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트레킹

Trek 7, ★ 킬리만자로 정상, ♥ Uhuru에 서다 ★

opal* 2009. 12. 11. 00:11

 

 

 세 번째 쉼터 호롬보 산장에서 네 번째 키보산장까지 일곱 시간 반을 힘들게 걸어와 저녁 한 술 뜨고

일찌감치 초저녁부터 누웠으나 잠은 오지않고 뒤척이다 밤 11시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10일 저녁)

 

밤 12시, 칠흑같이 어두운 밤, 키보산장 마당에 일렬로 세운 대원들 몇 명씩 사이사이에 가이드들이 섰다.

큰 배낭은 가이드 Sinai에게 맡기고, 매실액 섞은 1kg짜리 물백과 여권 지갑 등이 담긴 작은 배낭을 메고 Sinai 뒤에 섰다.

늘 앞에 서서 다니던 선두 가이드 굿락은 대원들 사이에 서고, 정상을 향하는 야간 산행엔 시나이가 선두에 섰으므로 앞쪽에서 걸었다. 

강풍으로 체감온도 -20~30℃에 대비해 겹겹이 겹쳐 무장한 옷은 몸을 둔하게 만든다.

 

헤드랜턴 밝히고 모랫길을 서서히 오른다. 모두들 말이 없으니 긴장감이 돈다. 정상을 향한 비장한 각오 이리라.

아직은 산기슭이라 그런지 바람은 없고 길게 늘어서서 지그 재그로 오르는 랜턴 불빛이 산자락을 휘감는다. 

모래와 자갈을 밟는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 모두들 말 없이 거친 숨을 몰아 쉰다.

오늘 하루를 위한 여러 날의 수면부족 등 누적된 피로를 한 발 한 발 오르며 심호흡으로 컨디션을 조절한다.

 

해발 5000m인 윌리암스 포인트(William's Point), 고도 300m 오르는데 2시간 15분이 걸렸다.

너무 가파라서 직선으로 못 오르고 지그재그로 오르는데도 발이 자꾸 뒤로 미끄러져 스틱잡은 손에 힘을 준다. 

 

커다란 바위 아래에서 잠시 휴식(03:00), 머리 위로 바위에 뭔가 보여 비춰보니 동판에 빛이 반사된다.

우리나라 산에서 가끔 보아온 죽은이의 넋을 기리는 기념 동판 같이 느껴진다.

 

초코렛을 가이드들에게 나눠주고 나도 입속에 넣고 우물 거렸다.

며칠 동안 보아온 일이지만 가이드에게 간식을 주면 바로 먹지 않고 주머니에 넣을 때가 많다. 

집에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 그러는것 같아 묻지 않고 건포도를 조금 더 주었다.

며칠 같이 다니며 간식 시간엔 꼭 챙겨 같이 먹곤 했다.

주간산행시 선두에 섰던 굿락은 26세로 미혼이고, 오늘 앞장 선 시나이는 33세로 아이 둘이 있다고 했다.

 

잠시 쉬고 일어나 걸으니 '언제 쉬었더냐' 다. 오를수록 가파르니 입에서 '뽈레 뽈레'(천천히)가 절로 나온다.

앞 뒤에 서서 일렬로 걷던 대원들이 거리가 생기며 흩어지기 시작하고

뒤에 오던 다른 팀과 앞에 가던 다른 팀들까지 섞여 어둠 속에서 우리 대원들 찾기가 힘들다.

다행히도 시나이가 옆에 있으니 마음은 편한 상태다.  

총 19명 중 여자는 일곱 명, 세 사람은 남편과 동행하고, 두 사람은 같이온 단짝으로 늘 붙어 다니고,

Room mate와 나만 혼자씩 왔는데 짝꿍은 젊은사람이라 페이스(pace)가 다르니 어디 있는 줄도 모른다.

 

가파른 비탈에 랜턴 비추며 잔뜩 숙인 시선은 Sinai 구두 뒤꿈치만 보며 오를 뿐, 

나흘 동안을 "천천히 천천히"  외치던 가이드는 말이 없고, 오히려 내 입에서 '뽈레 뽈레가' 자주 나온다.

