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구미 트레킹은 4년 전(2014.8.19) 양평 용문산 신선봉 산행날, 태풍 여파인 많은 양의 비소식으로
바위산 산행을 취소하고, 비가 덜 내리는 강원 지역으로 변경하여 한 번 걸은 적이 있어 오늘이 두 번재 트레킹이 된다.
해산(일산) 산행이나 비수구미 트레킹은 해산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만나는 해산령에서 시작된다.
해산령도착하여 차에서 내려 단체 인증 남긴 후 1진 산행팀은 구멍난 대문 울타리 우측으로 오르고.
2진 비수구미 트레킹 팀은 열려있는 작은 문 안으로 들어서서 내리막 길을 계속 걷게 된다.
4년만에 다시 찾아온 해산령.
일산은 산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하산길은 급경사 내리막에 길 찾기 힘들어 1진 몇 명만 가고, 본인은 2진.
올 봄엔 비가 제법 많이 내려 그런지 비포장도로는 빗물에 흙이 씻겨 내려 돌들이 많이 솟아 있다.
길 옆으로 흐르는 계류는 수량이 풍부하여 시원함을 더해 준다.
앞서가는 일행 카메라에 찰칵.
해산터널에서 비수구미 마을 까지는 6Km 임을 알 수 있다.
비수구미 마을은 산나물 반찬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는 곳이다.
해마다 유월이면 코끝을 스치는 짙은 향의 찔레가 시선을 끌며 친구 하잖다.
맑은 물의 계류따라 고도를 낮추며 걷고 또 걷고.
더운 날씨에 퐁당 들어앉고 싶은...
전에 왔을 땐 식당이 한 곳 이었는데 산채 비빔밥 집이 또 한 채 보인다.
일부 몇 사람은 비빔밥 집으로 가고 나머지 몇 사람은 다리 아래 시원한 물가에 자리잡고 점심식사 나눈다.
여유있게 식사 나누고 비수구미 다리 건너기.
이곳에서 다리 건너지 않고 직진하면 나중에 배를 타고 파로호를 건너야 한다.
다리 건너 숲길로. 우측으로 파로호가 시작 된다.
다리 건너지않고 직진하면 이곳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강태고용인지 배 타고 건넌 자리쪽엔 차들이 많이 보인다.
작은다리 건너 산길로 .
시원하고 호젓한 산길.
시원하게 물살 가르는 쾌속 유람 보트.
호수 표면에 무늬를 만드는 보트들.
호수 전망대에서.
개다래가 곤충 부르는 계절.
나무 그늘 벗어나 호숫가 비포장 황톳길 걸으니 머리 위에선 뙤약볕 내려쬐고,
차 한 대 지나가면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난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
. >
갑자기 한하운 시인의 시(전라도 길-소록도 가는 길에)가 떠오른다.
호수 건너 저 멀리 노란 색 보이는 곳이 우리가 가야할 곳 일지도...
파로호는 1944년 화천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 이다.
1951년 5월 26일∼28일까지 진행된 전투에서 중공군(중국군)은 최소한 2만 5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한국전쟁 당시 화천댐 사수를 위해 중공군 3개 사단을 수장시킨 처절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전기가 부족한 북한에선 화천댐이 필요했고, 남한에선 사수하기 위한 힘든 싸움 이었다.
훗날 이곳을 방문했던 고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에서 ‘파로호(破虜湖)라는 친필을 썼다.
이 전투 이후 화천저수지가 ‘파로호(破虜湖)’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 물을 수도권에선 상수도원으로 사용하며 마실물로 사용하고 있다니...
호반 길은 곧게 뻗지않고 들쭉날쭉 구불구불, 간간히 지나가는 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니 지루해진다.
앞에 버스 세 대가 보이는에 우리가 타고 온 차는 안보인다.
산으로 간 1진까지 하산하여 16시까지 다 모이면 차 타고 평화공원으로 이동한다고 했는데...
해산터널 통과하여 해산령에서 하차, 단체 인증 남기고 1,2진 각각 출발한 시간이 오전 9: 50,
비수구미에서 혹시 만날까하여 시원한 다리 아래에서 점심식사 후 한참을 기다려도 1진은 오지도 않고,
버스 올 곳 도착한 현재 시간이 13:40.
버스 기사님 쉬어야 한다고 오후 4시까지는 차 문 열지 말라고 했는데 앞으로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니...
