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 출발. 마지막 회원까지 다 타고난 후 소등하면 납치해 가도 모를 정도로 기사님 외엔 모두 잠에 빠진다.
08:00. 인삼랜드 휴게소 도착하여 미역국으로 아침 식사. 날씨가 잔뜩 흐려있다. 오는 도중에 비가 왔단다.
무주군 안성 매표소에서 동엽령까지 두 시간을 넘게 오르며 기운이 다 소진될까 걱정 했더니
차가 닿는 신풍령(秀嶺, 빼재, 경남거창과 전북 무주의 경계)에서 역으로 산행한다는 반가운 소리 들린다.
09:10. 빼재 도착(930m). 차에서 내리자마자 빨간 글씨로 ‘秀嶺’이라 새겨진 立石을 얼싸안고 찰칵.
지금도 산에 대해 아는게 없지만, 1년 전 아무것도 모르며 타율에 의해 무모하게 덤벼든 '백두대간 종주',
북쪽을 향해 그 첫 발을 내딛은 곳이기에 감회가 새롭다. 오늘은 남쪽을 향해 오른다.
조금 올라서니 국립공원에서 달아놓은 산불조심, 입산금지 현수막이 가로 막는다. 매표소가 있었으면 산행을 제지당할 뻔 했다.
09:50. 삼각점과 안내판이 있는 1039m의 무명봉. 안내지에 높이 표시를 적어 깔아 주시는 리더의 자상함을 엿본다.
대간 길을 걸으며 무명봉에 가끔 표시해주면 좋겠는데 자주 못 나오신다. 높은 봉우리의 무명봉을 모르고 지나칠 때나
근처의 산을 몰라 답답할 때가 많다.
10분 쯤 오르니 헬기장. 경사각이 없는 잡목 숲 육산은 푹신해서 좋은데, 급경사 오르막엔 가뜩이나 무거운 신발에
진흙까지 묻어 무거움을 더하고, 발을 들어 앞으로 올려놓으면 미끄러지며 도로 뒤에 놓여진다.
땀이 줄줄... 등판 없는 옷은 없을까? 새로 만들어 특허라도 얻어 볼까? 봉우리 하나를 오르니 앞에 더 큰 봉우리가
버티고 있다. 어기적거리며 오르니 또 다른 봉우리가 안개 속으로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10:40. 갈미봉 (1210.5m). 키 작은 진달래 능선에 바람이 시원하다. 조금 더 앞에 국립공원 표시의 긴 막대가 꽂힌 바위 봉이
갈미봉보다 더 높아 뵌다. 잔뜩 흐린 날씨에 황사현상까지 겹쳐 전망이 안보여 답답하다.
가파른 내리막에 이웃사촌 엉덩방아, 70대 노부부님 재밌다고 박수치고 옆에서 깔깔대니 눈(雪)길이라 흙 안 묻었다고 응수를 한다.
앞에 있는 봉우리를 오르다 말고 뒤돌아본다. 저렇게 뾰족하니 가파를 수밖에. 다시 앞을 향해 오른다.
황사 바람에 먼 곳은 안 보이고 바람만 시원하니 땀이 나오는 대로 마른다.
11:10. 대봉(1263m). 이정표 표지목에 누군가가 못으로 긁듯 흐릿하게'대봉'이라 써 놓았다. 이런 낙서는 내겐 고마운 낙서.
우측으로 보이는 곳은 투구봉 이라며 리더가 가르쳐 준다. 뒷사람들 기다렸다 한마디 알려주고 앞으로 달음질치는 분께 땡큐,
나는 언제 다 알아 남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흐릿하게 눈에 덮힌 봉우리를 바라보며 좌측의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내려선다.
11:30. 달음재.(월음재). 신풍령 4.7km, 송계삼거리 6.3km라고 적힌 팻말에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월음령'이라 적어 놓았다.
이제 1/3쯤 왔을까? 1300m고지를 향해 다시 출발.
12:00. 함께하는 길동무님 감기기운인지 오늘따라 몹시 힘들어하며 자꾸 앉아서 쉬려하니 걱정된다. 갈 길은 아직 먼데.
오르막의 고얀 녀석들... 힘들어 죽겠다는데 나무 가지가 붙잡지를 않나, 모자를 빼앗지 않나,
눈(雪)길은 뒤로 보내려 하고, 진흙은 낙엽과 합세하여 주저앉게 하려고 한다.
12:20. 못봉(지봉, 1342.7m). 이정표 아래 놓여있는, 봉우리 이름과 높이를 표시한 대리석 조각을 들고 사진 찍힌다.
좀 무겁지만 들어다 어디 다른 곳에 놓아 보고 싶은 장난기가?... 이왕이면 튼튼하게 만들었으면, 명색이 국립공원인데...
대봉엔 이런 작은 조각조차 없으니, 작은 조각 하나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깃든다.
