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 박물관의 명품전-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
17세기 유럽의 최고 화가 피터르 파울 루벤스와 안토니 반다이크, 야코프 요르단스는
안트베르펜(벨기에 도시로 안트베르펜주의 주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플랑드르 화가들이다
“리히텐슈타인 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회화와 조각, 판화, 태피스티리 등 엄선한 작품 120여점을 선보인다.
유럽 최고의 왕실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리히텐슈타인공국의 리히텐슈타인박물관이 소장한
루벤스와 동시대 작가 등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매스컴에 나온 기사 전문 보러가기→ ☞(클릭)
("17세기 바로크 미술은 인물을 생동감 있고 우아하게 묘사하는게 특징인데요, 대표적인 화가로는 벨기에의 루벤스가 있습니다.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 ‘아기 에리크토니우스의 발견’ 등 루벤스를 대표하는 걸작은 물론 안소니 반 다이크,
피테르 브뤼헐 일가 등 플랑드르(벨기에어:블렌데렌(Vleanderen), 영어:플랜더스(Flanders))작가의 대표작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17세기 유럽 거장들을 대거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4월 10일까지 전시된다.
피터르 파울 루벤스 '성 바울의 개종(Conversion of St. Paul)' 1601/02
'성 바울의 개종'은 루벤스의 초기 작품이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체류 초기에 그려진 것이며,
이는 루벤스 후기 작품세계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예술적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이다.
이 그림은 그 동안 플랑드르 대가가 축적한 예술적 경험들을 집약시켜 놓은 작품이다.
우선 강렬한 색채 대비와 번쩍이는 빛의 반사는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의 그림을 연상시키고 있는데
청년 루벤스는 틴토레토의 재빠른 작업 기법이 주는 매혹적인 효과를 주의 깊게 연구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루벤스는 힘찬 붓질로 위대한 베네치아 예술가의 기교를 모방하고 있다. 또한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을 그리기 위해
루벤스는 라파엘로(Raphael, 1483–1520),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작품들과 함께
프란체스코 살비아티(Francesco Salviati, 1510–1563)와 타데오 추카리(Taddeo Zuccari, 1529–1566)의 작품들도 모델로 선텍했다.
비록 이들의 작품들 중 어느 하나도 직접적으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회화적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루벤스가 바울의 개종을 다수의 인물이 나오는 극적인 장면으로 구성한 것이다.
화면이 말의 몸체들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장면에서 말들이 공감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젊은 루벤스가 이탈리아에서 매료되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Battle of Anghiari> 스케치들의 영향이다
루벤스의 작품은 극적이고 환상적인 구성을 연출하고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화풍으로
지역의 경계를 넘어 유럽전역과 궁정, 교회에서 그를 후원한 루벤스,
그는 작업을 분업화해서 그의 작업실엔 200명이 넘는 화가가 함께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때까지의 미술은 선주문식 미술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귀족과 왕족 그리고 교회의 세계였다.
유스 더몸퍼르 '산이 있는 풍경' .1620
유스 더몸퍼르는 풍경화 전문으로 안트베르펜 에서 커다란 스튜디오를 운영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에 큰 영 향을 준 사람은 피터르 브뤼헐 1세입니다.
더몸퍼르가 가장 생산적인 활동을 한 시기는 1620년대로 이 때 <산이 있는 풍경>이 제작 되었다.
그의 그림들 속 에는 강한 이탈리아적 요소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특히, 그가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건너갔을 것으로 보이는 알프스 산맥에 대한 지식을 보여주는 산맥 묘사에서 입증된다.
<산이 있는 풍경>은 미약한 인간의 존재를 알프스 산맥의 위대함과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그림 안에 서있는 인간들은 무상함의 상징으로 자연의 영속성과 대비되고, 회화적 공간은 마치 점진적으로 조립된 것처럼 보인다.
또 장식적인 성격의 솟아오른 산맥에서 실제와 상상, 움직임과 정체, 이성과 비이성이 모두 함께 흘러드는 것처럼 보인다.
피터르 파울 루벤스 '얀 페트뮬런(1589~1636)의 초상' .1616
루벤스는 자신의 초상화 모델들의 개성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면 가장 깊숙이 숨겨져 있는 특징들을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 영혼’까지 도 불어 넣으면서 피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서 표현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얀 페르물런의 초상>에서 우리는 총경과 스페인 함대 제독의 자리까지 오른 역사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인물과 마주한다.
