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119구조대 부른 눈 쌓인 복계산 산행.

opal* 2005. 2. 22. 18:13

 

강원, 중부지방에  눈과 비가 많이 내리겠다는 예보를 듣고 집을 나서니 이미 눈이 내리고 있다.

오늘 산행은 강원 지역인데 괜찮을라나? 눈(雪)길이 조금은 걱정이 된다. 

06:00. 출발, 시내를 거쳐 동북방향 47번 국도엔 차량들이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다.

이동을 지나니 차량은 줄었지만 눈길이라 속도는 마찬가지, 군부대 앞엔 군인들이 눈을 치우고 있다.

 

10:50. 다섯 시간이나 걸려 매월산장 앞 도착.

오늘의 산행계획은 하오현에서 시작하여 복주산과 복계산 두 곳을 타고 매월산장으로 하산 예정 했는데

눈이 내려 들머리 도착 시간이 늦었고 눈도 많이 내려 안전산행을 위해 복계산 한 곳만 짧게 타기로 결정했다. 

매월산장 좌측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이던 김시습이 은거했다던 매월대 암봉이 멋진 폼으로 눈(目)길을 끌고 있다.

 남한의 최북단에 있는 대성산과 가까운 이 산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눈으로 뒤덮여  길이 전혀 안 보인다.

 

낙엽 위로 쌓인 눈 위에다 발자국을 남기며 한 줄로 늘어서서 오르기 시작.

앞사람의 발뒤꿈치가 얼굴에 부딪힐 정도로 가파라 눈과 낙엽과 함께 주르륵 미끄러지기도 한다.

 russel 하시는 대장님은 얼마나 힘이 들까? 능선까지 오르는 동안 벌써 앞 뒤 사람들의 사이가 자꾸 벌어진다.

바람에 눈이 날려 앞 사람 발자국이 지워질까 걱정되어 속도를 내어 볼까하다 살짝 잘못 딛어 

다리 하나가 무릎 위 까지 빠지니 팔과 얼굴이 동시에 눈 속으로 묻힌다.

 

능선에서의 칼바람이 만드는 커다란 모자챙 같은 積雪의 모습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고

무릎 위까 지 빠지는 곳에선 spats와 eisen이 무색할 정도이다.

삼각봉을 지나고 눈에 덮힌 헬기장에 오르니 눈보라가 얼굴을 때린다.

철쭉봉에서 정상까지의 500m 오르막길엔 무성한 나목들이 설화로 덮여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 힘들고 고달픈 만큼의 뒤에 보는 이 맛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13:00. 앞서서 걷던 선두 대장이 정상 아래의 세 갈래 길에서 길 안내를 해준다. 

"정상까지 갔다가 올랐던 길로 다시 내려온 후 삼거리에서 옆으로 하산하라"는 말을 듣고 정상으로 올라섰다.

정상까지의 5분 거리 걷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오르지 말고 그냥 내려갈까하는 생각도 잠시 스친다.

 

1057m의 높이에 커다란 암봉과 넓은 공터를 이루고 있는 정상은 대성산을 바라보는 전망은 커녕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눈보라로 서있지도 못 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다.

바람이 세찬 능선의 하산 길은 경사가 급해 발 하나를 들어 앞에 놓으면 뒷발은 구부러진 채

자동으로 미끄러지며 제동이 안 걸린다. 나무라도 잡아야 겨우 멈출 수가 있다. 

 

올라오던 능선에 녹슨 철조망이 대문처럼 버티고 있더니 하산 길에도 또 보인다. 북쪽이 가까워 그런가 보다.

능선을 따라 내려서니 이정표가 될 만한 커다란 묘지 한 기가 있다. 이렇게 높은 곳을 어떻게 모시고 올라 왔을까?

 

 급경사의 내리막. 이 코스로 올라오려면 무척 힘이 들겠다. 

나무를 잡으며 뒤로 돌아 천천히 내려딛어 보지만 눈덮힌 바위 길이라 엄청 미끄럽다.

다리의 힘이 풀렸는지 급경사에서 미끄러지더니 아래로 몇 발자국 가서 계곡쪽의 비탈로 또 뒹구는데 나무가 잡아 준다.

계곡 아래 안쪽에 이르니 언제 바람이 불었느냐는 듯 아늑하고 포근하다. 

정신없이 얽혀진 다래덩굴과 잡목 원시림 같은 숲 속에도 조용히 소리없이 눈이 쌓여만 간다.

 

14:15. 임꺽정 촬영장 근처 주차장 도착.  3시간 20분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몇 배 힘든 산행 이었다. 

