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행으로 두 번 다녀온 산이지만 갈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주니 자꾸 찾게 되고 또 얘깃거리가 생겨나게 된다.
강추위 한파가 몰아닥쳐 전국이 영하권으로 되고 전남 광주에선 대설로 비행기가 결항되었으며
초등학교가 임시휴교 사태까지 벌어진 입춘을 며칠 앞둔 2월 초하루.
05:30에 출발한 차는 유리창에 하얀 성애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밖이 안 보인다.
09:50. 화방재(해발 950m) 도착. 유일사 입구에서 올라간 때는 있었지만 화방재 들머리는 처음 이다.
초입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고 오르는 눈길은 山靈閣 까지는 꽤 가파르다.
먼저 다녔던 사람들의 발자국은 세찬 바람에 눈이 날려 다 덮어져 흔적도 없고 쌓인 눈은 단단하여
스틱을 찍을 때 마다 낡은 그네 줄에서 나는 듯한 쎄엑 쎄엑 소리를 낸다.
오르고 내리며 한 시간을 걸으니 유일사 입구 매표소에서 오르는 고개쉼터. 다시 경사진 능선을 따라 오를수록 바람도 더 세차다.
한 참을 걷다보면 발에서 열이 났었는데 오늘은 발도 더 시리고 장갑은 두 개 겹쳐 끼었는데도 손이 녹을 사이 없이 계속 시렵다.
오르막을 오를 땐 숨 쉬기 하나 만으로도 벅찬 코! 날씨가 추울 땐 왜 그리 콧물도 자주 나오는지...
마스크 안에다 손수건을 접어 넣어 자동으로 처리 시키니 피부 보호를 위한 아침 화장은 괜히 했나 싶을 정도.
얼굴은 알아보기도 힘들게 두 눈 만 빠끔히 내어놓고 감쌌으니 이 보다 더 좋은 피부 보호 방법이 어디 있으랴.
장군봉을 향해 앞서 걷는 사람들의 입김이 마치 떡 시루에서 나는 김 같고,
옷 밖으로 배어나온 땀과 입김은 모자 아래의 몇 가닥 머리카락과 속눈썹 까지 하얗게 얼어붙어 얼굴 전체에 雪花가 피었다.
눈 주위엔 온통 얼음이 매달렸으니 얼굴에 부딪치는 그 매서운 추위란...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바로 이런 걸까?
주목 나무가 아무리 멋지고 건너편 산의 설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날아갈 듯한 바람 때문에 돌아서서 감상 할 수가 없다.
11:40. 장군봉(1567m)에 쌓아놓은 사각형의 제단 앞으로 가 잠시 쉬어 보지만 쉬면 쉴수록
바람으로 인한 추위만 더해 오니 지체 할 수도 없고 가방 안에 먹거리가 있어도 손이 시려워 꺼내 먹지도 못한다.
천제단으로 향하는 능선, 갑자기 불어 닥치는 눈보라 속에선 눈도 제대로 못 뜨며 바람을 등지느라 게처럼 옆으로 걷기도 한다.
옷은 얇아도 몸은 괜찮은데 심장에서 멀리 있는 얼굴과 손과 발이 너무 춥다.
'히말라야를 향해 가는 산 사람들은 이 보다 더 춥겠지?' '시베리아 만주 벌판의 바람도 꽤 춥다고 했는데...'
미니치마 입고 멋내던 1960년대 후반쯤인가? 추운겨울 어느 날.
조조할인 받느라 사람도 별로 없고 난방시설도 제대로 안된 실내가 가장 넓었던 서울의 대한극장에서 봤던
‘닥터 지바고’ 생각도 났다. 추운 날씨에 얇게 입고 추운 곳에서 추운 장면의 영화를 봤으니...
장군봉에서 천제단까지 5분 걸리는 능선을 걷는 동안 별별 생각이 다 났다.
바람을 가르며 날고 있는 까마귀의 몸짓이 힘들어 보이고, 보이지도 않는 전투기들의 금속성 소리는 차가움을 더 해준다.
오늘 같은 바람의 체감 온도는 아마 -30‘C는 더 되지 않을까?
천제단(1561m)에서 잠시 묵념도 올리고, 시장 끼를 느껴도 먹을 여건이 안 된다.
위아래 속눈썹은 서로 붙으려 하고, 머리카락엔 고드름이 매달려 雪人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리얼하게 사진에 담아보고 싶었지만 장갑 속에서도 얼어있는 손이니 남에게 부탁 하기도 그렇고
카메라 배터리가 얼어 작동이 잘 안되니 아쉬운 마음만 간직 할뿐.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하얗게 된 얼굴을 보며 와 -하고 웃는다.
천제단을 내려서서 문수봉으로 가는 길엔 눈이 제법 많이 쌓여있다.
특히 樹皮가 아름다워 내가 좋아하는 자작나무가 흰 눈밭에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단체로 뽐내고 있다.
바람만 덜 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지역에선 눈이 내려도 이곳의 햇살은 찬란하고 상큼하기 그지없다.
바람이 가려진 눈 위에 쪼그리고 앉아 따끈한 물 한잔과 단 것으로 cal를 보충시키고
발목 위 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으니 맘대로 발이 놓여 지지가 않아 균형이 안 잡힌다.
12:30. 문수봉(1517m)도착. 스키장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으로 힘들게 눈길을 밟고 올라서니
이곳엔 제법 커다란 바위들이 쌓여 봉우리를 이루고 케룬이 몇 개 있다. 시원스레 트여진 사방을 둘러본 후 하산 시작.
반재에서 잣나무 숲길로 하산할 때 보다 경사가 완만하여 발을 내딛으니 가끔씩은 가속이 붙어 강종 강종 뛰다시피 했다.
그래도 눈길이니 조심을 하며 내려오다 보니 샘물조차 바가지까지 꽁꽁 얼어붙어 있다.
나무가 많아 바람을 막아주니 이제야 손과 발이 녹기 시작하고 이마 위로 대롱대롱 달렸던 고드름도
제 스스로 무게를 못 이겨 떨어진다.
13:20. 주차장 도착. 어제로 눈 축제가 끝난 당골 마당엔 눈 조각품 몇 개가 그대로 남아있다.
텐트 안에서 뜨거운 밥과 국물로 배를 채우고 차에 올랐는데도 몸이 얼른 녹지를 못한다.
나 보다 나중에 식사 하시던 분은 텐트가 바람에 날려 텐트와 함께 넘어져 놀라기도 하고,
언 손으로 텐트 접다 다치신 분께 따뜻한 인삼차 한잔을 드렸더니 ‘오늘 흘린 피는 보충이 다 된듯하다’며 함께 웃었다.
집에 와 news를 보니 대관령의 오늘 기온이 -21‘C, 서울의 낮 순간 체감온도가 -20‘C 였다고 T.V에 나온다.
2005. 2. 1.(화). - 세찬 바람 많이 불던 날의 태백산행 일기.
'山行 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장산 산행. (0) | 2005.02.26 |
---|---|
119구조대 부른 눈 쌓인 복계산 산행. (0) | 2005.02.22 |
치악산 남대봉 산행. (0) | 2005.02.12 |
꿩먹고 알먹은 치악산 산행. (0) | 2005.01.25 |
同名異山 작성산 (0) | 2004.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