그리고 루벤스는 능숙하게 이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였다. 얀 페르물런은 1589년 안트베르펜의 영향력 있는 오래된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 내용은 화면의 왼쪽 상단 모서리에 있는 문장과 하단에 명시된 날짜와 나이로 파악된다.
루벤스는 화려한 경력을 막 시작하기 전 27살의 페르물런의 모습을 3/4 초상화로 그렸다.
이 초상화는 당시 유행하 던 검은색 의상을 갖춘 기품 있는 젊은 남자가 오른쪽으로 몸을 반쯤 돌리고 의자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머리와 몸통을 분명하게 나누고 있는 커프스와 빳빳한 흰색 주름 칼라는 당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주는 의무적인 표시였다.
페르물런은 왼손에 장갑을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검은색 모자를 쥐고 있는데, 매우 자신감 있는 태도로 관람객을 보고 있다.
루벤스의 친구이자 동료인 반다이크와 야코프요르단스의 작품들. 선이 부드럽고 인물이 강조되는 화풍이다.
왼쪽에 걸린 작품은 스승 루벤스의 작품보다 더 세밀하게 잘 그려진 작품이라고 한다.
귀도 레니 '성 막달레나' 1615/ 16
귀도 레니는 1601년부터 로마에 체류했다. 그의 격조있는 숭고함이 드러나는 초기 역사화들은 로마와 볼로냐에서 탄생했다.
그는 말년 까지도 고전적-신화적 내용을 담은 그림만을 주로 그렸다.
신약성서에는 개종 후 그리스도의 가장 헌신적인 추종자가 되었던 죄인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와 같은 '회개하는 죄인'은 르네상스 시대에 인기 있는 그림 주제였고, 귀도 레니 또한 이 주제를 다룬 그림을 많이 남겼다.
여러 명으로 구성된 그림도 있고 한 사람의 상반신만 그려진 그림도 있었는데, 후자의 그림이 당시 경배화로서 훨씬 수요가 많았다.
부드럽게 구불거리며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위에서 내려오는 빛으로 강조된 아름다운 얼굴과 상체를 감싸고 있다.
느슨하고 대범한 필치는 막달라 마리아의 살결과 머리카락의 특징을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머리카락을 잡고 있는 오른손은 기독교에서 순응의 손짓을 의미한다.
조반니 안토니오 카날 '카날레토' 1723
조반니 안토니아 카날 (Giovanni Antonio Canal)은 이탈리아의 베두타(도시나 마을 등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상세히 묘사한 회화·소묘 애칭)
화가이자 풍경화가 이다. 그의 풍경화는 거의 사진과 같은 사실적 표현과 정확한 세부 묘사로 주목 받아 왔다.
당시 유럽 왕실과 명문가 자손들은 고대 유적을 돌아보고 당대의 이탈리아 예술을 익히기 위해 이탈리아와 유럽 각국으로 그랑투어를 떠났는데,
베네치아 베두타는 당시 귀족들에게 그랑투어의 상징물이었으며, 18세기 귀족적인 수집의 핵심적인 주제였다.
높이 솟은 종탑과 낮게 늘여진 건물 사이의 대조와 함께 극적인 빛의 효과는 이 작품을 매우 흥미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빛의 효과와 극적인 원근법 활용, 유머러스한 인물상이 이 작품을 특징지어주며, 이는 카날레토 작품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피터르 루벤스 '죄와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 1615/22
그리스도가 오른손에 부활의 깃발을 들고 앉아 있다. 그의 오른발은 해골의 머리 위에 있고 왼발은 뱀 위에 있는데,
해골과 뱀은 죽음을 상징 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빨간색 망토와 함께 그가 죄와 죽음을 극복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뒷쪽에는 지옥불이 타고 있고, 천사들은 승리의 상징물을 들고 있다. 왼쪽에 있는 천사는 트럼펫을 불고,
중간에 있는 천사는 그리스도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으며 오른 쪽에 있는 천사는 승리의 종려나무를 들고 있다.
그리스도는 마치 고전 속 영웅들과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처럼 장엄한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안트베르펜의 세인트 왈부르가 교회(St. Walpurgis Church)에 있는 묘지 위에 높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루벤스는 이 점을 고려하여 그림에서 단축법을 사용하였다.