할 수 없이 걸을 수 있는데 까지 걸어보자고. 각자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떠어 놓는다.
그러잖아도 하루 중 제일 더운시간, 이곳부터는 포장 도로라 뙤약볕에 달구어진 지열이 푹푹 올라와 더 뜨겁다.
삼거리 갈림길. 우측으로 가면 세계 평화의 종공원, 좌측으로 조금 더 가면 460번 도로와 만나는데
그곳 460번 도로에서 좌측으로 가면 해산 터널로 갈 수 있고, 우측으로 가면 매봉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 위로 달릴 수 있는 길이다.
평화의 댐까지 2.1km, 평화의 종공원까지 2.6Km, 해산터널까지 10.8Km.
해산터널은 이미 지나온 곳이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평화의 댐이나 어디까지 걸어가게될지 아직 모른다.
편한길 트레킹이라 맘편히 왔다가 뜨거운 날씨에 마냥 걷고 있어 지루하고 고생스러움이 느껴진다.
대장들은 모두 1진으로 산으로 가고 2진 대장은 비수구미에서 늦게 와 아직 만나지도 못해 뿔뿔이 흩어져 걷고 또 걷는다.
드뎌 평화의 댐이 보인다.
전에 왔다가 차 타고 이동하여 검고 커다란 평화의 종을 타종했던 적 있는데, 정확한 위치가 안보여 잘 모르겠다.
평화의 댐을 배경으로, 여기까지 걸어 왔어도 시간은 아직 14:20.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더 걸어야 한다.
세계평화의 종공원을 줌으로.
종공원을 향하여 밟음 밟음 앞으로 앞으로.
다리에서 잠시 댐 배경으로.
평화의 댐 아랫쪽.
세계평화의 종공원.
앞에 걷는이들이 계단을 올라갔기에 따라 오른다.
세계 평화의 종공원.
공원을 지나 또다른 계단.
오전 내내 편한 길 걷고, 뙤약볕 아스팔트 걷느라 지루 했는데 이젠 고도 높이며 계단이 자꾸 이어지니 오늘 중 제일 힘든 곳.
계단이 끝나는가 싶어 올라보니 터널이 보인다. 터널 안은 좁고 인도 없이 차도만 있고 어두워 맘대로 걸어 볼 수도 없다.
다시 꺾어지며 연속 이어지는 오르막 계단. 앞에 간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고, 에고 힘들어~~
날씨가 뜨거워 마실물도 다 떨어지고.
끝인가 하고 올라보니??? 이게 웬 일이래? 괜히 오르기 시작 했나? 앞을 보면 아득하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아까워 쉽게 돌아설 수도 없다.
높이 올라온 만큼 내려다 보는 조망은 시원스럽다.
한쪽은 막혀 바람 한 점 없고, 불볕 더위에 낑낑대며 지그재그 열심히 올라보니 댐 옆은 아직도 공사 중 이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성금 받아 만들기 시작한 일이면 80년대 일인데 3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공사 중?
댐 위로 연결 되는 줄 알고 계단을 열심히 다 올라보니 아뿔사~ 계단도 아직 미완성 이라 댐 위로 갈 수가 없다.
막바지 죽을 힘 다해 힘들게 힘들게 올라 왔는데 실망 또 실망 ~~ '언제 또 올지 모르니 기념이나 남기자.'
댐 배경, '다음에 또 온다 한들 이 계단은 절대 걷지 않겠지?'
올라가기도 힘들지만 더위에 지친 일행들 내려 딛기도 힘들어 쩔쩔매며 내려오니
아직 공사중이라 다닐 수 없는 곳이라며 직원인듯한 사람이 와 계단을 오를 수 없게 출입금지 줄을 매어 놓는다.
진작 매어 놨으면 힘들이고 오르지도 않았으련만...
터널이 좁아 위험해 더이상 못가고 아래 계단을 피해 차로를 이용해 종공원으로 향해 내려 딛는다.
염원의 종.
공원 한편 나무그늘에 설치된 시원한 파고라가 있어 긴 의자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1진 오기를 기다리다 잠깐 잠이 들기도.
산에서 내려온 1진 일행 태운 버스 도착, 오후 4시가 한참 지난 16:40 이다. 차에 올라 평화의 댐으로 이동.
위 사진은 한 컷 한 컷에 담긴 삽화보다 맨 아래 설명에 더 뜻이 담겨 있다.
