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들머리 날머리에서 대간 능선까지 오르고 내리는 시간이 많이 걸려 35, 36 두 구간을 한 번에 무박으로 종주 한단다.
건강을 위해 산을 찾고 있는 내게 무박은 아무래도 무리이므로 망설이다 한 구간도 빠진 일이 없어 할 수없이 가방을 챙긴다.
처음부터 당일 산행을 목표로 다니다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무박 산행 이다.
지리산 산행 때는 혼자 오전에 비행기로 출발하여 들머리 근처에 가서 자고 새벽에 일행을 만나 29.7km, 13시간 반을 걸었고,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 때는 무박으로 14시간을 걷고 와 사흘을 못 움직일 정도로 힘들어 했다.
전날 8월 14일) 22:00 출발. 평소에 대간 종주를 함께하던 일행들 십 여 명이 안 보인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 속에 강원도의 험준한 산길 31km를 하루에 걷는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구간을 나누어 산행하자는 제의가 무산되니 모두들 포기 한 모양이다.
12:15. 횡성 휴게소. 야심한 시각이니 잘 수 있게 그냥 지나치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웅성대니 잠이 다 도망갔다.
01:45. 동해 휴게소에서 누룽지 탕 야식. 밤에 먹던 습관이 없어 잘 안 먹힌다.
03:00. 댓재 도착. 차에서 내리니 바람에 안개가 날리고 반팔의 티셔츠가 춥다. 7월 초 33구간(댓재~황장산~환선봉) 때 와서
역 산행을 했던 곳이지만 칠흑 같은 어둔 밤이라 아무것도 안보이고 대간 종주 꾼 인지 몇 명이 텐트 안과 침낭 속에서 자고 있다.
빗물에 씻겨 흙은 없어지고 자갈만 남은 돌길을 랜턴 불빛에 의지하며 앞 사람을 따른다.
줄지어 늘어서서 오르는 모습이 반딧불이 같다. 970m봉우리를 올랐다가 올라선 만큼 힘들게 내려딛고 다시 오른다.
아름드리 신갈 나무가 곳곳에 있는 능선을 반경 2~3m의 불빛만 바라보며 앞사람을 쫓는다. 바람이 시원한 것을 보니 능선 같다.
03:25. 햇댓등. 사각기둥과 팻말이 있지만 지형은 보이지가 않아 시각적 즐거움이 없어 아쉽다. 무박산행의 단점이기도 하다.
04:15. 1031m 봉우리. 삼각점이 있는 전망대. 날이 환할 땐 바다까지 보이는 조망이 좋겠다.
무리를 이루고 있는 동해시의 불빛만 멀리 보일뿐 주위는 여전히 어둡다.
04:40. 통골재. 수풀만 무성하고 바람 한 점 없다.
잠을 못 자 그럴까 머리 띠를 꽉 묶어 그럴까? 아니면 랜턴 무게 때문에? 머리가 무겁고 비몽 사몽간에 걷고 있는 느낌이다.
05:00. 계속되는 돌길 가파른 오르막. 나무가 우거져 그런지 여전히 바람이 없다. 쏟아지는 땀은 주체를 할 수가 없다.
자동차도 2시간 달리면 쉬어야 한다며 잠시 멈추고 목을 축인다. 숲 속이라 아직은 어둡다.
05:15. 통골재 0.9km, 두타산 1.3km 이정표. 가파른 오르막은 잠시 끝나고 해묵은 신갈나무 숲 위로 하늘이 밝아 온다.
이시간이면 새가 우짖을 텐데 모두 피서를 갔는지 새 소리가 안 들린다. 꽃들이 보이기 시작하나 빛이 없어 그대로 지나친다.
랜턴을 벗어 가방에 넣는다. 두타산 1km 라는 표지를 본지가 한참 지났는데 1km가 왜 이리 멀지?
동자꽃, 이질풀, 참취꽃.. 오를수록 꽃의 종류와 숫자가 많지만 빛이 부족해 담지를 못한다.
05:45. 어둡던 수목의 공간이 빠꼼히 열리며 하늘이 보이기에 바위로 올라서니 그동안 검게 보이던 나뭇잎이 녹색으로 변하고,
능선줄기 뒤로 푸른 청옥산이 우뚝 서 있다. 좌측으로 뻗어 내린 힘찬 산줄기들 사이의 운해가 그림처럼 펼쳐있다.