과감한 생략을 통해 2차원의 평면에서 극도의 현실감을 주고, 위에서 내려다보는듯한 회화 작품의 위엄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아코프 요르단스 프란츠 스니테르스이 '바다의 선물' 1640/50
수산시장 풍경 같은 이 작품에서는 17세기 유럽에서 성장하던 상업과 무역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이 대형 회화에는 왼쪽의 높은 바위에서 시작해 오른쪽의 넓은 평지로 이어지는 바닷가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전경은 거북, 조개, 바닷가재, 게와 함께 수많은 다른 종의 물고기들을 포함하여 대부분 죽은 해양생물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장면이고,
뒤쪽 바다로부터 바다의 신인 넵튠(Neptune)과 그의 수행원들을 포함한 인물군이 몰려들고 있다.
왼쪽 상단에 솟아있는 바위 꼭대기에 신들의 전령인 헤르메스(Hermes)가 에로스와 함께 앉아 있다.
붉은 뺨을 가진 강인한 요소적 인물 (elemental figures)들은 안트베르펜 화가인 야코프 요르단스(Jacob Jordaens, 1593–1678)의
전형적인 화풍 이다. 인물들의 창백한 피부색과 틀어진 자세는 이 그림이 요르단스가 안트베르펜을 이끄는 화가로 출세하는
1640년에서 1650년 사이에 그려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쪽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한 대형작으로 이번 전시회에 통째로 들여 올 수 없어 프레임을 분해 시킨 후 들여왔다고 한다.
안 브뤼헐 1세 '토비아가 있는 풍경' 1598
풍경화는 16 세기 말까지 수십년동안 역사화로부터 분리된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가 되었다.
풍경화 중에서도 마을 풍경, 겨울 풍경 또는 산이나 숯을 그린 풍경화와 같은 장르들을 발전시킨 중요한 작가로는
얀 브뤼헐 1세(1568~1625), 유스 더 몸퍼르(1564~1635) 등이 있다.
피터르 브뤼헐 1 세의 아들인 얀 브뤼헐 1 세는 다수의 풍경화, 꽃정물화 등을 남겼는데 특히 일찍부터 작은 크기의 풍경화에 집중했다.
그는 풍경화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고 사실주의적 풍경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광활한 풍경에 활기를 불어넣는, 전경의 작은 인물들이 묘사된 뛰어난 풍경화들이 여러 점 있다.
또한 그는 성서 속이나 역사 속의 장면들을 풍경화와 결합시키기도 했다.
<토비아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the Young Tobias>은 얀 브뤼헐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풍경화이기도 하다.
이 그림의 색채는 오후의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고, 상상의 강가를 배경으로 축제 분위기가 가득하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형형색색의 집단 가운데 토비아가 천사들과 함께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장면은 무척 구분하기 어렵고,
이것이 바로 얀 브뤼헐 풍경화의 전형 이다.
많은 수의 작품들이 자세히 관찰해야만 하는 신화적, 또는 역사적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는 작품의
주제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에서 처럼 관객들이 필요한 성서의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일깨워 주고있다.
한스 마가르트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1875
클레오파트라는 B.C. 69년에 태어난 이집트의 여왕(재위 B.C. 51~30)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통치자였다.
그는 사실 이집트인이 아니라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 왕통의 혼혈이었으나 높은 교양과 미성을 자랑하고,
특히 미녀로서뿐만 아니라 그 지성과 수완으로 이집트의 종교에 깊이 관심을 보여 태양신 라(Ra)의 딸을 자칭하며
이집트인들의 깊은 신뢰를 얻었다.
강대한 로마 제국의 세력 앞에서 기울어져가는 이집트의 국세를 만회하려고 노력한 비극의 제왕이기도 하다.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와의 악티움 해전에서 패한 후, 독사를 이용해 자살하려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 이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과장된 모습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19세기 오스트리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였던
한스 마카르트의 작품으로 그는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주로 고전에 대한 주제들을 화려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유명세를 따라 극적이고 화려한 그만의 작품들은 <마카르트 스타일>로 불리기도 한다.
전시장의 초입인 쿤스트캄머에 걸려 있다. 뱀에 물려 독이 퍼지며 푸르게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흙(땅)' 1570
멀리서 얼핏 보면 콧수염 기르고 이마가 튀어나온 코주부 영감님의 옆 얼굴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보면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한데 뒤엉켜 자리잡은 동물들만 가득하다.
토끼, 치타, 코끼리, 소, 사자, 숫양, 원숭이 등 각각의 얼굴 부분에 절묘하게 자리잡은 모습이 가히 천재적 이다.
