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공룡능선(2)

opal* 2005. 10. 9. 23:51

 

 (공룡능선1에서 계속)

 

08:10. 소청에 도착하여 갈팡질팡 하는 맘으로 이정표 팻말을 쳐다본다. 시간이 늦어 공룡능선은 틀렸을 테고,

자 이젠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주저할 시간도 안주고 누가 부른다 때 맞춰서... 이곳에서 식사 중인 남 ××씨.

1진 후미대장님이 희운각에서 식사 하신다며 조금 전에 지나 가셨으니 빨리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느님이 무심하시지 않아 주위 고마운 분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나보다.


희운각이 아래에 있는 건지 위에 있는 건지도 모르고 남들 따라 내려서는데 낭떠러지 같은 좁은 돌길에 여기도 줄을 섰다.

뒤에 서서 기다렸다 조심조심, 갈 길도 급하지만 아침햇살에 비친 고운 단풍과 멋진 바위 쳐다보기도 바쁘다.


09:30. 희운각에 도착하여 식사 중인 일행 몇 분을 만나니 이토록 반가울 수가,  2진 대장님이 나를 많이 찾았다며

 희운각에서 만났다고 무전기로 대신 연락해 준다. 지난번 산행 때 ‘가고는 싶은데 자신이 없어 신청을 안 하고 있다’는 소리에

2진 대장이 걱정를 했단다. 중청 대피소에서 덜어 먹고 조금 남긴 밥을 마저 먹었다.


10:00. 1진 선두는 이미 다 떠났고, 우린 다 같이 모여서 가야 한다며 인원 점검. 무너미 고개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의 다 우측 천불동 계곡 쪽으로 가고 우리 팀 몇 명만 단촐하게 공룡능선으로 들어선다. 


가파른 오르막에 밧줄을 잡고 올라서니 아침햇살에 역광으로 비친 황홀한 단풍잎, 아래로 멋진 바위봉우리가 돋보인다.

한 컷 찍고 싶은데 갈 길이 바쁘다. 광선과 단풍잎 모양과 바위구도가 제일 잘 어울리는 곳이었는데...아깝다

하루 종일 다녀도, 나중에 다시와도 이런 모습은 못 만날 텐데. 아~ 순간의 나의 실수.


10:25. 1218m의 순 바위덩이인 신선봉에 오르니 뭐라 표현해야 할지 입만 벌어질 뿐이다.

그 너머로 보이는 기암괴석의 봉우리들과 사방으로 보이는 처음 보는 모습에 반하여 절로 감탄사만 터져 나올 뿐.


11:00. 맑은 가을날, 푸른 하늘가의 끝없는 가시거리가 동해와 울산바위도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며

울긋불긋 오색으로 한창 예쁘게 물든 온 산이 매혹적으로다가와 사람을 홀려 놓는다.

멀리 보이던 바위 봉우리들이 점점 앞으로 다가 올 때마다 설악의 장쾌한 멋을 이제야 제대로 느낀다.

몇 십 평생 살면서 너무 늦게 찾아왔더니 산신령님이 도와주시나?

공룡능선의 첫 경험을 날씨 덕에 설악산의 진수를 한 번에 맛보게 해주신다.


11:50. 돌아서서 대청봉과 중청, 지나온 봉우리들을 바라본다. 내딛는 곳마다 서 있는 곳 마다,  돌아서서 바라보는 곳 마다

다른 모습들의 비경이요 절경이다. 봉우리 마다 바위마다 이름이 있을텐데. 이름을 모르니 처음 보는 눈에 답답함을 느낀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섰다 내려서는 길에 마사토 흙길에 미끄러지며 나무끄트럭에 정강이를 부딪치니

손바닥 넓이 만큼 금방 부어오른다. 시간이 지나니 반대에서 오는 이들도 점점 많아져 뾰족한 봉우리사이 

돌 틈을 비집고 올라서기를 기다렸다 몇 명씩 교대로 오르고  내린다.


12:05. 우리 팀 일행은 모두 앞에 가고 없어 밧줄잡고 오르는 절벽에서 다른 팀 남자 분께 부탁 했다.

손으로 디딤목을 만들어줘 딛고 올라섰다. 밧줄을 여러 번 잡은 오늘 구간중 제일 위험하고 힘든 곳 같다.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몸이 지치니 다음 백두대간 종주 때 안 오고 싶은 생각도 난다.

아니며 구간을 짧게 나누어 여유있게 음미하며 다시 한 번 걷고 싶어진다. 


12:25. 1275m봉인가? 오를 수 있는 봉우리라는데 시간이 없다. 하늘가에 검은 구름이 조금씩 드리운다. 대청봉 꼭대기에도.


바라보는 눈길이 즐거워 봉우리를 몇 개 넘고 내리는지, 그저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남들 따라 오르고 내리면 언젠가는 끝나겠지. 


13:52. 나한봉(1276m). 희운각에서 4.6km 걸어오는데 4시간이 걸렸다. 대청에서 뻗은 서북능선 아래로 

용아장성릉의 늠늠한 모습이 뻗어있다. 언젠가는 저곳도 걸어볼 기회가 있을까? 주제파악도 못하며 마음만 앞선다.


14:25. 속초의 영랑호와 청초호를 발아래로 바라보고 너덜지대를 내려서서 마등령 쉼터(1240m) 도착,

늦은 점심을 먹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15:00. 오세암쪽으로 내려서는 하산 길은 어느새 낙엽이 잔뜩 쌓였다. 가뜩이나 어두운 골짜기에 비가 후둑후둑 거리다 그친다.


15:15. 오세암에서 내려서는 길은 산 허리를 올라섰다 가파른 내리막으로 내려서기를 서너 번.

오르내리는 정성만으로도 불자들의 성의를 알겠다. 백담사까지의 거리가 6km. 두 시간 반이 걸린다고 씌어있다.


영시암 못 미쳐 수렴동쪽의 길과 합쳐지는 곳에서 대장님이 기다려주신다  보름 전 지리산 반야봉 산행 때 아팠던 무릎이

오늘도 많이 걸었더니 무리가 오는가 보다. 여름 계곡 산행 땐 아름답게 보이던 길이 오늘은 지루하다.

영시암에서 백담사까지 3.5km. 지루한 생각이 드니 다리가 더 아프다.


17:30. 셔틀버스를 타기위해 백담사앞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훨씬 먼저 내려온 님들이 아직도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30분을 넘게 서서 기다리니 가방도 더 무겁고 다리도 아프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14시간 30분.

 

셔틀버스로 주차장 도착하니 캄캄한 저녁이 되었다. 차에서 비치는 불빛앞에 비빔밥과 라면, 누룽지탕을

맘대로 골라먹고 귀가행 차에 오른다.  새벽 별을 보며 내렸다가 초저녁 별을 보고 차에 오른다.

 

2005. 10. 9(日). 설악 공룡능선을 무박산행으로 처음 오르다.

'山行 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남 알프스 천황산과 재약산.  (0) 2005.11.22
6개월 만에 다시찾은 계룡산.  (0) 2005.10.29
공룡능선.(1)  (0) 2005.10.09
주왕산 산행.  (0) 2005.09.27
설악산 달마봉. 울산 바위.  (0) 200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