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 ★ 첫날 ★(10구간,신풍령~삼봉산~소사고개~대덕산~덕산재)

opal* 2005. 1. 18. 15:14

 

 

올 해가 乙酉年.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원년이기도 하다.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해도 乙酉年이었다.

100여 년전에 일본인 고토분지로씨가 만든 우리나라 산맥 지도가, 몇 년 전부터 백두대간 종주 붐을 이루는 산악인들과

시민단체들의 현장답사와 근래의 첨단과학인 위성사진을 토대로 보는 우리나라 산맥 지도가 많이 다르다고

새해 벽두부터 언론 매체에서 산맥지형에 대해 교과서도 개편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 백두대간의 종주를 위해 오늘 첫 발을 내딛는다. 산행경력이 없는 초보자이니 물론 자율에 의해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산행 날과 마찬가지로 큰 생각 없이 가벼운 맘으로, 오후에는 비나 눈이 오겠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집을 나섰다.

 

05:30. 아직은 어두운 이른 새벽, 밝은 전조등 빛으로 버스 이름도 확인 못한 채 차에 오르니 인사말과 안내멘트를 한다.

"다른 산행 때와는 달리 이정표가 없으니 다른 산악회의 리본만 보고 쫓아가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게 되니

가급적이면 함께 다니라"는 보충설명을 듣고 나니 조금은 감이 잡힐듯 하다. 

길을 한번 잘 못 들어섰다간 Taxi도 타기 힘든 곳이 백두대간 이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삼도봉은

전북, 경북, 경남의 세 행정구역이 걸쳐 있어 잘못 하산하면 고생이 많다며 오늘 가는 곳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북쪽엔 아직 갈 수 없고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남쪽에서만 다녀야 되는데 당일산행을 목표로 하다 보니 시간과 거리 등

여러 가지 여건상 한쪽 방향으로 연속해서 다닐 수 없어 오늘 첫날은 10구간(덕유산 구간, 신풍령)부터 시작을 한다.

 

09:20. 부족한 잠을 메꾸는 동안 차는 어둠 속을 달려 빼재(秀嶺, 신풍령.920m)에 도착하니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차에서 내려 커다란 立石에 빼어날 “秀”字를 써서 ‘秀嶺’이라 표시한 이정표 앞에서 기념 한 컷.

백두대간 종주 첫 기념 사진을 남기고, 차도 옆 리본 몇 개 달려있는 곳에서 산행이 시작되며 능선으로 오른다. 


처음부터 경사가 급한 곳을 치고 올라가니 옷은 금방 땀에 젖고, 능선에 올라서니 남쪽지방이라 그런가?

매서운 북풍이 아닌 봄바람 같이 느껴진다. 한 참을 걷다보니 젊은 아낙들의 자신 있는 얘기가 들린다.

"이렇게 능선만 오르 내리는게 백두대간 길 이라면 얼마 던지 타겠다" 한다.

이제 시작에 불과 한데 저렇게 자신 있는 소리를 하다니... 젊음이 좋긴 좋구나!

앞쪽 건너편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의 상고대를 보며 감탄사가 시작된다.  


11:20. 삼봉산(1254m) 정상 도착.

땅에 쌓인 눈과  상고대로 치장된 나목들과 멋진 분위기 속에 묻히니 백두대간의 종주를 위해 겸허한 마음으로

간단히 제사라도 지내야 된다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간이 방석을 펼친 후 몇몇이 각자 갖고 온 먹거리 떡과 과일,

사탕, 초코렛... 등  골고루 한 가지씩 내어 놓는다. 그런데, 술이 없단다. 차에 있는 하산주용 소주라도 한 병 들고 와야하는 걸

생각을 못했단다. 제주 없이 무슨 제사를 지낸담?  아쉬운 대로 내게 단술인 감주가 있어 그것으로 대신했다.


큰 봉우리 세 개를 오르내리고 나니 다시 암봉. 꼭대기는 바위군으로 이루어졌는데 눈이 제법 쌓여 길이 불분명 하니

시간이 더 걸린다. 이 곳 부터는 급경사로 된 하산길 시작.  남쪽 방향에서 오르니 내려설 땐 북쪽이 되어 눈이 안 녹아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많다.  급경사 길을 한 시간 이상 내려딛으니 힘도 들고 배가 고프다. 