평화의 댐 위로 난 도로. 해산터널과 양구로 연결되는 460번 도로인데 아직 공사 중이라 통행할 수는 없다.
댐 건너 매봉터널을 줌으로 당겨 보았다.
댐 윗쪽은 저수량이 생각보다 형편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 한꺼번에 물을 내려보낼 경우를 대비하여 만든 댐이라 분단의 아픔이 느껴지는 댐이다.
평화의댐은 1987년 2월부터 1988년 5월까지 15개월에 걸쳐 축조된 댐으로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에 따라 수공에 대비하기 위해 국민들의 성금으로 쌓은 댐이다.
댐은 95년, 96년, 99년 수해시 홍수조절 기능이 입증 되었다.
평화의 댐은 다른 댐과 달리 물을 채우는 설비나 발전소가 없어 저수기능이나 발전 기능이 없다.
양남댐을 비롯한 북한에서 내려온 물은 배수터널을 지나 그대로 화천댐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지금은 타종 하려면 성금을 내야 종을 칠 수 있다.
화천 평화의 댐 한 쪽에 조성된 무명용사 비목(碑木)공원. 비무장지대 안에 있던 것을 옮겨놓은 것이다.
현충일을 사흘 앞두고 화천 양구지역을 찾으니 더 특별한 느낌이 든다.
12일은 남북정상회담이 이은 북미정상회담이 있다. 부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 * *
가곡 "비목"의 탄생지가 바로 비무장지대 이다.
사연은 1960년대 중반, 평화의댐 북방 14km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에 배속된 한 청년장교는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이끼 낀 무명용사의 돌무덤 하나를 만난다.
녹슨 철모, 이끼 덮인 돌무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새 하얀 산목련,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깊은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
그는 돌무덤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젊은이였을 거라는 깊은 애상에 잠긴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비목"의 가사는 이렇게 탄생되었고
이 노래는 70년대 중반부터 가곡으로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다. 가사를 쓴 초급장교가 바로 한명희씨이다.
곡을 붙인 이는 장일남씨 이다.
비목공원이 있다는 건 그만큼 희생자가 많다는 뜻,
한국전쟁당시 전투가 가장 치열햇던 격전지로 세계의 젊은이들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쳐 산화한 곳으로,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배경으로 탄생한 가곡이 비목의 발상지 이다.
주차장 입구에 세워진 "비목" 노래비.
현재 비목공원에는 기념탑 외에 철조망을 두른 언덕 안에 녹슨 철모를
얹은 나무 십자가들 이 십여 개 서있어 한국전쟁이라는 민족 비극의 아픔을 되새기게 해준다.
화천군에서는 매년 6월 3일부터 6일까지 이곳 비목공원과 화천읍내 강변에 들어서있는 붕어섬 등에서 "비목문화제"를 개최한다.
평화의 댐에서 양구 땅으로 넘어가면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등의 안보교육장이 있다.
예전, 몇 번에 걸쳐 을지전망대와 제 1,2,3 땅굴은 다녀 왔는데 제 4땅굴은 아직 못가봤다.
이 땅의 6월은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 부른다.
평화의 댐 윗쪽으로 작은 다리가 보인다. 평화의 댐 둘러 본 후 식당으로 이동.
평화의 댐에서 거리가 좀 먼 양구에 있는 음식점으로.
시래기 등 나물 넣고 비벼 맛있는 저녁식사.
식사 마친 후 귀가행 버스에 오르며 하루를 마감 한다.
아래 사진 몇 장은 1진으로 일산(日山, 해산)을 다녀온 선두그룹 일행의 사진이다.
화천 양구 지역은 지역적으로 산행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만,
특히 해산령에서 일산(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까지의 오르막 길은 나타나 있으나
일산에서 비수구미마을로 하산길은 흐릿해 찾기가 힘들고,
매우 가파라 산행이 아주 어려운 코스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물이 무성한 곳이고 길이 없는 곳이라 오늘 나선 선두 대장은 뱀에 대비하여 스패츠까지 착용하고 나섰다.
지난번 연화산이나 희양산 산행하며 연거퍼 뱀을 보기도 했거니와 오지 속 산행이라 더 조심하지 안으면 안되는 곳이다
일산(해산)에서 조망되는 모습이다.
일산에서 동남쪽으로 파로호 건너 사명산(四明山, 1,198m, 2015.6.30 산행)이 마주하는데 사진은 타인 작이라 구별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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