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 둘째 날. (11구간, 덕산재~부항령~삼도봉-물한계곡.)

opal* 2005. 2. 15. 10:04
 

 

언제나 그렇듯이 집을 나설 땐 일기 예보에 귀 기울여 진다.

전국적으로 비나 눈이 오겠단다. 내가 가는 곳은 산이 높으니 물론 눈이 내리겠지..


05:30. 출발한 bus는 몇 정거장 가는 사이에 빈자리 없이 꽉 차 보조의자까지 사용.

모두 나처럼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도 나섰겠지?


09:20. 지난 번 종주 때의 하산 지점인 덕산재(640m)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 굳어진 몸 좀 풀고,

다른 산과 달라 이정표도 없고 길도 불분명하니 가능하면 개인 행동하지 말도록“ 대장님의 한 마디를 듣고 산행시작.


추운 날씨에 풀리지 않은 몸으로 급경사를 한발 한발 치고 오를 때의 힘겨움이란!

잡목 사이의 좁고 비탈진 오솔길에서 앞 사람이 잡았다 놓은 싸리나무 가지에 

추위에 얼은 얼굴을 한 대 얻어맞고 나니 아픔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든다.


능선에 올라서니 안개구름이 갑자기 몰려와 밀림 같은 낙엽송 수림이 안개로 가득 차 금방 환상의 지대로 변한다.

풍속이 빨라 그 것도 잠시. 높은 산에서의 일기 변화다. 뭔가 오긴 오려나 보다.


11:05 부황령 도착.

지도에서 본 부황령이 차도인줄 알았더니 수풀로 덥힌 林道였다.

백두대간 구간임을 나타내는, 나뭇가지에 잔뜩 매달린 리본들 사이에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면

 Taxi와 bus를 탈 수 있다고 적힌 A4 용지 크기에 안내문이 적힌 코팅된 종이도 같이 매달려 나풀대고 있다.

이곳에서 하산하는 사람도 많을까? 아님 구간을 이곳까지 정한 것일까. 리본이 없으면 여름엔 수풀로 우거져 길 찾기 어렵겠다.


목을 완전히 젖혀야 하늘이 아닌 산 위가 보이고, 스틱 하나에 온 몸을 의지한 채, 발목은 최대한으로 앞으로 꺾여져 있으며,

보폭은 아주 좁게, 심호흡으로 조절하며...  내 또래에선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표준의 키이건만 지금 이 오르막에선

 얼굴과 지표면과의 거리가 약 50cm 정도의 거리다. 가파른 경사각을 피부로 느끼며 침묵의 길, 고행의 길을 걷는다.


12:00. 1030m 높이의 고봉에 올라서니 상고대의 향연이 절정이다! 세찬 바람에 흔들려도 이 아름다운 얼음 보석들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눈밭에 서있는 작은 잡목가지에서 교목들까지 온통 동화속의 하얀 나라다.

이번 겨울의 마지막 향연이 될지도 모를 텐데... 혼자 보기가 아깝다. 


이름 모를 고봉에서의 내리막 하산 길은 눈 수렁이라고나 할까? 앞선 사람들이 만든 발자국을 쫓아

무릎 위까지 빠지는 눈길을 걷노라니  주저앉을래야 주저앉을 수도 없다. 이미 의자에 걸터앉은 정도의 모습이 되었다. 

높게 쌓인 눈높이와 엉덩이 높이의 차이가 얼마 되지 않는다.


900~1000m가 넘는, 이름도 아무 표시도 없는 대 여섯 봉의 무명봉을 바람과 눈과 얼음과 싸우며 오르내리기를

반복하고 나니 체력 소모도 많고 시장기도 느껴지고, 종주 첫 날은 자신과의 싸움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이 힘듦을 즐기는 걸 보면 서서히 중독되어 가고 있나보다.


14:00. 눈 위의 앞사람 발자국만 따라 왔는데 그 발자국이 안 보인다. 한참을 앞서가던 사람들이 앞에 멈춰 서있다.

이걸 어쩌나? 길이 없단다. 안개속이라 앞이 보이지는 않고, 나무가 하나도 없어 밭 인줄 알고 들어섰더니

사방공사를 한 비탈면,  세찬 바람에 눈이 모두 날려 모래를 넣은 마대 자루만 밟히니 발자국이 없고 나무가 없으니

 선답자 들의 리본도 전혀 안보인다. 빨리 식생 수종을 조성을 하여 수풀 우거진 산의 모습이기를 바래본다.


대장님이 모두 한곳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안개와 눈 속을 혼자서 이리 저리 헤메다 얼마 후에

겨우 길을 찾아 다시 떠나는데 대장님 보다 앞에 가던 5명이 어디선가 헤메고 있다고 대장님께 연락이 왔단다.

개인행동은 금물이라고 아침에 그렇게도 주의를 주었건만... 어딜가나 말 안듣는 사람이 꼭 있다.


특이하게 생긴 나무 한그루를 보고 누군가가 민주지산이 가깝다 한다. 많이 다녔었나 보다.

조금 걷고 나니 이제야 길도 넓고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경사가 가파른 500m 남은 거리의 삼도봉 오르막은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15:20. 산행시작 여섯 시간 만에 삼도봉(1177m) 도착.

이곳은 민주지산의 봉우리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나라 세 곳의 삼도봉 중 오리지날 이란다.

해마다 3道民 (전북, 경북, 충북)이 모여 문화행사를 갖는다는데 정상에 세워놓은 조형물이 환경 친화적이지 않아 눈에 거슬린다.


마실 물은 이미 바닥나 옆 사람에게 조금 얻어 마시고 하산 준비.

오늘의 하산 지점은 원래 삼마골재 인데 차량 통행이 어려워 물한계곡 쪽으로 방향을 바꾼단다. 

쌓인 눈은 많아도 길이 넓고 경사각도 완만해 수월하게 하산하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6:30. 주차장 도착하여 늦은 점심식사.  하루 종일 우리를 위해 참았던 비가 이제야 맘 놓고 내리듯 쏟아진다. 

오늘 총 산행 7시간 소요.


2005.2.15(火). 백두대간 종주 둘째 날. 11구간을 걷다.

               (덕산재~부항령~삼도봉-물한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