동쪽하늘의 가느다란 구름이 붉게 물들며 나무들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05:50. 두타산(1352.7m) 정상. Sky line을 이루는 나무들 뒤 구름 속에서 해가 솟아오른다.
장엄한 일출장면은 아니지만 높은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본 일이 많지 않아 새로운 느낌이다.
날이 밝으니 헬기장 주변의 여러 가지 꽃들은 군락을 이루며 천상화원으로 변한다.
작년 여름 지리산에서 만났던 꽃들과 같은 모습이다. 예쁜 모습들을 담고 싶지만 갈 길이 바빠 작별하고 돌아선다.
밧줄을 잡으며 급경사 돌길을 내려딛는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해가 금방 쳐다 볼 수 없게 눈부시니 오늘은 또
얼마나 뜨겁게 내리쬘까? 600m를 내려서니 우측으론 골짜기를 이루는데 낭떠러지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며 우측 나무사이로 보니 날카롭게 생긴 능선을 거느린 거대한 산줄기가 바위를 품은 채
거만하게 Sky line을 그리고 있다. 오늘 걸어야 한 주 능선이다. 06:30. 선두는 ‘청옥산 정상도착’ 이란 연락이 후미대장에게 온다.
06:40. 박달재. 고개라 하지만 산이 험준하니 결코 낮지가 않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지만 박달계곡을 경유하여
무릉계곡 관리소(길이 약 5.6km)로 하산 할 수 있는 표시가 되어있다. 떡과 얼음물로 초벌요기.
06:55. 문바위재. 금이 가고 깨어지고, 이끼가 잔뜩 낀 거대한 바위 군이다. 번천으로 하산 할 수 있는 등산로 표시가 있다.
급경사 오르막을 밧줄을 잡고 오른다. 포도로 cal를 보충하고 꽃 사진 찍으며 다리를 쉬게 한다.
동자꽃, 잔대꽃, 며느리밥풀, 이질풀, 참취꽃... 긴 오르막에 꽃들이 참 많다.
07:40. 靑玉山(1403.7m) 정상. 선두와의 차이가 1시간 이다. 분홍색 꽃잎과 초록색 잎에 이슬방울이 함초롬히 맺힌
둥근 이질풀이 넓게 군림하며 절정을 이루고 있다.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방울들이 유난히 아름답다.
학등을 경유하여 무릉계곡 관리사무소로 하산하는 길은 약 6.7km로 표시되어 있다. 힘들게 오른 만큼
내리막도 급경사라 힘들다. 멧돼지인지 짐승이 파헤친 자국이 여기 저기 엄청 많은 걸 보고 산이 깊은 걸 실감한다.
08:20. 蓮七星領(연칠성령). 예전에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難出領으로 불렸다 한다.
이 난출령 정상을 望京臺라 하는데 인조 원년 명재상 택당 이 식(澤堂李植)이 중봉산 단교암에 은퇴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여 망경한 곳이라 전해진다. 사원터를 경유하여 무릉계곡 관리사무소로 하산 길이 6.7km로 적혀있다.
34구간은 이곳에서 하산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무박산행이니 다음 구간까지 더 가야 한다.
배가 고파 아침밥을 먹자하니 고적대 오르기 힘들어 안 된단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바위산 줄기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오르니 전망 좋은 바위 옆에 커다랗고 싱싱한
구상나무 여러 그루가 맑은 공기 속에서 맘껏 살찌우고 있다. 뒤돌아 뾰족한 청옥산을 보니 가파를 수밖에 없게 생겼다.
급경사 바위산을 오르니 바위 틈에 어느새 쑥부쟁이가 피어 가을이 앞에 와 있음을 알린다. 구절초도 곧 보이겠다.
바위가 많은 봉우리의 바위도 일품이지만 조망 또한 좋다. 고적대려니 생각하고 좁은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서고,
밧줄을 잡고 올라 보니 앞에 봉우리가 또 있다. 멋진 비경들을 감상하고 다시 하늘을 향해 오른다.
(35구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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