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문화,여행)

전시) 간송문화(澗松文華)전 6부

opal* 2016. 6. 2. 23:25

 

30년 전통의 ㄷㅎ반점에서 특별식 점심식사 후 DDP에서 간송미술관 소장품 6부 감상.(15:30 도슨트 이용)

2년전 2부에서 관람했던  그림 여러 점도 이번에 다시 전시되고 있었다. 

 

동대문 대자인 플라자(DDP)

 

 

개요

 

 

 

 

야묘도추(일명 파적도破寂圖) - 김득신

 

 마상청앵(馬上聽鶯 : 말 위에서 꽤고리 소리 듣다) - 김홍도(金弘道)

 

 

 

성하직구(盛夏織屨) - 김득신(1754~1822)

 

대문제경직도라는 화본에 그 기본 구도를 두고 있는 작품으로 박덩굴이 나무 울타리 위로 무성하게 타고 올라가서 큼지막한 박을

달아 매놓았으며 그늘을 드리운 사립문 울타리 아래에 삿자리를 깔아놓고 그 위에서 짚신을 삼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농가의 3대가 한자라에 있으니 노부인 듯한 백발노인은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고,

손자인 듯한 어린 아이는 할아버지의 등이라도 긁고잇는 듯한 모습인데

찌는 듯한 삼복더위인지 오른들은 모두 웃통을 벗었고, 삽 살개조차 혀를 빼문 채 헐떡거리고 있다. 

왕실과 사회의 평안과 더불어 대를 이어가는 농가의 평화스러운 모습이 짚신 삼기라는 소재를 빌어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대장간  - 김득신

 

김득신은 김홍도에게 서 많은 영향을 받은 화가로 먹선의 쓰임이 김홍도에 비해 가늘고 부드러운 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김홍도의 선를 따르고 있다.

대장간이 바로 그런 그림의 하나 이다. 먹선을 가늘고 부드러우며 인물의 하면배치 상태나 움직이는 자세 등은 매우 유사한 데가 있다.

그리고 기김홍도의 대장간에는 배경이 샐약되어 있으나 김득신의 대장간 배경에는 배경이 그려져 있다.

  

투전도 -  김득신

 

투전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들은 중인(中人) 계급의 남자들로 보이는데

투전에 정싱없이 빠져있는 모습이 각 인물들의 얼굴표정과 몸짓에서 여실히 느껴지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오 보이긴 하지만, 교양 있는 몸가짐이나 위신은 전혀 찾을 수 없게 도박에 몰입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면

이들이 분명 양방 지식인 충이 아닌 중인계급의 사람들일 것이다.

 

당시 여유있는 중인들이 투전판을 벌이거나 주색잡기에 빠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김득신이 바로 그러한 풍속의 하나를 그린 것이다.

화면에 그려진 인물들의 형태 표현이 주제에 맞게 자연스럽고 개성미가 있다.

 

 

어초문답 (漁樵問答: 낚시꾼과 나뭇꾼이 묻고 대답하다) - 이명욱(李明郁),

 

북송의 유학자 소옹은 <어초문대(漁樵問對)>를 지어 어부와 나뭇꾼이 서로 문답하는 체재로 천지 사물의 의리(義理)를 천명하였다.

이후로 세속에 골몰하지 않고 천리에 따라 삶을 사는 어부와 나뭇꾼의 문답에 꾸밈없는 세상의 이치를 담아낸 그림이 한 정형을 이루었다. 
어부와 초부 두 인물을 크게 배치하고 어부가 든 긴 낚싯대를 통해 화면을 구분하고 총총하게 갈대숲을 그려 넣어 좋은 구도를 이루었다.

 

어부는 테만 있는 갓을 이마가 나오도록 눌러 쓰고 왼손에는 두 마리 고기를 엮어 들었는데 반팔에 무릎을 드러낸 맨발 차림이다.

초부는 머리를 뒤로 묶고 막대를 오른쪽 어깨에 걸친 채 허리춤에 도끼를 꿰찼고 왼손으로 저쪽을 가리키며 이야기에 열심이다.
굵고 가는 필선을 겹쳐 사용하여 옷자락에 풍부한 양감을 주었다.

 나무꾼이라기보다 선비의 풍모를 연상하게 하는 초부의 옷자락은 걸음 방향과는 반대로 앞으로 휘날려 자세의 균형을 이룬다.

