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산 (金屛山, 652m)은
춘천시에서 남쪽으로 8km, 신동면, 동내면, 동산면 3개 면 경계상에 위치하는 산으로
북동쪽으로 원창고개를 지나 수리봉(645m)을 거쳐 춘천시의 최고봉인 대룡산(899m)으로 이어진다.
서쪽으로 비슷한 거리에 삼악산이 위치한다. 삼악산 산행은 여러번 있었으나
대룡산은 9년 전(2008.06.12) 한 번 산행하며 길을 몰라 임도에서 헤메다 겨우 정상을 찾았던 산이다.
때이르게 갑자기 찾아온 초겨울 한파, 서울기온 -8℃, 대관령은 -16℃ 라고 한다.
한낮에도 영하권에 머물겠다는 예보로 겨울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나섰다.
금병산은 거리가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오늘이 첫산행이다.
휴게소에 잠시 내리니 일그러진 새벽달이 아직 서쪽하늘에 걸쳐 있다.
춘천을 오가며 한 번쯤 내려보고 싶었던 김유정역,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람 이름을 붙인 역으로 궁서체로 쓰여 있다.
예전에는 간이역으로 조그맣던 건물이 2010. 12.21. 경춘선 복선 전철이 다니게 되며 역사(驛舍)가 커다랗게 바뀌었다.
길이 87Km의 경춘선, 이 역은 1939년 처음 지어질때 이름은 '신남역' 이다. 역 이름이 바뀌게된 것은 2004년,
이 역이 자리한 실레마을(신동면 증리)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김유정의 이름이 그대로 역명이 되었다.
예전의 역사는 철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철거되지않고 무궁화호 열차와 함께 자리를 지키며 남아 있다.
김유정(金裕貞, 1908.1.11 ~ 1937.3.29) 강원 춘천 출생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로, “중외일보”에 ‘노다지’로 등단하였다.
1930년대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해학적이면서도 현실 비판 의식을 드러내는 농촌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동백꽃’, ‘만무방’, ‘소낙비’ 등이 있다.
아버지 김춘식(金春植)과 어머니 청송심씨 사이의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7살에 어머니, 9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우울하게 자랐다
갑부 집안이었으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향을 떠나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9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였다.
1929년 고향 춘성군 신동면 실레 마을로 돌아왔다.
1930년 늑막염을 앓기 시작한 이래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한때 금광에 손대기도 하고 들병이들과 어울려 무질서한 생활을 보내기도 했다.
1932년 마음을 고쳐잡고 실레 마을에 금병의숙을 세워 불우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1935년 '구인회'에 가담해 김문집·이상 등과 사귀었다.
1935~37년까지 2년 동안 단편 30여 편과 장편 1편(미완), 번역소설 1편을 남겼다.
실레마을은 소설가 김유정이 태어난 곳으로 그의 문학비가 있다.
김유정은 1931년 23세에 고향에 내려와 야학을 열었다. <금병의숙>이라는 간이 학교로 농민계몽운동을 펼쳤으며
고향을 무대로 삼은 여러 편의 농민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30세로 요절하였다.
개인이 세운 의로움을 가르치는 글방이 의숙(義熟) 이다.
29세 때 누나 집에서 결핵과 늑막염으로 사망, 1968년 춘천 의암호 옷바위 위에 시비가 세워졌다
하산하여 식사할 음식점에 예약상태 확인하고 산행 시작. 도시락 준비없이 산행하게 되니 배낭이 가볍다.
그래도 가방은 메고 다녀야 미끄러져도 덜 다친다.
금병산 등산로는 '동백꽃', '만무방', '금 따는 콩밭길', '봄봄' 등 그의 작품 제목으로 이름을 붇였다.
늘씬하게 쭉쭉 뻗은 잣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힐링장.
날씨가 가물어 낙엽은 바삭하고, 가파르기가 빨라진다.
작은 봉우리 올라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춘천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며 걷고 또 걷는다.
드디어 정상.
춘천시 신동면, 동내면, 동산면 3개 면 경계상에 있는 금병산은 일명 진병산으로 불리며,
춘천시에서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대룡산(899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에 수리봉이 솟아 있고
이 산줄기는 원창고개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친 산이 금병산이다.
2017년 마지막 산행은 첫산행인 금병산에서.
금병산 정상에서 조망되는 모습.
금병산 정상에서 조망되는 호반(의암호)으로 둘러쌓인 춘천 시가지.
시가지 앞으로 보이는 산은 안마산.
