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km, 목포에서 흑산도까지의 거리다. 여객선과 달리 쾌속정은 속도에 따라 흔들림도 심하다.
선실 밖엘 나올 수 없어 소금 물이 튄 유리창을 통해 찍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도초도와 비금도를 이어주는 서남문 대교, 937m. 우리나라 연도교 중 가장 길다.
비금도 대신 도초도를 경유한다.
높은 파고에 따라 배의 요동도 심하다.
흑산도 입항
목포에서 쾌속정으로 편도 2 시간 20분 소요.
↓흑산도 일주
우리나라 서 남단에 있는 흑산도 25.6km의 일주도로를 따라 나섰다.
엄밀히 말하면 흑산도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가거도'가 최 서남단이 된다. (동으론 독도, 남으론 '마라도')
예리항에서 우측으로 가면 배낭기미 해수욕장을 거쳐 상라산으로. 배낭기미 앞에는 '옥섬'이라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한국의 '알카트라즈'(샌프란시스코 근처 섬)라 불리는 이곳은 조선시대 수군의 감옥으로 활용. 죄수들이 머물던
2m깊이의 동굴, 취사 바위, 식량을 얻기위해 낚시를 하던 거북머리 바위가 남아 있다.
읍동 마을에서 상라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일주 도로의 백미.
구비 구비 열 두 구비를 돌아 오르는 용꼬리 고개. 우리나라에 몇 개 안되는 도로이다. (정령치에도 있음)
용머리 고개에 오르면 노래비와 전망대가 있고 구절양장의 고갯길이 내려다 보인다. 동으로는 예리항, 서쪽으론 홍도가 보인다.
노래비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가수 이 미자씨의 노래가 쉴 새 없이 계속해서 흘러 나온다.
♪ ♬ ~~~ '남 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 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 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
검게 타버린 아가씨들은 뭍을 향해 떠났어도 비경만은 그대로 남아 이방인을 반긴다.
멀리 서쪽으로 보이는 홍도가 반갑다.
우측으로 오르면 상라산 정상. 정상에서 바라보는 고즈녁한 섬 풍경, 사방으로의 전망이 백미이다.
산행 후 일몰을 볼까하여 기다리다 구름이 모여들어 볼 수가 없어 그대로 하산 했다.
마리 마을의 바위에 뚤린 구멍이 처음 얼핏 보기엔 한반도 모습과 똑 같으나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찍으려니 모양새가 제대로 안 나온다.
마리 마을에서 비리 마을로 가는길, 2004년에 개통된 '하늘 다리'
환경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약 480m의 도로 구간을 한 쪽 면에만 지지대를 세웠다.도로 벽면에는 흑산도 섬의 지도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차에서 내려 약수 한 모금을 마시니, 대장도와 소장도가 바로 앞에 펼쳐져 아릅답다.
전복과 우럭 양식을 하는 비리마을을 지나면 비포장 도로가 이어지며 덜컹댄다.
일주용 택시는 모두 바퀴가 큰 후륜구동 이다.
낙타등 처럼 치솟은 문암산(405m)이 보인다.
홍도 조망,
한다령을 넘어 모래미(사촌)에 닿을 때까지 비포장 도로를 덜컹대고, 뽀얀 먼지를 날린다.
산에 활엽 상록수가 많아(95%) 늘 푸르러 멀리서 보면 검게 보여 '흑산도'라 불린단다.
이 중 동백이 22%, 후박, 나도 밤나무등이 많다. 초봄에는 동백꽃이 장관이라고 2월 하순에 다시 오란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玆山魚譜' 전망대.
많은 어선과 '뗏마'(노를 저어 타고 다니는 뗏목)가 떠 있는 포구이다.
신유박해에 연루되었던 손암 정약전(1758~1816)이 13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모래미(사리) 마을.
정약전은 이곳에서 흑산도 연안에 서식하는 어류, 패류, 조류 등 227종에 관한 이름과 분포, 생태 등을기록한
'자산 어보'를 집필했다. '자산'은 정약전이 흑산도라는 이름이 어둡고 처량하다고 해서 흑산도 대신 부르던 이름이다.
모래미 마을 양지바른 언덕에 정약전이 머물던 사촌(사리) 서당, 복성재를 복원해 놓았으나 멀리서 보기에도 관리가
소홀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렌즈로 당겨보니 돌 담안에 있는 건물 지붕에 풀이 수북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잡힌다.
성당과 돌담사이의 고샅길이 아름답다 하나 오후에 산행이 기다리고 있어 가 볼 수가 없어 아쉽게 지나쳤다.
흑산도에서 바다를 접하지 않은 오지 마을. 뒤로 문암산 정상의 군사 시설물이 보인다.
마을 위로 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상수원 식수용)
이곳에도 구멍 뚫린 바위가...
해안선을 따라 구비 구비 이어진 일주 도로가 푸른 빛 숲을 가르며 이어지고 폭이 좁고 아담한 샛게 해수욕장을 지난다.
오후에 산행을 해야 하는데 배가 고파 온다.
1876년(고종13년)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다 흑산도로 유배 온 학자이며 의병장이기도 했던 면암 최익현 선생 친필
('기봉강산 홍무일월')이 새겨진 손바닥 바위, 천촌리 유허지는 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택시 기사한테 들으니 Taxi를 이용하여 일주를 하면 70리를 구석 구석 돌아 볼 수 있단다.
Bus 일주 보다 세 배의 거리를 요금은 \6萬 , 여섯 명까지 태워 준단다.
동해안에서만 잡히던 오징어가 요즈음은 서해에서도 많이 잡혀 값이 싸졌다.
자주 오지 않는 뜨내기 손님들이 많아 그럴까?
숙소와 음식점에서의 서비스는 친절치 못하다는 평을 듣는다.
자산어보 (玆山魚譜)
그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난뒤 1801년 천주교 교세가 확장되자 천주교들을 탄압하는 신유박해사건이 일어났다
'일어나 밝은 별을 보니 다가올 이별 더욱 슬퍼 망현히 마주보며 할말을 잊고 솟구치는 슬픔에 목이 멘다.
정약용은 서쪽으로 가는 형을 보며 애통한 심정을 이렇게 읋었다
외딴 섬에서의 귀양살이 였지만 정약전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유배지에 서로 서신을 통해서 형제애를 나누었는데 편지 내용가운데 보신탕 요리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정약용 선생이 답장에 "섬 안에 산개가 천지로 널려 있을 텐데 무슨 소리냐, 만약 자기가 그곳에 있다면 5일에 한번씩은
그리고 정약전 선생이 흑산도 사리마을에서 서당을 차렸을 때 정약용 선생이 친필로 사촌서당기를 지어서 보내기도.
흑산도 사리마을 유적지에 정약전 선생이 살았다는 복성재 서당이 복원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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