옷자락까지 화면의 균형을 고려한 치밀한 구성이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범상함을 넘어선 경지가 배어난다

 

절로도해(折蘆渡海, 달마대사가 갈대 타고 바다 건너는 모습)- 김홍도 

 

달마의 ‘절로도해’는 단순히 그의 신통력을 보여주는 얘기에 그치지 않고
갈대라는 식물을 비롯한 그 어떤 것일지라도 해탈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그래서 갈대만 보지 않고 갈대가 지닌 의미를 봐야 한다.

누구든지 갈대를 타고 강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강을 건널 수 있지만, 건널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어떤 도구로도 불가능하다.
강을 건널 수 있느냐의 여부는 반드시 강의 폭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맹자가 언급한 것처럼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구분해야 하지만, 인생의 번뇌를 건널 수 있는가의 문제는 곧 마음에 달렸다.

 달마가 갈대를 타고 소림사에 도착해서 큰 깨달음을 했듯이,

갈대를 깨달음의 경지로 이끄는 배로 삼는다면 행복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단원의 도석화는 풍속적 도석화다. 신선과 보살, 선승 등을 그렸지만, 얼굴 생김새는 친근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마를 과장되게 길게 그리는 등 기형적인 용모로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중국 도석화와는 완전히 구별된다.
조선 성리학의 영향으로 탄은 이정(1554~1626) 때부터 조금씩 조선의 색을 띠기 시작하던 도석화는
정선(1676~1759)에 이르러 우리 풍속을 반영하기 시작했고, 단원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낭원투도(閬苑偸桃,'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 -  김 홍도

 

도석화 인물 시리즈 중 한 작품인 삼천갑자 (三千甲子) 동방삭이 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는 그림이다. 

곤륜산에 사는 여신 서왕모의 복숭아 과수원인 낭원의 선도 복숭아는  3천년 만에 한 번 꽃이 피고 다시 3천년이 지나야 익는다고 하는데, 

 이 복숭아 한 개를 먹으면 1천 갑자를 산다.(甲子, 60년, 回甲).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치는 동방삭을 대담한 감필법(減筆法)으로 그린 '낭원투도(閬苑偸桃)'속 동방삭의 모습은
기괴한 노인이 아닌 평범한 청년의 모습이고,
갈대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달마대사를 그린 '절로도해(折蘆渡海)' 속 인물은 조선 승려의 모습이다.

 

 삼인문년(三人問年:세 사람이 나이를 묻다)- 장승업(張承業)

 

'삼인문년'리안 그림 제목은 소동파가 지은 '동파지림(東坡志林')에 수록된 내용으로 세 신선 노인이 서로 나이 자랑을 하는 이야기이다.

장승업이 이런 내용을 소재로 해서 도석화를 그렸다. 세 노인이 서로 손짓해가며 나이 자랑을 하고 있는데 세 노인의 복장은 옷깃의 색상에 차이를 두어 구별하였다. 위에는 구멍뚫린 기괴한 바위와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파도가 넘실대는데 상전벽해를 상징하는 내용일 것이다.

 

가운데 오른쪽에는 예닐곱 개의 선도를 매단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솟아나 있고 한 노인이 손으로 이를 가리키고 있다.

그 아래에는 동자 하나가 바위에 상체를 개댄 채 딴청을 피우고 있는데 아마 복숭아를 훔칠 기회를 노리는 동방삭인 모양이다.

천부의 기량으로 전통회화의 대미를 장식했다고 할 장승업이 공들여 완성한 신선도이다. 그림 아래 오른쪽에 '오원'이란 관기과 인장이 있고

위 오른족에 동농 김가진이 쓴 삼인문년도라는 제명이 있으며 위 왼쪽에는 1914년에 오원의 제자인 심전 안중식이 쓴 제발이 있다.

 

"이는 장오원 선생이 중년에 그린 것이다. 인물과 나무, 바위의 필법과 채색은 신운이 생동한다고 할 만하다.

그 평생 그린 인물이 적지 않지만 이폭과 같은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니 참으로 보배라 할 수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이제 이그림에 글을 쓰다가 술잔을 기울이며 휘호하시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선동도해(仙童渡海, 선동이 바다를 건너다) - 심사정

 

 

문월도(問月, 달에게 묻는다) - 이정(李霆) 

그믐달이 으스름하게 빛나는 산허리 바위에 걸터앉은 고사가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킨다.