시가지를 확대해본 모습, 시가지 뒤로 보이는 작은 봉우리는 봉의산.
아래 사진은 위 사진 우측으로 이어지는 모습.
산으로 둘러쎃여 함지박 같은 모양.
금병산 정상 전망대에서.
점심식사가 음심점에 예약되어있는 상태라 정상에서 간단한 간식 즐기고 바로 하산.
정상에서 바로 하산하는 코스는 가파르고 응달이라 눈과 얼음이 있어 줄 잡고 조심조심.
잣나무 군락지는 하산길에도 만난다.
등산로 이름을 김유정 작품 이름으로 붙였다.
금병산 정상 서쪽 기슭에는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증리)이 자리 잡고 있으며
김유정 문학촌 안에는 복원된 생가, 전시관, 정자, 연못, 동상, 외양간, 디딜방아간 등의 시설이 있으며
김유정 추모제, 세미나 등 각종 문학행사가 연중 개최되고 있다.
2000년 춘천시 신동면 중리 686-1에 김유정 문학촌 건립.
ㅁ자형의 초가집이 복원되고 연못, 정자, 외양간, 디딜방아, 기념관등 세워졌다.
신동면 증리는 1930년대 우리나라 문학사에 귀중한 작품들을 남긴 소설가 김유정의 출생지.
김유정 소설에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은 흔히 볼 수 있는 붉은색 동백이 아니다.
강원도 사람들은 노란 생강나무 꽃은 동백꽃 아니면 산동백으로 불렀다.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왼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
김유정의 '동백꽃' 중에서
소설 내용에 나오는 닭싸움 재연, 점순이가 주인공집 닭과 닭싸움을 붙이고 있는 장면.
29세의 젋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유정은 살아생전 두 명의 여자를 짝사랑 하였다.
인간문화재 제 5호로 지정된 명창 박녹주(1904~1979)와 시인 박용철의 누이동생이자 시인인 박봉자(1909~1988).
7살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여윈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한 해 어머니를 닮은 박녹주를 만난다.
갓 대학생이된 남학생이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에게 구애를 펼친 것,
2년여에 걸쳐 사랑을 넘어선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했지만 박녹주의 거절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인 실레마을로 돌아와 주옥같은 글을 남기기 시작한다.
또 한 명의 여인 박봉자.
1936년 여성5월호에 '그분들의 결혼플랜 - 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라는 제목으로
김유정과 박봉자가 나란히 글을 올렸다. 일면식도 없던 그녀에세 빠지게 된 것,
30통의 편지를 보냈으나 박봉자는 김유정과 알고 지내던 문화평론가 김환태와 혼인했다.
이후 10개월 후 김유정은 세상을 떠난다.
죽기 전까지 아픈몸을 이끌고 '야행', '옥토끼', '따라지' 등을 발표하며 창작에 열을 올렸다.
김유정 이야기집에 오래된 전화기의 수화기를 귀에 대면 김유정의 구애를 거절하는 한 여성의 단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학계에서는 김유정이 누구와 사랑을 이루었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해가 가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일부러 거리도 가깝고 산행거리도 짧은 산 택해 2017년 마지막 송년 산행 마친 후 춘천명물 닭갈비 식사 나누기.
춘천 명물 닭갈비 점심식사 나누며 1년 동안 힘들게 운영해온 이야기 나누며 임기 마치고, 새로운 운영진 선출.
산악회 운영 10년 되다보니 회원 참석율이 저조,
1년 전(2016.11.15 ) 강화도 마니산 산행 후 식사 나누며 산악회 문을 닫겠다는 걸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 한 달 네 다섯 번 산행에서 한 달 두 번"으로 줄여 산행 하기로 하고
격주로 산행하며 1년을 잘 버텨 왔으나 산행날 마다 이어지는 적자폭은 감당하기 힘들다.
1년이 지난 오늘도 작년과 똑같은 얘기를 나눠보지만 회원이 늘지 않는한 산악회 운영은 어렵다.
더이상 회원이 늘지 않아 접자했더니 아쉬움이 크다며 다시 해보자는데 과연...어쨌거나 감투 내려놓으니 마음은 후련하다.
김유정 단편 몇 작품
소낙비
1935년 1월『조선일보』 신춘문예에 1석으로 당선된 작품으로, 원명은 ‘따라지 목숨’이었는데 조선일보에서 개명 하였다.
