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길원 - 3월이 오면, 마음 비우기, 사랑 나누기

opal* 2017. 3. 1. 19:28

 

 

3월이 오면 

                                                                        이길원

산으로 오르겠습니다
봄눈 질척이는 등산로 따라
이제 막 눈뜬 시냇물 소리에
가슴 헹구고
남쪽 바다 거스른 바람으론
얼굴 단장하겠습니다
옅은 새소리에 가슴 헤치면
겨울 나뭇가지 물오르는 소리.

산골 어디쯤 숨어 있는 암자 찾아
넙죽 절하고
두 손모아 마음 접으면
선인(仙人) 사는 곳 따로 있을까
석양 등진 길손의 헤진 마음
어느 바람인들 못 헹굴까

칼바람에 웅크린 꽃잎
숨기던 화냥기 못 참아
입술 내밀어 보내는 교태에
가뿐 숨 몰아 쉬는
하늘 걸린 산
산으로 오르겠습니다.

 

 

 

마음 비우기 

                                                                        이 길 원

산다는 것은
달빛아래 어른거리는 그림자같은 것
이렇게 많은 날들을 살아 왔는데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도 있었는데
아직도 죽음을 배우지 못했다.
너와 마주한 이 순간을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그렇게 마음을 비울 수만 있다면
산길 흐르는 바람처럼
자유로울 수 있으련만
오늘도 또 무엇인가
인연의 사슬을 엮으려 든다
사랑이란 늦가을 낙엽처럼
슬픔이나 쌓는 일
명예 또한 반짝이는
아침이슬 바라보는 일
가슴속에 불꽃 담고
죽음 앞에 탄식할 운명이나 그린다
비울 수 있는 마음
충만된 마음

 

 

 

사랑 나누기

 

                                                                         길원

 

우리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사랑하는 사람아
눈빛만으로도 이미 알 수 있는 것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랑
바람에 실리자
이미 들어 본 참새 이야기나
개구리 이야기에도
달빛에 부서지는 박꽃처럼 웃어보자

너와 함께 숨쉬는 작은 공간.
네 가슴 속 어딘가 스며들어
슬픔을 읽고 나온 숨결을
받아 마시며
눈물의 깊이를 보고 있단다
뼈 속의 고독을 적시고 나온
나의 숨결은
우리가 바라보는 저 작은 꽃잎
옅은 살결을 적시고 있지 않니

이미 알고 있는
슬픈 이야기도 피하자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아
창가의 란 잎에 스치던 공기를
우리가 마시듯
그렇게 우주의 공기를
함께 나누며 살고 있다
가슴속에 증오가 살아 있다면
그도 함께 나눌 수밖에 없는 우리들

천 마리의 학을 접던 마음으로
소망이나 접자
마주보고 눈빛 나누며 웃자
때로는 심상치 않은 서울의 공기가
우리를 아프게 해도
식당에서
차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낯선 사람과도 숨을 공유하듯
그렇게 사랑을 나누며
그렇게 사랑을 전하며
하늘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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