작가 아르침볼도는 이렇듯 교묘하게 쌓아놓은 정물들을 통해 인물을 표현한 작가로 유명 하다.
이런 기괴한 얼굴은 페르디난트 1세, 막시밀리안 2세, 루돌프 2세와 같은 황제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다.
자연 만물을 지배하고 선정을 베푸는 존재로 받아들였기 때문인지 기존의 조금씩 미화된 초상들만 보던 황제도 즐거워하며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흙>, <불>, <물>, <공기> 네 가지 연작 중 하나로 그려졌기 때문에 땅에 사는 동물들을 소재로 그리고 있다.
피터르 파울 루벤스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 1616
루벤스가 사랑스런 첫 딸 다섯 살 때 모습을 그린 것인데, 열두 살 때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얼마나 안타깝던지...
보는 사람과 눈을 맞추듯 정면을 바라보는 여자 아이.붉게 물든 뺨과 또렷한 눈동자에서 생동감이 전해진다.
자신을 그리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 클라라는 다소 장난기 섞인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 본다.
발갛게 물든 볼, 콧등, 다문 입술, 귀여운 이마는 생기있는 클라라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클라라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버지를 마주하던 눈빛을 관람객 스스로 마주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된다.
어떤 걱정이나 불편함 없이 또렷하게 바라보는 맑은 눈망울을 마주하다 보면 오래 알고지냈던 소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 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다보면 루벤스는 딸의 얼굴을 무척 세심하게 표현하면서도 마치 미완성 작처럼 나머지 옷과 배경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판매하거나 전시될 그림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애정을 담은 개인 소장품으로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희귀하고 이런 표현 때문에 우리는 아이의 얼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는 비록 1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이 작품을 그릴 당시에는 밝고 건강한 모습 이다.
귀여운 딸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서양미술사에 남을 시대의 거장이기 이전에 아버지였던 루벤스의 마음이 잔잔하게 느껴진다.
루벤스의 대표작이라 할만큼 유명한 작품으로 입장권 티켓이나 메인 홍보로 많이 사용된 그림이라
그림이 클 것으로 예상했는데 보는 순간 크기가 작아 깜짝 놀랬다. 빨간 프레임은 거북이 등껍질로 만들었다고 한다.
피터르 파울 루벤스 '아기 에리크토니오스의 발견' 1616
에리크토니오스는 고대 신화에 나오는 이름 이다.
미네르바를 겁탈하려던 불칸이 떨어뜨린 정액 때문에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잉태를 해서 낳은 아기 이다.
가이아 대신 아기를 맡게 된 미네르바는 아티카의 왕 케크롭스의 세 딸들에게 아기를 맡기며 절대로
바구니를 열어보지 말라고 하지만 딸 중 하나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바구니를 여는데, 이 그림은 바로 이 장면을 그린 것이다.
바구니 안에 누워있는 애기는 몸통은 사람인데 두 다리는 뱀 꼬리 이다.
이 작품은 본 전시장 123점중 가장 고가의 작품인 동시에 무려 3m 이상의 대작 이다.
<아기 에리크토니오스의 발견>은 회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인문학에 관한 방대한 학식을 갖추었던 루벤스는 이 주제를 선택했다.
루벤스는 실제로 안트베르펜의 자택 서재에 고대 문학 작품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루벤스에게 이 신화의 줄거리는 아르카디아 풍경을 배경으로 고대의 이상적인 신체를 그려낼수 있는 좋은 소재였으며
이 장면을 그리기에 앞서 수많은 습작과 드로잉 작업을 거쳤다.
루벤스는 당대 누구보다도 고대조각에 대해 조예가 깊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도 고대조각을 수집했을 뿐아니라,
이탈리아 여행 도중 보았던 조각들의 외형을 수많은 드로잉으로 기록해 두었다.
플랑드르 예술가 가문 피터르 브뤼헐2세, 피터르 브뤼헐 1세 작품 모작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1607
한쪽에서 팽이 치기, 썰매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술통을 끌며 얼어 붙은 강을 건너고 있다.
다른 한 쪽(그림 중 왼쪽 아래)에선 돼지를 잡으며 피를 받고, 또 한 마리의 돼지가 죽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 그림은 생활화나 풍속화 같지만 종교화 이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톱(목수 표현)을 멘 요셉과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인공 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외면으로 튀어나 보이지 않고,
베들레헴은 눈이 없는 지방이지만 눈을 그려 넣으므로 크리스 마스 전인 겨울 농촌을 묘사한 작품 이다.
