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날짜를 보고 잠시 떠오른 40 여년지기 지인이 있었는데, 낮에 사진을 보내왔다. 텔레파시 일까?
각자 바빠 얼굴 본지가 어느새 4년(2018.10.18) 세월이 후딱 자났고, 문자도 아주 가끔 어쩌다 한 번씩,
올 초여름(6월) 개인 전시회가 있다며 알려 왔는데 여행 등 바쁜 스케쥴로 참석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5인이 함께 전시 한다는 사진을 보내왔다.
"전시회 보다는 우선 '생일 축하 한다'" 는 인사부터 전송하니
"생일을 어찌 알았냐" 며 의아해 한다.
"전에 입력된 기억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다" 하니 "헉, 대단~".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도 얘기 끝에 떠오르는 말을 하면 모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그런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느냐" 며, 그러나 어쩌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을...
생각나지 않아도 될 기억은 좀 잊혀져도 좋으련만 그 것도 내 마음 대로 안되는 일인가 보다.
며칠 전 치매 검사 시에도 "상태가 아주 좋으시다"라는 말을 듣긴 했다.
남들은 몇 십년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이들도 있지만
내 경우엔 1950년 6,25 한국전쟁 기억은 없어도 1951년 1.4 후퇴 때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만으로 다섯 살 때의 일 이다.
이른 새벽 엄마께서 "얘들아 일어나거라, 중공군이 또 쳐들어 왔댄다." 하시고는
흰무명 누비바지를 입혀주시며 "또 피난 가야 한다" 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 난다.
흰무명 누비바지는 어린시절에 입던 옷으로 위는 지금의 한복 치마처럼 어깨까지 이어져 있고,
아래는 발목까지 닿는 길고 풍성한 바지이지만 가랑이 부분은 터진 상태로 뒤에서 여미어
끈으로 묶는 옷인데 끈은 항상 엄마가 묶어 주셨다.
전쟁 때는 집 울타리 안 뒤꼍 커다란 호두나무 한 그루 서있는 옆에 넓은 지하 방공호가 있어 그 안에서 지내기도 하고,
결혼 전인 삼촌들과 함께 살던 대가족은 전쟁 중에 뿔뿔히 흩어지고 할머니께서 혼자 집을 지키셨다.
어쩌다 아버지나 삼촌들이 집에 오시면 할머니께서 많이 우시던 모습도 떠오르고,
추운 겨울 엄마는 어린 동생을 등에 없고 얇은 흰고무신 차림이라 눈 속에 빠져가며,
피난처와 집을 오가며 식구들 안부를 전하시던 모습도 아직 기억이 또렷하다.
피난처였던 외가에서 지내던 때 쌕쌕이(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우리 모친과 많이 닮으신 큰 외삼촌께서
"얘들아, 폭격기 떴다 모두 안으로 들어 오너라' 하시던 우렁찬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 쟁쟁하다.
외숙모님께서는 우리 형제들과 고모를 둥근 밥상에 따로 밥을 차려 주시고,
큰 외삼촌께서는 이불을 길게 반으로 접어 둥글게 앉아있는 우리들 둘레에 두껍게 덮어 주시곤 했다.
가까운 친척 중 할머님 한 분은 폭격기의 공습으로 방 안에 있다 한꺼번에 몇 남매를 잃으시어
평생을 말 끝마다 한숨을 쉬시던 모습이 생각 나기도 한다.
국민학교 1학년 때 고모님 시집 가시던 날, 바깥 큰 마당에 채를 치고,
새신랑인 고모부가 오시는데 사람들이 삼태기에 재를 담아 뿌리며 맞아 주시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6년 동안의 국민(초등)학교 생활은 3학년 때까지 점심반이 있어 편도 6Km나 되는 먼 거리를 다니느라
아침 시간에 갈 때는 모두 학교를 향해 가는 시간이라 괜찮은데 점심반 때 학교가는 시간엔
대학생들은 하교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가다 말고 뒤돌아 오는 일이 다반사,
여름 뙤약볕 아래 등교 시에는 냇가에서 놀다 집으로 그냥 돌아 오기도 했다.
점심반인 날은 결석이 반은 된다. 그리고 전엔 길에 한센병 환자(문둥이)가 왜 그리 많았는지...
시골동네 좁은 길에서 멀리 보이면 뭐라 하지 않아도 생김새가 무서워서 도망가기 바빴다.
여름에 큰 비로 홍수가 나면 냇가에 나무로 만든 다리는 세찬 물살을 못이겨 어김없이 떠 내려가,
학교에 있는 낮 시간에 비가 많이 내리면 아예 먼 길을 돌아 집에 도착하면 날이 어두워졌다.
해마다 한 차례씩 떠내려가는 섭다리는 년중행사처럼 여름 지나며 큰 나무를 베어다 다시 만들곤 했다.
4학년 때부터 6학년 까지는 아침반만 실시 했기에 아침 조회시간 때마다 부르던 교가는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어쩌다 생각이 나 흥얼대다 보면 2절까지 거침없이 나오기도 한다,
떠오르는 기억 중 어린시절 때 얘기를 단숨에 주절주절 하다보니 참 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