뒤따라 가며 힘들 때마다 "시나이~' 하고 부르면 응답하며 서준다.  

"뽈레 뽈레, 힘들어"

"오우케이"

힘들고 고된 산길에 배낭 맡기기를 얼마나 잘 한일인지, 아래에서 볼 땐 화산재만 보였는데 오를 수록 바위가 많다.

 

가파른 능선에 오를 수록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시나이한테 배낭 안에 있는 윈드자켓을 달라하여 물백 위에 입었다.

산소가 부족하여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데 물이 얼어 못 먹을 까봐 일부러 품이 넉넉한 옷을 준비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잠을 못자 졸립고 허기도 느껴진다. 몇 겹 낀 장갑이라 사진도 못찍고 시계도 볼 수가 없다.

  네 겹으로 낀 장갑 한 번 벗으려면 시간도 걸리거니와 손이 얼어 체온 뺏길까봐 함부로 벗을 수도 없다.

 

몇 발작 오르다 한 박자 쉬고, 를 반복하며 오르다 보니 뒤가 훤해지며 마웬지봉이 실루엣으로 까맣게 물든다.

여명으로 마웬지봉 뒤가 밝아오니 아직은 시커먼 구름이 발 아래로 바다처럼 펼쳐진다.

힘도 들고, 해 뜰 때까지 기다려 일출 모습을 담고 싶지만, 여건은 그렇지 못하니 아쉬운 마음으로 발을 옮긴다. 

 

마웬지 뒤에서 햇님이 부르기에 대답하고 돌아서니...

"이렇게 좋은 날씨주신 조물주님 감사 합니다." 가 절로 중얼거려진다.

며칠동안 아침마다 바라보던 키보봉은 설산이었는데 오늘은 축복 받은 날, 운수대통한 날이다.

시간은 지체 되어도 5000m가 넘는 고산의 청명한 하늘 아래 장관인 일출을 안 찍을 수가 없다. 

키보봉에서 장엄한 일출을 보다니... 키보봉 바위들이 금방 새빨갛게 물든다.

아래는 깊이를 잴 수없는 형용할 수 없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이고

위로는 Gilman's Point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서 빨리오라 손짓 한다.

옆에서 기다리던 시나이가 "조금 남았으니 어서 오르자" 고 한다.

 

랜턴에 의지하여 가이드 뒷굼치만 바라보며 어둠 속을 달려온 시간이 키보 산장부터 무려 6시간 반, 

고도 1000m를 오르는 동안 일행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아는 얼굴이라고는 가이드만 보인다.

 

해발 5681m 길만스 포인트(Gilman's Point), 분화구 둘레 능선이다. Gilman은 이곳을 최초로 찾았던 탐험가의 이름이다.

옆에서 시나이와 굿락이 축하한다며 하얀이가 보이는 웃음띈 얼굴로 박수를 쳐준다. 

고맙다고 화답하니 손을 뻗어 정상을 가르키며 "정상까지 더 가겠느냐" 묻는다.

"Yes,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 걱정말아요, 문제 없어요.) 여기에 올라서야 비로서 정상이 보인다.

내가 많이 힘들어 하니 걱정이 되나보다. 정상과의 고도 차이는 200m,

시간이 얼마가 더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가겠다고 대답하니 "할 수 있겠느냐" 재 확인하며 다짐 한다.

힘든 고비 다 넘기며 여기까지 올라 왔는데 정상을 눈앞에 두고 포기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상 8부 능선, 더이상 가파른 오르막은 없고 높은 고도와 지친 체력, 자신과 싸우며 정상을 향한다.

수입과 지출을 요하는 생리가 마음을 불안케 한다.

배도 고프고 배설도 하고 싶고. 그러나 마땅한 장소가 없으니 신경이 곤두 선다.

간식을 두고도 먹지 못하고 물만 마시며, 몇 시간동안 내려가야할 체력까지 신경써야 한다.

 

백두산 트레킹 시 천지 둘레 5호 경계비에서 청석봉, 백운봉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듯 좌측으로 방향을 돌린다. 

