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12회(20-1구간. 늘재~청화산~조항산~고모치~밀재-농바위)

opal* 2005. 7. 19. 00:56

 

산행구간이 길고 서울기온이 33C'까지 오른다는 불볕더위 예보에 겁먹고 伏中 산행이라서 처음으로 반팔을 입고 나섰다.

시원한 얼음물도 평소보다 더 많이 준비하고.

 


05:30. 출발. 아침부터 제일 젊은 막내 아낙에게 맆스틱 선물을 받고, 스틱 받침대와 고도표도 고맙게 받는다.

07:25. 음성휴게소 도착. "오늘구간 중 대야산에서 버리미기재까지는 다음으로 미루고, 청화산과 조항산만 타고

밀재에서 계곡으로 하산 하겠다"는 대장 님의 안내멘트에 속으로 크게 쾌재를 외친다. 전체 길이의 1/3 이 생략된단다.


지난 19구간(속리산)  산행 때 많이 고생한 관계로 반가운 복음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과연 대간종주를 끝낼 수 있을까?

 자신에게 의문을 던진 구간 이었다. 지친 십 여 명이 늘재까지 못가고 밤티재에서 기권한 사태가 있었던 지난 구간을 참고삼아

무더위에 알맞게 계획하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희망자에 한해 밤티재에서 오를 기회를 주니 남자 4명만 신청한다.

가보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보충산행은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과 오늘 걸을 곳을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09:10. 늘재 도착. 등산로 입구의 유래비를 지나고, 오솔길 왼쪽 아래 산약초 재배지를 지나 30분쯤 오르니 바위와

예쁜 소나무가 어우러진 전망이 보이는 곳에 흰 글씨로 무슨 기원단이라 새긴 까만 대리석을 세워놓았다.

전망이 좀 괜찮다 싶은 곳엔 왜 자꾸 인위적인 구조물을 만들어 놓는지.... 자연스럽지 못해 경관에 해를 미친다.

이마에 땀받이를 매었건만, 얼굴에서만 흐르는 땀이 눈 한번 꾹 감으면 아래로 흘러 턱에서 줄줄 떨어진다.


09:45. 산중턱으로 오를수록 안개가 서서히 드리운다. 꽃 사진 몇 장 찍고나니 어느새 꼴찌, 밤티재부터 걷는 분 있어 위로 받는다.

 

10:20. 선두는 벌써 청화산 정상에 도착했다는 교신이 온다. 25분 뒤에 정상 인줄알고 올라섰더니 헬기장이 완전 자생화 꽃밭이다.

오늘같이 많은 품종의 자생화가 핀 건 처음 본다. 꽃과 향이 다양하니 각종의 벌 나비들도 덩달아 춤을 추며 잠시도 쉬질 않는다.

장마 끝이라 습도가 많아 여러 종류의 버섯도 이에 뒤질세라 솟아오른다.


10:50. 청화산 정상(984m)도착. 청화산은 10리밖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항상 푸르고 빛나고 있다하여 청화산으로 이름하였다 한다. 

벌써부터 선두와의 차이가 30분이나 된다. 나무에 가려져지기도 했지만 운무로 전망은 별로다. 


11:15.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는 능선에서 꽃과 나비가 자꾸 발목을 잡는다. 산수국, 원추리, 말나리, 까치수영, 비비추...

이름 모르는 많은 꽃들까지... 여러 가지의 진한 향을 코를 킁킁대고 벌름거리며 허파 속 깊이 들이마신다.

마치 숲 속에서 열리는 꽃들의 귀한 축제, 잔치에 초대되어 온 기분이다. 선경 지명이 있어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온 것 같다. 


11:40. 이제야 햇살이 비치고  몇 봉우리 더 넘으니 조망이 트여 뒤돌아 바라보고 다시 숲속 들어서니 여전히

향내가 진동을 한다. 크고 까만 제비나비 한 마리가 계속 주위를 맴돌기에 카메라 들이대니 얼른 날아간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사진 잘 찍는 방법인데 산행 중엔 곤란하다. 봉우리 하나를 또 올라서니 잠자리 떼가 하늘 가득하다.

눈을 즐겁게 해준 녀석들이 많아 오늘은 아무래도 환경 생태 기행문이라도  써야 될 모양이다.


