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0. 차에 오르니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함께 자리를 하고 있다. 전국의 기온이 30‘C가 넘는 요즈음,
'2진 팀으로 계곡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려나 보다' 생각하며 노부부의 옆자리에 앉는다.
07:30. 희뿌연 안개 속으로 먼 산위에 올라선 붉은 해를 보며 인삼랜드 도착.
09:05. 단성IC. 안개 속으로 높게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마치 수묵화 같다.
09:45. 중산리 도착. 평일이라 매표소 입구까지 차로 올라오는 행운을 얻는다. 야생화를 찍고자 밤새 달려 왔다가
비가 내려 입산을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주봉에 오르는 지리산 등산은 내 생애 오늘이 처음 이다,
백두대간 종주의 첫 발을 내딛던 첫날도 이런 설렘이 없었는데. 지리산을 찾는다 하니 이제야 백두대간 종주 출정식 같다.
다리건너 왼쪽의 등산로 입구. 자갈 박힌 넓은 길에 이어진 좁은 길이 생각보다 좁다.
커다란 바위 사이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돌길을 오른다.
10:30. 이성계의 전설이 있는 칼바위를 지나니 이미 흥건히 젖은 옷과 모자. 땀으로 샤워하며 다니는 기분, 과일즙으로 목 축인다.
11:05. 망바위 아래 길옆으로 망바위 보다 더 큰 바위 위를 쉽게 거뜬히 올라서서 전망을 바라다보는 옆자리 앉았던
노부부를 보면서 아침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간 추측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11:30. 옹달샘. 누군가 산죽나무 잎을 졸졸졸 떨어져 받기 좋게 바위 틈에 끼워 놓았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 나는 계절이라 한 모금 받아 마신다. 10분쯤 더 오른 헬기장 같은 공터에선 법계사도, 천왕봉도 다 보인다.
11:45. 로타리 산장에서 잠깐 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법계사(1450m)에 들어가
보물(473호)도 둘러보고 다시 오르는데, 제를 지내기 위해 제복으로 갈아입는 사람들이 나무사이로 보인다.
지리산의 혈맥을 끊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박아놓은 철심을 제거한 기념으로 지내는 제사란다.
12:30. 법계사 뒤에서 오를 때 일곱 살과 아홉 살짜리 애들을 데리고 온 부부를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더니
여긴 더 놀랠 일이 있다. 이 높은 곳 오르막에 서너 살 쯤으로 보이는 여자애 손을 잡고 등엔 더 어린 애기가 업혀있다.
엄마 손을 잡고 있는 계집애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는 더 아연 실색. "언제나 어디서나 미소 지으며..."
그 애는 이 힘든 순간을 알고 부르는 걸까?
13:05. 개선문이란 이름이 붙은 커다란 입석 바위사이를 통과하며 뜨거운 볕을 고스란히 받는다.
어쩌다 바람이 한번 스치면 옷이 모두 젖어있어 시원함이 더하다.
13:40. 천왕봉이 0.3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이제야 맘 놓고 똑바로 본다. 중산리 야영장에서 5.4km라고 한번 본 후
힘들고 지루할까봐 이정표를 일부러 안보고 걸었다. 고도가 높아져 구름 속을 지나가는 동안은 체감온도가 떨어져 시원하다.
시원한 것까지는 좋은데 전망이 안보여 산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 가 없다. 바람 따라 라이락을 닮은 향기가 진동을 하니
모두들 코를 벌름거리며 갸우뚱. 나뭇가지에 ‘개회나무’라 표시된 이름표가 달려있다.
14:00. 천왕봉 정상(1915m). 서두루지 않고 오니 네 시간이 넘게 걸렸다. 사람들이 많아 기념사진도 줄을 서서 기다린 후
찍느라 시간이 걸린다. 조금 전 아래에선 구름도 많이 지나가더니... 그늘 하나 없이 쨍쨍 내리쬐는 볕과
한껏 달구어진 암반 위에서 모두들 담소를 나누며 맛있는 식사를 나눈다.
