 많이 보이고, 버스가 거북이 운핼을 하고 있다.
고사리 주차장 도착.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엄청 차고 몸을 잔뜩 움츠러들게 해 가방에 넣었던 점퍼를 다시 꺼내 압었다.
전에는 이쪽 고사리 주차장으로 하산한 적이 몇 번 있었으나 오늘은 산행 들머리가 된다.
전에는 고사리 주차장아래 레포츠 공원에서 산행 시작햐여 뽀족봉으로 올랐으나
오늘은 거리를 줄여 1진은 휴양림 입구 반대편에서 신선봉으로 오르고, 2진은 그대로 조령관으로 향한다.
春来不似春
요즘 계절이나 햇살로 봐서는 따뜻할 것 같아 얇은 옷을 입을까 생각도 했지만 얇은 옷 입고 나왔으면 큰일날 뻔 했다.
가방 속엔 아직 아이젠이 있고, 장갑, 모자 등의 여유분도 들어 있다.
어제 저녁 살포시 내린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니 춥긴해도 기분은 상큼하다.
새로 만든 신작로가 아닌 옛부터 있던 길, 게다가
영남지역의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보러 넘나들던 길이라 길 옆에 시를 써놓은 판이 많다.
고사리 주차장에서 조령관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라 금방 힘이 든다.
이화령과 하늘재 사이에 있는 조령은 관문이 있기도 하지만 백두대간 마루금(분수령)이기도 하다.
낙동강 발원지는 태백 황지, 한강 발원지는 태백 검룡소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 초점도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으로 발원지라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시에는 이화령에서 조령산, 신선암봉을 지나 이곳으로 오기도 했고,
이곳에서 마역봉, 부봉, 탄항산을 거쳐 하늘재(마골령)로 가기도 했다.
문경새재길은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중의 한 곳이다.
조령관(제 3관문)
문경관문(聞慶關問) 사적 제 147호(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이 관문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차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여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어려 잇는 곳이다.
이 관문은 영남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새지 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초부터는 이곳 초참(草站)을 혹은 새재라 하므로 조령(鳥嶺)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小西 行長)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햡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 이었다.
이 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申砬)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하였다.
그 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辛忠元)이 오늘날의 제 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 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 1관문을 주흘관(主屹關), 제 2관문을 조동문(鳥東門) 혹은 조곡관(鳥谷關),
제 3관문을 조령관(鳥嶺關)이라 이름한다.
이곳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조령산, 신선암봉, 마패봉, 부봉, 주흘산 등을 보니 추억들이 떠오르며 마음은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조령관에서 마패봉(마역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마패봉에서 좌측으로 가면 조령산, 우측으로 가면 탄항산이 되는 백두대간 이다.
오늘은 2진으로 마패봉까지만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동행인들이 가지않겠다고 하여 새재길만 트레킹하기로.
조령산쪽으로 보이는 깃대봉.
조령관에 조망되는 주흘산.
책바위.
초점은 낙동강 발원지라는...
안내도를 보니 오래전 바위산 부봉에 올라 안개 속에서 혼자 셀카찍던 생각이 난다.
소로에서 대로로 변하긴 했지만 예전 그대로의 길이라 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계절이나 시각적으론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러나 찬바람에 느끼는 체감온도는 완전 겨울이다,
영남 제 2관문 조곡관(嶺南 第 二關門 鳥谷關) 사적 제 147호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이 관문은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 2관문으로
삼국시대에 축성 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조선 선조 25년(1592) 왜란이 일어난 후에 충주사람 신충원이 이곳에 성을 쌓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숙족 34년(1708) 조령산성을 쌓을 때 매바위 북쪽에 있던 신충원이 쌓은 옛성을 고쳐 쌓고,
중성(中城)을 삼아 관문을 조동문(鳥東門)이라 이름 하였다. 현재의 시설은 그 후 폐혀가 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조령산불됴심표석(鳥嶺산불됴심標石)은 산불을 경계하기 위하여 세운 돌비석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의 문경세재 조령(鳥嶺)에 소재한다.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226호로 지정되었다.
순수 한글을 새긴 비석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는 이 표석은 ‘산불됴심’이라고 비석의 서쪽면에 새겼는데,
‘조심’을 ‘됴심 ’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 영·정조 시대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국경수호와 산성 등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나 잘 알 수 있도록 한글로 비문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한말까지 세워진 비석 중 유일하게 한글로만 새겨진 비석이다
교귀정(交龜亭)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문경새재도립공원 안에 있는 조선시대 경상감사의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던 곳에 세워진 정자이다.
조선시대 새로 부임하는 경상감사가 전임 감사로부터 업무와 관인(官印)을 인수인계 받던 교인처(交印處)이다.
조선시대 신임감사의 인수인계는 도 경계 지점에서 실시하였으며 이 지점을 교귀라 한다.
1470년(성종 초) 경에 건립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896년 의병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9년 6월 복원하였다.
건물의 양식은 팔작지붕에 이익공(二翼工),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앞 우측에는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교귀정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매년 가을 문경문화제 때 경상감사 교인식 재현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비록 복원 되었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드라마 촬영장.
제 1관문 주흘관
주흘산 주흘관(主屹山 主屹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에 있는 관문(關門)으로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첫 번째 관문이다
사적 제147호로 지정된 문경 조령 관문(聞慶 鳥嶺 關門) 중 첫 번째 관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관문 설치의 필요성에 따라 많은 논란 끝에 1708년(숙종 34년)에 석성과 함께 세워졌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이며 좌우에 협문이 각각 1개씩 있다.
중앙에 높이 3.6m, 너비 3.4m, 길이 5.4m의 홍예문이 있으며 좌우에 높이 4.5m, 폭 3.4m, 길이 188m의 석성을 축조했다.
개울물을 흘려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뒤편에는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3개의 관문 중 가장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옛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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