도포 한 자락만 걸친 듯 입고 있을 뿐 더벅머리와 맨발의 격식 없는 모양새는 세속에서 벗어난 경지를 말해준다.

달을 바라보며 얼굴에 가득 담은 천진한 웃음은 세상바깥의 이치를 깨달은 희열일 것이다.

충남 공주(公州)의 탄천(灘川)에 ‘달이 먼저 오는 정자(月先亭)’라 이름 지은 별서(別墅)에서 은거했던

탄은 이정의 꿈이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묵죽화의 댓잎을 닮은 굳센 옷자락 표현은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는 화면에 탄력과 긴장감을 주었다. 바위는

약하게 묘사하여 고사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탄탄한 구성과 세련된 필묵법에 담백한 운치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이 그림을 소장했던 김광국(金光國, 1727-1797)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놓았다.

“탄은의 매화와 대나무, 난 그림은 있는 곳마다 있으나 산수 인물에 이르러서는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제 그 망월도(望月圖) 작품을 얻었는데 대개 대를 치는 필법으로 간략하게 해내서 지극히 거칠고 성긴 운치가 있다. 예전에 예형민(倪瓚, 1301-1374)은 대나무 그림에 스스로 글을 지어 말하기를 ‘내 가슴 속 일기(逸氣)를 그렸을 뿐이다’고 했다. 탄은의 뜻도그 또한 이와 비슷한가.”

 

 

 

현이도 (賢已圖, 장기놀이) - 조영석(趙榮?),

여러 선비들이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장기를 두며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장면이다.

 장기가 막판에 다다른 듯 죽은 말들이 수북이 쌓이고 판위에는 말이 몇 마리 남지 않았다.

오른쪽의 삿갓 쓴 선비가 말을 놓으며 반쯤 돌아앉은 채 일어설 태세인 것으로 보아 한 두 수면 끝나는 묘수로 장을 부른 모양이다.

외통수에 걸려 수가 없는지 낙천건을 쓴 선비는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고 그 옆의 탕건 쓴 선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감탄을 연발한다.

 

제비부리댕기를 드린 총각 하나가 지나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듯 돗자리 끝에 올라서서 방정맞게 부채질을 해대며 어깨 너머로 아는 체를 하고 소나무 아래 사방건을 쓴 선비는 바둑판과 쌍육판을 낀 채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이 한판의 광경을 구경하며 미소 짓는다.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잘라내어 화면을 넓게 비우고 다양한 동작과 표정을 실감나게 묘사해 막판에 다다른 장기판의 흥분을 생생하게 잡아냈다. 고아하고 담백한 필선은 선비들의 아취를 전해주고 맑은 담채와 화사한 진채는 한양선비들의 도시적인 세련미를 풍겨준다. 자신을 포함한 한양 사대부들의 친근한 생활상을 그린 것이라서 조영석의 풍속화 중에서도 돋보이는 수작이다.
장기 두는 그림을 <현이도>라고 부른 것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배불리 먹고 하루 종일 마음 쓰는 데가 없으면 딱한 일이다.

바둑과 장기가 있지 아니한가?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

 

연소답청 - 신윤복(申潤福)

조선왕조의 후기문화가 황금기를 이루고 있던 진경시대에 서울장안의 귀족생활은 아마 가장 호사를 극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귀문자제(貴門子弟)들의 행락(行樂)도 어지간히 극성스러웠을 듯한데 이 그림은 그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진달래꽃 피는 봄철이 되자 이 협기(俠氣: 남자다운 기상) 만만한 반가(班家: 양반집안)의 자제들은 청루(靑樓: 기생집)를 벗어나서

간화답청(看花踏靑: 꽃을 보고 푸르름을 밞음)의 야유(野遊)를 계획한 모양이다.

저희끼리만 가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분명히 제가 탄다고 끌어내었을 말 위에는 기생이 하나씩 올라타 있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더구나 천민인 기생이 이와 같이 무엄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미 그녀들의 포로가 되어 노예의 직임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이런 건달들에게는 예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의 옷차림은 장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온갖 멋을 다 부리고 있으니, 보라색과 옥색 천으로 발 굵게 누빈 저고리에

향낭(香囊: 향주머니, 이때는 향수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향주머니를 찼다.)을 달아 차고 홍록(紅綠)의 갖은 주머니를 긴 띠 매어 치레하며,

 행전은 짧게 치고 중치막의 앞 두 폭을 뒤로 잡아매어서 뒤폭만 꼬리로 늘이어 걸음마다 나풀거리게 하고 있다.

