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산행으로 작년 1월 시작한 종주 첫 날, 한 번 걸었던 곳을 토요산행에 참석하여 따뜻한 3월에 다시 한 번 걸어 본다.
05:30. 출발. 휴게소 도착 할 때까지 달콤한 잠으로의 여행. 08:00. 인삼랜드 휴게소 도착하여 따뜻한 국물로 아침식사.
산행경력도 없는 사람이 타의에 의해 아무것도 모르고 무모하게 따라나섰던 '백두대간 종주',
(지금도 잘 모르는 채 매력에 이끌려 다니고는 있지만...) 그 첫 구간이 오늘 걷는 10구간(신풍령~덕산재) 이다.
오늘 코스는 두 번째 걷는 산행이라도 대장님 설명과 주의 점을 귀담아 듣는다.
첫 날에 기록한 일기를 읽어보고 나설까 하다 정보도 부족하거니와 교만해 질까 두려워 일부러 그냥 나섰다.
09:30. 전북과 경남의 경계인 신풍령(빼재, 秀嶺. 930m) 도착. 차에서 내리니 청기와 단청의 팔각정자가 반기는데
쇠서를 두 개나 내어 지붕 무게가 무거워 보여 내 보기에는 안정감이 없다.
길을 내느라 대간 길이 잘려진 북쪽의 가파른 절개면으로 올라 계속되는 급경사 오르막을 헉헉대며
20분 쯤 오르면 잡목 숲 오솔길. 덩굴성 작은 나무가 여전히 얼굴을 긁고 지나간다.
가지 끝마다 봉긋봉긋 뽀얀 얼굴을 내밀며 터지는 큰 나무의 새순이 귀엽다.
10:30. 호절골재(1122m). 표지목이 없는 곳에서 가끔 눈에 띄는, 흰 종이에 지명을 써서 코팅하여 달아놓은
타 산악회의 표시지로 알게 되니 고맙다.
비탈면에 불쑥 솟은 멋진 바위를 바라본 후 싸리가지를 헤치며 오르고 경사가 급한 산죽사이를 헤치며 오르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짝을 찾는지 소리가 애절하게 들린다.
11:00. 삼봉산(1254m)정상. 1년 전 대간종주 첫 날 간단한 예식이라도 행하자며 너 댓 명이 각자 가지고 온 먹거리로
약식으로 제를 올리던 생각이 떠오른다. 1월의 상고대를 보며 탄성을 지르기도 했던 곳이다.
봉우리가 세 개라서 삼봉산이라 불린다는데 거창 산악회에서 세운 정상 표지석에는 ‘德裕 三峰山’이라 써있다.
산경표에는 삼봉산부터 무룡산까지를 덕유산이라 한다. 표지석 옆엔 삼각점이 있고
아래에는 작은 금속판에 새긴 ‘진달래’라는 詩가 눈길을 끈다. 죽은이의 넋을 기리는 시 이다.
진달래 밭에서
너만 생각 하였다.
.
.
진달래는 왜이리
지천으로 피어서
지천으로 피어서.
11:10. 사방으로의 조망이 좋은 다음 봉우리에 올라서니 처음 왔을 땐 눈에 안 들어오던 덕유산 스키장의
흰 슬로프가 아스라이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ㅎㅎㅎ
향적봉이라면 눈 쌓인 슬로프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느라 긴 시간 동안 고생한 일 뿐이고,
리조트 CC에서 라운딩한 일 밖에 없는데, 그리운 이를 만나거나 두고 온 일도 없건만 왜 이리 마음이 설렐까?
언젠가 백운산에서 고도표 같은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주체 할 수 없는 감흥이 일더니... 가는 곳마다 이러진 않겠지?
오른 쪽 앞에 가야산, 뒤로는 거창에서 올라 함양으로 내려섰던 기백산과 금원산이 가까이 있다는데 구별을 못 하겠다.
평화롭게 보이는 소사마을 건너에선 삼봉산, 대덕산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위험하여 눈이 많던 겨울엔 우회로를 이용했으나 조심조심 밧줄을 잡고 내려딛는다.
11:35. 능선이 끝 날 즈음 우측으로 절벽 같은 내리막은 그냥 내려서기도 위험한데 그늘이라 아직 눈과 얼음이 있어
아이젠을 준비 못한 사람들은 엉거주춤 걸음과 엉덩이로 기다시피하며 내려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여러 사람들이 엉덩방아를 몇 번씩 찧는가 하면 커다란 돌이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져 놀라기도 한다.
12:10. 한 동안을 내려서서 사유지인지 울타리가 있는 문을 통과하여 바로 우측 솔밭으로 들어서서 뒤에 오는 이를 기다리며
떡 간식을 먹는다. 젊은이가 미끄러질 때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 물병을 내가 주워 들고 먼저 내려왔기 때문이다.
솔밭에서 내려서면 넓은 밭이 펼쳐지고 임도도 나타나는데 주의해야 할 곳이다. 밭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다
리본이 많이 매달린 왼쪽 숲으로 다시 들어서고 또 다른 밭 가장자리와 낙엽송 숲이 우거진 임도로 내려서야 한다.
12:35. 소사고개(690m). 지난번엔 아스팔트길에서 좌측으로 가 작은 가게 옆의 ‘소사고개’라는 표지석을 본 후
산으로 올랐는데 이번엔 내려서서 곧장 길을 건너 그대로 산으로 오른다.
