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전쟁 기억과 오십견

opal* 2009. 6. 25. 12:50

 

오늘은 6.25 한국 전쟁  59주년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된 6월 25일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1.4 후퇴 때 생각만 난다.

해가 바뀐 겨울 1.4 후퇴 때 겨우 다섯 돐이 되어 그 전의 일들은 아무것도 생각 나는게 없으니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인지도 모른다.  

 

한 겨울이라 그런지 밖은 어두워 아직 창도 안 밝은 새벽인데 어머니께서 깨우신다.

"얼른 일어 나거라, 중공군이 또 쳐들어 왔댄다."

"졸려요, 더 자고 싶어요."

"안된다, 또 피난 가야하니 어서 어서 일어 나거라"  덮고 자던 솜 이불을 걷어 내시며 아래가 터진 하얀 누비 솜바지를 입혀주는 대로 

엄마의 팔을 잡고 얼굴 마주보며 바지 가랑이에 양발을 끼우니 뒤에서 어깨끈을 매어 주신다. 

 

중공군이 뭔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서두르시는 대로 따라 나섰다. 어린 동생이 있어 업어 달라지도 못하고 어른들 틈에 끼어

걸어 갔는지 마차를 타고 갔는지는 기억이 확실치 않다.

 

외가 동네는 우리 마을에서 2~3 십리 거리의 시골동네로 전쟁 피해가 별로 없는 곳, 외가 건너방에 고모를 포함한 우리 식구만

둥근 소반 앞에 따로 앉아 밥을 먹으면  외삼촌께서 커다란 이불을 길게 반으로 두껍게 접어 소반 둘레에 앉은 우리 식구를

둥글게 둘러 주시곤 했다. 행여나 포탄이 날아와도 직접 맞지않게 준비해 주시는 것이다.

어쩌다 전투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부엌에 계신 외숙모랑 엄마 들으라고 마루에서 큰 소리로 외치신다.

"얘들아 쌕쌔기 떴다, 빨리 빨리 안으로 들어 오너라."

 

살을 에이는 북풍한설 찬 바람과 눈쌓인 추운 겨울날씨, 어머니께서는 한 살짜리 동생을 포대기로 둘러 업고 흰 고무신으로 

눈에 빠져 언 발을 동동거리며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소식을 전해 주셨다. 어느 날은 흰눈 쌓인 산골에서 

하얀 여우 서너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주위를 뱅뱅돌아 여우한테 홀리기도 하셨단다.

예전에 웬 여우가 그리 많았는지, 여우를 잡아 그 털로 목도리를 만들어 목에 두르고 다니기도 했다.

할머니 저고리 위에 덧입는 배자와 팔에 끼우는 토시에는 토끼털을 이용 했었다.

'여우는 사람 주위를 뱅뱅돌며 어지럽게 만들어 사람이 쓰러지면 물고 간다'는 옛날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엄마가 당한 실제 애기는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 오싹 했었다. 

 

아버지는 직장일로 바쁘시고, 어린 삼촌들은 이리저리 뿔뿔이 피신시키고 할머니 혼자 집을 지키셨다.

어느 하루는 막내 삼촌이 집에 있는데 마을에 중공군이 왔었단다. 막내 삼촌은 유복자로 오빠보다 겨우 다섯 살 위 어린 중학생, 

할머니께서 얼른 피신하라며 일러주셔서 재빠르게 옆집 뒷간(예전 바깥 마당 끝에 있는 화장실)으로 들어가

잿더미 속으로 뛰어 들어가셨단다. (옛날 시골에선 밥하고 국 끓이고, 물 데우고, 소 죽 쑤고... 등 모든 것을 나무나 볏집을 태워

불을 사용했다. 다 타고 남은 재는 넓은 화장실 한편에 모아 두었다가 거름으로 사용했다. 재에는 카리 성분이 많기 때문에

열매 달리는 채소에 사용하면 최고로 좋은 유기질 비료다. 요즘 시대의 화악 비료는 흙을 산성화 시켜 토양이 나빠지지만 

예전의 유기질 농사법은 땅을 기름지게 만들었었다.)

'미세한 먼지같은 잿가루가 쌓인 잿더미 속에서 삼촌은 어떻게 숨을 쉬었을까'를 생각하면 아직도 궁금해진다.  