성서의 누가복음에 의하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 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은 요셉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었고 그 곳에서 마리아는 마구 간에서 예수를 낳았다.
이 작품은 피터르 브뤼헐 2세(Pieter Brueghel the Younger)가 그린 것으로
그의 아버지 피터르 브뤼헐 1 세(Pieter Brueghel the Elder)가 제작한 유명한 그림의 복사본 이다.
위 사진에선 글시가 작아 안보이지만 그림 중앙 오른쪽 수레에 얹혀진 커다란 술통 왼쪽면 나무에 작가의 서명이 쓰여 있다.
피터르 브뤼헐 1 세는 복음서에 근거해 이 장면의 배경을 겨울 풍경으로 설정하였다. 예수의 탄생은 12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업을 하는 도중에 그는 이 주제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설정을 하게 되었다.
성서 속 풍경보다는 당시의 생활을 묘사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푸른 색 망토를 입고 당나귀를 탄 마리아의 모습이 전경 오른편에 보인다.
톱을 어깨에 메고 마리아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요셉의 모습은 마을의 부산 함 속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마을에는 나무를 마차에 싣고, 돼지를 도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또 빙판길을 가로질러 썰매 위에 술통을 끌거나 스케이트 타기 또는 눈싸움을 하면서 즐거운 시 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코르넬리스 더발리와르, '수집가의 갤러리' 1640
본 전시실에 들어서자 마자 펼쳐지는 첫 번째 방 <쿤스트캄머>는 그래서 이번 전시회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한 고귀한 여성이 예술품이 가득 걸린 거대한 방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이 여성은 벽에 걸린 몇몇의 그림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그는 손님들에게 이 작품들을 공개하며 한껏 우월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공간의 이름이 바로 쿤스트캄머 (Kunstkammer, 우리말로 '예술의 방'), 오늘날 미술관의 시초다.
후기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갤러리에 단지 미술 작품을 전시 할 뿐만 아니라, 달팽이, 진주, 유리공예품과 그 밖에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아름답고, 진귀하고, 특이한 것들을 모두 함께 전시했다. 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그대로 재현하려 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종교와 관련된 역사화’를 감상하면서 깨달음을 얻었고, 그 깨달음이 기독교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져온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조형예술 작품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은 영주와 부유층 사이에서도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화랑(Gallery)의 내부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 등장하여 1610년경 안트베르펜에서 유행했다.
이러한 “갤러리 그림(gallery painting)”이 탄생하고 유행하게 된 시점은
안트베르펜과 브뤼셀의 귀족, 상인들 사이에서 신구 예술품 수집이 번창한 시기와 같다.
화랑화 중에는 실제 소장품이 아닌 유명 작품이나, 해당 화가의 작품을 더해 상상의 소장품을 그린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그림은 조명이 잘 되어있는 격자 천장의 긴 화랑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의 유행처럼 벽에는 그림들이 빼곡히 걸려있고, 몇 점은 바닥에 세워져 있다.
안트베르펜의 지도에 루벤스와 활동했던 사람들의 집과 작업실이 표시된 그림.
미술작품 뿐 아니라 가구나 시계 그릇 등도 전시되어 있다.
루벤스의 태피스트리 연작 '데키우스 무스' 6개 중 2 작품.
루벤스가 도안, 직물 제작과 전반을 기획 감독하여 직물에 회화적인 성격을 부여, 직물은 얀라스부자 공장에서 제작,
천에 그린 것이 아니고 직접 실로 짠 작품 이다.
루벤스 자신의 '초상화'
루밴스의 탄생부터 표시한 년대기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6.28 ~1640.5.30) 국적 - 벨기에.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독일 베스트팔렌 지겐으로 피해 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자 10세 때 가족과 함께 고향인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와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3년 뒤 14세에 랄랭 백작부인의 시동이 되어 귀족사회의 습속을 익혔고, 화가가 될 뜻을 세웠다.
15세 때 A.노르트(1562∼1641), O.베니우스(1556∼1629) 등에게 그림을 배운 뒤 21세 때인 1598년
당당히 안트베르펜화가조합에 등록, 23세 때인 1600년에 이탈리아 유학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8년 동안 베네치아·로마 등지에서 고대미술과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당시 이탈리아의 바로크화가인 M.카라바조와 카라치파(派)의 영향을 받아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차차 명성을 얻는 한편, 만토바공(公)의 인정을 받아 그의 사절로서 외교적 사명을 띠고 에스파냐로 여행하였다.