묘지 여러 기가 있는 사잇길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고 밭 가장자리로 간신히 난 길을 보니
밭을 넓히느라 산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 숲에서 나와 넓은 밭을 지나며 뒤로는 삼봉산, 앞으로는 삼도봉을 바라보며
기다란 비닐하우스가 있는 밭 가장자리로 걷다 다시 우측 산으로 오른다.
산 속의 능선만 따라 다니다 대간 길이 훼손된 여러 곳의 밭을 지나려니 좀 복잡하다.
13:20. 임도에서 산으로 들어서서 오르는 가파른 길. 삼봉산을 다 타고 내려왔건만 다시 600m를 올라서야 되는
고행의 길이다. 포만감으로 더 힘들까봐 먹지도 못하고 어울릴만한 말이 생각나질 않아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不殆)을 입 속으로 계속 중얼대며 한 발 한 발 올려놓는다.
올라보면 아니고, 올라보면 뒤에 숨어있는 봉우리들 때문에 속았던 기억이 생생하여 이번에는 속지 않으리라는 다짐에서다.
고도가 높아지니 햇볕도 강렬하고 바람도 세다. 가뜩이나 산에 다니며 얼굴 까매졌다는 인사를 듣는데...
이젠 데이트 신청도 안 들어 올 텐데 어쩌지? 햇빛과 바람에 얼굴 망가지는 생각 중인데 이건 또 뭐야?
덩굴 식물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간다. 약 올라 하는데 싸리나무도 옆에서 재미있다며 거든다.
키보다 큰 진달래에게 사열을 받으며 이 꽃봉오리가 필 즈음 좋은 친구와 진달래 능선을 함께 걷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은 이 할매에게 너무 야무진 꿈일까? 그렇지만 뭐 어때 세금도 안내는 생각일 뿐인데.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그 힘든 능선을 힘 안들이고 다 올랐으니 얼마나 좋은 생각인가.
13:50. 봉분이 다 무너져 내려 잔디만 반지르르한 묘지1기의 능선. 묘지 넓이만큼 나무가 없어 삼봉산 전체와
소사마을 등 오전 내내 걸었던 지역이 한 눈에 조망된다. 삼봉산에서 이쪽을 건너다보던 시원스런 조망과 같다.
14:00. 먼저 오른 일행은 삼도봉에서, 후미팀은 봉우리 오르다말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새침이님 싸온 상추쌈이 인기가 좋다.
14:35. 삼도봉(1248.7m, 일명 초점산). 경남 거창, 전북 무주, 경북 김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우측으로 김천 수도산과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는데 산은 구별 못하겠다.
정상에 갈림길이 있어 주의해야 할 곳이다. 표지석의 두께가 얇아 그런지 두 동강이 나 있어 반쪽을 안고 기념 남긴다.
대덕산의 앞 봉우리와 능선 길을 바라보며 좌측 리본이 많이 달린 쪽으로 내려가다 노랗게 피어있는 복수초 발견,
몇 년간 이른 봄만 되면 야생화를 찾아다니던 생각을 하며 반가운 마음에 렌즈를 들이대지만
광선이 안 맞아 좋은 결과는 못 얻는다. 산죽과 싸리가 많은 곳을 지나고 억새가 많은 능선에서
가을 못지않은 분위기를 잡으며 억새 속에 묻혀 기념 촬영들을 하느라 모두들 바쁘다.
15:30. 대덕산(1290m) 정상. 정상 아래에도 헬기장이 있고 정상에도 헬기장표시가 있다. 오석에다 흰 글씨로 새긴
표지석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잘 있고, 전북 쪽으로 긴 막대처럼 생긴 표지판이 덕유산을 배경으로 또 하나가 서있다.
대덕산에서 내려딛는 하산 길은 북쪽 사면이라 얼음이 있는가 하면, 얼었던 흙이 겉만 녹아 까만 부엽토의 진흙에 미끄러지기
십상이라 아예 아이젠을 착용하고 맘 편히 내려딛는다. 가파른 비탈길을 '之'字로 요리 틀고 조리 돌며 부지런히 내려선다.
16:00. 얼음골 약수터라고 간판은 있는데 마실 여건이 안 된다. 아래까지 뚝 떨어졌다 다시 오르는 솔밭 길은
육산이라 푹신해서 좋다. 높은 나뭇가지 끝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청아한 소리로 정적을 깬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 무릎에 신호는 약간 오지만 처음에 이곳을 지날 땐 패잔병 걸음걸이 같았는데
아직도 발걸음이 가벼운 걸 보면 컨디션이 좋은 모양이다.
다시 오르는 오르막엔 "아이고 다리야" 소리가 나온다. 바위가 있는 능선에 바람이 시원하고 나무사이 아래로
아스팔트 도로가 보인다. 오늘 구간은 오롯이 대간에서 시작과 끝을 맺으니 편하다.
16:40. 덕산재(640m) 도착. 대덕산 산삼이란 상호가 달린 하얀 건물에서 물을 얻어 신발에 묻은 흙을 대강 닦고,
총무님이 준비한 비빔밥과 라면을 게 눈 감추듯 없앤다. 오늘 처음 참석한 젊은 남자 두 명이 삼도봉에서 우측 길로
잘 못 갔다더니 아무 탈 없이 도착한다. 대덕산은 가보지도 못하고.
1200m가 넘는 봉우리 세 번을 넘는, 도상거리 13.9km의 길을 오늘도 해냈다.
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었던 다음구간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여전히 다음 구간을 또 기다려보며 차 안에서 잠에 빠진다.
오늘의 산행소요시간 7시간.
2006. 3.25(土). 백두대간 10구간을 두 번째 종주하다.
(신풍령~호절골재~삼봉산~암봉~소사고개~초점산~대덕산~덕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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