백두산 백운봉처럼 심한 높낮이 봉우리는 아니지만 바위틈 사이 눈 위로 난 발자국을 따라 가볍게 오르내리며

고도를 높이니 찬 바람은 더 심하게 불어오고 고소증으로 머리가 무겁고 몽롱하니 발자국 떼어 놓기가 점점 더 힘들다. 

 "시나이~" 부르니 뒤돌아 쳐다보며 "Why? " "뽈레 뽈레(Pole Pole, 천천히)"  속도를 늦춰주며 "Nice? 

Okay?""Passable, 마지(물, water)"  물백에 달린 호스를 마스크  통해 입에 대어주며 도와주는 가이드가 고맙기만 하다.

가방이 자켓 속에 있고 계속 마시며 올라와 호스는 얼지 않았다.

뒤따라 오던 K 여사, "호스가 얼어 물을 못 마셨다" 고 하더니 "뒤에 오시던 S 시장님은 '길만스 포인트'에서 하산 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힘든 고비를 다 넘기고도 정상엘 못 오르고 하산 했다니 몹씨 안타까웠다. 많이 지친 모양이다.

 

정상 9.5부에 있는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 5756m), 마차메 루트(Macha Route)에서 올라오는 곳이다.

길만스 포인트까지만 올라도 등정증명서를 받을 수 있고, 

스텔라 포인트까지만 오른 사람에게도 등정증명서는 발급 되는데,

정상 오른 사람과 차별을 두느라 증명서에 있는 사진 색이 다르고 종이 크기가 다르다.

힘든 고비 다 넘긴 능선에서 정상을 눈앞에 두고 뒤돌아 하산해야 하는 심정은 오죽하랴, 얼마나 힘들면...

 

한라산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백록담을 볼 수 있고 백두산 천지에 올라야 그곳에 담겨진 물을 볼 수 있듯,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자만이 킬리만자로 분화구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자연이 만든 예술인 거대한 빙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순간 순간, 

만년설 아래 흰구름 위를 산책하며 지구상에서 유일한 적도 아래 거대한 빙하 앞에서 한없이 작은 미물로 변하는 자신을 발견 한다. 

 

앞서서 갔던 일행들이 정상에서 턴하여 삼삼 오오 내려오며 분발하라 격려한다, "40분만 더 가시면 될꺼에요."

"조기 뵈는데 아직도 그렇게 많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정상이 왜 그리 멀기만 한지 원망스러울 정도다.

 

가뿐 숨을 몰아쉬는 숨은 목까지 차고 발은 돌덩이 처럼 무겁고, 화장실이 필요한데 마땅한 장소는 없고..

몸의 현실은 급박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한없이 행복하고 감동이 벅차오르는 순간 순간 이다. 

신만이 빚어낼 수 있는 이 경이롭고 아름다운 우후루(Uhuru peak)는

'자유'를 뜻하는 스와힐리어 이다.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이리라.  

 

길만스 포인트에서 두 시간 반, 자정 시각에 키보산장을 출발하여 9시간이 소요된 아침 9시.

해발 5895m 우후루 픽(Uhuru peak),  적도의 땅 아프리카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만세~!!! 가슴 벅찬 감동으로 서로 서로들 얼싸 안는다. 거대한 빙하 만년설 옆에서 정상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길민스 포인트 맞은 편에도 빙하가 있지만, 호롬보 산장에서 올려다 보던 나비 넥타이, 바로 그 하얀 리본이다.

 

Congratulation!
 You are now at uhuru peak,
Tanzania, 5895m amsl.
Africa's highest point
world's highest free standing mountain

축하합니다!당신은 지금 해발 5895m 탄자니아 우후루 픽에 있습니다.

우후루 정상엔 그 흔한 돌도 아닌, 바람 한 번 세게 불면 날아 가버릴 것 같은,

너무 허름해 뵈는 나무 판에 노란 글씨로 써 놓았다. 어찌보면 맨아래 글씨를 더 쓴 나무판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

 

Kibo로 불리는 킬리만자로 분화구는 직경만 2.5km라고 한다. 가장높은 봉우리를 '우후루'라고 하는데 

키보봉 남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큰 분화구 가운데 다시 화산재 덮인 분화구가 들어있다.

이곳이 바로 아프리카의 지붕인 것이다.  