160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왔을 때 이미 어머니가 운명한 뒤였으나,
그는 플랑드르 제일의 화가로서 고향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1609년 플랑드르 총독 알브레흐트 대공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10월에는 명문 집안의 딸 이사벨라 브란트와 결혼하였다.
그 뒤로는 날로 높아가는 명성과 많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루벤스 특유의 화려하고 장대한 예술을 펼쳐나갔다.
역사화·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제재를 작품화하였는데, 파리의 뤽상부르궁전의 21면으로 이루어진
연작 대벽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그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루벤스 예술의 모든 특질을 담고 있으며
바로크회화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현란한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게 타오르는 듯한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울려 생기가 넘친다.
외교관으로서도 활약하였으며 원만하고 따뜻한 인품으로 말미암아 유럽 각국 왕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1626년 아내 이사벨라가 죽은 후, 1630년 16세의 엘레나 푸르망과 재혼하였다.
1640년 팔의 통풍이 심장에까지 번져 안트베르펜에서 죽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접해있는 리히텐슈타인 공국
전시실 동선.
전에 아이들과 TV 앞에 나란히 앉아 보았던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우유통을 목에 멘 '파트라슈'는 두 귀가 쫑끗 세워졌는데... 오늘 만난 귀가 늘어진 이 개의 모습은 좀 낯설다.
1970~1980년대 방영된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
주인공인 네로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할아버지와 수레를 끄는 개 '파트라슈'와 함께 우유 배달 일을 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도화지 살 돈이 없어 널빤지에 목탄으로 그리면서도 화가를 꿈꾸었던 소년 네로는 거장 루벤스를 존경한다.
앤트워프 대성당에 커튼이 쳐진 채 걸려있는 그의 작품을 보고 싶어하지만, 관람료인 '금화 한 닢'을 낼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파트라슈와 함께 생활하던 네로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미술대회에서 입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질은 뛰어났어도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네로는 배움이 모자라 완성도 높은 그림은 제출할 수 없었다.
혼신을 다해 그린 출품작이 낙선하였을 무렵 야속하게도 플랑드르의 겨울이 다시 찾아온다.
우유 배달 일이 끊긴 네로는 세 들어 있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고, 마을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 방화범의 누명마저 뒤집어 쓴다.
겨울날 갈 곳도 없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맴돌다 들어간 곳은 루벤스의 대성당.
성모님의 은총이었는지 그날은 특별히 그림에 쳐진 커튼이 걷혀 있었다.
루벤스의 대작 <십자가에서 내리심>을 바라보다 네로는 더는 여한이 없음을 주님께 고백하며
굶주린 개 파트라슈와 함께 얼어 죽는다.
"아~ 마리아님 감사합니다. 이제 전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는게 없어요,
파트라슈, 난 봤단다. 제일 보고 싶었던 루벤스의 그림 두 장을, 그래서 난 지금 너무나 행복해"
※. 아래 동영상을 볼 경우엔 맨아래 메인 음악 정지 후에~
착한 주인공도 죽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하며 권선징악에 익숙했던 당시대 아이들에겐 엄청난 충격 이었다.
이번 전시회에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그림(십자가를 세움, 십자가에서 내리심)은 없었고,
대신 반다이크, 요르단스, 브뤼헐 일가를 포함한 같은 시대 네덜란드 작가들의 그림이 전시 되었다.
루벤스 作 '십자가를 세움' 1610~1611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있다고 하는...
루벤스 作 '십자가에서 내리심' 1612~1614
꼬마 화가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그림 두 장~~!!!
모임 점심 식사 마친 후 도슨트가 아닌 박물관 학예사의 작은 목소리로 설명 들으며 그림 감상 후
이해가 부족하여 오디오 가이드 대여하여 다시 한 번 천천히 둘러 보았다.
'Story(문화,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 간송문화(澗松文華)전 6부 (0) | 2016.06.02 |
---|---|
여행) 경포대 (0) | 2016.04.15 |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0) | 2016.02.04 |
남도 맛기행 1 (0) | 2015.12.25 |
여행) 남도 맛기행(장흥, 해남) 일정 (0) | 2015.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