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만남이 아닌 말 그대로의 번개 팅, 오후 시간에 만남이 이루어지니 서로 묻는 말이 동시에 똑같이 "어디로 가지?"
퇴근시간이 가까워 오니 길도 막힐테고... 서쪽 가까운 곳으로 무작정 달렸다.
날씨가 더워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얼음물과 수박조각을 꺼내들고 차 안에서 먹으며 달렸다.
성탄절이 가까워오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Christmas tree에 불 붙이던 애기봉.
목적지 외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입구에 도착하고 보니 출입 제한시간이 오후 6시 라고 쓰여 있다.
조금 더 가야 하는데 남은시간은 20분이 채 안된다.
아이들 어렸을 때 처음 갔었으니 거의 30년은 되었을테고,
길 양쪽으로 노랗게 물든 은행 잎이 안개 속에서 기막히게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 주던 어느해 가을.
두 번째 방문도 어느새 십 여년이 훌쩍 지났을 뿐더러 전엔 이른 시간에 다녔으니 제한시간 같은 것은 전혀 기억에 없다.
애기봉(愛妓峰) -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와 조강리 경계에 있으며 해발 높이는 155m이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가 가장 사랑하는 애첩 ‘애기’를 데리고 수도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감사는 바로 강 건너 개풍군에서 청나라 오랑캐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한강을 건너게 되었다.
애기는 매일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으로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결국 병들어 죽어 가면서,
'님'이 잘 바라보이는 봉우리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1966년 10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 사연을 듣고,
“애기의 한(恨)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군인이 지키는 출입통제소에서 주민등록증 제출하고 들어서서 고도를 높이는 길은
나무가 크게 자라 잎이 무성하여 터널을 이루며 인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각인시켜 준다,
애기봉 정상의 바람은 오르막 계단에서 흘린 땀을 금방 식히며, 땀에 젖은 옷까지 금방 말려준다.
바로 앞에 보이는 강 건너가 북한 땅 개풍군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이면서도 가장 먼 곳, 강 폭 만큼이 서로의 간격인데도 오고 가지를 못하다니...
위 사진 우측으로 아래 사진 모습이 이어지며 우측으로 건물 몇 채가 조망된다.
어디를 보아도 나무 한 포기 없는 민둥산만 보인다.
나무에 가려진 건물 몇 동을 Zoom in~
애기봉 정상.
애기봉 정상에서 조망되는 모습.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고, 바닷물이 유입되는 바다같이 넗은 곳이다.
서해로 흘러가는 강물.
강화도 방향의 조망.
가는 날이 장날인 날도 있지만, 오늘은 바람도 불고 가시거리가 길어 좋은 날, 트인 곳 마다 멀리까지 잘 보이니 '난 참 복도 많네.'
망원경에 달린 구멍에 500원 짜리 동전을 넣고 렌즈를 통해 북한 땅을 들여다 보며 중얼 거린다.
눈 앞에 가까이 보이는 저 집들은 민간인이 살림하는 민가 일까? 전시용 일까?
웬만한 수영실력이면 건너 다닐 수 있는 거리 이건만...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땅을 볼 때면 더 가슴이 아프다.
큰 비 내린지가 얼마되지 않았는지 앞쪽으로 강 물 일부분은 흙탕물이 섞여 붉게 보인다.
애기봉 정상에서 조망되는 북한 땅.
육안으로도 잘 보이는 아파트 몇 채는 3층짜리, '우측 뒤로 보이는 저 높은 산은 개성 송악산 일까?'
'금강산도 다녀오고(2004.3), 백두산도 다녀 왔으니(2009.7) 저 산에도 가 보고 싶다.'
큰 구름덩이 하나가 남북한에 걸쳐 있다. 구름을 타고 다닐 수 있다면...
애기봉 정상에서 보이는 북한산, 물론 Zoom in~
날씨도 덥거니와... 편안한 차림으로.