(킬리만자로 정상 분화구 모습, 상공 촬영 他人 作)

 

가장 뜨거운 적도의 나라 아프리카에서 빙하를 보는 것은 유일한 낙인데, 

거대한 이 빙하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지금도 변화가 많이 생겼고,

앞으로 50년 후엔 녹아 없어진다는 세계 환경기구의 발표가 있었다고 한다.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이라 했는데 빙하가 녹으면 산 이름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빙하가 녹은 다음에 오르는 사람들은 저렇게 멋진 빙하를 못보게 된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허망 할까?

오래 오래 그대로 있어주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라며, 다른이에게 부탁하여 기념 한 장 남기고 뒤돌아 섰다

.

 

전날 호롬보 산장에서 키보산장까지의 긴 여정과 밤을 꼬박 새우며 정상을 향한 지친 몸,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 초췌하기도 하지만 사진찍기를 좋아하여 늘 많이 찍던 사람이

추위와 배고픔, 고소증 등으로 지쳐 카메라 만지기조차 귀찮아 하는 자신이 대자연 앞에 한없이 초라해 뵌다.

내 인생에 오랜동안 잊혀지지 않을 감동을 주는 이 장면을 오래도록 서서 두루두루 바라보고 싶지만

그것은 마음 뿐, 산소가 부족하고, 춥고 허기지고, 기운 빠지고, 오르는 동안 계속 물만 마셔 댔으니 용무도 급하고...

 

길만스 포인트로 내려오는 동안 배가 고파 누룽지를 한 줌 꺼내 시나이에게 나눠 주었다.

입에 넣어 씹어 보더니 퉤퉤 뱉으며 웃는다, "왜~ 싫어? 맛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만 한다.

집에서 찹쌀을 섞어 지은 밥으로 누릇누릇하게 눌려 절구에 대강 빻아 준비 했으니 쌀처럼 아무 맛은 없다. 

가이드들이 우리 쌀로 만든 밥은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고추장 비며 잘도 먹더니 누룽지는 싫은가 보다.

출발 전 간식으로 나누어 준 빵과 과자를 꺼내 나는 먹지않고 시나이에게 다 주니 배가 고픈지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길만스 포인트에 도착하니 키보 산장이 보인다. 그러나 내려갈 일이 까마득하다.

바위 틈을 비집고 한 동안 내려선 후 자갈섞인 모래를 밟으니 발목까지 빠지고 저절로 곤두박질 치듯 미끄러지며 먼지를 일으킨다.

오를 때의 길과는 다른 직선 코스로 내리 꽂는데 속수무책이다. 출발 전 착용한 스패츠가 많은 도움이 된다.

시나이가 손을 내밀어 잡더니 한 발 아래에 서서 자기와 똑같은 방법으로 발을 떼라며 스텝 설명을 해준다. 

똑같이 왼발 오른 발, 한 발 한 발 박자 맞추듯 내려 딛지만 지친 몸이라 그것도 쉽지가 않다.

차라리 혼자 편하게 가겠다 하고 내 페이스 대로 몇 발작 내려 딛다 쉬고, 를 반복한다.

키보 산장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내리막이지만 거리가 워낙 멀고 가파라 쉽게 내려서지지도 않는다.

에너지는 밤새도록 소비시키고도 먹은 것이라고는 물 밖에 없으니 무슨 기운이 있으랴.

 

남편과 같이온 L 여사도 가이드가 옆에서 꼭 잡고 함께 움직여 준다. 부부 동반한 K 여사는 발이 얼까봐

신발 안에 넣은 핫팩으로 공간이 좁아 엄지 발가락에 물집이 생겨 터지는 바람에 아파서 내려가기가 고통스럽단다. 

두꺼운 양말 위에 두꺼운 울 양말을 껴신어도 발은 시려웠지만 다행히도 물집 잡히는 현상은 없었다.

 

키보 산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자정에 출발하여 다시 제 자리에 도착한 산행 시간만 13시간이 걸렸다.

도착 하자마자 화장실부터 들려 방에 들어가보니 먼저 도착한 일행 반은 내려가고 반 정도 남아 쉬고 았다.