12:06. 건너편 봉우리에서 일행이 빨리 오라 부른다. 여기선 나무에 가려져 안 보이는데 저쪽에선 아랫쪽이라 잘 보이나 보다. 

절벽에 바위와 잘 어울리는 소나무와 비탈면에 배경 좋게 핀 꽃들의 유혹에 빨리 갈 수가 없다. 

사진 찍으려니 발 딛을 위치가 만만치가 않다. 시간이 여유롭고 해상도만 높으면 흡족한 작품 하나 건질 수도 있겠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탈출로가 있으면 꽃 사진이나 찍고 내려서도 좋겠지만 여건이 안 맞으니 산행이나 열심히 하자꾸나.


12:25. 선두에 섰던 물소리님이 저수지가 내려다 뵈는 전망 좋은 바위에서 한 시간이나 쉬었다며 후미인 우리와 보조를 맞춘다.

13:15. 조항산 정상은 식사할만한 장소가 없다는 연락을 받고 시원한 그늘에서 성찬, 물소리님의 비밤밥 메뉴가 새롭다.

 

14:05. 조항산 정상(951.2m). 조항산은 마귀할멈퉁시 바위에서 갓바위봉을 보면 새의 부리로 보이며

조항산 정상부위는 새의 머리로 보인다고 한다. 키 작은 표지석이 나무에 둘러 쌓여있다. 아래에서 볼 땐 정상이 멋져 보였는데

건너편 산 중턱 두 군데 파헤진 고모치 광산자리가 흉하다. 밤티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신 네 분 중 한 분이 벌써 도착했다.


가파른 내리막을 20분정도 내려서니 이정표가 새로이 깔끔하게 세워져 있다. 신갈나무 숲속에 시원한 바람이 도와줘 고마운데,

넓은 산수국 군락지를 만나니 또 눈이 즐겁다. 가장자리의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암술과 수술이 없는 무성화이고,

암.수술이 있는 진정한 꽃은 안쪽의 진보라 작은 꽃이다. 짙은색 점이 있는 주홍색의 말나리도 숲의 진초록과 대비되어 돋보인다.


14:45. 고모치 도착. 백두대간 길에 유일하게 처음만난 石間水인 고모치 샘이 10m 아래에 있어  빈병에 물을 다시 채웠다.

백두대간에서 유일하게 샘을 만난 일도 처음이지만 물을 제일 많이 마신 날도 오늘 같다.

2 리터가 넘는 물병 무게를 물소리님이 가방에 넣어주시니 오늘도 두루두루 신세를 진다.


아침에 조항산에서 끝난다 하여 희망을 갖고 내려딛었는데... 다시 889m의 봉우리를 치고 오른다.

지도를 미리 미리 봐 둘 걸, 내리막 길만 있는 줄 알았더니 큰 오산. 얘기 나누느라 지도를 펼 칠 새도 없었다.

우측 산의 멋진 바위 감상하며 위로 삼아 오른다.


15:25. 색동리본 하나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나풀거리는 봉우리에 올라서서 새로 받은 물과 오미자차를 많이 마셨는데도

 여전히 갈증이 난다. 고모치에서 물을 새로 안 받았으면 많이 부족 할 뻔 했다. 집에서도 많이 준비했건만.


봉우리 하나를 또 올라 이번에는 수박으로 갈증을 해소시키며 전망 좋은 곳에서 밟고 지나온 조항산을 다시 한 번 감상한다.

통통한 여자 가슴을 닮은 작은 바위와 커다란 바위들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 30분 정도 내려가니 아래에 밀재가 보인다.


16:30. 밀재. 대간 길은 여기서 끝나지만 좌측 계곡으로 5.2km를 더 내려가야 된단다. 잡목 숲 아래에서 반가운  물 소리가 들린다.

잡목이 우거진 계곡의 많은 습도로 주변 색깔을 닮은 각종의 예쁜 버섯들이 많다. 예쁜 나방 한마리가 밤의 활동을 위해

나무에서 자고 있다. 모든 생물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계절, 대자연에게 감사 드린다.


18:00. 차가 기다리는 마을 도착.  사진 찍고 땀 닦고 계곡물에서 시간을 보낸,  산행 소요시간 8시간.

 

2005. 7. 19(火).백두대간 20-1구간을 종주하다.

         (늘재~청화산~갓바위재~조항산~고모치~889봉~밀재~농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