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특별산행, 백두대간 2구간, 지리산 종석대

opal* 2007. 5. 15. 22:00


향로봉 한 곳을 숙제로 남겨둔 채 백두대간 종주를 끝냈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내어 대간 산행 중 부족한 곳을 찾아 나섰다.

첫 산행 땐 길을 몰라 단체로 다니며 쫓아다니기 바빴다. 지리산 두 번째 종주 산행을 하며 노고단이나 고리봉에 올라 자세히

보니 백두대간 마루금이 종석대로 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자꾸 다닌 보람이다. 기회를 엿보다 신록의 계절,

날씨 좋은 날 택하여 11:30, 성삼재 도착. 해발 표시가 어느 곳은 1070m로 되어있고 이곳은 1090m로 되어있다.

구례와 남원 산내면을 잇는 험준한 산길 지방도로 861번이 지나는 백두대간 마루금 이다.

 

마음 같아서는 노고단부터 성삼재까지의 마루금을 걷고 싶지만, 약간 늦은 도착시간과 먼 거리의 당일 산행,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곳이라 무넹기에서 들머리를 찾았다. 물론 출입통제 구간이다. 그러나 백두산까지 연결되는 마루금이라는 걸

알고나니 꼭 걸어보고 싶었다. 노고단부터 무넹기까지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거리가 짧으니 여유있게 다녀 보리라.

 

노고단을 오르내리는 넓은 길은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을 뿐더러 가뜩이나 무넹기엔 전망대가 있어

사람들이 잠시 숨 돌리며 쉬었다 가는 곳이다. 출입금지 현수막 사이로 들어서려니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잠시 서서 눈치를 살피다 인적이 뜸한 틈을 이용해 얼른 숲으로 숨어들으니 백두대간 다른 곳과 다름이 없다. 잡목과 산죽이

적당히 섞인 오솔길. 출입이 통제된 곳이라 길이 흐릿할 줄 알았더니 다른 곳과 같이 뚜렷한걸 보면 많이 다녔다는 얘기다. 

 

오래된 가문비나무 한 그루가 유난히 싱싱하고 굵다. 잠시 걷던 숲이 끝나니 우뚝 솟은 종석대 정상 바위가

 낮은 나무 위로 올려다 뵌다. 좀 더 오르니 발 아래로 많은 사연을 안고 흐르는 구불구불  섬진강 줄기와

각황전(국보 제 67호), 석등(국보 제12호) 사 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화엄사가 내려다 뵌다.

 

내일은 비가 오려나? 날 벌레가 단체로 덤빈다. 얼굴과 가방, 온몸에 사정없이 금방 까맣게 달라붙는다. 그래, 맘껏 덤벼라,

오기 힘든 곳에 왔다는 환영인사로 받아 들여주마,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니 같이 즐겁자꾸나. 그래도 너희들은 행복하단다. 

땅에 기어 다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밟혀 죽는 벌레들한테는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너희들은 아는지?


오르다 말고 돌아서서 바라보니 성삼재에서 오르는 포장도로, 노고단과 대피소, 노고단 고개, KBS 송신소 등이 

모두 앞 마당에 펼쳐 세운 듯 하다. 이 얼마나 걷고 싶던 길이던가. 이렇게 좋은 곳에선 어김없이 생각나는 건강한 체력

물려주신 부모님, 세상 만물 만드신 조물주, 이 길을 걷게 도움 주신 분 등등... 모든 이들이 떠올라 모두에게 감사 드리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언젠가는 개방되겠지만 그 전에 또 오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더 소중한 시간이다. 

노고단에서 뻗어 내린 월령봉 능선 줄기 뒤로 왕 시루봉이 보인다.

 

언젠가는 저 곳에도 올라 섬진강 줄기를 바라보리라. 일단 꿈을 가져보자. 기회는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것이니. 

왕시루봉 뒤로 광양 백운산이 손짓하고 있다, 윤곽도 뚜렷하게. 이제 막 움트는 눈을 가지 끝에 매단 관목들을 헤치며

바위에 올라 걸터앉아 발아래 세상이 내 것 인양 두루 살핀다. 이처럼 아름다운 산과 강이 있어 섬진강 주변에

문인들이 많은가 보다. 말도 안되는 해괴한 소리지만 나도 이런 곳에 태어나 자랐으면 글이 절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만큼 주변 환경이 아름답다는 표현이리라. 

 

종석대 바위는 큰 덩이 이면서도 금방 부서져 내릴 기세로 금이 가고 틈이 생겨 아무렇게나 질서 없이 쌓여 있다.

진분홍 철쭉이 제 세상이라며 활개치는 이 시기에 종석대 정상에서 추운 겨울을 늦도록 보낸 진달래 한 송이가 친구들은

다 지고 잎이 나왔는데 큰 가지 끝에 달린 꽃봉오리가 외로울까 차마 못 떨어지고 보살피며 웃는다. 

