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많은 점심시간 피해 늦게 만나자 해놓고 그리 늦지않게 나온걸 보면 꽤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5월에 한 번 만나고 해를 넘길뻔 했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반주로 연태고량주, 안주로 라조위(복어살, 닭고기일땐 라조기, 돼지고기 일땐 라조육으로 불린다) 시켰더니 서비스로 물만두를 준다.
전엔 연태고량주와 팔보채, 짜장면 하나 시켰는데, 이번엔 국물있는 것 하나 더 시켰더니 양이 너무 많아 남겼다.
오랫만에 만나 밥만 먹고 헤어지는 일처럼 싱거운 일이 또 있을까? 두 사람 각자 영화 본지도 며칠 되지않았고,
날씨가 음산해 커피 마시며 시간 보내도 좋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무작정 걷자고 했다.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서서
로버트 프로스트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고
내가 여기 멈춰 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내 조랑말은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 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무슨 착오라도 이르킨 게 아니냐는 듯
말은 목 방울을 흔들어 본다
방울 소리 외에는 솔솔 부는 바람과
부드럽게 눈 내리는 소리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으며,
잠자기 전에 몇십 리를 더 가야 한다.
잠자기 전에 몇십 리를 더 가야 한다
가지 않는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랗게 물든 숲 속의 두 갈래 길
한 몸의 나그네 두길 다 갈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한 길에 서서 저 아래
덤불 속 감도는 한 쪽 길,저 모퉁이너머
오래 오래 바라 보았습니다
지난 길 만큼 아름다운 저 길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이 길이 더 나을 듯 하였습니다
이 길은 풀이 더 무성하고 인적이 없어
이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길도 걸으면 모두 같겠지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모두 검은 발자국에
아직 더럽혀지지 않는 낙엽이 덮혀 있었습니다
오! 나는 내일을 위해 처음 길을 남겨두었습니다
우리네 산길은 끝없이 이어 집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예감이 드옵니다
머언 먼 훗날 우리 모두 어디선가
고요히 한숨쉬며 이렇게 말하겠죠.
"어느 숲 속 두 갈래 길,나는 선택하였네,
인적 드문 고요한 이 길을 걸으며
내 인생은 이리도 변하였나니"
높은 빌딩에 걸린 시 한 수 읽어보고, 길거리 시인 동상 옆에 앉아 시 한 수 읽어 본다.
별 1
정 지용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실로 잇은듯 가깝기도 하고
잠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 듯, 솟아나 듯
불리울 듯, 맞어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 처럼 이는 회한에 피여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우에 손을 념이다
별 2
정지용
창을 열고 눕다.
창을 열어야 하늘이 들어오기에
벗었던 안경을 다시 쓰다
일식이 개이고난 날 밤 별이 더욱 푸르다
별을 잔치하는 밤
흰옷과 흰자리로 단속하다
세상에 안해와 사랑이란
별에서 치면 지저분한 보금자리
돌아 누워 별에서 별까지
해도海圖 없이 항해하다
별도 포기 포기 솟았기에
그 중 하나는 더 휙지고
하나는 갓 낳은 양
여릿 여릿 빛나고
하나는 발열하야
붉고 떨고
바람엔 별도 쓰리다
회회 돌아 살아나는 촉불!
찬물에 씻기여
사금을 흘리는 은하!
마스트 알로 섬들이 항시 달려 왔었고
별들은 우리 눈썹 기슭에 아스름 항구가 그립다.
대웅성좌大雄星座가
기웃이 도는데!
청려淸麗한 하늘의 비극에
우리는 숨소리까지 삼가다.
이유는 저 세상에 있을지도 몰라
우리는 제마다 눈감기 싫은 밤이 있다.
잠재기 노래 없이도
잠이 들다
자선냄비에 조금 투입했더니 추운 날씨에 들고 다니라며 핫팩을 준다.
전과 달리 요즘은 칠궁 관람이 쉬워져 안내판이 보인다.
칠궁(七宮)을 관람한 일은 20 여년 전 일이다. (1994년)
몇 년간 전통문화 강좌를 들으러 다니던 중 기회를 엿보다 대통령(김영삼)이 해외순방(호주)으로 자리 비운 사이 청와대를 방문했다.
칠궁(七宮)은 종로구 궁정동(청와대 내)에 위치한,
조선시대 역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아들을 낳은 생모이며 왕비가 아닌 후궁 일곱 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가 후궁 출신인 모친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신주를 모신 사당 '육상궁(毓祥宮)'을 건립한 이후
역대 왕 또는 왕으로 추존되는 이의 생모인 후궁의 묘를 옮겨와 합사하게 된 것으로
원래는 1724년(영조 원년)에 지은 '육상궁(毓祥宮)'만 있던 터였으나
1908년(순종 2년)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겨왔고
1929년 덕안궁이 들어오면서 7명의 신위를 모시게 되어 칠궁이 되었다.