삶의 안착을 찾지 못한 식민지시대의 유랑농민의 삶을 해학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흉작과 빚쟁이의 위협 때문에 야간도주를 한 춘호는 아무리 떠돌아다녀도 살길을 찾을 수 없게 되자,
노름판에 뛰어들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밑천 2원이 없어 울화가 치민 춘호는 아내를 때리며 돈을 구해오라고 한다.
매를 맞고 뛰쳐나온 춘호의 처는 돈을 구할 방도를 생각하다가
마침 마을 부자인 이주사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친 쇠돌 어멈네 집으로 향한다.
가다가 소낙비를 만나 밤나무 밑에서 피하던 중 문득 아무도 없는 쇠돌 어멈집에 이주사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가 몸을 맡기고는 다음날 2원을 받기로 한다. 다음날,
춘호는 2원을 얻어서 빚도 갚고 서울로 가서 아내와 함께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아내를 곱게
치장시켜 이주사에게로 보낸다는 이야기이다
의의와 평가
돈에 대한 탐욕과 가난 때문에 아내에게 매춘 행위를 사주하거나 아내를 매매하는 경우는
작자의 작품에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춘호처럼 돈에 대한 허망한 탐욕에 이끌린 남자들은 아내를 가축이나 물건으로 취급하거나
성(性)을 생계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하등의 도덕적인 수치감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만큼 돈은 도덕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돈만 소유하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단순한 인물들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층적인 사실에 잠재된 적빈(赤貧)에 대한 철저한 인식의 투영을 간과해버릴 수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알몸뚱이밖에 없기 때문에 굶주림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그 길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 속에서 윤리나 도덕은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작자의 「만무방」과 더불어
식민지 농촌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한 빈곤을 반어적(反語的)으로 그려낸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봄봄
단편 소설.
우직하고 순진한 ‘나’가 심술 사나운 장인과 혼례를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을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또한 신분적으로 강자인 마름이 약자인 머슴을 착취하고 있는 당대 농촌 상황을 웃음 속에서 비판적으로 보여 준다.
줄거리
‘나’는 점순이와 혼례를 올리기로 하고 3년 7개월이나 변변한 대가 없이 머슴일을 해 주고 있다.
음흉하고 교활한 장인은 점순이가 덜 컸다는 이유로 혼례를 미루고
‘나’는 구장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여 중재를 요청하지만 구장은 결국 장인의 편을 든다.
뭉태가 충동질하고 점순이 성례를 부추겨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나’는 결국 장인과 대판 몸싸움을 벌이고,
‘나’와 장인의 싸움에서 내 편을 들 줄 알았던 점순이는 아버지의 편을 든다.
장인은 가을에 혼례를 올려 주겠다며 ‘나’를 다독이고 신이 난 ‘나’는 다시 일하러 나간다.
만무방
단편 소설.
일제 강점하에서 착취당하고 소외당하는 농민의 삶을
응칠과 응오 형제의 상반된 삶을 통해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소설로, 현실 비판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줄거리
전과자요, 만무방인 응칠은 송이를 캐고 닭을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응칠은 아우인 응오를 찾아오는데 성실한 농군인 응오는 벼를 털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벼를 도둑맞는 일이 생긴다. 응칠은 벼 도둑을 잡은 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응칠은 도적을 몽둥이로 내려치고, 복면을 벗기니 그 도적은 다름 아닌 응오였음을 알고 망연자실한다.
응칠은 황소를 훔치자는 제안을 거절한 동생에게 몽둥이질을 하고, 땅에 쓰러진 아우를 업고 산을 내려온다
동백꽃
단편 소설.
농촌을 배경으로 마름의 딸과 소작인 아들의 풋풋한 애정을 해학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토속어와 향토적인 소재의 사용으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1936년 〈조광〉 5월호에 발표되었고, 1938년 삼문사에서 같은 제목의 단행본을 펴냈다.
향토적인 농촌을 배경으로 순박한 소년·소녀의 애정을 해학적으로 그린 지은이의 대표작이다. 특히
소녀의 역설적 애정표현과, 그에 반해 소년의 전혀 깨닫지 못하는 비성숙성이 작품의 흥미와 긴장을 제공하는 갈등구조이다.
줄거리
점순은 ‘나’의 수탉을 때리고, 자기네 수탉과 ‘나’의 수탉을 싸움 붙여 놓아 ‘나’를 약올린다.
나흘 전 일하고 있는 ‘나’에게 점순이 다가와서 감자를 쥐어 준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한 ‘나’는 이를 거절한다.
‘나’는 매번 싸움에 패하는 ‘나’의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여 보기도 하지만 점순네 수탉을 이기지는 못한다.