속없는 이 사람들, 말 탄 기생에게 시중을 드느라고 담배 붙여 대령하며, 구종(驅從: 말을 모는 시종, 마부)되기 자원하여

갓 벗어 마부 주고 마부 벙거지를 제가 쓰고서 검은 띠 허벅대님 매고 말고삐를 잡고 있다. 난처한 것은 구종이다.

차마 상전의 갓을 대신 쓰지는 못하고서 고삐 대신 갓 잡고 헛채찍 맨상투에 심통이 가뜩 나서 비슥비슥 뒤만 따라간다.

한 친구는 시간에 늦었던지 갓 벗어 짊어지고 옷자락에 바람 일구며 동자구종(童子驅從)을 급히 몰아 달려오는데,

말 탄 기생의 초록 장옷도 깃발처럼 뒤로 나부낀다. 암벽에는 진달래인 듯 분홍꽃을 가득 피운 나무들이 군데군데 있고 구름 같은

기생의 트레머리에 그 꽃가지가 꽂혔으며 물빛으로 갈라놓은 삼거리 주변에는 청태점(靑苔點)이 분분(紛紛)하여 답청(踏靑)이 실감된다

 

주유청강 -  신윤복(申潤福)

 

왕도(王都)의 빈빈(彬彬: 문물이 성대하여 빛남)한 문물은 여유 있는 귀족생활의 격조 높은 운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녹음이 우거지고 강심(江心: 강의 중심)에 훈풍(薰風: 첫여름에 부는 산들바람)이 일어나자

두세 자제(子弟)들이 한강에 놀잇배를 띄우고 여가를 즐기는 것 같다.

호사를 금기로 여기던 조선왕조의 귀족들이니 호화선을 꾸밀 리 없고

다만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차일(遮日)을 드리우고 풍류를 아는 기생들과 젓대잡이 총각하나를 태웠을 뿐이다.

신록이 그늘진 절벽 밑을 감돌아 나가는 뱃전에서는 시원한 생황(笙篁)소리와 맑고 긴 젓대소리가 섯바뀌어 일어나서

강심(江心)으로 휘돌아나가고, 일렁이는 잔물결은 뱃전을 두드리니 여기서 시정(詩情)이 흐르고 사랑이 무르익는다.

뱃전에 엎디어 스치는 물살에 손을 담가 보는 여인이나 이를 정겹게 턱을 고이고 지켜보는 선비의 모습에서도 그렇거니와

어깨를 감싸고 담뱃대를 물려주는 한 쌍의 남녀에게서는 시샘이 날 만큼 농밀한 사랑이 엿보인다.

이런 중에서도 남의 일에는 아랑곳없이 망연(茫然)히 뒷짐지고 시상(詩想)에 잠기는 여유를 보이는 것은

 역시 왕조귀족의 몸에 밴 교양이라 할 수 있다. 삿대질에 열심인 뱃사공도 자기 일에만 충실하고 있어서

음악을 연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과 함께 질서 있는 조화를 이룩한다.

이렇게 시정을 담은 뱃놀이가 굽이굽이 강상(江上)을 누비며

청아한 음률(音律)을 뿌려도 무심한 백구(白鷗)만 물결 쫓아 날아들 뿐 유유(悠悠)한 장강(長江)은 말없이 흘러간다.

 “젓대소리 늦바람으로 들을 수 없고, 백구만 물결 좇아 날아든다.(一笛晩風聽不得, 白鷗飛下浪花前)”라는 구절이

화외(畵外)의 소식(消息)을 화제(畵題)로 전해 주고 있다.

 

 단오풍정  - 신윤복(申潤福)

 

 그림은 단옷날 추천(그네타기)놀이를 나온 한 떼의 여인네들이 시냇가에 그네를 매고 냇물에 몸을 씻으며 즐기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그넷줄을 드리울만한 거목이 있고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이라면 당시의 서울에서야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정릉(貞陵)이나 성북동(城北洞) 골짜기는 물론이고 삼청동(三淸洞)이나 인왕산(仁王山) 계곡을 비롯하여

남산(南山)이나 낙산(駱山) 주변의 여러 골짜기들이 이런 놀이에 적합했을 테니 말이다.