칠궁은 동서로 줄지어 있고 이에 따른 행랑, 2채의 재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동쪽으로부터 배열된 칠궁의 순서와 모셔진 신위는
① 육상궁(毓祥宮):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淑嬪崔氏),
② 연호궁(延祜宮): 추존된 왕 진종(眞宗)의 생모 정빈 이씨(靖嬪李氏),
③ 덕안궁(德安宮): 영친왕의 생모 순헌귀비 엄씨(純獻貴妃嚴氏),
④ 경우궁(景祐宮):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綏嬪朴氏),
⑤ 선희궁(宣禧宮):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暎嬪李氏),
⑥ 대빈궁(大嬪宮):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禧嬪張氏),
⑦ 저경궁(毓祥宮): 추존된 왕 원종(元宗)의 생모 인빈 김씨(仁嬪金氏) 등이다.
카메라를 준비하고도 개인적으로는 찍을 수 없어 청와대 직원이 이곳 저곳 따라다니며 찍어 줬는데
칠궁 건물이 오래 되다보니 희빈 장씨 사당 마루 위로 올라서다 마루바닥 나무 한 쪽이 무너져내려
사진사 다리 하나가 빠지는 일도 있었다.
칠궁은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금지 되다 올해(2018년 6~12월) 사전예약을 통해 제한적으로 관람.
내년(2019.1.) 부터는 시간제 자유관람으로 확대 개방될 모양이다.
내년(2019.1.1.)부터 휴궁일인 일, 월요일을 제외한
화~토요일에 매일 7회(오전 9:20, 10:20, 11:20, 13:20, 14:20, 15:20, 16:20) 개방한단다.
관람시간은 기존 30분에서 50분으로 연장, 요금은 무료, 관람인원은 장소가 협소하여 회당 100명으로 제한.
단체는 인터넷 사전 예약, 개인은 청와대 누리집에서 예약하면 된다.
신무문(神武門)은 경복궁의 4대문(광화문,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 중 북쪽문으로
1961년 5.16 군사쿠데타(박정희 대통령) 이후 폐쇄 되었다 2006년9월29일 45년만에 개방 되었다.(노무현 대통령)
신무문을 나서면 바로 청와대 정문 앞이 된다.
1994년 11월. 김영상 대통령시절, 호주방문 기간 중 주인 없는 날을 택해 청와대 춘추문으로 들어섰다.
같이 공부하던 지인 덕분에 여덟 명이 청와대에 들어가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구경했었다.
카메라는 지참 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촬영을 금하고, 직원 한 사람이 이곳 저곳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찍어주는데
한 컷 한 컷 찍힐 때마다 매번 90도 각도로 인사를 해대 부담 스럽기도 했다.
밖에서 본 민속 박물관.
북촌 거리에서.
삼청공원으로.
다리도 쉬어 줄겸, 잠시 공원 숲 긴 의자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잎을 떨군 나목들 사이로 상록인 마삭줄(협죽도과)? 이 돋보인다.
북촌 언덕배기에서 바라본 청와대 서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좌측 멀리 뒤로 작게 보이는 안산.
청와대 뒷쪽에 위치한 북악산.
아들이 군생활 할 때 근무하던 곳이기도 하다. 북악산과 경복궁에서 각각 2주씩 근무를 했다.
집 가까운 곳에서 군생활을 하니 2주만에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휴일엔 면회가 허용되어
아침이면 먹거리 잔뜩 준비하여 온 가족이 아들 선임과 경복궁에서 면화하며 같이 먹곤 하다보니
아들은 군생활이 힘들다 하지만 가족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소풍나가는 기분으로 지냈다.
민속박물관이 차츰 건물에 가려진다.
박물관 뒤로 안테나가 보이는 작은 봉우리는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 이다.
언덕배기의 조망 좋은 카페도 지나고, 북촌 밝은 거리로 내려와 이 가게 저 가게 기웃대며 이이쇼핑도 하고,
동행인은 열 살 아래인데도 불구하고 "또래를 만나도 걷기 싫어해 여사님이나 만나야 걸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열 설 아래 또래들도 그러니 하물며 친구들은 더더욱... 이쪽에서도 같이 걸을 수 있는 이들이 좋다.
나이 차이가 많아도 대화가 통하고 취향이 비슷해 만남이 오래 지속되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 중 몇 십년 지나는 동안 걸러지고 둘이서만 만남이 지속되고 있다.
불빛 밝고 울긋불긋 화려한 상점에 걸린 모자를 써봤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거금을 주고 사주기에 고맙게 받았다.
이 모자를 본 순간 전에 네팔 안나푸르나 갔을 때 사서 쓰던 모자와 디자인이 똑같아 써본 것인데
그 모자는 재작년인가 오래 쓰던 모자 한 보따리를 한꺼번에 없애고 보니 겨울에 귀 덮는 모자가 아쉽던 생각이 났던 것이다.
점심 식사 이후 거의 4시간 정도 걸었더니 구두를 신어 발바닥도 아프고, 목도 축일겸 카페에 들어섰다.
팥빙수를 시켰더니 "밖이 더웁냐"고 묻는다. 삼청공원 도착 전 커피와 물을 사서 갖고 다니며 마시긴 했어도
"저녁이 되어 꽤 쌀쌀한데 우리는 많이 걷고와 갈증이 나서 일부러 시키는 거다'고 답해 주었다.
시원하고 달달한 팥빙수로 피로 풀고, 적당히 걸으며 수단 떤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각자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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