땀 식혀주던 시원한 바람이 고도가 높아지니 차갑다.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구름이 자꾸 얼굴을 쓰다듬어 벗었던 옷을 다시 입는다.
헬기장에서 직진으로 내려가는 이웃사촌을 불러 세운다. 먼저 내려간 분들이 좌측으로 갔기 때문이다.
앞이 안 보일정도의 구름 속, 이곳도 갈림길 방향에 조심해야 할 곳이다. 이번엔 내가 진흙 내리막에 가랑이 찢어질뻔 한다.
12:30. 지봉안(1298m). 송계사와 오수자골의 탈출로가 있다. 지도에는 싸리덤재로 나와 있다.
12:50. 횡경재(1350m). 지도엔 삼거리로만 표시되어 있고, 송계사로의 탈출로가 있다. 무슨 고개가 이렇게 높담?
배고프다 하니 조금 더 가서 먹자한다.
눈 길 오르막. 내 키 만큼 눈이 쌓인 능선도 있다. 옆으로 가다 발 한번 잘못 딛으니 무릎까지 빠진다.
구름 속을 걷고 있는 중인데 굵은 빗방울인지 우박인지 망설이며? 떨어진다.
13:30. 구름 속에서 신선처럼 바람을 등지고 앉아 점심 식사. 추워서 덜덜 떨린다. 봄이 왔다는게 거짓말 같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자니 춥고 그만두자니 덥고... 참으로 애매하다.
경사각 가파른 오르막 눈 길. 바닥에 얼굴까지 부딪치도록 미끄러지는데 돌멩이가 발을 잡아줘 겨우 멈춘다.
봉우리 하나를 올랐다 내려서며 아이젠 착용. 이렇게 편한 걸 꼭 소를 잃어야 외양간을 고친단 말인가.
오르고 내림이 덜한 평지 같은 짙은 안개 낀 나목 숲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아무생각 없이 하얗게 쌓인 눈길을 걷고 또 걷는다.
14:40. 송계사 삼거리(1420m) 도착.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다.
앞장섰던 대장님, 갈림길에서 또 기다려 주며 뭔가를 찾는다. ‘백암봉 이란 표지석이 보여야 하는데 안보인다’ 며.
산행하기 좋은 날씨 같으면서도 전망이 안 보이니 답답하다. 지난번 같으면 무룡산 넘어 남덕유산까지 다 보일 텐데, 아쉽다.
오전 중에 힘들어하시던 길동무님 몸이 많이 편해졌다며 여유를 보이니 다행이다.
신풍령에서 11km를 걸어왔다. 현재 다섯 시간 반, 식구들을 무주로 불러, 이곳에서 중봉을 넘어 향적봉으로가
리프트 타고 내려가 리조트에서 하루 쉬었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스친다, 힘들어 그런가?
미로 속의 바위 길을 내려서고 또 내려딛는다. 흐린 날씨가 얄밉다.
15:35. 동엽령(1320m)도착. 13.2km를 걸어왔고, 4.4km를 더 내려가야 한다.
2주 전엔 남쪽인 좌측 병곡리에서 이곳으로 올라왔는데, 오늘은 반대쪽 북쪽인 우측 안성 매표소로 내려딛는다.
내 이곳을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 몸은 힘들어하면서도 아쉬워하다니.
이렇게 아쉬움이 큰 걸 보면 육십령에서 남덕유산을 거쳐 월성치까지의 구간을 안 탄 것이 잘 한 것 같다.
이젠 덕유산 권에서 그 구간만 남았는데... 아껴두고 싶다.
내려딛으며 갑자기 오늘 팔공산에서 만나는 분들 생각이 난다. 그곳 날씨는 어땠을까? 많이 참석 했을까?
이곳에 안 왔으면 팔공산을 헤집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북쪽을 향해 내려딛으니 길은 빙판길. 잠깐 내려가다 만난 나무계단이 반갑다. 1km 쯤 내려서니 많은 양의 계곡물이
물안개를 일으키며 바위사이로 흐른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지고 물소리만 시끄러운 계곡을 계속 따라 내려딛는다.
16:30. 아이젠을 벗어 계곡물에 씻고 운치있는 계곡의 다리를 건너니 칠연폭포를 안내하는 문구가 있다.
다녀오려면 왕복 1km를 다시 올라갔다 내려와야 될 것 같아 포기하고 조금 내려딛으니
시퍼런 물 표면으로 흰 물줄기를 쏟아 붓는 작은 아름다운 문덕소 폭포가 있어 대신 위로 받는다.
17:15. 안성매표소 도착. 이곳에도 산불조심, 입산금지 현수막이 달려있다.
기간은 3월1일~5월15일, 설천봉~향적봉0.6km와 삼공매표소~향적봉8.5km은 개방한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8시간. (백두대간 13.2km +하산 길 4.4km)
2006. 3. 11(土). 백두대간 9구간을 종주하다.
(신풍령~갈미봉~대봉~월암재~못봉~횡경재~송계삼거리~동엽령-안성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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