악천후의 날씨에 아무것도 못 먹고 내려와서 먹는 때늦은 점심은 언제나 꿀맛!

 

15:00. 차에 올라 귀가 준비하며 도착 못한 분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정상을 못 보았다”는 후미 대장과의 교신이 오간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명 모두 세 명이 남았단다. 눈은 하루 종일 잠시도 쉬지않고 펄펄 내리고 있는데.

젊음 하나만 믿고 친구 따라 청바지 입은 젊은 여인의 옷차림이 오전에 눈에 띄던데,

산행시작 즈음 “같이 가”  “빨리 와” 하하 호호 떠들며 웃더니만... 어떻게 된걸까? 궁금증일 일기 시작한다.

 

“헬기장을 지났는데도 정상이 안 보이고 아직도 능선” 이라는 교신.

정상 아래의 삼거리에서 그대로 능선을 따라 직진을 한건 아닐까?

이쪽에선 ‘시간이 너무 지났으니 빨리 계곡 찾아 내려서라’고 알린다.  

 

무전기 4대가 계속 연락을 취하며 마중을 나가 보지만 위치가 정확치 않으니,

“지금은 계곡으로 내려섰는데 위치를 전혀 모르겠고...” 어느 계곡 인줄을 서로들 모르니

이일을 어쩌나? “잔뜩 쌓인 눈으로 길이 없어 남자 한 사람은 앞에서 길을 만들고(russel),

여자는 너무 지쳐 자꾸 주저앉아 울기만하고, 늘어진 여자 부추기기가 너무 힘들다“는 교신.

119구조대에 연락 하겠다 하니 “찾아 내려가 볼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하고.

지금 어디쯤 계십니까? 응답 바랍니다’. 음성은 안 들리고 지직 거리는 무전기소리만.

이러기를 한 시간쯤.... 그러다 교신이 끊어졌다. 계속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눈은 하루 종일을 계속 퍼붓고, 연락이 안 되니 대원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기만 한다. 

가뜩이나 흐린 날씨에 계곡 숲속의 어둠은 더 빨리 찾아 온다. 오후 5시가 되어 결국은 119구조대에 연락을 했다.

 

 눈이 많아 훤할 것 같아도 오후 6시가 지나니 주차장도 어두워진다.  만감이 교차하는 긴장의 시간. 

모두들 긴장되니 긴 시간 동안 떠들지도,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하고 모두들 안절부절.

낮에도 추운 강원도 철원 산악지대의 기온은 저녁이 되어 더 추운데도 차문을 열어 논 채 드나들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오늘의 일들과 며칠 전에 소백산 연화봉에서 조난 당했던 다른 팀 사람들의 얘기까지.

제발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한 마음이 되어 숨죽이고 조용히 기다려주는 산악인들의 자세가 서로들 고맙고 보기에도 좋다.

 

침묵의 시간만 흐르고, 19:40. 사방은 깜깜하고 조용한데 소식이 날아든다.

'산악 구조대원이 만났는데 1시간 이상 걸려야 하산 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리이기는 한데 상태가 어떤지?

여전히 궁금하기만 하다.

 

 밤 9시가 다되어 구조대원들의 도움으로 주차장까지 모두 무사히 도착.

옷이 몽땅 젖고 청바지 자락에 얼음이 데걱데걱 매달린 여인에게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겨울 산행시 늘 랜턴 두 개와 비상으로 후레쉬까지 준비하고 다니신다는 한 분의 기지로 구조대원을 만날 수 있었단다. 

"후미대장 혼자 남겨두고 먼저 내려 올 수 없어 도와주며 같이 걷다보니 이렇게 늦어졌다" 한다. 

     청바지의 젊은 여인이 너무 힘들어 하며 못 걷고 '집에 있는 아이들한테 전해달라며 유언 같은 말까지 했다'한다. 

 

휴~~~ 안도의 숨을 쉬며, 주인공 세 사람은 뜨거운 물과 먹거리로 얼었던 몸을 녹이고, 

마음졸이던 대원들 모두 놀란 가슴 쓸어 내리며 지친 몸으로 귀가행 차 내에서 조용히 잠을 청한다. 

 

 발족 된지 얼마 안 되었다는 철원군의 산악구조대원 여러분!

의용소방대 119구조대 여러분과 근남면 면장님과 마을 주민 여러분,

철원군 의회 의장님, 일부러 달려와 도로의 눈까지 치워주신 제설차량 기사님...

 외 여러분 정말로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봄이 가까이 와 있는 줄 알았었는데...

 

 2005. 2. 22(火). 강원도 철원, 눈 쌓인 복계산을 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