14:45. 늦은 점심을 마치고 나니 구름이 몰려온다. 이제부터 북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밟기 시작하려는데
지리산이 그 너른 품의 제 모습을 안 보여주려고해 아쉬움이 많다.
구름사이로 보이는 바위들과 나무들과 드문드문 박혀있는 고사목들... 한 폭의 수묵 담채화 같은
멋진 비경들을 감상하며 서쪽으로 향해 돌길을 오르내린다.
15:00. 通天門. 얼마나 높으면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 했을까? 커다란 바위에 문패가 새겨져 있고 바위사이로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다.
15:20. 제석봉. <30년 전엔 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숲이 우거졌었는데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려고 불을 질러
그 불이 제석봉을 태워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는 안내판은 언제 세워논 것인지? 숫자를 바꿔야 되겠다.
낮은 풀들과 군데군데 서있는 고사목의 군락지사이로 돌길이 나있다. 심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작은 구상나무가 많다
15:35. 장터목 대피소. 천왕봉부터의 거리는 1.7Km, 시간은 50분이 소요되었다.
이 길을 걷자고 4시간이나 걸리는 5.4Km의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으며 5.8Km가 되는 백무동은 또 얼마나 걸릴까?
지리산 종주라고 하면 보통 무박이나 2박3일을 계획하지만 처음부터 당일산행을 목표로한 것이 내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능선까지 오르고 내리는 시간이 많이 걸려 성삼재까지 다섯 구간으로 나누어 놓았으니 적설기와 산불조심 기간을 제외한
좋은 계절에 이 계곡 저 계곡 모두 구경하며 여유있게 샅샅이 훓게 생겼다.
15:45. 기념한장찍고 하산시작. 올라올 때처럼 돌길은 마찬가지인데 계속 숲속에서만 걷는다. 각종나무들의 향도 다르고
새들도 가까이서 아름다운 소리로 맞아준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섯 시간이 넘도록 모난 돌들을 밟아 그런가?
아니면 종일 메고 다닌 물병들의 무게가 줄지 않아 그럴까? 발바닥이 아프다.
16:20. 망바위 이정표. 사진기의 배터리가 배고프다고 깜박거린다. 그러지 않아도 쉬었다가려고 하던 참인데...
이정표를 보니 백무동까지는 아직도 4.3km나 남았단다. 돌 틈을 비집거나 돌 틈사이로 지나가자니 발가락에 쥐가 난다.
16:55. 소지봉. 백무동까지는 3.0km, 아직도 해발 1326m다.
17:15. 참샘 도착. 백무동까지 2.6km, 해발 1125m. 맛있는 샘물이 파이프를 타고 콸콸 흘러내리고 있어 한 모금 마시고,
오늘 종일을 무겁게 배낭 속에 메고 다녔던, 아직도 얼음이 다 녹지 않은 물을 다 쏟고 다시 담는다.
이렇게 샘물을 많이 만날 줄 알았으면 빈병하나만 준비 할걸... 지리산엘 처음 안기느라 몰랐던 것이다.
17:50. 보통 하산시간 두시간 정도면 계곡을 만나 발을 담글 텐데 워낙 높다보니 하루 일과를 마치는 이 시간까지
하루 종일 돌길만 걷기는 오늘이 처음이 아닐까?
18.15. 백무동 야영장. 이제야 하늘이 보이는데 해는 아직 앞 산위에 밝다.
18:25. 주차장 도착. 시원한 물로 얼굴과 몸을 대강 닦고 시원한 냉국과 포도주 한잔으로 산행을 마무리한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8시간 30분. 당일 산행으로는 가장 긴 시간을 걸은 것 같다. 앞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2005. 6. 25.(土). 백두대간 종주 1-1구간을 종주하다.
(중산리~칼바위~로타리산장~법계사~천왕봉~제석봉~장터목대피소~백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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