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

92.7km 뱃길과 흑산도 일주

opal* 2007. 9. 8. 12:52

 

92.7km, 목포에서 흑산도까지의 거리다.  여객선과 달리  쾌속정은 속도에 따라 흔들림도 심하다. 

선실 밖엘 나올 수 없어 소금 물이 튄 유리창을 통해 찍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도초도와 비금도를 이어주는 서남문 대교, 937m. 우리나라 연도교 중 가장 길다.



비금도 대신 도초도를 경유한다.














높은 파고에 따라 배의 요동도 심하다.

 









흑산도 입항

  





목포에서 쾌속정으로 편도 2 시간 20분 소요.


 

↓흑산도 일주 

우리나라 서 남단에 있는 흑산도 25.6km의 일주도로를  따라 나섰다. 

엄밀히 말하면 흑산도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가거도'가  최 서남단이 된다. (동으론 독도, 남으론 '마라도')

 

예리항에서 우측으로 가면 배낭기미 해수욕장을 거쳐 상라산으로. 배낭기미 앞에는 '옥섬'이라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한국의 '알카트라즈'(샌프란시스코 근처 섬)라 불리는 이곳은 조선시대 수군의 감옥으로 활용. 죄수들이 머물던

2m깊이의 동굴, 취사 바위, 식량을 얻기위해 낚시를 하던 거북머리 바위가 남아 있다.

 

 

읍동 마을에서 상라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일주 도로의 백미.

구비 구비 열 두 구비를 돌아 오르는 용꼬리 고개. 우리나라에 몇 개 안되는 도로이다. (정령치에도 있음)

용머리 고개에 오르면 노래비와 전망대가 있고 구절양장의 고갯길이 내려다 보인다. 동으로는 예리항, 서쪽으론 홍도가 보인다.


노래비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가수 이 미자씨의 노래가 쉴 새 없이 계속해서 흘러 나온다.

 

 ♪  ♬ ~~~  '남 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 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 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

 

 검게 타버린 아가씨들은 뭍을 향해 떠났어도  비경만은 그대로 남아 이방인을 반긴다.

멀리 서쪽으로 보이는 홍도가 반갑다.

우측으로 오르면 상라산 정상. 정상에서 바라보는 고즈녁한 섬 풍경,  사방으로의 전망이 백미이다.

산행 후 일몰을 볼까하여 기다리다 구름이 모여들어 볼 수가 없어 그대로 하산 했다.




마리 마을의 바위에 뚤린 구멍이  처음 얼핏 보기엔 한반도 모습과 똑 같으나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찍으려니 모양새가 제대로 안 나온다.

 



마리 마을에서 비리 마을로 가는길, 2004년에 개통된 '하늘 다리'

환경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약 480m의 도로 구간을 한 쪽 면에만 지지대를 세웠다.도로 벽면에는 흑산도 섬의 지도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차에서 내려 약수 한 모금을 마시니, 대장도와 소장도가 바로 앞에 펼쳐져 아릅답다.



전복과 우럭 양식을 하는 비리마을을 지나면 비포장 도로가 이어지며  덜컹댄다.

일주용 택시는 모두 바퀴가 큰 후륜구동 이다.

 

낙타등 처럼 치솟은 문암산(405m)이 보인다.


홍도 조망,


한다령을 넘어 모래미(사촌)에 닿을 때까지 비포장 도로를 덜컹대고, 뽀얀 먼지를 날린다.



산에 활엽 상록수가 많아(95%)  늘 푸르러 멀리서 보면 검게 보여 '흑산도'라 불린단다.

이 중 동백이 22%, 후박, 나도 밤나무등이 많다. 초봄에는 동백꽃이 장관이라고 2월 하순에 다시 오란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玆山魚譜' 전망대.

 많은 어선과 '뗏마'(노를 저어 타고 다니는 뗏목)가 떠 있는 포구이다.

 

 

 


신유박해에 연루되었던 손암 정약전(1758~1816)이 13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모래미(사리) 마을.

정약전은 이곳에서 흑산도 연안에 서식하는 어류, 패류, 조류 등 227종에 관한 이름과 분포, 생태 등을기록한

 '자산 어보'를 집필했다. '자산'은 정약전이 흑산도라는 이름이 어둡고 처량하다고 해서 흑산도 대신 부르던 이름이다.

 

모래미 마을 양지바른 언덕에 정약전이 머물던 사촌(사리) 서당, 복성재를  복원해 놓았으나 멀리서 보기에도 관리가 

소홀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렌즈로 당겨보니 돌 담안에 있는 건물 지붕에 풀이 수북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잡힌다.

성당과 돌담사이의 고샅길이 아름답다 하나 오후에 산행이 기다리고 있어 가 볼 수가 없어 아쉽게 지나쳤다. 

  

 

흑산도에서 바다를 접하지 않은 오지 마을. 뒤로 문암산 정상의 군사 시설물이 보인다.
 


마을 위로 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상수원 식수용)

 

이곳에도 구멍 뚫린 바위가...

 

해안선을 따라 구비 구비 이어진 일주 도로가 푸른 빛 숲을 가르며 이어지고 폭이 좁고 아담한 샛게 해수욕장을 지난다.

오후에 산행을 해야 하는데 배가 고파 온다.

 

1876년(고종13년)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다 흑산도로 유배 온 학자이며 의병장이기도 했던 면암 최익현 선생 친필

('기봉강산 홍무일월')이 새겨진 손바닥 바위, 천촌리 유허지는 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택시 기사한테 들으니 Taxi를 이용하여 일주를 하면 70리를 구석 구석 돌아 볼 수 있단다.  

