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생진 - 바다에 오는 이유, 벌레 먹은 나뭇잎, 구름, 바다로 가는 길.

opal* 2007. 8. 17. 15:22

 

벌레 먹은 나뭇잎

                            

                                  이 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의 잎에 벌레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릅답다

 

 

 

구 름

 

                           이 생진

 

열 두시 넘어서야

구름이 모여 든다

어디 있다가 이제 오나

구름은 말 않는 자유

북한산 머리와

오봉산 머리에도 구름

만경대를 넘어가는

조용한 자유 

가난한 이삿짐 같다

 

 

바다로 가는 길

 

                                    이 생진

 

돈을 모았다

바다를 보러간다

상인들이 보면

흉 볼 것 같아서

숨어서 간다

 

 

 

바다에 오는 이유

                        

                           이 생진

 

누구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모두 버리러 왔다

몇 점의 가구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인장과

내 나이와 이름을 버리고

나도 물처럼

떠있고 싶어서 왔다

 

 

이생진(李生珍)(1929∼   ) 충남 서산 출생
『현대문학』을 통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
윤동주 문학상 수상/ 1996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음(2001)
상화(尙火)시인상 수상(2002년)

<시집>
산토끼/1955

 

녹벽/1956
동굴화/1957
이발사/1958
나의 부재/1963
바다에 오는 理由/1972
自己/1975
그리운 바다 城山浦/1978
山에 오는 理由/1984
섬에 오는 이유/1987
시인의 사랑/1987
나를 버리고/1988
내 울음은 노래가 아니다/1990
섬마다 그리움이/1992
불행한 데가 닮았다/1994
서울 북한산/1994
동백꽃 피거든 홍도로 오라/1995
먼 섬에 가고 싶다/1995
일요일에 아름다운 여자/1997
하늘에 있는 섬/1997
거문도/1998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1999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2000
혼자 사는 어머니/2001
개미와 베짱이/2001

<시선집>
詩人과 갈매기/1999

<시화집>
제주, 그리고 오름(시:이생진, 그림:임현자)/2002

<수필집 및 편저>
아름다운 天才들/1962
나는 나의 길로 가련다/1963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1997
걸어다니는 물고기/2000
시화전/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