오늘 밤을 여기서 또 잘 수 없는 형편, 호롬보산장까지 서너 시간을 걸어가야  할 일이 태산이다.

정상을 향해 오를 때 왜 밤 12시에 출발해야 하는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가 된다.

 

쌀이 익질않아 죽도 밥도 아닌 설은 것이 싫어 퉁퉁 불은 라면 국물에 누룽지 한 수저 넣어 간단히 삼키고 일어섰다. 

너무 힘들어 돈이 들더라고 혹시 리어카를 타고 내려갈 수 있을까 하고 통역을 부탁하여 물어보니

고소증으로 정상을 못가고 도중에 내려온 사람이 타고 내려가, 리어카가 호롬보 산장에 있어 그럴 수가 없단다.

 

어제 아침 호롬보 산장을 출발하여 하산 마친 지금까지 하루하고 반 나절, 구름 한 번 비 한 방울 없이 좋던 날씨, 

산행 마치고 다시 호롬보 산장까지 하산 하려는데 갑자기 거친 바람이 먹구름을 몰고 와 비를 뿌린다.

짐은 포터가 지고 가고, 배낭은 가이드가 또 가져다 준다기에 Tip 조금 주어 보냈다. 

자연과 조물주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빈 몸에 우비를 걸치고 터덜 터덜 걸으니 

먹구름이 마웬지봉을 가려놓고 키보봉도 감춰 놓았다. 황량한 황토 벌판이 미로처럼 보인다. 

앞서가는 서너 명의 여인과  마지막까지 뒤에서 걸으며 보살펴 주는 총대장 가이드 알렉스씨와

함께 걷는 가이드들만 뽀얀 안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어제 그렇게 길고도 지루해 하며 오르던 황톳길, 그 길을 다 내려오는 동안 비가 내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웬지 언덕 가까이 오니 구름이 벗겨지며 날씨가 개인다, 

검기만 하던 마웬지봉이 설산으로 변신하여 옆에 와 서 있고,  돌아보니 키보봉도 전체가 하얗게 겨울산으로 변해 버렸다. 

산행 둘째 날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 산장을 향하며 관목지대에서 처음 보았을 때나, 

호롬보 산장에서 아침마다 올려다 볼 때와 똑같이 하얗게 변한 키보봉 모습을 마웬지 언덕에서 한참을 바라 보았다.

내 걷는 동안만 눈(雪) 비 없이 걷게 해주신 킬리만자로 산신령님께 감사 드리며 뒤돌아 계속해서 내려 딛는다. 

젖은 우비는 바람에 말릴 겸 추워서 그대로 입고 걸었다. 밤부터 걸은 하루 산행시간 동안이 얼마나 좋은 찬스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슬아슬한 순간 같다. 

 

서녁 하늘에 걸친 구름 사이로 하늘이 보이나 해는 이미 기울어 주변에 어둠이 내려 앉는다.  

하루 종일 가이드가와 손잡고 걷던 L 여사 무척 걷기 힘들어 하는 모습이다. 

뒤에 오던 대장 가이드 알렉스가 힘겹게 걷고 있는 나를

돌 위에 앉히고 아래 눈꺼풀을 내려 보더니 안되었던지 손 잡고 걸어 준다. 

비맞은 돌길은 표면이 얼어 미끄럽고 해도 넘어가 어두워진 산 속엔 추위가 엄습 한다.  

구름 개인 하늘 배경으로 우뚝솟은 시네시아가 실루엣으로 보인 후 호롬보 산장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되었다. 

 

자정부터 산행하여 등정에 성공하고 키보산장 내려온 산행 소요 시간이 13시간,

키보산장 내려와 잔뜩 불어터진 라면 한 두 젓가락 먹는둥 마는둥 점심 때운 후 오후 세 시 출발하여

호롬보 산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7시.

밤 새우며 종일 17시간을 걸었더니 하루가 너무 길게만 느껴져 마치 꿈에 다녀온 것 같다.

치매가 오기 전 까지는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리라...

 

살아가면서 가끔 이렇게 감격스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튼튼한 체력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 드리고, 가족에게 고맙고,

함께 동행해 준 가이드와 대원들께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