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등산은 원점회귀로 하겠습니다.
개방되지 않은 등산로로 가며 안내 표지를 바닥에 깔아 놓을 테니 후미 대장은 맨 뒤에 오면서 다 수거 하도록...”
들키면 혼 난대나 어쩐대나.
부곡리에 도착(09:10)하여 매표소를 지나 곧은치 골로 들어서기 시작.
앞자리에 앉았던 내가 먼저 내려 걸으니 “언니 그쪽으로 가는 거 아니래요” 나중에 내린 후배가 소리를 친다.
“그래?” 잠시 서 있으니 다른 분들이 모두 나를 지나쳐 앞장서서 내 달린다.
힘찬 남정네들의 걸음걸이가 나한테는 그렇게 느껴진다.
차 안에서 들은 얘기 때문에 잘 못 들은 줄 알았더니 샘이 나서 그랬군.어짜피 조금 가다 보면 자꾸 뒤 쳐져 꼴찌가 될 텐데 뭐..
계곡의 흐르던 물은 자꾸 보태지며 그대로 넓게 얼어붙어 반질반질.
괜찮겠거니 하고 내 닫었더니 미끈! 폭이 좁은 쪽으로 가 나무를 잡고 엉금엉금 건넜다.
뒤에 오시던 어느 분 자신 있게 걷다가 꽈다 당-!
계곡이 아닌 능선 길을 택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느끼며, 두 시간 만에 정상 비로봉(1288m) 도착.
일단 제일 높아 멀리서 보기에도 정상 같건만 왜 돌탑은 세 개씩이나 쌓아 놓은 거지?
높은 곳에 더 높게 쌓느라 힘들었겠다. 정상을 자연 그대로 놔두어도 좋을텐데...
정상은 날씨가 잔뜩 흐려 가시거리가 짧다.그래도 다행인건 평일의 등산이라 호젓하게 감상할 수 있어 좋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났는데 일행 중 한분이 헐레벌떡 올라오더니 방향을 묻고 그냥 간다.
대장님이 사진 한 컷 찍고 가라 했더니 향로봉까지 가야 돼서 바쁘다며 달아나듯 사라진다.
'嶽 字가 들어간 산은 험하다 했는데... 방정맞은 생각 말고 내려 갈 때나 조심해야지.'
내려딛는 하산 길은 미끄럽기 시작. 아이젠을 착용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많은 눈을 기대하고 왔건만 겨울 산행 치고는 눈이 많지 않아 오르기엔 좋았는데눈이 다져져 얼어버린 하산 길은
겁나게 반질대며 눈 쌓인 곳도 많고 양지쪽의 하산길은 흙먼지가 발자국 따라 폴싹 폴싹 거린다.
신고 벗고를 반복하자니 귀찮고 손 시렵고, 계속 착용하자니 힘들고 다리 아프고..
그래도 언제나 하산 길이 더 위험하니 무조건 착용하자.
한참을 가다 보니 앞서가던 몇 분들이 방향을 몰라 대장님을 기다렸다 같이 출발.
여전히 뒤 쳐져 걷고 있는데 앞 선 일행 중 한 명이 쭈르륵 떼구르르!
미끄러져 일어나질 못하니 대장님 재빨리 스프레이 뿌려 놀란 무릎 진정시켜 일으켜 세우신다.
스틱에 의지하며 걷다가 몇 번이나 힘없이 주저앉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향로봉 못 가게 된 걸 아쉬워하고 있다. 정상에서 방향을 묻던 분이다.
12: 50. 곧은치(860m) 도착. 우리가 예정 대로 하산하는 지점이다.
정상에서 이곳 까지 4.8km 내려 왔고 매표소를 지나 차가 있는 곳 까지 가려면 4.5km는 되고 한 시간도 더 걸리는데도
앞 선 몇 분들은 향로봉으로 다시 향했다.400여m를 눈앞에 두고 내려서기엔 너무 아쉽단다.
늦게 도착 하신 분들까지 뜨겁고 얼큰한 육개장 식사를 마치고 차는 일찍 출발.
