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머니
/ 윤동주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개 갑북갑북
(갑북: 평북지역의 방언으로 '가득')
영화관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예매.
감독
론 하워드 Ron Howard
메인 영상'네순 도르마(Nessun Dorma)'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이탈리아 모데나 출생, 1935.10.12.~ 2007.9.6, 71세를 일기로 타계).
그는 생전에 하이 C의 제왕, 천상의 목소리라는 닉네임으로도 불리었다.
아마추어 테너로도 활동했던 아버지와 함께 모데나 지역의 로시니 말레 합창단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에 입문,
1961년 4월 29일 레조에밀리아극장에서 《라 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오페라에 데뷔했다.
같은 해에 당시 경제학을 공부하던 대학생이었던 아두아 베로니(Adua Veroni)와 혼인하였으나, 이후 이혼하고
2003년 개인비서였던 니콜레타 만토바니(Nicoletta Mantovani)와 재혼하였다.
2006년 췌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가
2007년 9월 6일 모데나 자택에서 향년 71세로 별세, 장례 미사도 모데나의 교회에서 집전 되었다.
파바로티가 "노래 부를 때 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말에
"그럼 손에 흰 수건을 쥐어보면 어떻겠느냐" 라는 대답을 해준 것.
한 쪽 끝을 구부린 철사를 소지하는 것은 징크스에 대한 대비책으로 준바하는 것이라고.
The Three Tenors
세계 3테너 라고 하면 Luciano Pavarott(중앙), Placido Domingo(우), 그리고 Jose Carreras(좌)를 말한다.
1988년 플라시도 도밍고의 지원과 함께 백혈병을 완치한 카레라스가
자신이 설립한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이 주최하는 자선 콘서트를 개최하여 좋은 호응을 얻었다.
도밍고와 파바로티는 카레라스의 재기를 기념하는 목적으로 다시 공연을 하기로 약속하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 날,
로마 카라칼라 목욕탕 유적에서 주빈 메타의 지휘로 공연을 갖는다.
세계 최정상의 테너 셋이 모인 이 공연은 엄청난 호응을 얻었고,
데카에서 출시한 공연 음반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된다.
이렇게 이 세 명은 주빈 메타의 지휘로 월드컵 전야제마다 공연을 열게 된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에는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열렸고 보다 이벤트 성향이 강해지며 인기를 얻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파리에서 월드컵 전야제를 기념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공동개최를 기념하여 2001년에 서울에서,
2002년 전야제날 일본 요코하마에서 공연을 갖는다.
다시 의기투합하여 2006 독일 월드컵에서 공연을 열 것임을 선언했지만,
파바로티의 사망으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지막 쓰리 테너 콘서트는 2005년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있었다.
수많은 비평가들에게 쓰리 테너 콘서트는 하나의 성대한 쇼에 불과하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지만,
쓰리 테너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의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쓰리 테너 콘서트로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쓰리 테너 콘서트는 하락세를 타던 클래식 음반 판매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쓰리 테너 콘서트를 모방한 공연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성이 증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반부엔 지루함 탓? 졸음이 살살.
후반부로 가며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
그를 대표하는 오페라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베르디의 '리골레토', '가면 무도회', 푸치니의 '라 보엠',
오페라 아리아 중 사랑의 묘약 中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
라 보엠 中 '그대의 찬손 (Che gelida manina)'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오 솔레미오(O Sole Mio)' 등을 들을 수 있다.
* * * * *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의 일화
세계3대 테너로 불리던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이들 중 도밍고와 파바로티는 유명한 앙숙관계였다.
1984년 당시 카탈로니아 지역은 스페인을 다스렸던 마드리드 지역으로부터 자치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한창이었다.
이로 인해 마드리드 출신 도밍고와 카탈로니아 출신 카레라스 역시 적이었다.
그들은 세계를 순회하는 공연을 하면서, 서로 같은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공연을 했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그러던 어느 날 카레라스는 도밍고보다 더 큰 적을 만났다. 그가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당시에는 백혈병 치료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카레라스는 매달 골수이식과 수혈 등 고통스러운 치료를 위해 미국을 방문해야만 했다.
막대한 치료비로 인해 재정덕으로 곤란해진 그는 더 이상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경제력이 한계에 다다른 그때 그는 마드리드에 백혈병 환자만을 위한 재단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르모사(Hermasa)라는 재단의 도움으로 카레라스는 치료를 다시 시작했고 마침내 재기에 성공한다.
감사의 마음으로 표현하기 위해 재단에 가입하려던 카레라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도와준 재단의 설립자이자 후원자가 도밍고이며, 애초에 그 재단을 설립한 목적이 카레라스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도밍고는 도움을 받는 카레라스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익명으로 재단을 운영해왔다.
카레라스는 크게 감동하여 도밍고의 공연장을 찾았다. 그리고 관객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굻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 모습을 본 도밍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카레라스를 꼭 껴안았다.
그날 이후 그들은 서로를 진정한 경쟁자로 존중하며 멋진 공연을 펼쳐나갔다.
어느 날 도밍고는 에르모사 재단을 설립한 이유를 묻는 한 인터뷰에서 "나의 경쟁자인 다른 예술가를 도우려 한 것" 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끝까지 카레라스의 자존심을 지켜준 것이다.
-'서른과 마흔 사이' 中에서-
이 음식점은 몇 번을 별렀는데 오늘도 인연이 없는지 또 Breaktime...
다른 때는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못가고, 오늘은 시간이 맞질 않아 들어갈 수 없었다.(오후 3 ~5시)
P형님의 아침 식사 후 치과 다녀온 관계로 "2시간 내에는 물조차 마실 수 없다"고 하여
영화감상 후 늦게 점심 겸 저녁으로 먹었다.
집 도착 하니 섣달 열 엿세 초저녁 달이 겨울나무 가지 위에 얹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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