어느 날 나무를 하고 오는 길에 점순이 닭싸움을 시켜 놓은 것을 보고 화가 난 ‘나’는 점순네 닭을 죽이고 만다.
그리고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리는데 점순이 ‘나’를 달래 준다. 점순과 ‘나’가 같이 동백꽃 속으로 쓰러지면서 화해한다
떡
단편 소설.
가난한 집의 일곱 살 소녀 옥이가 부잣집 잔치에서 죽기 살기로 음식을 먹다가 탈이 나서 죽을 지경에 처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로, 민중의 비참한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줄거리
옥이의 아버지 덕희는 동네에서 제일 가난하고 게으른 사내로 자신의 어린 딸인 옥이를 미워하고 구박한다.
눈이 쌓인 겨울날 나뭇값이 부쩍 오르자 덕희는 나뭇짐을 지고 읍내에 내다 팔고 양식을 구한다.
옥이는 아버지가 죽을 먹고 나뭇짐을 지고 읍내에 들어간 다음에야 어머니에게서 죽 한 그릇을 얻어 먹지만
그것만으로는 배가 고프다. 어느 날 옥이는 개똥 어멈을 뒤따라가 마을의 부잣집 잔치에 가서
그 집 작은아씨에게 밥, 시루떡, 팥떡, 백설기, 꿀떡 등 많은 음식을 얻어먹는다.
하지만 많은 음식을 무리하게 먹어 탈이 난다.
집으로 돌아와 데굴데굴 구르지만 부모는 점쟁이를 데려다 경을 읽게 한다.
옥이는 얼굴이 노랗게 질리고 핏기가 멎었다가 침을 맞고 나서야 포대기 속으로 똥을 갈기고 생기를 되찾는다
땡볕
단편 소설.
가난한 농부인 덕순은 특이한 병을 가진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준다는 말을 듣고
병에 걸린 아내와 땡볕 속을 걸어 병원에 가지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돌아온다는 비극적 내용을 해학적으로 담은 소설이다.
줄거리:
덕순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가난한 농부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내의 배에 이상이 생겼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다.
그러다가 서울의 대학 병원에서 특이한 병을 가진 사람들을 연구 목적으로 무료로 치료해 준다는 말을 듣고,
아내를 지게에 지고 땡볕이 내리쬐는 길을 걸어 병원에 찾아간다.
그러나 아내의 병은 특이한 병이 아니라 태아가 자라다가 죽은 것으로 밝혀져 무료 치료를 받지 못한다.
당장 수술하여 죽은 태아를 제거하지 않으면 아내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병원의 이야기를 듣고도
그는 돈이 없어 아내를 지게에 지고 돌아온다
금 따는 콩밭
단편 소설.
1930년대 황금광 시대를 배경으로 수확된 곡식을 모두 수탈당하는 극도로 빈곤한 농촌 현실 속에서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어리석고 허황된 욕망에 기대어 사는 인물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줄거리
어느 날, 콩밭에서 영식이 홀로 김을 매고 있는데 수재가 콩밭에 금이 묻혔으니 파 보자고 제안한다.
영식은 몇 차례 거절을 했으나 아내의 부추김도 있고 하여, 결국 콩밭 하나를 갈아엎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구덩이를 파도 금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불안한 영식은 쌀을 꾸어다가 산제까지 지내 보지만 금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결국 분통이 터진 영식은 수재와 싸우게 되고, 아내와도 다툰다.
이를 본 수재는 조급한 마음에 금이 나왔다고 속이고 도망갈 결심을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영식 내외는 금이 나왔다는 말에 기뻐한다
(주인공 영식은 가난한 소작농이다. 금을 찾아다니는 수재의 감언이설을 믿고 콩이 한창 자라는 콩밭에서 금을 캐기 시작한다.
일확천금의 꿈에 눈이 멀어 애써 가꾼 콩밭을 거덜 내면서 땅을 파는 그들을 동네 노인들은 비난한다.
그러나 영식의 부부는 이웃에서 양식을 꾸고 떡을 해서 제사를 드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금맥은 커녕 빌린 양식마저 갚을 수 없게 되자 영식을 부추긴 아내는 불안해하고 초조해 한다.
거짓말이 탈로 날까 불안해진 수재는 파낸 흙 속에서 황토 한 줌을 집어 영식 부부에게 금이라고 속인다.
주인공의 어리석은 탐욕과 망상이 드러나는 이 작품은 1930년대 궁핍한 농촌의 현실과 가난을 벗어나고자
일확천금을 노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연민을 동반한 해학으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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