 

뒤란 커다란 호두나무 아래에 땅 속으로 방공호를 넓게 파놓고 그 속에 식구들 피신시키며 생활하신 할머니,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 모두 모이니 몇 가지 남은 세간들과 겨울 옷가지 뒤적이시며 아버지 붙잡고 울으셨던 할머니, 

"고생이야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한 것이고  전쟁 통에 재물은 빼앗겼어도 식구들은 상처 하나 없이 다친사람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좋아 하시던 할머니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전쟁 기념일에 옛날 생각이 나 잠시 끼적...

 ***   ***   ***

오늘의 기상 상태

<남부 일부 지역에 이틀째 폭염주의보가 이어지고 가운데  오늘도 전국적으로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지역별 낮 최고 기온은 경북 영덕이 올해 들어 가장 높은 36.1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합천 35.3도,
대구 35.2도,

전주 33.2도, 동해 32.1도, 서울 29.7도 등 평년기온을 2도에서 10도 가량 웃돌았습니다.
기상청은 남서쪽으로부터 따뜻한 공기가 유입된 데다 맑은 날씨에 일사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동해안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기

온이 크게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열대야가 나타난 동해안 지역은
오늘 밤에도 기온이 높게 나타나겠다고 말하고

건강 관리에 각별히 유의 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더위는 주말까지 이어지다 다음 주 초반, 전국에 장맛비가 내리면서

잠시 주춤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   ***   ***  

 

석달 전부터 왼쪽 어깨가 서서히 아파오더니 이젠 팔이 올라가질 않고 뒤로 젖힐 수 없게 아프다. 

왼팔을 뒤로 들어 등에 대면 오른손과 마주 잡을 수 있던 손인데... 

 큰일 났다, 3년 전에도  봄부터 오른팔이 아파 정형외과, 한방병원, 지압 받으러 다녀도 별 효과 없이 고생만 했었다.   

 

병은 자랑하라는 옛말이 있다. 지인에게 얘기하니 먼 곳에 잘 고치는 사람이 있단다. 그녀 남편이 팔이 아파 갔다가 

한 번에 고쳤다는 말에 귀가 번쩍, 그런데 병원이 아니고 어깨근육을 주물러 뭉친 곳을 풀어준단다. 

전화 걸어 증세를 얘기하니 오십견임에 틀림 없단다. 그러나 한 번에 낫는다는 보장은 없고 상태에 따라 일년이 걸릴 수도 있단다.

 

일단 예약 하겠다 하니 두 달 후인 8월 중순에 날자가 잡힌다. 그때까지 아파서 어떻게 참지? 일상 생활하기에도 많이 불편한데...

 3년 전의 경험으로 봐서는 오십견은 운동 부족에서 오는 병이다. 걷기는 다리 운동이라 팔 사용량이 적은 요즘

산행 땐 일부러 스틱 두 개를 사용한다. 3년 전, 병원으로 어디로 다녀도 거의 1년 정도 아픈 대로 지내다 설악산 용아장성 산행을 떠났다.

 

봉정암에서 멀지 않은 높은 직벽 바위를 로프 잡고 오르다 발이 미끄러지며 대롱대롱 잠시 허공에 매달렸다.

용아장성 산행 후 사흘을 아파했다, 공룡능선 탈 때도 그랬고 무박 산행일 경우엔 보통 사흘 정도 아파한다.

그 아픔이 사라지며 안 올라가던 팔이 번쩍 들어 올려져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치료가 되었다.

정형외과 다니며 물리치료, 뼈주사,  한방병원에서 뜸뜨고 침맞고, 반포까지 먼 거리에 비싼 값을 지불하며

지압을 받으러 다녀도 얼른 낫지 않던 팔이다.  

 

두달 전 주작산 산행 때 밧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구간이 많아 또 매달리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무의식 중에 매달려지면 모를까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는 아파서 도저히 매달려 지지가 않는다.

 

아픈 강도에 비해 예약 날자까지 참고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으니 차라리 내가 고쳐봐야겠다. 아령 운동 하면 될까? 

시작이 반 이랬으니 작심 삼일이 아니기를...큰병도 자신의 의지로 이겨냈으니 이번에도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봐야 겠다.

 동원 아파트 가동 4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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