귀가 중에 찐빵도 사고, 숯가마 찜질방에도 간다는 안내 방송 후 시간을 아끼기 위해 차안에서 희망자 접수.
지난 산행 때 사서 먹다 남은 것 몇 개가 아직도 냉동실에 있어 망설이다 하나를 더 샀다.
한 box 또는 두 세 box씩 주문을 하니 금방 서른 box가 넘는다.
단골 이라고 공짜도 두 박수를 줘 따끈따끈한 공짜 빵을 먹고 나니 배가 가득. '식사 시간에 밥 남기길 잘했군.'
졸다가 방송 멘트에 깨어보니 숯 가마터. 나는 평소에 찜질방이나 온천여행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외부의 더운 온도에 의해 땀을 흘리기 보다는 내 몸을 움직여 열을 내고 땀을 흘리고싶기 때문이다.
몇 몇 분들은 옷 갈아입고 들어가고, '배는 부르고, 시간은 많고, 차 안에서 잠이나 잘까?'
'잠자는 건 나중에도 시간이 많으니 구경이나 해 봐야지.. '
숯가마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것을 보며 차에서 내려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겉옷을 안 걸쳐 춥기에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숯불 난로 옆으로 가니 한쪽에서 고기를 먹는다며 일행이 부른다.
“배가 잔뜩 부른데 뭘 먹느냐“ 면서도 옆으로 다가서니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소금 뿌려 숯불에 굽고
속이 노란 배추는 밑둥만 잘라 통째로 갖다 놓으니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따라 주는 매실주를 한 잔 마시고 고기 한 점 집어넣고 양념장과 구운 통 마늘을 배추에 얹어 입에 넣으니 배가 부른데도 꿀 맛!
한쪽에서 숯을 꺼낸 가마를 보니 달구어진 바닥과 벽은 그대로 이글거리고 있다. 이 대로 두었다 내일 오는 손님들이 이용한단다.
좁은 문 밖으로 나오는 불빛과 열을 가까이서 쬘 수 없어 멀찌감치 앉아 있는데 저 쪽 끝 방에서 누가 불러 가보니
오자마자 옷 갈아입고 들어갔던 짝궁 이다. 땀을 많이 흘려 몇 번씩 물 마시러 밖에 나왔다 봤다며 들어와 구경하란다.
돈 도 안냈는데? 하며 안엘 들여다보니 우리 산님들만 댓 명이 앉아있다.
날도 저무는데 조명이 없어 어둡고 끝 날 시간이 가까워 다른 손님들은 다 가고..
등산화만 벗고 가마에 들어가 있으니 몸이 더워지기 시작. 잠시 후 젊은 후미 대장이 들어 와 앉더니 겉옷을 벗는다.
먼저 온 사람들은 모두 옷을 바꿔 입었으니 괜찮지만 우리 두 사람은 외출복이니.
그래도 기능성 옷이라 다행이다. 양말 벗고 바지 걷어 올리고 조끼 벗고 팔 걷어 부치고..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끝 날 시간 되어 쫓겨났다"며더 뜨거운 방으로 갔던 몇 명이 이 쪽 방으로 몰려오니 안이 꽉 찬다.
뒤쪽에서 누워 즐기고 있는데 다른 분도 들어왔다. 물론 산행 복 차림으로...
진작 들어오지 그랬냐며 뒤쪽으로 불러 같이 누워 잠시 있으니 작업시간이 끝났다며 모두 나가 달랜다.
오후 5시까지라고 써 붙여 놨지만 우리 일행은 늦게 왔고, 숯 굽는 분들의 퇴근 시간이 이곳의 문 닫는 시간인모양이다.
미개방 등산로로 5시간의 겨울산행 싫컷하고, 배 가득 차도록 맛있는 것 잔뜩 먹고, 땀 줄줄 흘리며 공짜로 찜질도 하고...
아- 오늘 하루 ‘이 보다 더 좋을 수 는 없다’
2005. 1. 25 (화). 치악산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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