바람이 가려진 배추밭 옆에서 간식으로 초벌요기(12시 반)를 한 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길을 헤메는 곳이 여기라 했던가?

엄동설한에 배추밭엔 수확을 못한 배추가 얼어 하얗게 변한 채 그대로 있어 농민의 아픈 맘을 생각하며 내려서니 소사마을 이다.

 아스팔트 차도와 마을이 있는 곳까지 내려섰으니 이만해도 오늘의 운동량은 충분할 듯.

 뒤 돌아 우리가 내려온 산을 잠시 바라만 봐도 와- 스스로가 대견하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저렇게 높은 봉우리들을 모두 헤집고 다녔다니..!


13:00. 소사마을에서 선두에 가던 사람들과 만나 다시 새로운 산 삼도봉을 오르기 시작.

등산로 입구에 백두대간 보호법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사유지인 밭 사이로도 지나고,

묘지 몇 기 들이 있는 사이로도 지난다. 능선으로만 연결되면 덜 힘 들 텐데 완전히 내려섰다 다시 오르려니 힘은 배로 들고

짜증도 난다. 이제부터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행의 시작이다.  처음엔 그렇게 자신 있게 떠들던 아낙들도 말이 없어지고

뒤쳐지기 시작한다. 개인의 체력에 따라 선두와 후미의 차이가 점점 벌어진다.

해발 높이가 높아 그런가 양지바른 곳을 올라서는데 큰 나무는 없고 억새밭과 싸리나무들과 진달래와 관목들 뿐이다.


14:30. 초점산 (일명 삼도봉 1248.7m)정상 도착.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 경북 김천의 경계이다.

정상에서 탁 트인 사방을 둘러보고 과일과 물로 허기진 배를 조금씩 채워가며 걷는다.

구간 거리와 시간이 표시된 인쇄물에 4시간 50분 걸린다고 적혀 있는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앞으로 멀리

더 높은 봉우리가 또 보인다. 삼도봉의 하산 길은 길진 않지만 역시 급경사의 눈길이다.


15:10. 오늘 처음으로 보는 푸르른 잎인 산죽나무사이를 거쳐 대덕산(1290m)정상 도착.

오전 중엔 쾌청하던 날씨가 사방이 흐려지고 눈발도 날린다. 내려갈 일은 까마득한데 이곳에 와 보니

뒤에 또 봉우리 하나가 숨어 있다. 무릎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저 봉우리를 또 어떻게 넘어야 하지?

무릎은 나이 많은 나만 아픈 걸까?  급경사 길을 고민 반 배고픔 반으로 하산하려니 가뜩이나 지루한 하산길이

더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아침 시작 때 짧은 시간의 산행으로 생각을 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산 중에 작은 봉우리들을 만나 다시 오를 때는 죽을 맛이다. 뒤에서 누군가가 다리를 잡아 당기는 것만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산행다운 산행을 한 것 같다는 옆 사람의 한 마디엔 동감이다.

이래가지고서야 내가 과연 종주를 할 수 있을까? 한 달에 한번 가는 백두대간 구간을 모두 종주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고 날이 갈수록 체력은 점점 떨어질 텐데... 시작이 반 이랬으니 일단 해보는데까지 해보자!.


16:30. 덕산재(640m) 도착.  오늘 첫날의 산행 소요시간  7시간.

하산 후 식사를 하려니 너무 지쳐 그런지 밥이 잘 안 먹힌다.

 

17: 20. 귀가 행 bus 출발. 아침에 들었던 예보 대로 눈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피곤한 몸으로  잠시 눈 붙였던 고속도로에선 더 많이 내렸다 한다. 서울에 도착하니 비는 그친 상태, 

오늘 하루는 얼마나 축복 받은 하루였던가?

다리가 아파 옆자리 젊은이에게 살짝 물어봤더니 무릎이 아프단다. 그렇다면 내게도 희망은 있는 것 이로구나!


2005. 1. 18(火). 백두대간(10구간) 종주 첫날. (신풍령~삼봉산~소사고개~대덕산~덕산재)

乙酉 生(음력)이  乙酉年을 맞이하며 자신을 테스트 해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