애기봉을 빨리 둘러보고 나와야 하는 제한된 약속시간 보다는 호젓한 이 길이 길이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크기에
나올 때는 내리막 길 임에도 일부러 천천히 달렸다.ㅎㅎㅎ
하성면 가금리에 위치한 한재당(寒齋堂)은
무오사화(戊午士禍)때 28세의 젊은 나이로 화(禍)를 입은 이목(李穆)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지방기념물 제 47호로 지정돼 있다.
1848년에 건립된 구사당은 일주문과 담장이 둘러 있었으나 1974년 건립된 신사당으로 인해 현재는 담장만 남아있다
건평 12평의 콘크리트 건물에 위패를 봉안(奉安)한 신축사당에는 숙종43년(1717)과 경종2년(1722)에 추증(追贈)한 교지가 함께 보관돼 있다.
이목선생은 성종2년(1471)에 출생하여 일찍이 점필제(點畢齊), 김종직(金宗直)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연산군1년(1495) 문과에 급제했다.
조정에 나서서 바른말 잘하기로 이름난 선생은 연산군 4년(1498)에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윤필상의 모함을 받아 김일손(金馹孫), 권오복(權五福) 등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큰 길 나오기 전, 넓은 터에 연못까지 있는 문화재 한재당(경기 기념물 47호)이 있어 둘러보았다.
울 안 한 쪽엔 관리인이 거주하는둣 신발은 많이 보이는데 포장된 길만 빤하고 마당은 잡초가 우거져 발 딛을 곳이 없다.
골고루 다니며 보고 싶은데 풀 속에 뱀이라도 있을 것 같아 아무데나 딛고 다닐 수가 없다.
울 밖에 있는 공중 화장실도 상태가 불량하기 짝이 없다. 세면대 물은 나오나 하수구가 막혀 손을 씻을 수가 없다.
날씨가 좋으니 멀리서도 고려산(강화도에 있는 진달래로 유명한 산)이 조망된다.
가까운 문수산이라도 갈까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고 복장도 그렇고, 여기까지 온 김에 강화도로 방향을 돌렸다.
어짜피 저녁 식사도 해야겠기에 장어촌으로 향하는 도중, 연꽃을 보러 선원사 연밭엘 가보니 전보다 면적이 훨씬 넓어지고
품종도 다양해졌다. 철도 지난데다 일몰 시간도 지나 사진 찍기에는 너무 늦어 여유롭게 둘러 보기만 했다.
오래전부터 가끔 드나들던 강화도 초입의 장어촌, 휴가철이라 그런지 시간이 늦어 그런지 늘 부족하던 주차공간이 오늘은 여유가 있다.
서비스로 주는 쓸개주와 소주 한 병으로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일부러 초지진 대교를 이용했다.
차창을 열고 한적한 해변도로를 달리니 명색이 바닷바람이라 그런지, 말복이 지나 그런지 어느새 차다.
사흘 전(8일), 며늘과 얘기 나누며 "올해는 말복이 너무 일찍 끝나 여름이 너무 빨리가는 기분이라 싫다"고 했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지라 겨울이 길어질까봐 땀을 흘려도 여름이 더 좋다고 했던 것이다.
"몇 년만이건 몇 달만이건, 오랫만에 만나도 이런 저런 얘기를 끊임없이 주고 받을 수 있는 편안함이 있어서" 참 좋단다.
강화대교를 건너가 초입에서 밥만 먹고 초지진 대교로 나오고도 '강화도를 다녀 왔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전철로 먼 곳까지 가야 하므로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할 수 없어 아쉽지만, 긴 하루만큼이나 즐거웠던 짧은 토막의 하루를 마감한다.
'Story(문화,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렌김 머피 갤러리 (0) | 2010.09.08 |
---|---|
번개 데이트 - 강촌 (0) | 2010.08.20 |
울진 해변에서 (0) | 2010.07.27 |
레프팅이 있던 태화산 산행 날. (0) | 2010.07.20 |
영화) Shrek Forever After(슈렉 포에버) (0) | 2010.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