 

 지리산 주능선의 서쪽 끝 봉우리가 종석대( 1356m) 이다. 노고단 지척에 있으며 노고단 보다 약 150m 낮다.

지리산 서북 능선이 이 종석대에서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화엄사와 천은사 계곡 사이로 차일봉 능선을 뻗어 내리고 있어

전망이 아주 좋다. 정상 바위에 앉아 골고루 감상한다. 마치 차일을 펴 놓은 것 같아 일명 ‘차일봉’이라고도 불린다.

차일봉 외에 관음대, 우번대란 이름을 갖고 있으며 유래와 전설도 있다.

 

<어느 날 신라의 도승 우번 조사가 젊은 시절에 조용한 상선암을 찾아가 10년 동안 좌선 수도하기로 결심하고

혼자서 불도를 닦기 시작 했는데. 9년 째 되는 봄날 아름다운 절세미인이 암자 창문 앞에 홀연히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우번 스님에게 추파를 던지며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여 그 유혹에 홀린 우번 스님은 수도승이란 자기 처지를 망각하고

여인을 따라 차일봉 정상에 올랐는데, 손짓하며 앞서가던 여인은 간곳없고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앞을 가로 막고  서있지

아니한가, 우번이 정신을 가다듬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자기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참회 하였다. 다시 살펴보니

관세음보살은 간곳없고 그 자리에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어 자신의 수도가 부족함을 깨달은 우번 스님은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토굴 속에서 열심히 수도 정진하여 수년 만에 도통 성불하여 훗날 이름난 도승이 되었다. 그 후부터 차일봉은

우번 조사가 도통한 토굴자리가 있다 하여 우번대, 우번조사가 도통하는 순간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홀연히

들려 왔다 하여 종석대, 관세음 보살이 현신하여 서 있던 자리하 하여 관음대 라 하여 지리산 십 대 중 하나이다.>

 

사방으로의 전망이 좋으니 해질 무렵까지 앉아 일몰까지도 보고 싶으나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다.

일어서서 머리를 내민 반야봉과 인사하고 떼어놓기 싫은 발길을 옮긴다. 우측으로 몇 달 전에 걸었던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니 그 뒤의 세걸산과 바래봉도 반갑단다. 그 끝으로 있는 봉우리 중 하나가 봉화산 일텐데 구별을 못하겠다.

능선 좌측을 바라보면 시퍼런 숲 속으로 천은사에서 시암재를 거쳐 성삼재로 오르는 길이 뱀처럼 구불댄다.

능선 넘어 산동마을도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능선이 갑자기 고도를 낮추며 우측으로 보이던 만복대를 앞으로 모셔온다. 서북능선이 시작 된다. 

렌즈에 붙어 사진을 망가트리고, 얼굴을 깨순이로 만들던 날 벌레들도 능선에서 헤어져 제 갈 길을 가겠단다.

가파르게 내려서니 잡목 숲을 이룬다. 수피가 고운 진달래가 많다. 키 큰 산철쭉은 화사하게 피어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선놀음 하다 보니 배꼽시계가 울린 것도 잊었다. 숲 속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펼치니

어디서 금방 알고 왕파리가 날아든다. 곤충들도 먹겠다고 덤비니 혼자 먹기가 미안하다. 쓰레기 버리면 안 되는데

어쩔 수없이 밥 반 수저를 떠서 고수레를 외쳤다. 같이 먹고 살자꾸나.

 

시장이 반찬이라 했으니 꿀맛 같은 성찬을 끝내고  숲 속 오솔길을 내려오니 진분홍 앵초가 반긴다.

 이 꽃, 저 꽃에 이리 저리 초점을 맞추고 내려서니 또 다른 하얀 송이 송이가 반긴다. 처음 보는 꽃이라 이름을 모르겠다.

낙엽과 돌들이 엉켜있는 내리막을 내려서서 포장도로를 만나 성삼재에 닿는다. 소원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사는 맛도 나는 것인데, 이렇게 쉽게 소원 한 가지를 이루었으니 또 무슨 재미를 기대 해 볼까?

다음엔 노고단에서 넓은 도로가 아닌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딛어 보리라. 성삼재를 내려오며 상선암을 찾아보고,

지리산과 멀어져 가며  올라섰던 종석대를 다시 한 번 머리 속에 담는다. 노고단과 함께.


2007. 5. 15. (火)  지리산 2구간, 종석대에 오르다.

(무넹기~ 종석대~ 성삼재)

 

종석대 사진은 우측 폴더 백두대간 종주기 중 '특별산행, 백두대간 2구간, 지리산 종석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