Bus 일주 보다 세 배의 거리를 요금은 \6萬 ,  여섯 명까지 태워 준단다.

 

동해안에서만 잡히던 오징어가 요즈음은 서해에서도 많이 잡혀 값이 싸졌다.



자주 오지 않는 뜨내기 손님들이 많아 그럴까?

숙소와 음식점에서의 서비스는 친절치 못하다는 평을 듣는다.



 

 

자산어보 (玆山魚譜)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전(丁若銓 : 1758~1816)이 지은 수산 동식물 연구서.3권 1책. 필사본. 저자는 실학자 약용(若鏞)의 형으로
천주교를 믿어 1801년(순조 1) 신유사옥 때 흑산도(黑山島)로 귀양갔었다.

 

 

1814년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하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헌을 참조하여 이 책을 만들었다.

 

어류(魚類)·패류(貝類)·조류(藻類) 및 해금충수류(海禽蟲獸類) 등 수산 동식물의 분포형태, 습성 등이 실려 있다.

 

흑산도의 '흑'을 '자'라고도 한 데서 책 이름이 나왔다.

 

인류(麟類)·무린류(無麟類)·개류(介類)·잡류(雜類)로 구분하여 권1에는 인류를, 권2에는 무린류·개류를, 권3에는 잡류를 수록했다.

 

인류로 분류된 것은 면어(鮸魚 : 민어)·치어(鯔魚 : 숭어)·노어(鱸魚 : 농어)·강항어(强項魚 : 도미)·벽문어(碧紋魚 : 고등어) 등 70여 종(種)이며, 무린류는 분어(鱝魚 : 홍어)·돈어(魨魚 : 복어)·오적어(烏賊魚 : 오징어) 등 40여 종, 개류는 해구(海龜 : 바다거북)·해(蟹 : 게)·합(蛤 : 조개) 등 60여 종이다.

 

 

 

잡류는 물고기는 아니나 바다에 사는 동식물을 해충(海蟲)·해금(海禽)·해수(海獸)·해초(海草) 등 4항목으로 구분했다.

 

각각의 종류마다 속명·형태·습성·맛·이용법·어구(漁具)·어법(漁法) 등을 기록하고, 비슷한 종류[近綠種]로 볼 수 있는 것들을 따로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산학 연구서로 평가된다. 규장각·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1784년 정약전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을 천주교를 받아들인다

 

어지러운 정세에 회의를 품은 그는 서학과 천주교에 조예가 깊은 처남 이벽 등과 함께 선교 활동에 힘썼다
그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난뒤 1801년 천주교 교세가 확장되자 천주교들을  탄압하는 신유박해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동생 정약종은 순교했고 정약전과 정약용도 각각 흑산도와 강진에 유배되었다

'일어나 밝은 별을 보니 다가올 이별 더욱 슬퍼 망현히 마주보며 할말을 잊고 솟구치는 슬픔에 목이 멘다.

 

 멀고먼 흑산도는 바다와 하늘이 잇닿고 형님이 어찌 그곳에서 살아 갈수 있으리요'
정약용은 서쪽으로 가는 형을 보며 애통한 심정을 이렇게 읋었다

외딴 섬에서의 귀양살이 였지만 정약전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글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 대신 글을 써주고 복성재 라는 서재를 지어 섬마을 아이들을 가르쳤다

 

 

 

 정약전 선생의 유배생활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

 

정약전 선생은 강진에 유배와 있는 동생 정약용 선생을 매우 그리워했다. 다산 정약용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다산 초당에 가면 옆쪽에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그곳은 다산 선생이 흑산에 가있는 형을 그리워하던 곳이라고.
두 사람은 유배지에 서로 서신을 통해서 형제애를 나누었는데 편지 내용가운데 보신탕 요리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정약전 선생이 편지를 보내면서 "섬에 있다보니 고기를 전혀 먹지 못해 몸이 허약해진다고 하니까",
정약용 선생이 답장에 "섬 안에 산개가 천지로 널려 있을 텐데 무슨 소리냐, 만약 자기가 그곳에 있다면 5일에 한번씩은
보신탕을 해먹겠다"면서 직접 요리하는 방법을 소상하게 적어서 보낸 내용이 남겨있다.

 


그리고 정약전 선생이 흑산도 사리마을에서 서당을 차렸을 때 정약용 선생이 친필로 사촌서당기를 지어서 보내기도.

 

또한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동생이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서 자신을 만나러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자

 

동생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우이도로 다시 되돌아 갈려고 하는데, 정약전 선생을 보내지 않으려는 흑산도 주민들 때문에
쉽게 우이도로 되돌아오지 못했다고. 결국 선생이 동생과의 사정을 마을 주민들에게 이해를 구한 후에 겨우
우이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흑산도 사리마을 유적지에 정약전 선생이 살았다는 복성재 서당이 복원되어 있고,

 

예리마을 선착장 인근에는 정약전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자산문화도서관이 건립되어 있다. (펌)

 

 168

'섬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만섬 홍어와 빨간섬으로 옮겨가기  (0) 2007.09.09
흑산도 칠락산, 상라산 산행  (0) 2007.09.08
연화도 산행  (0) 2007.08.16
욕지도 drive  (0) 2007.08.16
두 번째 욕지도 산행  (0) 2007.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