여기가 어느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로서는 퍽 깊은 계곡이어서 인적이 끊어진 후미진 곳이었기에

여인네들이 마음 놓고 의복을 훌훌 벗어 던지고 냇물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에는 산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위틈에 숨어든 동자승 둘이서 이 기막힌 풍경에 희희낙락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하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혜원은 짐짓 화면의 초점을 딴 곳으로 옮기려고 그네 뛰는 여인에게 화려한 의상(衣裳)을 입히고,

머리 손질하는 여인에게는 엄청나게 큰 다리머리를 모두 풀어놓게 한 모양이다.

다홍치마에 반회장 노랑 저고리만으로도 지극히 선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백설 같은 속곳들이 반 넘어 내 보이는 것은 반라의 여인들에게서보다 훨씬 더 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앉은키보다도 더 큰 다리머리에서도 당시 사람들은 이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계집종인 듯한 여인이 유방을 드러내 놓은 채로 옷보따리를 이고 오는 것으로써

화면은 상하의 연결이 이루어져서 혼연(渾然)한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쌍검대무, 혜원 전신첩 국보 135호,  18C 후기

 

세력있는 귀족이 장악원(掌樂院)이 악공(樂工)들과 가무에 능한 기생을 불러다가 즐기는 장면이다.

악공과 기생의 수효로 보아 이 놀이가 보통 규모는 아닌데,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오직 주인 대감과

그의 자제낭관(子弟郎官 : 자제와 부하관리)인 듯하니 일가의 세도가 어지간한 모양이다.

 

혹시 혜원을 키원 준 어느 풍류 재상집에서의 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화면 구성에 있어서 일체의 배경을 거부하고

검무하는 광경만 전면에 가득채운 대담성을 보였으나, 주제 표현에 조금도 군색함이 드러나지 않으니

이는 인물의 포치(초치 : 분포하여 배치함)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시각의 촛점이 되는 검무기(劍舞妓 :칼춤 추는 기생)들은 의상에서 청홍(靑紅)이 강렬한 대조를 보이면서 화면을 압도하는데,

주인을 비롯한 악공들이 이를 중심으로 둘러 앉음으로써 화면의 비중은 평형을 이룬다.  그런데 검무기의 날렵한 동작에서 오는

율동감은 관객들의 도취된 몸짓과 악공들의 신바람나는 연주에 혼연일치를 보여 아연 활기를 띤다.

 

이렇게 놀이에 참석한 인물들의 심리를 궤뚫어 순간의 동작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 담을 수있다는 것은

아무리 화가의 예리한 안목이라 하더라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작자 혜원이 이런 세계에 얼마나 익숙했던가를

잠작할 수 있는데, 인물들이 하나같이 극도로 세련된 차림을 보이는 것도 혜원의 주변을 보는 듯하여 흥미롭다.

 

 

이번 전시 작품 중

김득신야묘도추(일명 파적도破寂圖),

김홍도(金弘道마상청앵(馬上聽鶯 : 말 위에서 꽤고리 소리 듣다)

 장승업(張承業), 삼인문년(三人問年:세 사람이 나이를 묻다)

 신윤복미인도쌍검무, 단오풍정(화첩 135호)여러 작품은 2년 전 2부 때도 전시 되었던 작품들이다.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간송 소장품 그림에 대한 설명을 더 볼 수 있다. 

전시) 간송문화(澗松文華)전

2014.08.07

 

 

 

 

 

 

 

 

 

 

 

 

월하정인 - 신윤복(申潤福)

눈썹달이 침침하게 내리 비치고 있는 야밤중에 등불을 비춰 든 선비 차림의 젊은이가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과 담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이들이 어떤 사이이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호젓한 곳에서 남의 눈을 피하여 은밀히 만나야 하는 사람들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예법을 생명으로 알던 왕조귀족들로서 비록 그 상대가 노는 여자라 할지라도 아직 새파란 나이의 젊은이가

내놓고 여자와 만나 노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층층시하에 있는 젊은 선비가 어른들의 눈을 피하여 집을 빠져 나오느라 이렇게 밤 깊어서야 만난 모양이다.

여인은 밤이 늦어서야 나타난 사나이가 야속하다는 듯 여간 새침을 떨지 않으니 답답한 남자는

무엇으로나 달래 보려는 듯 품속을 더듬어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서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야 두 사람이 어찌 각각 모를 리가 있겠는가.

만난 일이 반가워서 벌이는 실랑이일 뿐이다.

그래서 화제(畵題)에 “달빛이 침침한 한밤중에,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라고 하였으니,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이런 애틋한 사랑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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